신을 죽이러 갑니다.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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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9화
커스틸 도시 (2)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사람 착각하게 만드네.”
공원 벤치에 앉은 무혁은 손에 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스틸 도시에 새롭게 마련한 원룸에서 하룻밤을 보낸 무혁은 이른 아침부터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주거지와 중앙탑으로만 구분되어 있었던 부락, 마을과 다르게 도시는 말 그대로 온갖 상점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식당부터 시작해서 편의점, 옷가게, 대형 백화점, 오락 시설과 술집, 그리고 유흥업소까지 말 그대로 지구에서 흔하게 보았던 도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손에 쇼핑백을 들었거나, 간단한 요깃거리나 군것질거리들을 들고 먹고 마셨다.
하하호호 웃으며 도시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혁은 마치 외국 여행이라도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부락과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었다.
중앙탑만 방문하면 대부분의 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부락이나 마을과는 달랐다.
물론,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 시간이 절약되는 편리함은 있었다. 그러나 결코 친절하지 않은 마족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점과 이것저것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쇼핑의 재미를 느낄 수 없으니 삶 자체가 삭막하고 팍팍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생존에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부락, 마을 식민들에게 여유와 쇼핑은 사치 중의 사치였고, 무의미한 일일지도 몰랐다. 때문에 일정부분 안정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도시 식민들을 기준으로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도시 식민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경쟁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곳이 헬-라시온이지만, 막상 도시로 나가보면 모두 그렇게 경쟁에만 목숨을 내걸고 살아가지도 않는다. 따지고 보면 적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삶에 안주하려 하는 이들이 더 많은 편이지.’
치열하게 생존에만 매달렸던 부락과 마을 생활이 전부였던 무혁에게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도시로 와보니 송정민이 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이들에게야 도시의 문명이 큰 의미가 없겠지만, 애초부터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고 안주를 택한 이들에게 도시의 문명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포인트의 여유만 생긴다면 마음 놓고 인생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나은 곳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긴 취업이나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과 윤리라는 구속력 또한 없으니 정말 원 없이 제 마음대로 즐길 수는 있겠네.”
실제로 곳곳에서 남녀끼리 혹은 같은 동성들끼리 거침없는 연애를 하는 이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헬-라시온에서는 남자가 아무리 씨를 뿌리고 다녀도 임신을 시키지 못했고, 여자 역시 생리가 완벽하게 멈춰버려 아무리 용을 써도 절대 임신을 할 수가 없는 몸이 되고 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자연 폐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에 젊은 여자들의 경우 폐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좌절감과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단순히 생리가 끊겼을 뿐 그 외적인 변화는 단 한 점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몸이 되어 훨씬 더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적응된 모습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이성 간의 연애도 더욱더 과감해지고, 자유분방했다.
여기에 인간과는 다른 이종족, 멋지고 아름다운 엘프나 수인족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자극제가 되니, 남녀 모두 지구에서는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특별한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고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긴, 부락이나 마을에 비하면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어야 하니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걸 뭐라고 할 순 없지.”
무혁은 멀지 않은 곳에서 격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며 서로의 몸을 더듬거리는 남녀를 바라봤다.
타인의 시선 따위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도시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 되어 있었기에 당연한 모습처럼 보일 정도였다.
처음 도시 식민이 된 이들은 이런 강도 높은 애정 행각에 경악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그들 또한 치열한 생존이 요구되었던 부락과 마을을 거쳐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니까.
남자의 손이 여자의 상의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무혁은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보고 있다가는…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는 음란마귀가 풀려나겠네.”
애써 발걸음을 돌리는 무혁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꽤나 오랫동안 두 남녀의 진한 애정 행각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남녀들의 연애질에 무혁은 참을 인(忍)자를 여러 번이나 가슴 속에 새기며 중앙탑에 들어섰다.
무혁은 포지션 트레이닝을 치르면서 얻었던 아지스와 다크 나이트 길드원들의 표식부터 정리했다.
“역시… 단위가 틀리네.”
많지도 않은 고작 11명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식에 저장되어 있던 포인트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그마치 1억2천2백만 포인트였다.
이 중 가장 많은 포인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당연히 아지스였고, 2천만 포인트가 조금 안될 정도로 막대한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 인간 사냥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건가?”
5년 차 식민이 이 정도였으니 애꿎은 몬스터 잡겠다고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였다.
물론, 그만큼 더 위험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이왕이면 수익률이 높은 곳에 모험을 걸 만하다 여겼다.
그러나 무혁은 한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목숨 걸고 같은 인간을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들이라 하더라도 헬-라시온 10대 길드 중 한 곳인 다크 나이트의 길드원을 상대로 모험을 벌일 정도로 멍청한 놈들은 없다는 것이다.
헬-라시온에서 나름 명성을 얻은 길드와 가문의 무서운 점은 바로 자신들의 세력에 대한 외부의 도전이나 기만행위를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 반드시 보복을 한다는 건데, 그건 규모가 큰 곳일수록 더욱더 체계적이며, 끈질겼고, 지독했기에 아지스 등이 포지션 트레이닝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고 무혁은 다크 나이트 길드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무혁으로서는 잘 나가는 인간 사냥꾼은 굉장히 많은 포인트를 벌며, 그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테니 자신 또한 그들의 목표물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지스와 다크 나이트 길드원들의 표식 덕분에 무혁의 포인트는 더욱더 막대해졌다.
중소도시 식민이 되기 위해 소모한 300만 포인트와 원룸 임대비 매월 50만 포인트를 1년 단위로 일시에 납입하며 600만 포인트를 추가적으로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혁의 잔여 포인트는 1억6천5백만 포인트가 조금 안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재벌이지.”
그렇다면 이제 재벌다운 쇼핑을 즐겨볼 차례였다.
그 전에 무혁은 보석부터 사들였다.
50만 포인트나 하는 골드 보석 100개, 30만 포인트의 실버 보석 150개를 사는데 9천5백만 포인트가 사라졌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무혁은 10만 포인트인 블랙 보석 300개와 5만 포인트의 레드 보석 300개, 1만 포인트의 옐로 보석까지 100개를 구매했다.
보석 구매 비용만 도합 1억4천1백만 포인트였다.
도시 식민이 되면 누구나 적응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보석을 현금처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중앙탑 밖에 없다.
부락과 마을에서야 중앙탑을 통해 거진 대부분의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도시 식민이 되면 굳이 중앙탑과 거래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중앙탑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는 물품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무기와 방어구는 물론 일부 스킬 링마저도 상회를 통해 구입할 수 있었기에 현금이나 다름없는 보석을 항상 공간 주머니에 넉넉히 담아둬야만 했다.
“그럼 어디 쇼핑을 떠나볼까?”
무혁은 곧바로 중앙탑을 나와 커스틸 도시의 북쪽에 위치한 무구 백화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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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하네.”
무구 백화점 앞에서 무혁은 그 엄청난 크기에 입이 떡- 벌어졌다.
커스틸 무구 백화점은 헬-라시온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1층부터 25층까지 이루어진 커스틸 무구 백화점으로 들어선 무혁은 곧바로 20층으로 향했다.
20층부터는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무구들이 판매되었기에 무혁처럼 작정하고 돈지랄을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감히 진입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입장권을 제시해주십시오.”
20층 입구에서 두 명의 우락부락한 체격의 오크가 무혁을 가로 막고 말했다.
무혁은 1층에서 미리 구매를 해두었던 20층 입장권을 오크에게 내밀었다.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티켓이었다.
짜악-!
입장권을 받아든 오크가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버렸다.
‘30만 포인트가 저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다니…….’
20층 1일 입장권 가격은 실버 보석 하나.
무혁으로서는 참 기가 막혔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니 그 말을 믿고 원하는 물건이 있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입구를 지나쳐서 본격적으로 무구 백화점을 둘러보려고 할 때였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메이드 복장을 한 귀염상한 수인족 여자가 무혁을 향해 다가왔다.
작은 키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은 외모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여동생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뭐… 우선은 직접 돌아보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쇼핑되십시오.”
귀엽게 웃으며 한 발 옆으로 물러나는 수인족 여자의 모습에 무혁은 그냥 지금이라도 안내를 받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혼자서 이곳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먼저니까. 정 찾기 힘들다 싶으면 그때 가서 도움을 받지 뭐.’
하지만, 한 번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느새 다른 입장객을 향해서 쪼르르- 달려가는 수인족 여자와 그녀의 손을 잡고 실실- 쪼개며 나란히 걷기 시작한 변태 같은 남자의 모습에 무혁은 왠지 모를 상실감과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혹시 다른 귀여운 메이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확인을 했는데…….
‘…저런.’
오크 여자가 메이드 복장으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 모습에 무혁은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의 입장객이 입구를 통해 들어서자, 오크 여자가 다가가서 ‘찾으시…’라는 세 단어를 꺼내기가 무섭게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카악- 퉤! 그 냄새 나는 얼굴로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니네 행성으로 꺼져!”
이어서 남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으며 다른 안내원을 데리고 오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혁은 어딜가나 막돼먹은 진상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의 수위 높은 진상짓에 어느새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덩치 좋은 수인족들이 나타났고, 그를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무혁은 절대적으로 매너 있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커스틸 무구 백화점은 한 층마다 그 넓이가 어마어마했다.
그 넓은 층마다 꽤 많은 점포들이 각기 다른 크기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각종 상회부터 길드, 가문, 그리고 이종족이 운영하는 무구점까지 마치 대형 백화점에 온갖 브랜드가 입점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한 무혁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점포를 찾았다.
하지만, 20층 전체를 둘러보는데 무려 1시간 가까이 소모되자, 무혁은 하는 수 없이 입구로 부리나케 향했다.
오크 여자든 누구든 지금은 무혁의 시간을 절약해줄 수 있는 도우미가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오크 여자가 아닌 다른 평범한 여자가 안내를 준비 중이었다.
“안내 좀 부탁하죠.”
무혁의 말에 안내원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찾으시는 무구가 무엇입니까?”
안내원의 물음에 무혁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메이커의 방어구를 찾고 있는데 점포를 찾을 수가 없네요?”
“세이크 메이커 점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세이크 메이커 점포는 24층입니다.”
“24층 어디죠?”
“24층 전체가 세이크 메이커 점포입니다.”
“…….”
이 넓은 한 층을 하나의 점포가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런 무혁의 모습을 보고도 안내원은 조금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은 채, 친절하게 24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24층에 도착한 무혁은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또 한 번 놀라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