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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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8화
알라바바 (1)
“여긴가?”
타이거마스크를 쓰고 평범한 잿빛 망토로 몸을 가린 이가 3층짜리 목조 건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타이거마스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스펠 마을에서 중앙탑의 포털을 이용해 록펠 마을에 도착한 무혁이었다.
많고 많은 가면들 중 무혁이 선택한 가면은 타이거마스크였다.
이유를 꼽자면 타이거마스크라는 단어의 친숙함 때문이었고, 무엇보다도 디자인 자체가 생각보다 유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띌 정도로 고급스럽지도 않았기에 큰 특징 없이 무난한 인상을 주기에 알맞았다.
더불어 체형을 가리기 위해 싸구려 잿빛 망토까지 구입한 무혁은 알라바바 상회와의 첫 거래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포털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이왕이면 깔끔하게 거래를 싹 끝냈으면 좋겠는데.”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편의상 아니, 반 강제적으로 중앙탑의 포털을 이용해야만 한다.
포털 비용은 10만 포인트.
부락에서부터 마을, 소도시, 중소도시, 대도시까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다는 건 분명 편리한 일이다.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헬-라시온 2년 차 정도 되면 사실상 비싸다고 투덜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 이동을 목적만으로 10만 포인트,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20만 포인트를 소모해야 했기에 무혁으로서는 이왕 내친걸음이니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끼이익.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혁보다 먼저 도착한 세 명의 사람들이 1층 접수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세 명의 사람들 또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리고 있었다.
‘고양이 가면은 여자일 가능성이 높고, 광대랑 투구는 남자네.’
무혁의 등장에 접수대 앞에 서 있던 이들도 한 번씩 그에게 시선을 줬지만, 이내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온 거래자임을 파악하고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접수대에 앉아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오크였다.
오크의 안내를 받고는 야리야리한 체형의 분홍색 고양이 가면을 쓴 이가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다음 차례는 광대 가면을 뒤집어 쓴 사람이었고, 그 역시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안면 가리개까지 내려서 눈동자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완벽하게 가린 투구의 남자 또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접수대의 오크가 사무적으로 물어왔다.
무혁은 접수대의 오크를 보며 확실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었다.
오크는 남자, 여자 모두 동일하게 못생겼다는 사실!
정말 못 생겼느냐, 아주 못 생겼느냐, 진짜 못 생겼느냐의 차이만 날 뿐.
‘뭐 그게 그거지만.’
무혁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오크의 시선에 방문 용건을 말해주었다.
“스킬 링을 판매하려고 하는데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판매하려는 스킬 링이 몇 개나 됩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 개를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무혁이 피 무지개 숲에서 얻은 스킬 링의 수는 무려 500개가 넘었다.
정확하게 573개였다.
그중 무혁이 판매를 하려고 하는 스킬 링은 454개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스킬 링이 있는 걸까?
‘죽을 뻔하긴 했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지.’
검은 기둥 위, 라미엘이 모아 둔 스킬 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수백 개의 스킬 링을 얻었다는 사실보다 무혁을 더 기쁘게 하는 건 바로 그 속에서 찾은 보물과도 같은 스킬들이었다.
각종 마법 스킬들과 패시브 스킬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내성’ 스킬들이었다.
특히, 기압 내성과 중력 내성이 담겨져 있는 스킬 링을 확인하는 순간 무혁은 저도 모르게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내질렀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부식과 출혈 내성까지도 얻었기에 무혁의 내성 스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의 신체를 완벽에 가깝도록 다듬어 줄 가능성이 다분했다.
다만, 패시브 스킬 특성상 숙련도를 올리고 등급을 올리는 건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현재 차단 스킬의 등급은 4등급, 이 정도의 수준까지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무혁으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차단 스킬은 각종 내성 스킬이 하나로 통합되어서 한꺼번에 숙련도가 오르는 효과를 가졌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지. 블랙 본을 이식했을 때 함께 습득했었다면 지금 차단 스킬로 모두 통합되었을 텐데.’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무혁으로서는 내성 관련 스킬이 아예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이러한 투정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 알기에 겉으로는 내색한 적 한 번 없었다.
“수백 개의 스킬 링이라니…….”
접수대 오크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격이 맞았을 때에 판매를 하겠다는 말을 억누르며 무혁은 잠자코 오크의 뒷말을 기다렸다.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역시 대우가 다르네.’
앞서 접수를 했던 세 명의 사람들과 다르게 무혁은 3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2층과 3층의 차이는 뻔했다.
상회 입장에서 더욱더 귀한 거래자로 대우를 한다는 뜻이다.
3층에 올라서자 몸에 딱! 맞는 원피스 형태의 옷차림, 중국식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입은 동양인 여자가 무혁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빙빙이라고 합니다.”
굴곡진 몸매가 상당히 도드라지는 빙빙이라는 여자가 무혁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티엠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티엠, Tiger Mask.
대놓고 얼굴을 가려놓고 이름을 밝힐 순 없었기에 무혁은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는 타이거 마스크의 앞 글자를 따서 티엠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거래가 결코 낯설지 않다는 듯 빙빙이라 소개한 여자는 웃는 얼굴로 ‘티엠 님’이라며 무혁을 한쪽 공간으로 안내했다.
치파오 특유의 옆트임으로 인해 무혁은 빙빙이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매끈하면서도 뽀얀 허벅지에 저절로 시선이 머물렀다.
“후훗.”
자신의 허벅지를 힐끔거리는 무혁의 모습에도 빙빙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살짝- 웃음까지 흘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티엠 님의 요구에 맞춰 거래를 할 담당자가 들어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무혁은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굉장히 컸고, 깔끔했다.
“꼭 중식당에 온 것 같네.”
방 한가운데 마련되어 있는 커다랗고 둥그런 테이블 앞에 앉은 무혁이 담당자를 기다리길 2분이나 지났을까?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알라바바 록펠 지부장 섭허룬입니다.”
섭허룬은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만큼이나 외모 또한 사내답다는 느낌이 강했다.
겉모습만 본다면 주판알이나 튕길 상인이라기보다는 대군을 호령해야 할 것만 같은 장군에 더욱더 가까웠다.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는 오른손 앞을 가볍게 감싼 중국식 인사 방법인 ‘포권’을 취하는 섭허룬의 모습에 무혁 또한 어설프게나마 똑같이 인사를 했다.
“티엠입니다.”
악수 대신 포권으로 인사와 통성명을 마치고 나자 섭허룬은 자신의 공간 주머니에서 두 잔의 차를 꺼냈다.
“보이차입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무혁은 섭허룬이 건네는 보이차를 가볍게 음미했다.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솔직히 무슨 맛인지 잘 몰랐지만, 차까지 대접을 해주는 섭허룬의 성의를 생각해서 무혁은 차 맛이 아주 좋다는 입에 발린 말을 건넸다.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섭허룬은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럼, 바쁘실 테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거래를 하시고 싶은 것이 스킬 링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 저희 알라바바는 헬-라시온 그 어떤 상회보다도 정직한 가격에 스킬 링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네가 가진 스킬 링을 모두 팔아라- 라고 무혁은 들렸다.
“수량이 조금 많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거래량이 많을수록 이득입니다. 물론, 티엠 님께서도 다른 곳과 거래를 하시는 것보다 많은 이득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이득을 본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섭허룬의 능력이었으니 무혁으로서는 자신만 손해를 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혁은 곧바로 공간 주머니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시범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스킬 링들 몇 개를 넣어둔 가죽 주머니였다.
“여기 담겨 있는 스킬 링을 얼마에 매입 하실지 가격부터 듣고 싶습니다.”
무혁이 건네는 가죽 주머니를 받아든 섭허룬은 곧바로 그 안에 담겨 있는 스킬 링들을 꺼내 모두 감정을 했다.
총 10개였고, 중앙탑에 판매를 했을 때엔 총 405,000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다.
꼼꼼하게 스킬 링을 확인하고 감정을 끝낸 섭허룬이 가죽 주머니에 스킬 링을 다시 모두 넣고는 무혁에게 돌려주었다.
“저희 알라바바에서 매입할 수 있는 가격은 모두 다 해서 골드, 실버, 레드 보석 각 1개와 옐로 보석 3개입니다. 포인트로 환산을 하면 88만 포인트입니다. 혹시라도 따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당연히 교환도 가능합니다. 더불어 교환 물품에 대해서는 판매 가격에서 3퍼센트 추가 할인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88만 포인트라는 소리에 무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상회에 물건을 팔 때는 본래 가격의 60퍼센트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헬-라시온에서도 시장 경제라는 것이 존재했기에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가격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때문에 60퍼센트라는 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일 뿐, 절대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 기준점에 맞춰서 무혁은 가죽 주머니에 담긴 10개의 스킬 링의 가격을 81만 포인트로 책정해놓고 있었다.
예상했던 가격보다 7만 포인트가 더해졌다.
여기에 대물 교환을 할 경우 추가 3퍼센트 할인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호구 잡지는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기는 한데…….’
역시 처음부터 대량 거래 특히 스킬 링과 같이 쉽게 획득할 수 없는 물건을 첫 거래물품으로 안면을 트인 것이 주효했다.
섭허룬은 무혁의 대답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 점이 또 무혁의 마음을 더욱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으니 결정은 온전히 무혁의 몫이라는 뜻이다.
만약, 여기서 어설프게 조건을 내걸었다면?
‘이런저런 소리를 지껄여서 어떻게든 날 설득하려고 했겠지.’
무혁은 섭허룬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부터 송정민의 추천이 있었다는 부분부터 호감을 품고 접근을 했는데, 막상 거래를 하려고 하니 꽤나 믿음직스럽게 나오니 괜히 다른 곳을 들쑤시며 무의미한 감정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좋습니다.”
대답을 듣고 섭허룬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무혁은 악수를 청하는 섭허룬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도 티엠 님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당장을 보지 않고 미래를 본다.
내일조차 장담할 수 없는 헬-라시온에서 미래를 보다니.
무혁으로서는 섭허룬의 생각이 한 편으로는 우습게 느껴졌지만, 그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진심에 더욱더 두텁게 신뢰감을 쌓았다.
“당일 거래하실 스킬 링을 모두 주시면 매입 가격을 책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지만, 무혁은 당장 필요한 것이 없었기에 차후 필요한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아오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티엠 님께서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어떻게든 반드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래곤 하트도 가능하냐는 장난스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무혁은 웃으며 그 말을 삼켰다.
‘구한다고 해도 내가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괜히 실없는 놈 될 순 없지.’
무혁은 곧바로 454개의 스킬 링을 섭허룬에게 건넸다.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땀이라도 빼시겠습니까?”
땀… 무혁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에게는 여자를, 여자에게는 남자를 붙여주겠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언제 했었더라…….’
무혁은 헬-라시온에 끌려오기 전, 헤어진 마지막 여자 친구를 생각하다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주영이 얼굴이 생각이 안 나네.’
자신의 첫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문제가 있어.’
헬-라시온에 끌려오면서 분명 기억력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오랜만에 땀이나… 보다는 출출하던 참이니 식사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남자로서의 본능을 표출하려던 무혁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섭허룬의 눈빛에 말을 돌리고 말았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마냥 안심을 할 수 없는 법.
무혁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자고로 남자든 여자든 맛을 보지 않았다면 모르되, 맛을 본 이상 결코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 법이다.
“그럼 만족스러운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섭허룬이 방을 빠져나가자 홀로 남은 무혁은 연신 쩝쩝- 거리며 입맛만 다셨다.
“이러다 녹슬진 않겠지?”
무기는 있는데 그걸 쓸 기회가 없다니!
무혁으로서는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