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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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3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32화
포지션 트레이닝 (1)
“…젠장.”
비틀거리던 무혁이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았다.
예고도 없이 시커먼 그림자에 집어 삼켜져서 강제 이동을 당한 무혁은 머리가 핑핑- 돌았고, 속에서는 자꾸만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정말 지랄 같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무혁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강제 이동을 당하기 직전에 분명 머릿속 알림음은 ‘사냥꾼의 대지’라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고 했다.
“동굴인가?”
무혁이 서 있는 곳은 분명 동굴이었다.
그것도 뒤쪽이 벽으로 막혀 있는 가장 안쪽 깊숙한 곳이었는데, 간이침대 하나만이 달랑 놓여 있었다.
“배려 한 번 눈물 나네.”
딱 봐도 여기에 머물며 포지션 트레이닝을 마치라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거처인 셈이다.
동굴 천장에 주먹만 한 돌 3개가 박혀 있었는데, 그 돌들이 뿌려대는 불빛이 동굴 내의 유일한 조명이었다.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싶었으나.
“난데없이 동굴 생활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던 무혁은 재빨리 공간 주머니에서 음식을 비롯한 생필품들을 꺼내봤다.
“쩝쩝…….”
샌드위치 하나를 씹어 먹으며 무혁은 공간 주머니가 피 무지개 숲처럼 차단당하지 않았다는 점에 만족했다.
퀴퀴하게 곰팡내가 진동하는 동굴에서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어야 했다면 정말 짜증이 났을 것 같았다.
샌드위치에다가 탄산음료까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무혁은 동굴 안은 더 이상 볼 것이 없었기에 동굴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무혁은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수를 헤아렸다.
“스물일곱.”
정확하게 스물일곱 걸음 만에 동굴 입구에 멈춰 섰다.
한 걸음의 보폭을 대략 1미터로 잡았으니 동굴의 총 길이는 대략 27미터라는 계산이 나온다.
“애매하네.”
만에 하나라도 적이 쳐들어 왔을 때,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거리다.
그렇다고 함정 따윌 설치하기에는 또 거리가 너무 짧다.
스스로 경계심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며 무혁이 동굴 입구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 인간, 밖으로 나가기 전에 내 설명을 듣는 게 이로울 거다.
무혁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묵직한 음성에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홀로그램?’
돌아서자 홀로그램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홀로그램을 통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장신에 몸이 상당히 탄탄해 보이는 마족 남자였다.
이마에 솟아나 있는 굵고 뾰족한 뿔,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각진 얼굴 형태와 굵직굵직한 이목구비, 등에는 활과 창, 허리에는 두 자루의 칼과 검을 무장하고 있는 마족 남자가 무혁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포지션 트레이닝 담당자인가?”
무혁은 대충 마족 남자가 누구인지 알만했다.
어느덧 헬-라시온 2년 차였으니 이 정도의 눈치는 갖추고 있었다.
- 헬-라시온 최고의 사냥꾼 타이락스다. 너희 하찮은 인간 사냥꾼들의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지.
타이락스의 소개에 무혁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 앞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1년에 한 번씩 나를 만나게 될 거다. 그리고 나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이 성장할 거다.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지션을 선택했을 뿐, 단 한 번도 뛰어난 사냥꾼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무혁으로서는 타이락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어차피 포지션 트레이닝 역시 강제 사냥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다른 점이라면, 1년에 단 한 번이라 강제로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선 같은 포지션을 선택한 이들끼리만 경쟁을 할 때도 있었다.
‘결국은 마신이라는 놈이 인간들끼리 경쟁을 시켜서 서로 죽고 죽이길 바랄 뿐이지.’
무혁이 어떤 생각을 하건 타이락스는 자신이 할 말만 하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사냥꾼의 대지는 총 열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너희 인간들은…….
타이락스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사냥꾼의 대지는 1구역부터 10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역은 1구역이 가장 위험하고, 10구역이 가장 안전하다.
기본적으로 강제 이동 될 때는 연차에 맞춰서 구역이 배치된다.
무혁은 2년차였기에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10구역으로 자동 배치되었다.
“10구역에는 나와 같은 2년차들 밖에 없다는 소리인가?”
- 그렇다. 마신 라시온 님의 배려 덕분에 동등한 조건에서의 경쟁이 가능한 거다.
배려라는 말에 무혁은 비웃음이 나왔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구역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은 사냥꾼의 대지라는 곳에 존재한다면 구역을 이동해서 약한 자들을 공격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무혁의 물음에 타이락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타 구역간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구역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에 무혁은 최소한 10구역에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경쟁자는 없다고 확신했다.
‘적어도 10구역 내에서는 내가 최강이겠지?’
자만이나 우월의식 따위가 아니었다.
높은 연차의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고작 2년 차 중에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인간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있다 하더라도 블랙 본의 광기 스킬과 모래 태양이라는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는 무혁이었기에 10구역에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0퍼센트에 가까웠다.
‘의외의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걱정할 건 없겠네.’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무혁은 다소 긴장감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 상위 구역의 인간이 하위 구역으로 이동할 수는 없으나, 반대로 하위 구역의 인간이 상위 구역으로 이동하는 건 가능하다. 다만, 트레이닝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이동해야 하고 그렇게 이동을 한 번 하게 되면 다시 하위 구역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런 미친 짓을 구태여 할 필요가…….”
‘포지션 트레이닝을 통해서 얻게 될 보상은 절대 가볍지 않다. 헬-라시온의 가장 기본이 되는 룰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역경을 이겨낼수록 그 열매가 달콤하다는 점이니까. 강제 사냥에서 목숨을 잃게 될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강제 사냥에 참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될 거다.’
무혁은 포지션 트레이닝을 앞두고 휴식을 취할 때, 송정민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강제 사냥을 통해서 무혁이 얻은 이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상 현재 무혁이 같은 연차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이유였으니까.
시간의 탑을 겪고 블랙 본과 통통이를 얻었다.
피 무지개 숲을 겪고 대량의 스킬 링을 얻었다.
두 번의 강제 사냥 모두 포인트를 제외한 소득만 따졌을 때의 결과다.
포인트까지 더한다면 평범한 이들이 몇 년은 죽을 고생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막대한 이득을 얻은 무혁이었다.
포지션 트레이닝을 통해 얻게 되는 보상은 단 하나였다.
‘스킬 숙련도 알약!’
원하는 스킬의 숙련도를 영구적으로 10퍼센트나 상승시켜 주는 알약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결코 작지 않은 보상이다.
특히, 등급이 높을수록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보니 등급이 높은 상위 식민들일수록 포지션 트레이닝에 대한 집착도가 높았다.
단, 포지션 트레이닝을 온전히 통과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포지션 트레이닝은 랭킹 시스템이 적용된다.
그 말은 높은 순위, 랭킹에 이름을 올릴수록 보상도 두둑해진다는 뜻이다.
‘포지션 트레이닝의 랭킹 보상은 1위부터 10위까지다.’
1위부터 10위 안에 들어가서 랭킹 보상을 받게 되면 기본적으로 스킬 숙련도 알약을 추가로 하나 더 얻게 된다.
또한 순위에 따라서 10위는 1퍼센트, 9위는 2퍼센트, 8위는 3퍼센트 순으로 숙련도가 추가된다.
결과적으로 랭킹 1위를 할 경우, 기본 10퍼센트에다가 추가 10퍼센트짜리 알약을 2개나 얻게 되는 셈이다. 총 40퍼센트의 스킬 숙련도를 올릴 수 있으니 단순히 포지션 트레이닝을 통과한 이들보다 무려 4배의 보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랭킹 2위는 총 38퍼센트, 3위는 36퍼센트… 10위는 22퍼센트였다.
10위라 하더라도 기본 10퍼센트보다 2배 이상 많았으니 랭킹에 집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구역을 한 단계 높이 설정해서 포지션 트레이닝을 할 경우, 보상이 배로 증가한다.
무혁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만약 10구역에서 랭킹 1위를 하게 된다면 최대 40퍼센트의 스킬 숙련도를 얻을 수 있지만, 9구역에서 랭킹 1위를 하게 된다면 최대 80퍼센트! 8구역이면 160퍼센트! 7구역이면… 320퍼센트!’
생각을 마친 무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위험 요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10구역에서 포지션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옳은 걸까?
안전하게 랭킹 1위를 차지하면서 스킬 숙련도 40퍼센트에 만족하는 게 맞는 걸까?
무혁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질수록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강해진다.
흔한 말로 장애물 하나 없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셈이다.
결코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길일까?
안전을 유지하며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인간이란 항시 익숙함에 길들여지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린다.
헬-라시온은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다.
온갖 위협으로부터 경계해야 하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헬-라시온에서는 안주하는 그 순간 도태되어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송정민이 무혁에게 누누이 해왔던 말이다.
무혁은 그 말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 네가 속한 10구역에서는…….
“구역 이동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무혁은 타이락스의 말을 가볍게 잘라버리며 물었다.
- 구역을 이동하겠다는 거냐?
“그렇지 않으면 왜 물었겠어?”
대답이 당돌하게 느껴졌는지 타이락스가 처음으로 껄껄- 거리며 웃었다.
- 고작 2년 차, 포지션 트레이닝이 무엇인지 아는 것 하나 없는 초짜주제에 구역부터 이동하겠다? 그것도 네놈을 발견하면 피를 뽑아 마시고, 생살과 뼈를 씹어 먹을지도 모르는 경쟁자들에게로?
이래도 이동을 하겠냐는 타이락스의 말에도 무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겁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 대상이 잘못되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런 말이 있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똥인지 된장인지… 는 아니고. 어쨌든 나를 죽일 수 있을지, 반대로 내가 죽일지는 붙어봐야 아는 거니까 구역을 이동하는 방법이나 말해.”
무혁의 자신감 넘치는 그리고 투지 넘치는 말투와 표정에 타이락스가 호오- 하며 낮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 하찮은 인간 주제에 사냥꾼이 되기에 아주 좋은 자세를 가졌군. 사냥꾼이라면 마땅히 그 어떤 목표물이든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칭찬을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시답잖은 설명 따윌 듣고자 한 적 없는 무혁으로서는 첫 인상과는 전혀 다르게 주절주절- 잡담을 늘어놓는 타이락스의 모습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깊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무혁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구역 이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자심감이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이는 무혁의 모습에도 타이락스는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과 호의가 조금 더 늘어갔다.
- 구역 이동은 트레이닝이 시작되기 전에 나에게 요청을 하면 된다.
“8구역… 아니, 7구역으로 이동하겠다.”
마음만 같아서는 헬-라시온 4년 차들이 머물고 있는 8구역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랭킹 1위를 거머쥐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8구역과 7구역은 각각 160퍼센트와 320퍼센트로 차이가 컸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헬-라시온 5년 차들이 버티고 있는 7구역에서 랭킹 1위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고작 2년 차인 무혁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랭킹 1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포지션 트레이닝을 통과하는 순간 기본적으로 80퍼센트의 스킬 숙련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보상이라면 무혁으로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여겼다.
‘무엇보다 랭킹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이건 무조건 도전해야 하는 일이야.’
- 9구역이나 8구역도 아닌 7구역?
보통 구역을 이동하더라도 한 단계 상위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타이락스는 무혁의 용기가 있다 못해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선택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무혁의 확고한 대답에 타이락스는 원하는 대로 그를 7구역으로 이동시켜주기로 했다.
무혁은 자신의 발아래 생겨난 시커먼 그림자를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X발, 이따위 방법 밖에 없는 거냐?”
시커먼 그림자는 곧장 무혁의 몸을 집어 삼켜버렸다.
- 아주 오랜만에 정말 무모한 놈이로군! 네 녀석의 무모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끝까지 지켜봐 주마! 하하하!
타이락스는 구역 이동을 당해 욕설을 내뱉는 무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