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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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0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09화
피 무지개 숲 (34)
피 무지개 숲의 밤은 공포스럽다.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다보니 새카만 어둠 속 어디에 몬스터가 있는지 파악조차 쉽지 않다.
인근의 몬스터야 소리, 살기, 기척 등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지만 당장 7-80미터만 떨어져도 몬스터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토성 거주자들은 어둠에 잠긴 숲에 들어서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제아무리 횃불을 들고, 스킬과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넓혀주는 각종 렌즈를 착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숲 전체를 품고 있는 어둠 속을 헤맨다는 건 굉장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아아암-!”
커다란 나무 위, 무혁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모두가 숲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과 다르게 무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숲을 집어삼킨 어둠과 한 몸이 되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케라크라의 렌즈, 그리고 블랙 본.
이 두 가지의 조합이 이토록 어둠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줄 것이라고는 무혁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가시거리는 대략 100미터가량.
그것만으로도 무혁은 다른 토성 거주자들에 비해 월등하다 못해 압도적이라고 부를 만큼 우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불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님 오셨다.”
무혁은 아주 먼 곳에서 보이는 불빛들을 확인하고는 옆에 세워두었던 저격용 소총을 들어올렸다.
조준 렌즈를 통해서 불빛을 확인하고, 그 불빛을 앞세워 걸어오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아니네.”
무혁은 자신이 찾는 얼굴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저격용 소총을 다시 옆에 내려두었다.
“오늘쯤이면 슬슬 모습을 드러내야 할 텐데.”
앞으로 이틀 후에 3차 몬스터 습격이 이뤄진다.
강제 사냥의 마지막 피날레가 시작된다.
생존과 죽음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날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인지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서는 많은 말이 오가고 있었다.
“얼마나 살아남을까?”
무혁도 제법 궁금했다.
방구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겪었던 아스펠 마을에서의 첫 번째 강제 사냥 중 최악의 생존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벌써 생존율은 40퍼센트 미만까지 떨어져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작정하고 분탕질을 쳐놨기 때문에 이런 돌발 상황이 벌어진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아스펠 마을의 수준이 심각하게 바닥이라는 점 또한 무시할 순 없었다.
더군다나 가장 위험할 것이라 예상되는 3차 몬스터 습격까지 남아있다.
30퍼센트, 어쩌면 20퍼센트 아래까지 생존율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예상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무혁 역시 남쪽 토성이 함락당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는 걸 인정하면 20퍼센트는커녕, 15퍼센트를 넘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단, 그가 모래 태양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무혁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느냐에 따라 많은 이들의 생존이 보장받게 될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몬스터의 수가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나설 거니까 많은 이들이 죽겠지.”
하고자 한다면 남쪽 토성 거주자들 중 단 한 사람도 희생자 없이 3차 몬스터 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는 무혁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단지 같은 거주지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목숨을 책임진다?
그런 낭만적인 일을 기대하기엔 헬-라시온이라는 세계가 너무 치열하다.
그렇기에 무혁은 남쪽 토성을 공격하는 몬스터 군단의 수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모래 태양을 사용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만 허비하던 중, 또다시 불빛이 보였다.
무혁은 저격용 소총에 달려 있는 조준 렌즈를 통해 불빛에 의지해 숲에 들어온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반갑다, 레오나르도.”
무혁은 불빛 아래 걷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크 상인을 만나기 위해 어둠 속을 뚫고 걸어오는 레오나르도의 표정은 제법 경직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아무리 많은 감각 기관들이 있다 하더라도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레오나르도라도 긴장을 감출 수가 없는 듯 보였다.
오크 상인에 대한 정보는 무혁에게 있어서 아주 훌륭한 미끼였다.
어떻게 레오나르도를 서쪽 토성 밖으로 꿰어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를 따르는 이들을 만나고 나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다리던 레오나르도의 등장으로 무혁은 느슨했던 자세를 바짝- 긴장시켰다.
무혁의 시선이 조준 렌즈를 통해 레오나르도의 움직임을 천천히 따라 움직였다.
가장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서 저격을 할 생각이다.
태블릿 PC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오크 상인과 거래를 하기 위해 무지개 구슬을 꺼내는 순간!
이때가 무혁에게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지루함보다는 긴장감과 흥분감이 무혁의 심장을 두들겨댔다.
‘깔끔하게 한 방에 가면 참 좋겠는데…….’
총알 한 방으로 레오나르도를 쓰러트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무혁은 자신의 실력으로 그런 행운을 잡을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지만, 은근한 기대감이 자꾸만 어깨를 짓눌러댔다.
조준 렌즈를 통해 보이는 레오나르도는 오크 상인, 아르마카와 만나고 그가 건네주는 태블릿 PC를 받아들었다.
딱딱했던 표정이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고, 태블릿 PC를 조작하는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여댔다.
레오나르도의 주변으로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흥분한 모습으로 각자 태블릿 PC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부산스러워?”
조준 렌즈 속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왔다갔다 거리는 레오나르도의 모습에 무혁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가만히 있어도 제대로 맞출까 싶은 무혁으로서는 계속 움직이는 레오나르도를 향해서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분, 20분 동안 무혁은 조준 렌즈로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쫓기만 했다.
“가만히 좀 있어라.”
상당한 아쉬움이 엿보이는 레오나르도가 멈춰 서서 태블릿 PC를 오크 상인에게 건넸다.
무혁은 나지막하게 숨을 뱉어냈다.
호흡을 멈춘다.
심장 박동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애써 그 소리를 외면하며 무혁은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척- 가볍게 한 번 방아쇠에 손이 걸렸다.
다시 한 번 손가락에 힘을 주면 그대로 총알이 레오나르도를 향해 날아간다.
무혁이 노리는 곳은 레오나르도의 상체.
애초부터 머리를 노리겠다는 헛된 희망 따윈 꿈꾸지도 않았다.
심장을 관통하면 즉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가슴 어디에든 총알이 박히면 된다.
총알을 먹여주기만 한다면, 레오나르도는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무혁은 큰 욕심 부리지 말자 되뇌며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구름처럼 짙게 깔린 어둠을 관통하며 총알이 날아갔다.
‘…됐다!’
무혁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저격이 이루어졌다.
총신이 아주 가볍게 들릴 정도로 그 진동이 얕았다.
정확하게 노리고 있던 목표점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고 확신했다.
레오나르도가 쓰러지면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서쪽 토성으로 도망을 갈 것이 분명하겠지?
이런 어두운 숲에서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저격수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의지나 투지는 물론, 쓰러진 레오나르도의 복수를 하겠다는 대단한 의리도 없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잘 가라, 레오나르……!”
무혁이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 순간, 날아간 총알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서 툭- 떨어져버렸다.
그것도 레오나르도의 가슴 바로 앞에서!
“…X발.”
무혁은 떨어진 총알을 주워드는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엇이 총알을 막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저격에 실패했다.
레오나르도에게 자신을 노리고 있는 적이 있다는 것만 친절하게 알려준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무혁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저격용 소총을 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좀 쉽게 가나 싶었더니… 뭐, 하는 수 없지.”
말을 마친 무혁은 나무 위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
“적이 많은 모양이구나, 인간.”
총알을 줍는 레오나르도의 모습에 아르마카가 속삭이듯 그에게만 말을 했다.
“이게 뭐지?”
갑작스럽게 총알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능력 밖에서 벌어진 상황에 그 해답이 아르마카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가슴팍에 구멍이 뚫렸어야 정상이니까.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지, 인간.”
오크 상인들과 거래를 할 때는 외부의 그 어떤 공격에도 안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거래가 끝나면 그 즉시 안전장치도 풀리지. 만약, 네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이 점을 오히려 악용해서 주변을 포위한다면 오히려 더 큰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내 말 이해하겠나, 인간?”
레오나르도는 완벽하게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안전장치는 강제 사냥을 하다보면 간혹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다렸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정확하게 노리고 저격을 했다.
무엇보다 기다렸다는 듯 저격을 했다는 건 자신이 이곳에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생각보다 치밀할 뿐만 아니라 진득한 놈이다.
굉장히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흐음…….”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저격에 실패한 순간부터 상황이 변했으니 레오나르도는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매 목록을 바꿔야겠군.”
아르마카는 상관없다는 듯 태블릿 PC를 다시 레오나르도에게 건네주었다.
빠르게 목록을 살피고 구매를 확정했다.
“모두 다 해서 무지개 구슬 1,582개다, 인간.”
300개만 더 있으면 포지션 스킬을 살 수 있겠지만, 지금 레오나르도에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보유하고 있는 무지개 구슬도 부족했고, 당장 자신을 먹잇감처럼 생각하고 있는 ‘놈’의 저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야만 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걸 사게 될 줄이야.’
레오나르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엇보다 포지션 스킬을 판매하는 줄 알았다면 무지개 구슬을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모았을 것이다.
부정한 방법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무지개 구슬을 구해서 포지션 스킬을 구매했을 텐데.
레오나르도는 너무나도 아쉬운 상황에 입술을 깨물고는 그 모든 짜증과 분노를 어디선가 자신을 노리고 있을 ‘놈’에게 모두 풀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모두 볼 일이 끝났겠지?”
레오나르도의 물음에 함께 오크 상인을 찾아온 17명의 서쪽 토성 거주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만족스러워하는 표정도 있었고, 실망스러워하는 표정도 있었다.
개인의 만족을 떠나 이번 오크 상인과의 거래를 통해 모두 전력이 상승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으니 레오나르도는 그걸로 충분하다 여겼다.
“지금까지 우릴 엿 먹였던 쥐새끼가 주변에 숨어 있다.”
레오나르도의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마다 태블릿 PC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지만, 저격을 당했을 당시 어떠한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 레오나르도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딱 좋다.
쥐새끼를 잡을 고기방패로 써먹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쥐새끼 사냥을 시작한다.”
레오나르도의 말에 17명의 서쪽 토성 거주자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어두컴컴한 숲에서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적을 사냥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더욱이 밤이라고 몬스터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저… 레오나르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누군가 용기를 내서 레오나르도의 의견에 반박을 해봤지만.
“놈을 사냥하지 않으면 너희 중 과연 몇이나 온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하지만 난 지금이라도 전력으로 내달리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토성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런데 너희는 어떨까? 최소한 이중 절반은 멀쩡하지 못할 것 같은데?”
레오나르도의 말에 17명의 사람들이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딱히 틀린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만을 상대하면서 돌아가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의 습격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면 확실히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더욱이 놈이 저격을 하기에 눈 없는 총알에 내가 맞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지 않은가?
17명의 표정으로 보아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여긴 레오나르도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쥐새끼는 저쪽 방향 어딘가에 숨어서 우릴……!”
노려보고 있을 거라는 말을 끝마치기 전에 레오나르도의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밟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깜짝- 놀란 17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긴장한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들었다.
레오나르도 역시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놈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빛이 미약하게 어른거리는 경계 지점에서 그림자가 딱! 멈춰섰다.
“틀렸어. 사냥은 너희가 아니라, 내가 하는 거야.”
퍼억!
17명 중 한 명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
너무 놀라 모두가 경직되어버린 사이, 그림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 그리고…….”
퍼억!
또 한 명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이번에는 보았다.
어둠 속에서 시커멓고 길쭉한 무언가가 날아와 순식간에 머리통을 부숴놓았다는 것을.
“둘.”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가 뒤로 스르륵- 사라졌다.
“뭣들 하고 있어! 쫓아! 가서 잡으라고!”
뒤늦게 레오나르도의 고성이 터졌고, 남은 이들이 떨리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그림자가 있던 곳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