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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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5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50화
아스펠 마을 (2)
“월세는 매달 20만 포인트다. 네가 있었던 부락과 마찬가지로 하루라도 늦어진다면 그 즉시 강제 퇴거를 당하게 될 거다. 더불어…….”
무혁은 자신의 앞에서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느라 바쁜 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자 마족이라니…….’
검은색 짧은 단발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성 마족, 리리타오는 늘씬한 키와 고혹적인 눈빛이 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본능을 마구 자극해왔다.
무혁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여성체의 마족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악마적인 치명적 아름다움이 이러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남자의 기를 다 빨아먹어 죽인다는 몽마(夢魔)가 이런 눈빛이겠지? 이런 여자가 덤벼들면…….’
무혁이 그런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자, 한창 설명하느라 바빴던 리리타오가 입을 다물고 지그시 그를 노려봤다.
“어이- 인간.”
왜 부르냐는 듯 무혁이 리리타오를 더욱더 빤히 바라봤다.
무혁의 눈빛에 음흉함은 없었지만, 하찮은 인간 따위가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는 것이 기분 나쁜 리리타오가 싸늘하게 말했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는 거지?”
“어차피 전에 살던 부락하고 다를 것 없지 않나?”
무혁이 되받아치자 리리타오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큰 틀에서 본다면 다를 것 없는 건 맞다. 그런데 분명 내가 관리하는 아스펠 마을에서는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뭐였지?”
모르면 재미없을 것이라는 듯 리리타오가 서늘한 기운을 뿌려댔지만, 무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마을 식민들끼리 절대 사랑하지 말 것?”
“더 정확하게는 너희 하찮은 인간들끼리 교접을 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너희 인간 수컷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난 아주 역겹거든.”
어디 한 번 발끈해보라는 듯 노골적으로 비웃은 리리타오였지만, 아쉽게도 무혁에게는 조금도 통하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무혁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리리타오는 시건방진 놈- 이라고 생각했다.
마신 라시온의 손톱만 한 관심을 무기로 마족인 자신 앞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감히 자신의 말에 이렇다, 저렇다 반박을 하는 것도 따끔한 교훈을 내려주고 싶을 정도로 손이 간질거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저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리리타오는 자신의 눈앞에서 재빨리 지워버리기 위해 강제로 무혁을 쫓아내 버렸다.
“그럼 더 이상 내 앞에 서 있지 말고 꺼져버려!”
리리타오에게 강제로 쫓겨난 무혁은 중앙탑을 돌아보며 새로 장만한 깔끔한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성질 참 지랄 같네.”
퐁-!
“후우우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무혁은 아무래도 앞으로 리리타오를 상대할 때마다 꽤나 불편한 눈빛을 받을 것 같다고 여기면서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무혁이 새롭게 정착한 아스펠 마을은 중앙탑에서 북동쪽으로 500미터를 걸어가면 단층 짜리 단독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단독주택이라고 해봐야 딱히 마당도 존재하지 않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집이었지만, 마우티 부락에서 지냈던 판잣집과 비교하면 마치 큰 성공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무혁이었다.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주택가를 걷던 무혁의 발걸음이 빛바랜 푸르스름한 지붕의 주택 앞에서 멈춰섰다.
“이 정도면 궁궐이지 뭐.”
무혁은 앞으로 자신이 머물게 될 새로운 보금자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앞치마를 두른 뚱뚱한 중년 여성이 무혁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무혁보다 훨씬 작은 키에 얼굴은 꼭 뭉개 놓은 돼지처럼 생겼는데, 아스펠 마을에서 고용한 하녀 ‘마코’라는 여자였다.
‘오크 족이라고 했었지?’
마코는 인간이 아닌 ‘오크 족’으로 헬-라시온의 마을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간 외의 또 다른 종족이다. 그리고 소도시, 중소도시, 대도시로 신분이 격상되어 이주를 할 때마다 새로운 종족들을 볼 수 있는데.
‘대도시에는 아름다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엘프 족을 볼 수 있다. 랭커들 중에는 하이 엘프 족을 밤의 하녀로 고용해서 쓸쓸하고 외로운 밤을 달래는 놈들도 제법 있다. 나 역시 한때는 그랬었지. 끌끌!’
무혁은 송정민의 말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의지를 불태웠다.
‘대도시로 가면 나도 반드시!’
므흣한 생각으로 히죽- 거리는 무혁의 모습에 하녀 마코는 잔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시원한 물 한 잔을 컵에 따라왔다.
“냉수 마시세요.”
“…….”
무혁은 얼음까지 동동- 떠 있는 냉수를 건네는 하녀 마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되지도 않는 꿈꾸지 말라고 찬물을 들이대는 건가- 싶어 무혁은 의심스럽게 하녀 마코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표정은… 도통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못생김만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내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무혁이 시원스럽게 물을 들이켰다.
“캬하- 시원하다!”
하녀 마코를 고용하기 위해 매달 들어가는 포인트는 무려 10만 포인트.
월세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적지 않은 포인트가 지출되지만, 하녀가 있음으로써 유지되는 집안의 청결이나 요리의 귀찮음과 잔심부름, 무혁이 없을 때 대신해서 송정민을 돌봐줄 수 있는 보호자 역할들을 떠올리면 10만 포인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었다.
“선생님은 주무시나?”
무혁의 물음에 하녀 마코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했다.
똑똑-!
“노크는 무슨. 들어와.”
안에서 들려오는 송정민의 빈정거림에 무혁은 씩- 웃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이제 각자의 개인 공간이 생겼으니 사생활은 존중해야죠.”
무혁의 능글스러운 말에 송정민은 혀를 끌- 찼다.
“포인트 좀 모았다고 흥청망청 써대는 꼴을 보니 네놈도 글렀어.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
송정민의 가시 돋친 말도 무혁은 그저 웃어넘겼다.
무혁이 마을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이왕이면 주변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곳 아스펠 마을까지 추천을 해준 사람이 송정민이다.
하지만, 2등급 주택을 주거지로 잡은 것과 하녀 마코를 고용한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만스러워 얼굴을 볼 때마다 이렇게 무혁을 질책하고 있었다.
성장하기에도 바쁜 무혁이 소중한 포인트를 자신 때문에 허투루 사용하고 있다 여겨 불편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제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리고 포인트는 조금만 모은 게 아니라 정말 많이 모았습니다.”
마을에 정착해서 하녀를 고용하겠다고 했던 말.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듯 싱글싱글- 웃고 있는 무혁의 모습에 송정민은 그 꼴이 보기 싫다는 듯 하나 남은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선생님, 내일부터는 다시 움직일 생각입니다.”
무혁의 말에 송정민이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조금 더 쉬지 않고?”
지난 열흘 동안 시간의 탑에서 무혁이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을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송정민은 당분간은 푹- 쉬면서 재충전을 하길 바랐다.
당장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인 이상 적당한 휴식을 통해 정신적 안정과 육체적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혁은 안소영이라는 여인까지 잃었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더라도 무혁의 마음이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음을 알기에 송정민은 그 부분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휴식기를 가졌으면 싶었다.
“제가 용가리 통뼈 아닙니까? 이 정도는 끄떡도 없습니다! 하하핫!”
무혁은 알통까지 보여주며 해맑게 웃었다.
실제로 용의 뼈를 이식 받았다는 걸 아는 송정민은 무혁의 넉살에 기어이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래, 계획이나 들어보자.”
신세를 지고 있는 송정민으로서는 무혁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은 헬-라시온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반나절 거리에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 있다고 합니다.”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에서 사냥을 하겠다고?”
송정민은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은 송정민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다.
아스펠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던전형 사냥터로서 서식하는 몬스터의 등급은 최대 6등급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등급 부적격 사냥터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은 현재의 무혁에게 전혀 도움이 될 만한 사냥터가 아니었다.
우선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 중 무혁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설령 핵을 지닌 몬스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대 등급이 6등급이라 이미 5등급에 올라선 무혁에게는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등급 부적격 판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의 서식 몬스터들은 소위 기피 대상 몬스터들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헬-라시온에서 기피 대상 몬스터들 중 단연 으뜸은 판매 품목이 형편없는 몬스터들이다.
간단하게 마우티 부락의 고블린을 떠올리면 된다.
사냥 효율 대비 판매 품목이 극도로 적고, 그 포인트 가치가 낮은 몬스터.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에는 그러한 몬스터로 채워져 있었다.
성장에 도움도 되지 않고, 포인트 벌이도 형편없는 곳에서 사냥을 하겠다니 송정민으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송정민에게 무혁은 차분하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혁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야 송정민이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구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포인트 벌이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포인트가 부족해 그 생활이 궁색한 무혁이 아니다.
오히려 무혁의 말대로 2년차가 되면 시작될 포지션 트레이닝과 마을 식민으로서의 강제 사냥 등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을 금과 같이 여겨 자기 발전에 더욱더 박차를 가할 필요성이 있었다.
송정민은 스스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무혁이 오히려 대견했고, 기특했다.
현재 무혁의 실력은 가히 같은 연차와는 비교가 불가능했고, 2년 차들과 비교해도 수위에 있다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스스로를 더욱더 발전시킬 방법을 궁리했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있었으니 송정민으로서는 당연히 그 마음을 가상하다 여길만했다.
‘어쩌면 나는 진짜 괴물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송정민은 무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쉽사리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송정민이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자 무혁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통통통통통통통!
기다렸다는 듯 통통이가 무혁을 향해 다가왔다.
“방 잘 지키고 있었어?”
무혁의 물음에 통통이는 더욱더 빠르게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꼭 애완용 강아지를 키우는 것만 같아 무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아예 애완용 강아지를 다루듯이 무혁은 통통이를 데리고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통통이와 놀고 나서야 무혁이 힘들다는 듯 주저앉았다.
“그래도 명색이 콧대 높은 마족들이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들 보물인데, 너도 어딘가에 분명 크게 쓰일 날이 오겠지?”
무혁의 물음에 통통이는 그저 커다란 외눈을 깜빡이며 제자리에서 통통- 뛰기만 했다.
다음 날, 무혁은 곧바로 하녀 마코에게 송정민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넘도록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에서 사냥을 할 계획이었기에 하녀 마코의 존재는 확실히 무혁에게 있어서 든든한 조력자처럼 느껴졌다.
만약, 하녀 마코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송정민이 걱정되어 이토록 오랜 시일 집을 비울 수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매달 지출해야 하는 10만 포인트가 결코 아깝지 않았다.
다만.
“넌 왜 따라오는 건데?”
통통통통.
아직까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기에 무혁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다 여겨 통통이를 집에 얌전히 두려고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그를 따라나선 것이다.
집에서는 그토록 말을 잘 듣던, 아니 평소 무혁의 뜻을 잘 알아듣던 통통이었기에 갑작스레 고집을 피우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어르고 달래고, 언성을 높여가며 화를 내도 도저히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통통이었기에 무혁으로서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마을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스펠 마을에서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까지는 꼬박 반나절 거리.
무혁은 최대한 몬스터들과의 접촉을 피해가며 반나절을 걸은 뒤에야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모래성을 볼 수 있었다.
쑤우욱.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는 명칭 그대로 주변 바닥이 모두 발목까지 푹푹- 잠길 정도의 모래로 가득했다.
“너는 멀쩡하네?”
놀랍게도 통통이는 발이 잠겨 들어가는 모래 위에서도 아주 경쾌하게 통통- 뛰고 있었다.
무혁은 그나마 통통이까지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모래성을 향해 나아갔다.
웅장한 모래성 입구는 문이 없이 그저 모래만이 폭포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처럼 가느다랗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통통아, 들어가자.”
무혁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래를 맞으며 입구로 들어섰다.
“…억!”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무언가에 의해 발목부터 심하게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무혁의 몸은 순식간에 모래 안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