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25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5화
피 무지개 숲 (50)
“이것 봐라?”
새카만 어둠을 몰고 다닐 것만 같은 장신의 남자가 눈앞에 쓰러져 있는 검은 인영을 빤히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2미터가 넘는 커다란 키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비율을 갖춘 몸매의 남자는 긴 흑발을 어깨까지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머릿결마저도 결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의 이목구비 또한 한 번 보면 블랙홀처럼 빠져들 것 마냥 눈을 뗄 수가 없었으나, 이마 정중앙에 삐쭉- 튀어나와 있는 작고 검은 뿔이 그가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잖아. 이건 아니지. 내가 알던 라미엘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야!”
분노를 토해내는 남자의 주변으로 공간이 폭발할 것처럼 팽창했다.
단지 분노심을 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간을 초토화 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
남자의 뒤에 공손하게 시립하고 있던 틸리아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숨소리조차 죽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라미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남자의 물음에 틸리아나가 떨리는 몸을 애써 제어하며 극도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유를 파악 중입니다만… 벨라이온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강제 사냥은 라시온 님의 절대적인 보호 결계로 인해 저희 관리자들이 개입을 할 수 없는지라…….”
주절주절- 결과론적으로는 ‘알 수 없다’라는 대답을 힘겹게 내뱉는 틸리아나였다.
“짧게 해도 될 말을 길게 하는 더러운 버릇이 있구나, 틸리아나?”
“죄송합니다.”
경멸스럽다는 듯 틸리아나를 바라보던 벨라이온은 이내 이런 자신의 시선조차도 과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라미엘이여, 내가 인정했던 라이벌이여. 네 꼴이 참 우습구나.”
천계 최고의 전사 중 한 명이었던 라미엘이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영광일 뿐.
이제는 완전히 타락해버린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수없이 마주하며 생사를 걸고 싸웠던 라이벌의 몰락은 벨라이온에게 적지 않은 허탈감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라미엘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벨라이온이 입을 열었다.
“네가 데리고 가겠다.”
“예? 하, 하지만…….”
타락한 천사들은 새로운 마족 전사로 재탄생된다.
특히, 라미엘처럼 천계를 대표하던 전사는 마신 라시온의 절대적인 권능의 힘을 받아들여 더욱더 막강한 전력으로 편성되는 것이 라시온의 뜻이다.
이유야 어쨌든 틸리아나가 선택한 ‘피 무지개 숲’ 사냥터에 숨어들었던 라미엘이 발견되었으니 일차적인 모든 책임은 그녀가 떠안아야만 했다.
그 말인 즉, 벨라이온이 라미엘을 멋대로 데리고 가버리면 차후 마신 라시온의 분노를 틸리아나가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는 소리다.
눈앞의 벨라이온이 두려운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마신 라시온보다는 못하다.
마른침을 삼킨 틸리아나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라시온 님께는 내가 직접 전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벨라이온 님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죽음마저 각오했던 틸리아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찮은 것.”
자신이 책임을 대신 하겠다니 죽상이었던 얼굴이 환하게 펴지자 벨라이온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라미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둥- 까만 보호막이 라미엘의 몸을 감싸며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이윽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벨라이온과 라미엘이 사라져버렸다.
벨라이온이 사라지자 틸리아나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헬로이나!”
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틸리아나가 자신에게 피 무지개 숲을 사냥터로 추천을 해주었던 헬로이나를 떠올렸다.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3등급 사냥터였던 피 무지개 숲이 어째서 갑자기 마을 사냥터로 바뀌었는지 그 이유를 분명 헬로이나는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틸리아나였다.
“나한테 폭탄을 떠넘겼다 이거지?”
360여 년의 우정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언제고 반드시 앙갚음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틸리아나가 아직까지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스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라미엘이 어떻게 피 무지개 위에 숨어든 거지?”
틸리아나는 감히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이 피 무지개 위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벨라이온은 라미엘이 완전히 타락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몇 년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급격하게 좁혀졌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외부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터.
“혹시…….”
틸리아나는 피 무지개 숲 강제 사냥에 참가했던 식민들 중 누군가 라미엘과 접촉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은 기둥은 고작 마을 식민 따위가 하루, 이틀 만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높이가 아니다.
설령, 운이든 실력이든 기어오른다 하더라도 피 무지개 위에 깔려 있는 엄청난 양의 마기는 감히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위 마족이라 하더라도 서너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폭주를 하니 틸리아나는 벌레만도 못하다고 여기는 아스펠 마을 식민 따위가 개입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생존율 18퍼센트라…….”
틸리아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매년 마을 식민의 생존율은 25퍼센트 내외로 책정이 되어 있다.
간혹가다 별종 혹은 압도적인 능력을 뽐내며 같은 식민들을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괴물 같은 인간들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마신 라시온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살아남는 것보다는 강력한 하나가 낫다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펠 마을에 그런 괴물이 등장할 가능성은?
틸리아나는 굉장히 희박하다 못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으려던 놈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그 병신은 왜 죽은 거야? 그 놈이라도 살았으면 그나마 기대를 해봤을 텐데… 역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된 건 쓰레기일 뿐이라니까.”
틸리아나로서는 남은 아스펠 마을 식민들의 생존율을 최대치로 유지하기 위해 난이도가 가장 낮은 사냥터를 미리 선점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올랐다.
“벌레만도 못한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
피 무지개 숲 사냥이 끝나고 무혁은 중앙탑으로 이동되어 왔다.
시간의 탑처럼 어떠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군.”
21일 만에 만난 아스펠 마을의 관리자 리리타오는 무혁이 살아 돌아온 것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평했다.
리리타오의 성격이야 어느 정도 파악을 해둔 상태였기에 무혁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간 주머니에서 표식들을 모조리 꺼냈다.
총 143개.
결코 적지 않은 수였지만, 이번 강제 사냥에서 죽은 이들의 수를 생각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순 없었다.
‘공간 주머니를 강제로 열수만 있었어도.’
레오나르도를 비롯해서 꽤 많은 이들이 공간 주머니에 표식들을 넣어뒀을 거라 추정됐기에 무혁은 그 많은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는 점이 아쉽기만 했다.
리리타오는 무혁이 건네는 143개의 표식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의 수로는 자신을 놀라게 할 수 없다는 것만 같았다.
“모두 다해서 23,764,050포인트다.”
“…어, 얼마?”
상당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그런데 리리타오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무혁의 예상을 훌쩍 아니, 월등하게 상회하고 있었다.
리리타오는 귀찮다는 듯 포인트를 정산해주었다.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 24,040,250]
“…미쳤네.”
무혁은 진심으로 자신의 포인트를 확인하고는 눈만 껌뻑였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네가 준 것 중에 마수의 인장이 포함된 표식이 있었다.”
“마수의 인장?”
무혁은 곧바로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떠올렸다.
“5등급 마수의 인장이다. 훼손이 많이 되었기에 현 상태로는 네가 이어받을 수 없다. 인장을 복구하거나, 판매를 하거나. 어느 쪽이냐?”
“복구를 하면 내가 이어받을 수 있다는 건가?”
“물론.”
“복구 비용은?”
“62퍼센트가 훼손되어 있으니 3,100만 포인트다.”
“…사, 삼천백만?”
무혁은 도대체 마수의 인장이 얼마나 비싸기에 그런 말 같지도 않는 가격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단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비쌀 가치는 없는 것 같았는데…….’
무혁은 가만히 레오나르도가 인장의 효과로 괴물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봤다.
과연 수천만 포인트의 가치가 있을까?
‘강해지긴 했었지만… 그 정도에 수천만 포인트를 쏟아붓는 건 역시 아니지?’
무혁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복구를 할 포인트가 부족했기에 복구는 애초부터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판매를 하게 된다면?”
“570만 포인트.”
“…….”
5천만 포인트짜리 5등급 마수의 인장을 30퍼센트로 후려치고, 거기에다가 다시 훼손된 62퍼센트를 제외시킨 치가 떨리도록 칼 같은 리리타오의 계산에 무혁은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만약, 레오나르도가 살아있어서 이 사실을 접했다면 이 자리에서 온갖 욕을 다 쏟아내며 지랄발광을 했을 거라 생각하는 무혁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5천만 포인트짜리 마수의 인장을 고작 570만 포인트에 판매한다는 건 억울해서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3천만 포인트를 투자해서 복구를 하자니 그 또한 무혁은 거부감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블랙 본의 영향으로 인장의 효과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도 모르니까.’
따지고 보면 무혁은 인장보다도 더 대단한 걸 몸에 심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복구할 비용을 마련하면 그때 복구를 하고 싶은데?”
우선은 보류.
“표식에서 인장을 분리하는 비용 50만 포인트, 그리고 새로운 곳에 다시 각인하는 비용 100만 포인트.”
150만 포인트를 내놓으라는 리리타오의 말에 무혁은 순간 이게 잘하는 짓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천만 포인트짜리 5등급 마수의 인장을 싼값에 넘기고 싶진 않았기에 150만 포인트를 지불하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확인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인장을 무조건 표식에 각인시켜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자신의 표식에 인장을 각인시켜야 한다면 무혁은 조금 더 고민해볼 생각이었다.
헬-라시온에서 표식은 제2의 심장이라 불린다.
표식을 뜯기게 된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사용하지도 않을지 모르는 인장을 표식에 각인시켰다가 다시 분리한다는 건 아무래도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거잖아? 인장이라는 게 표식과 연결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블랙 본을 이식하면서 겪었던 끔찍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 어디든 문신의 형태로 가능하다.”
표식은 아니지만 몸에 문신으로 새겨야 한다는 점이 껄끄러웠다.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지도 모르니까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엉덩이나 허벅지 안쪽과 같은…….’
최대한 은밀한 부위에 각인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던 중, 무혁은 리리타오를 향해 다시 물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면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는 건가?”
“물론이다.”
“그렇다면…….”
무혁은 재빨리 공간 주머니에서 두툼한 고깃덩어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피 무지개 숲에서 사냥하고 넣어두었던 거대 불곰의 허벅지였다.
“여기다 각인을 해줘.”
“…정신 나간 놈이군.”
리리타오가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얼굴로 무혁을 바라봤다.
“왜? 상관없다면서?”
상관은 없다.
그런데 이토록 귀한 마수의 인장을 한낱 몬스터의 사체 일부에 각인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무혁이 리리타오는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팔아먹을 인장인데 잘 됐네!’
낄낄- 웃는 무혁의 모습에 리리타오는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아졌다.
잠시 후.
무혁은 거대 불곰의 허벅지에 새겨진 마수의 인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도 기괴한 형태의 문신이었다.
“이게 5천만 포인트짜리 인장이라 이거지?”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 자그마치 5천만 포인트나 한다니 무혁으로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굉장히 희귀하다고 했으니까 분명 적지 않은 가격에 팔아먹을 수가… 응?’
임자만 나타나면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혁은 갑작스럽게 가죽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온 통통이로 인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곧 얌전하던 통통이가 왜 갑자기 멋대로 튀어나왔는지 의문을 갖던 찰나.
덥석!
“……?”
잿빛 구체, 통통이가 무혁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 불곰의 허벅지, 그러니까 최소한 수천만 포인트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5등급 마수의 인장을 한입에 꿀꺽! 해버린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무혁은 얼어붙었고, 통통이의 존재를 처음 접한 리리타오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무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으아아! 통통아! 뭐하는 거야! 뱉어! 퉤! 퉤! 지지야! 지지! 얼른 뱉어!”
무혁의 격렬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통통이는 외눈을 깜빡- 거리며 제자리에서 통통- 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