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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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8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89화
피 무지개 숲 (14)
끼릭… 끼릭…….
죽음마저 불사하고 제 몸 하나를 기꺼이 희생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방패를 내리찍어야 하는 본능을 지닌 전투 개미지만, 지금만큼은 잔뜩 움츠러든 모습으로 한 인간을 부들부들- 떨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후우! 후우!”
꽉- 막혔던 숨을 거칠게 토해낸 인간, 무혁은 허리를 펴며 근육이 내지르는 비명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아… 기압 차 때문인가? 은근히 빡세네.”
무혁은 자신의 손에 죽은 처참한 시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2마리의 전투 개미가 하반신만 남긴 상태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툭툭툭툭!
마지막에 처리한 2마리의 전투 개미의 상반신을 집어삼킨 통통이가 2개의 무지개 구슬과 2개의 6등급 마정 찌꺼기를 뱉어냈다.
무혁은 곧바로 공간 주머니를 열어 무지개 구슬과 마정 찌꺼기를 비롯한 전투 개미들이 남긴 전리품인 검과 방패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나서야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퐁- 하고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치치칙- 하며 담배가 태워지며 희뿌연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후우우-!”
역시 치열한 전투 끝에 태우는 담배 맛이 일품이다.
서너 번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길 반복하고 나서야 무혁이 한 곳을 응시했다.
“뭐해? 안 가고.”
무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는 전투 개미를 향해 얼른 가보라는 듯 손을 털었다.
지금까지 7번.
전투 개미는 일곱 차례나 무혁에게서 도망을 가야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8번째 도주를 해야 할 전투 개미가 땅에 뿌리를 내린 거목마냥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 뭐하냐? 네 친구들 찾아가라니까.”
무혁의 거듭된 말에도 전투 개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왜?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끼릭…….
마치 낑낑- 거리는 강아지마냥 전투 개미가 침울한 울음소리를 냈다.
무혁은 한낱 몬스터 주제에 제법 상황파악을 한다 싶었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으으읍- 후우우!”
마지막을 향해 타들어가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무혁은 터벅터벅- 전투 개미를 향해 걸어갔다.
덜덜덜덜덜.
전투 개미가 떨고 있다.
몬스터라고 감정도 없고, 이성도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지능의 차이로 인한 문명의 발달 정도가 다를 뿐, 몬스터 역시 인간과 똑같은 생명체였기에 지금처럼 공포심을 느끼고, 불안함에 떠는 것이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과거 무혁에게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었던 케라크라만 하더라도 한낱 고블린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라크라는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했고 동족의 복수를 위해 무혁을 찾아다녔을 정도였으니 눈앞의 전투 개미가 자신이 미끼가 되어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안 가? 그럼 여기가 네 무덤이 돼야지.”
무혁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퉤- 뱉어내고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전투 개미에게로 달려들었다.
끼릭… 하며 전투 개미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방패부터 들어 올렸다.
콰앙!
발로 힘껏 방패를 걷어차자 전투 개미가 꼴사납게 뒤로 나뒹굴었다.
무혁은 블랙 본 장검을 만들어내고는 몸을 일으키려는 전투 개미를 향해 묵광의 선을 날렸다.
지금까지 정확하게 66마리의 동료들을 안내해주었던 공 따윈 조금도 인정해주지 않는 잔혹한 공격이었다.
이미 전의와 투지를 상실한 전투 개미는 힘겹게 방패를 몇 번 들어 올리는 걸 끝으로 먼저 죽은 동족들의 뒤를 따랐다.
“안내자야 사방에 널렸으니까.”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표정으로 무혁은 그렇게 죽은 전투 개미를 바라봤다.
어느새 통통이가 다가와 한입에 상체를 삼키고는 무지개 구슬과 6등급 마정 찌꺼기 외에도 스킬 링까지 하나 뱉어냈다.
“전투 개미계의 키다리 아저씨네.”
낄낄- 거리며 웃은 무혁은 스킬 링을 감정했고, 미리 익혀둔 워 엔트의 견고한 외피가 다시 한 번 나오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공간 주머니 안으로 던져 넣었다.
“우선 1차 목표는 6등급 마정 씨앗이긴 한데… 휴우- 깝깝하네.”
6등급 마정 씨앗을 만들기 위해서는 6등급 마정을 50개나 모아야 한다.
전투 개미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 6등급 마정 찌꺼기였기에 50개의 6등급 마정을 만들려면 전투 개미 500마리를 잡아야 했다.
이건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으며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숲에 있는 대다수의 전투 개미를 한곳에 모아놓고 독식한다면 모를까, 뿔뿔이 흩어져 있는 500마리의 숫자를 채운다는 건 제아무리 무혁이라도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뭐, 정 안되면 이번 강제 사냥 끝내고 6등급 마정 찌꺼기를 모으기 위해서 따로 사냥을 가면 되겠지.”
6등급 마정 찌꺼기, 즉 핵을 지니고 있는 6등급 몬스터에 대해선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했지만, 송정민에게 물어보면 그 답을 바로 줄 수 있었기에 무혁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혁은 슬슬 해가 저물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의 모습에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오후 7시가 되려면 10분가량 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격렬하게 움직이며 전투 개미를 사냥했더니 지치기도 했고, 허기도 적잖게 느껴졌다.
“배부터 채워야겠네.”
무혁은 그렇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몬스터, 특히 맛이 좋은 콩구스(거대 갑옷 도마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전투 개미의 등장이 있은 지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숲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적어도 현재 무지개 숲에서 강제 사냥 중인 아스펠 마을 식민들 중 무혁처럼 단독으로 숲을 헤집고 다니며 전투 개미를 사냥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설령, 본신의 힘을 꽁꽁 숨기고 있는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이제는 최소 열 마리 이상씩 무리를 이루기 시작한 전투 개미들을 생각하면 무혁처럼 혼자서 숲을 활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움직이던 무혁은 20분이 지나서야 콩구스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회를 떠버렸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불 위에 올려놓은 콩구스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자 무혁은 그 자리에서 커다란 다리 하나를 통째로 뜯어 먹었다.
“소금만 꺼낼 수 있었어도 훨씬 맛있었을 텐데.”
강제 사냥 담당자인 틸리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공간 주머니에 봉인되어 있는 식료품들과 조미료를 꺼낼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공간 주머니 안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어느 정도 힘을 더 주면 그 손길을 뿌리치고 꺼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몇 차례 시도 끝에 무혁은 아직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아쉬운 대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자 무혁은 전투 개미 사냥을 다시 시작했다.
숲을 헤집길 한 시간이 지나서야 무혁은 전투 개미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친절하게 안내자 역할을 했던 전투 개미가 얼마나 시간 낭비를 줄여주었는지를 깨달은 무혁이었기에 11마리의 전투 개미들 중 한 마리에게 위치 추적 스킬을 걸어두고는 나머지 열 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새로운 안내자가 될 한 마리의 전투 개미를 피해가며 나머지 열 마리의 전투 개미를 상대로 블랙 본 장검을 휘두르는 무혁은 순간순간 아찔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침착하게 한 마리씩 숨통을 끊어놓으며 조금씩 승기를 굳혀나갔다.
콰작!
눅진한 검은 액체를 쏟아내며 마지막까지 대항하던 전투 개미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라버린 무혁은 가쁜 숨을 토해내곤 끝까지 살려둔 전투 개미를 노려봤다.
“꺼져!”
무혁의 외침에 움찔- 한 전투 개미가 잠시 망설이는 듯싶다가 이내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황급히 달아나버렸다.
그 모습에 무혁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후우- 하고 숨을 뱉어냈다.
그사이 통통이는 무혁의 앞에 10개의 무지개 구슬과 10개의 6등급 마정 찌꺼기를 뱉어냈다.
처음에는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무지개 구슬과 마정 찌꺼기를 뱉어냈던 통통이였지만, 이제는 무혁의 뜻을 이해하고는 그의 앞에 가지런히 내뱉을 정도로까지 발전을 한 상태였다.
“기특한 놈.”
무혁은 통통이의 머리, 혹은 구체의 가장 윗부분을 툭툭- 쓰다듬고는 무지개 구슬부터 공간 주머니에 넣고, 6등급 마정 찌꺼기를 한곳에 모았다.
곧바로 통통이가 10개의 6등급 마정 찌꺼기를 6등급 마정으로 만들었다.
이걸로 일곱 개째 6등급 마정을 완성했다.
무혁은 공간 주머니에서 워터 볼 하나를 꺼내 목을 축이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달빛조차 없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도 무혁의 시야는 제법 선명한 편이었다.
케라크라의 렌즈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기본적인 야간 시력이 상승한 상태에다가 블랙 본의 영향력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의 사물 인지도가 확연하게 높아진 것도 한몫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만큼은 신데렐라가 되어야 하니까… 끙!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지금 시간은 9시 17분.
아무리 무혁이라 하더라도 무지개가 모두 빨간색으로 변했을 때의 변화를 홀로 맞이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었기에 우선은 오늘만큼은 토성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생각이었다.
“열두 시까지만 수고해줘라.”
무혁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검은 실선을 바라보며, 두 번째 안내자가 된 전투 개미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시간 뒤.
눅진한 전투 개미의 체액을 뒤집어쓴 무혁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끼릭- 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전투 개미의 심장에 블랙 본 장검을 쑤셔 넣었다.
2시간 동안 26마리의 전투 개미를 추가로 사냥한 무혁은 충실하게 안내를 해온 녀석마저 깔끔하게 처리를 해버렸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녀석은 분명 어디든 토성을 공격할 것이고, 그로 인해 죽어버릴 지도 몰랐기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느니 자신이 직접 죽이고 무지개 구슬과 6등급 마정 찌꺼기를 수거하는 것이 낫다 판단한 무혁이었다.
“오늘처럼 정신없이 사냥한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네.”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사냥에 열을 올린 무혁이었기에 그로 인해 얻은 부산물이 공간 주머니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이게 지워지려나…….”
무혁은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에 스며든 전투 개미의 체액을 손으로 슥슥- 비벼보고는 공간 주머니에서 워터 볼을 꺼내 뿌려봤다.
깨끗하게 빨래를 한 것과 같은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지만, 눈에 띄는 검은 체액들은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갔기에 무혁은 워터 볼을 몇 개나 꺼내서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하듯 부어댔다.
대충 세탁 겸 샤워를 끝내고 무혁은 남쪽 토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루이스 등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돌아가며 무혁은 루이스와 레이나, 오를리아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그들과 지내야 할지 고민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로서도 무혁의 무력이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잠자코 눈치나 보며 입을 다물고 있어 준다면 무혁으로서도 딱히 그들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든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구름이가 뒤처리를 잘 해놨으면 좋겠는데…….”
무턱대고 뒤처리를 부탁한 무혁이었지만, 방구름이라면 어느 정도는 루이스 등을 설득, 혹은 회유를 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아니다 싶으면 뭐…….”
말을 흐리는 무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변했다.
되도록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지만, 작은 감정에 휘둘릴 마음이 없는 무혁으로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미리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던 무혁은 좌측 숲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은신 관련 스킬들을 모조리 사용해서 모습을 감추었다.
몬스터라면 눈에 보이는 그 즉시 사냥을 해버릴 작정이었고,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면 조용히 관찰을 할 생각이었다.
무언가가 점점- 다가오는 소리에 무혁의 얼굴엔 긴장감보다는 호기심이 더 짙게 드리웠다.
그리고 기다리던 정체 모를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다… 으응?’
그것이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조용히 은신하고 있던 무혁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키.
빵빵하게 다져놓은 탄탄해 보이는 근육질 몸매가 한껏 드러나는 타이트한 가죽 갑옷.
한 손엔 제 몸통만한 금빛 자루, 나머지 한 손엔 무식해 보이는 대검.
무혁은 수풀을 헤치고 나온 이를 확인하고는 은신 스킬을 모조리 해제했다.
“…헉!”
갑작스럽게 무혁의 은신이 풀리자 밤 산책이라도 나온 듯 별 생각 없이 걷던 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검을 나무젓가락마냥 가볍게 들어 올리며 방어 자세부터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