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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78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7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78화

피 무지개 숲 (3)

 

무혁은 왼쪽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시계부터 확인했다.

 

12 : 46

 

이번 강제 사냥을 준비하면서 중앙탑에서 구입한 C사의 전자시계였다.

무혁이 한국에서도 즐겨 사용하던 제품으로 방수, 나침판, 온도, 태양열 충전 등의 유용한 기능들이 대거 탑재되어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이라면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 제품군이기도 했다.

아스펠 마을 중앙탑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3만 포인트로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헬-라시온에서도 모든 기능이 그대로 적용되었기에 실제로 가격대비 내구성을 비롯한 성능이 가장 뛰어난 제품군이라 많은 식민들이 애용하는 시계로 손꼽히고 있었다.

삑- 소리와 함께 스톱워치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시간을 이용한 거리 계산은 기본이다.

걸음을 내딛는 무혁은 묵직한 숲 공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숲 공기 자체가 온몸을 속박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은근히 거슬리네.’

무혁은 팔을 휘휘- 돌려볼 때마다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송정민과 예전에 술을 마시며 나누었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올랐다.

 

‘헬-라시온에서 가장 까다로운 곳이 바로 기압과 중력 차이가 나는 특수 지역이다. 기압은 말 그대로 대기 중의 공기 밀도? 혹은 기의 밀도라고 보면 된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공기 전체가 굉장히 무겁게 변해서 움직임을 속박하는 거다. 그리고 중력은 말 그대로 바닥에서부터 끌어당기는 힘으로… 이건 알지? 어쨌든 중력과 기압은 본래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헬-라시온에서는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지. 그중 최악은 기압과 중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간인데 그런 곳에서는 사실상 가진 실력의 절반, 아니 삼 분의 일도 제대로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무혁은 주먹을 가볍게 뻗어봤다.

평소보다 주먹을 뻗었을 때의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이건 기압이다.’

주먹이 아래로 처지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때의 무게감이 더 들었으니 기압 차가 다른 곳보다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래저래 생존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 이건가?’

무혁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건 마치 이번 강제 사냥에 참가한 식민들 중 절반은 반드시 목숨을 내놓아야만 끝이 난다고 대놓고 위협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숲에 들어섰을 때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기압이나 중력에 대한 내성 스킬은 없으려나?’

무혁은 그런 스킬이 있다면 무조건 익히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중앙탑에서도 그런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고, 설령 익힐 수 있다 하더라도 패시브 스킬의 특성상 과연 얼마나 그 등급을 올릴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이거 생각보다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겠는데?’

무혁은 몸이 완벽하게 숲에 적응을 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도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그걸로 만족해야겠지.’

이런 정보가 하나, 둘 모여서 생존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적어도 무혁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숲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거라고 여겼다.

무혁은 평소 걸음 속도보다 두 배는 느리게 걸었다.

뿐만 아니라, 숲의 기압에 적응하기 위해 양팔을 쉬지 않고 사용했고, 복서처럼 어설프게 이리저리 제자리 스텝을 밟는 등 짧은 거리에서도 최대한으로 많이 움직이기 위해 애를 썼다.

걸음은 한없이 느릴지언정, 눈과 코, 귀, 입술, 손끝, 발끝, 머릿속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보고, 맡고, 듣고, 느끼는 등등 전신 감각을 통해 숲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담는 중이었다.

앞으로 3주, 21일을 지겹도록 들락날락- 거리며 버텨내야 하는 곳이었기에 무혁은 눈을 감고도 숲을 헤집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정보를 빼곡하게 머릿속에 채워 넣어야만 했다.

숲은 방대하다.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기에 숲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지만, 최소한 거주지로 삼고 있는 남쪽 토성을 시작으로 숲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그 주변까지는 지속적으로 오가며 빠삭하게 익힐 생각이었다.

스톱워치를 확인하며 무혁은 계속해서 걸었고, 그렇게 2시간가량이 지났다.

“오늘은 몬스터가 없나보네.”

허탈한 음성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무혁은 이내 표정을 굳히며 재빨리 시계의 스톱워치 기능을 정지시켰다.

삑!

무혁은 재빨리 은신 관련 스킬들을 일제히 사용하곤, 조심스럽게 가시덩굴이 밀집한 곳으로 이동해서 숨소리마저 낮게 죽였다.

20초 정도가 지났을 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됐어?”

“두 시간 반 정도.”

“생각보다 숲이 굉장히 넓어.”

“넓은 것도 문제지만, 식량이 문제야. 지금까지 먹을 만한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건…….”

“내일부터 숲에 나타날 몬스터를 잡아먹으라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음성과는 다르게 또 다른 목소리의 주인은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몬스터 고기는 정말 먹고 싶지 않은데…….”

그 목소리에 무혁은 설핏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된 무력을 갖추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혁은 마우티 부락에서 소시지 빵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만 했었다.

배불리 몬스터 고기를 먹고 싶어도 그걸 잡을 힘이 없었기에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남자의 불만이 얼마나 배부른 짓인지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마을 식민이라 이거군.’

하긴, 부락 식민과 마을 식민은 완전히 달랐으니 그의 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먹지 않고 버틸 재주가 있다면 버텨보던지.”

무혁과 같은 생각인지, 동료의 불만을 대놓고 핀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니트!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난 단지 이왕이면 더 좋은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만약 역겨운 몬스터 고기를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너 역시 나처럼 불만을 늘어놓을 거야.”

“역겨운 몬스터 고기든 뭐든 난 상관없어. 마을에서만큼은 부락에서처럼 살고 싶지 않으니까!”

화가 가득 찬 음성에 무혁은 그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2년차 식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라면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제니트, 네 말대로라면 아스펠 마을로 이주를 해온 2년차 식민들은 이전 부락에서 겨우 목숨만 붙어서 온 실력 없는 이들이잖아? 아니야?”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지. 대부분의 길드나 가문, 패밀리 등에 속한 이들은 아스펠 마을 따윈 선택하지 않아.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하거나, 아니면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해서 무작위로 아스펠 마을로 이주해왔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가 아스펠 마을을 선택한 거잖아!”

“발론, 아스펠 마을에는 2년차 식민들만 있는 게 아니야.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보다 오래 헬-라시온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이들도 여럿 있어. 당장 우리와 같은 토성에 있는 레오나르도라는 녀석만 봐도 알잖아?”

“아, 그 느끼한 놈? 그리 강해보이지는 않던데?”

“발론, 강해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기엔 너나 나나 너무 많은 경험을 했어. 오히려 그런 녀석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 그건 그렇지.”

무혁은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는 두 백인 남자를 바라봤다.

제니트라는 남자는 180센티미터의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발론이라는 남자는 그보다 머리통 하나는 작았으며 체격 또한 왜소했다.

‘…총?’

무혁은 발론의 허리춤에서 총을 발견하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헬-라시온의 무기 중에는 당연히 총도 존재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총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총을 선택한다.

어쨌든 지구에서 온 사람들로서는 그 어떤 무기보다 총이야말로 가장 최고의 무기라는 인식이 뿌리 깊도록 박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총을 선택한 이들은 새롭게 무기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하는 총알의 가격도 만만찮은데, 총이라는 무기가 가지고 있는 내구성이 다른 무기들에 비해 워낙 낮다보니 값비싼 수리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와 같은 출혈을 감당하면서까지 총을 사용하자니, 다른 무기들보다 위력이 월등히 뛰어나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였다.

총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그 누구라도 간단하게 조작이 가능하고, 원거리든, 근거리든 단 한 발의 총알로 상대를 죽이거나,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지구에서 총은 최강의 무기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날아오는 총알을 눈으로 보면서 피하고, 몸으로 막아내는 인간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헬-라시온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고유 능력의 등급이 올라가고, 각종 스킬과 높은 등급의 방어구를 걸치면 총은 더 이상 상대 불가능의 무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초창기부터 총에 의지해버리면 등급이 올라가고, 상위 식민으로 성장할수록 경쟁자들에 비해 약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총을 사용하면서도 근접 격투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총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분명 큰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편리함에 의존할 경향이 컸기에 총과 함께 성장한다는 건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다시피 초창기 총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들어가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힘들 수 있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총은 헬-라시온에서 상당히 천대받는 무기 중 하나였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 헬-라시온의 유명 랭커들만 하더라도 총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무혁으로서는 총을 무기로 사용하는 발론이 신기하기만 했다.

“발론, 잘 들어. 우리는 반드시 여기서 압도적으로 성장해야만 해.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우리와 경쟁을 벌이는 인간들이야. 그들을 하나, 둘 잡아서 이곳 아스펠 마을에서 최고가 되는 거야.”

“그 다음은 다른 마을로 이주하는 거고?”

“그래야지. 잘나신 가문과 길드 놈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주는 거야.”

제니트의 말에 발론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여기는 정말 나를 위한 무대인 것 같아. 기압 차가 이렇게 심한데 어떤 놈들이 내 총알을 피할 수 있겠어? 안 그래?”

발론의 짙은 웃음에 제니트 역시 마주 웃었다.

“이건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인 거지.”

헬-라시온에서 신을 찾는 제니트와 그 말에 적극 동의하는 발론의 뒷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쫓던 무혁은 그들이 완전히 멀어지자 은신을 풀며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아스펠 마을이 어떤 곳인지 송정민에게 충분히 들어서 알고 있다.

제니트의 말 그대로다.

각 부락에서 밑바닥을 맴돌거나, 철저하게 홀로 활동하던 이들만이 모인 곳이다.

어느 유명 랭커는 이러한 아스펠 마을과 같은 곳들을 가리켜 ‘2년차 쓰레기들의 집합소’라고 노골적으로 비하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아스펠 마을에는 이렇다 할 대형 길드나 가문의 지부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헬-라시온의 수많은 마을들 가운데 식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는 곳 중 하나란 소리다.

무혁은 제니트와 발론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 현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더불어.

 

‘헬-라시온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포식자가 되려고 하는 놈들이 항상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용이냐, 미꾸라지냐의 차이일 뿐. 이번 강제 사냥이 시작되면 알 수 있을 거다. 별 볼 일 없는 실력으로도 포식자가 되겠다며 온갖 비열한 수를 써대는 모습을 일부러 찾지 않아도 쉽게 마주하게 될 거다. 넌 어쩔 셈이냐? 이미 같은 연차의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들을 잡아먹고 성장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거냐?’

 

송정민의 말을 떠올리며 무혁은 어느새 다 태운 담배꽁초를 질근질근- 씹었다.

입안의 텁텁함보다 가슴 속을 묵직하게 조여 오는 답답한 느낌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간의 탑에서도 경험했던 일을 똑같이 피 무지개 숲에서도 되풀이해야만 하는 걸까?

무혁은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무사히 자신의 일만 묵묵하게 끝내고 강제 사냥을 마치고 싶었지만, 현실은 자신을 도무지 가만히 두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씹혀버린 담배꽁초를 뱉어내는 무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애초부터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

누군가 자신의 것을 노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될 뿐이다.

자신의 것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만 철저하게 지켜준다면 무혁은 자신의 손에 타인의 피를 묻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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