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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86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4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8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86화

피 무지개 숲 (11)

 

“와… 뭔가 섬뜩한데요?”

방구름은 숲을 뒤덮듯 하늘 위에 떠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괜히 뒷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일곱 빛깔 중 남아 있는 건 두 빛깔뿐.

특히, 피처럼 진한 붉은 빛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오싹했다.

무혁 역시 온통 빨간색 다음 위태롭게 남아 있는 보라색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기분이 이상하긴 하네.”

뭐랄까? 괜히 흥분되고 불안하다고나 할까?

가만히 무지개를 보고 있으니 심장 박동도 확실히 빠르게 뛰는 것 같기도 했다.

“형님, 오늘은 늦게까지 사냥하지 마세요. 왠지… 기분이 좀 찝찝하네요.”

지난 이틀 동안 무혁은 밤늦게까지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다.

밤 사냥을 해본 결과 오히려 낮보다 편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정도로 한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토성의 거주자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숲의 불길함 때문인지 해가 지면 토성에 들어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때만큼은 숲 전체가 무혁의 개인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고 자정이 되면 모든 무지개의 색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진정한 피 무지개가 뜨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방구름은 아무리 무혁이 강하다 하더라도 괜한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여겼고, 무혁 역시 처음으로 무지개 색깔이 모두 빨간색으로 변하는 만큼 섣부르게 행동할 생각은 없었기에 걱정 말라며 방구름을 안심시켰다.

“맙소사! 헤로틴이잖아!”

토성 외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남자가 그렇게 외쳤다.

“헤로틴이라고?”

“정말이네! 헤로틴이야! 헤로틴이 돌아온다!”

“뭐, 뭐야? 왜 혼자인 거야?”

“이봐! 당장 문 열어! 헤로틴이 쓰러졌어!”

외벽 위에서 경계를 하던 이들이 난리를 떨어대는 통에 토성 내부의 사람들까지도 빠르게 정문을 향해 모여들었다.

“형님.”

무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방구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정문으로 향했다.

몇몇 사람들이 헤로틴을 부축해서 토성 안으로 들어왔다.

“회복 물약! 회복 물약 있는 사람!”

다급하게 회복 물약을 찾아야 할 정도로 헤로틴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허벅지 한쪽은 길게 찢어져 있었고, 어깨와 허리, 등에도 상처가 있었다.

곳곳에 묻어 있는 혈흔, 그리고 부서지고 찢어진 옷가지 등은 헤로틴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충분히 알만했다.

3일 만에 돌아온 헤로틴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헤로틴! 헤로틴! 정신이 들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일러가 헤로틴을 부축하며 말을 했고, 그 곁에는 마르테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크으… 노, 놈들에게 당했어. 빌어먹을.”

헤로틴은 분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상처로 인한 고통 때문인지 끙끙- 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은?”

마르테의 물음에 헤로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혼자만 살았다는 거야?”

마일러는 제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헤로틴은 미안하다는 말로 혼자만 살아남았음을 명확하게 알렸다.

“이따위 멍청한 결과를 위해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냐?”

마르테의 싸늘한 음성에 헤로틴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그를 노려봤다.

“뭐라고? 멍청한 결과? 무모한 짓?”

“그런 꼴이 되고도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

“마르테! 너 이 새끼! 나는 내 목숨까지 걸며 동료의 숭고한 복수를 하려고 했을 뿐이야! 너 같은 겁쟁이가 되려 하지 않았을 뿐이고! 내가 지난 3일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너 따위가 알기나 해!”

헤로틴의 외침에 마르테가 코웃음을 쳤다.

“목숨 건 숭고한 복수? 앞뒤 구분 못하는 생각 없는 멍청이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대로 설쳐댄 거겠지. 그리고 목숨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걸었고. 안 그래?”

“닥쳐!”

헤로틴이 몸을 일으키자 재빨리 마일러가 그를 만류했다.

“상처가 깊어! 함부로 움직이지 마! 마르테, 결과가 어떻든 지금은 누구 탓을 하며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니까, 그만해.”

“헤로틴, 너로 인해 우리는 전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네가 그들을 선동하지만 않았어도…….”

“마르테! 그만 하라니까!”

마일러의 언성이 높아지자 마르테가 이번에는 그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너도 착각하지 마! 우린 한가롭게 캠프 따윌 나온 게 아니야. 저 멍청한 새끼가 우리 전부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걸 너도 확실하게 알아야 해!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줄까? 네가 중재를 한다면서 나서지만 않았어도 저 새끼가 그렇게 날뛰지는 않았을 거야. 마일러, 확실하게 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중간에서 혼자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꼴 역겨우니까.”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인지, 마일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르테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일러!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어. 저런 제멋대로인 놈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가치도 없어!”

헤로틴이 벌겋게 변한 얼굴로 그렇게 외치자 마르테의 시선이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살기에 번들거렸다.

“이 병신 새끼야. 죽고 싶냐?”

마르테의 몸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살인 의지가 맹렬하게 피어오르자 헤로틴이 너 잘 걸렸다는 듯 마찬가지로 살기를 뿜어냈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이 서로의 목숨을 끊기 위해 싸우려고 하자 주변에서 급급하게 말리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라면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해왔던 마일러가 이번에는 단 한 마디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자 마르테와 헤로틴을 갈라놓기 위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서로 간의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마르테 팀장의 말에 상처라도 받은 걸까요?”

방구름은 양쪽으로 나누어진 사람들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마일러를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무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헤로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좀 막무가내였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료를 모두 잃고 저렇게 혼자 겨우 살아온 걸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좀 그렇네요.”

“이상한 점 못 느꼈어?”

“예? 이상한 점이라니요?”

방구름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다물어버리는 무혁이었다.

결코 얕지 않은 상처, 그리고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들은 분명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헤로틴의 모습, 행동, 말투와 눈빛까지 모든 것이 부조화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르테와 일전도 불사하려고 했던 모습도 이해가 가질 않고.’

아무리 마르테가 독설을 날렸다 하더라도 53명의 목숨을 허무하게 잃고 온 헤로틴으로서는 죄인이요, 죽은 듯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물론, 헤로틴처럼 뻔뻔한 인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말의 죄책감 혹은 책임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테의 행동을 기다린 사람처럼 이를 드러냈던 헤로틴의 모습은 무혁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이틀 동안 숲을 활보하고 다녔던 사람은 나뿐이었어.’

밤이었고 그 시간이 7시간 내외로 그리 길진 않았다. 하지만, 무혁은 자신의 주변을 제외하곤 항상 고요하기만 했던 숲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헤로틴이 도대체 어디서 싸웠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온통 의문투성이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멀어지는 헤로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무혁은 이윽고 숲은 넓으니까- 라며 중얼거리고는 신경을 꺼버렸다.

헤로틴의 귀환으로 잠시 소란스러웠던 토성 내부는 이내 평상시처럼 흘러갔다.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자 토성 내부가 다시 한 번 시끄러워졌다.

“오늘만큼은 내일 있을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를 더욱더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낫질 않겠어?”

“어차피 몬스터들의 수준이야 다 알고 있는데 대비는 무슨! 그깟 놈들 아무리 많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기압의 영향도 받지 않는 토성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맞는 소리야. 그리고 우리는 이 든든한 토성을 방패로 지켜내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니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하더라도 방비는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거야. 강제 사냥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지난 5일 동안 몬스터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영 신경이 쓰여. 분명 내일 몬스터의 공격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어쩌면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을지 몰라.”

방어를 해야 한다는 쪽과 문제없다는 쪽의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어쩔 생각이야?”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루이스가 물었다.

무혁은 생각할 것 뭐 있겠냐는 듯 곧바로 대꾸했다.

“숲으로 들어가야지.”

“방비는?”

“어차피 토성 외벽의 보수는 어느 정도 끝났어. 여기서 더 보완을 한다고 해봐야 얼마나 더 큰 방어력을 얻을 수 있겠어? 굉장히 미미할걸? 그럴 바에야 숲으로 들어가서 사냥을 하고 조금이라도 전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게 나아.”

무혁의 말에 루이스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가장 먼저 스킬 링부터 떠올렸다.

지난 이틀 동안 함께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하면서 스킬 링을 3개나 더 얻었지만, 아쉽게도 기본적인 스킬(무기 강화, 포인트 폭발, 고유 능력 증폭)이 담겨져 있었기에 큰 재미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심심찮게 스킬 링이 나온다는 점만으로도 무혁의 말을 따를 이유는 충분했다.

일행들이 스킬 링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무혁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운이 따라줘야 만날 수 있는 건가? 코빼기도 보이질 않으니…….’

오크 상인.

무지개 구슬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번 강제 사냥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오크 상인이라 확신하는 무혁으로서는 내일 있을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비해서 오크 상인을 반드시 찾고 싶었다.

“뭐, 그럼 우리는 결정 난 건가? 모두 무혁의 의견에 반대 없지?”

루이스의 물음에 레이나와 오를리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구름이야 애초부터 무혁의 말이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들 정도로 그 믿음과 신뢰가 탄탄했기에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오늘도 완벽하게 사냥을 해보자고!”

언제나처럼 루이스는 힘차게 외쳤고, 레이나는 과할 정도로 시끄럽다며 인상을 찌푸렸으며,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 오를리아는 여전히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무혁 일행은 토성을 나와 숲으로 진입했다.

숲으로 들어선 무혁 일행은 거침없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녔다.

지금까지 숲에서 발견된 몬스터라고 해봐야 로마티워(해머 거인), 콩구스(거대 갑옷 도마뱀), 낫 사마귀가 전부였다.

광활한 숲에 오직 이 3종류의 몬스터 밖에 없었으며, 그 수준 또한 3, 4인 파티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정도였기에 숲에서 사냥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감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이건 정말 너무 쉽지 않아? 이런 난이도에서 생존율이 절반이라니… 아무래도 이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루이스의 말에 레이나가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핀잔을 줬다.

“진짜 시험은 시작도 하지 않았어. 최소한 내일 있을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내고 난 이후에 그런 소리를 해!”

“고작 이런 놈들이 상대라면 못 막을 이유가 없잖아? 하하하핫!”

루이스가 가슴이 쩍- 벌어진 해머 거인의 시체를 툭툭- 걷어차며 웃었다.

하여튼 저런 놈들이 제일 먼저 죽지- 라며 레이나가 혀를 차는 사이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무지개 사이에서 우르르릉! 하는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루이스가 깜짝- 놀라서 무지개를 올려다봤고, 다른 일행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지개는 지속적으로 우르르릉! 하는 괴음을 토해냈고, 그렇게 2분에서 3분이 흐르고 나자 잠잠해졌다.

“깜짝 놀랐네. 괜히 불안하게 왜 저래? 나는 또 뭐라도 튀어나오는 줄……!”

투덜대며 무지개를 노려보던 루이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무지개를 뚫고 무언가가 계속해서 숲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 저게 뭐야?”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루이스가 말을 더듬거렸다.

물체는 아니었다.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는 그것은 분명 어떠한 형상을 갖춘 생명체였다.

“구름아, 뭔지 알겠어?”

일행 중 가장 오래 헬-라시온에서 산 방구름이었기에 무혁은 그에게 괴생명에 대한 정체를 물었다.

“거리가 멀어서 저도 잘 확인을 못 했어요.”

방구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퍼엉! 하는 소리와 쿠웅!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친절도 하네.”

무혁은 자신들의 앞에 떨어져 내린 괴생명을 유심히 바라봤다.

타원형의 알처럼 바닥에 내리꽂힌 그것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 위에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뒤로 솟아난 가느다랗고 기다란 한 쌍의 더듬이, 둥그런 대가리는 마치 투구를 뒤집어 쓴 것처럼 매끈했고, 몸 전체도 둥그렇고 매끈하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양손에 들린 길고 날카로운 한 자루의 검과 둥그런 방패는 전쟁터로 향하는 병사마냥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전체적인 생김새는 마치.

“개미?”

루이스의 중얼거림에 맞춰서 방구름이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소리쳤다.

“저, 전투 개미! 마,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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