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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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4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42화
시간의 탑 (26)
코우 신지가 하가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어느새 뒤쪽으로 몸을 굴리며 거리를 벌이는 배영철을 죽일 듯 노려봤다.
“…칙… 쇼.”
자신의 배가 갈라진 모습을 바라보며 하가세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지며 쓰러졌다.
“니미… 개X같네!”
배영철은 부서진 왼쪽 어깨를 한 차례 바라보고는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어냈다.
이제 남은 건 코우 신지뿐.
왼쪽 어깨가 박살나긴 했지만, 배영철은 코우 신지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가세는 죽었지만, 그를 통해 상승한 순발력은 여전히 유효했다.
다만, 시간이 5분가량 밖에 남지 않았을 뿐.
“이제 너 하나 남았다. 이 XX 쪽발이 새끼야.”
배영철이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올리며 잔인하게 웃었다.
싸움을 기선제압이다.
부상을 당했더라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기백을 뿜어낼 수만 있으면 절반의 승리는 먹고 들어간다.
이건 헬-라시온에 끌려오기 이전부터 배영철이 인천에서 주먹질을 하며 꾸준하게 쌓아온 경험이다.
“곱게 죽이진 않는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코우 신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배영철을 향해 날카로운 일본도를 휘둘렀다.
그사이, 무혁은 좀비들을 상대로 정신없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XX! 배영철! 이 개새끼!”
좀비를 끌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무혁으로서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함정에 빠져 죽었던 중국인들도 이러한 심정이었을까?
어차피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에서 죄책감 따윈 없었지만, 역으로 자신이 당해보니 기분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야! 뒤로 빠지라니깐!”
무혁의 외침에도 안소영은 뒤로 빠지지 않았다. 아니, 빠질 수가 없었다.
좀비들이 꾸역꾸역 몰려와선 교묘하게 퇴로를 막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한쪽 다리의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검을 휘두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스악!
안소영의 오른쪽 허리가 좀비가 휘두른 팔에 긁히며 상처가 생겼다.
깊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독.
빠른 속도로 피부가 죽어가며 감각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이 XX 것들이!”
무혁은 더 이상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듯 무아지경으로 도끼를 휘둘러댔다.
눈에 보이는 좀비의 수는 못해도 40마리.
느긋하게 혼자서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데, 큰 부상을 입고 서 있는 것조차 불편해 보이는 안소영을 보호하며 싸우려니 도저히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꺼져! 꺼지라고!”
무혁은 안소영의 몸에 하나, 둘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더욱더 다급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쩍! 쾅! 퍼억!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며 좀비의 머리통이 깨지고, 가슴이 쪼개지고, 허리가 절단 났다.
“허억! 허억!”
숨까지 몰아쉬며 무혁은 정신없이 좀비들을 쓰러트렸고, 어느새 온몸엔 좀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끈적끈적한 핏물로 더러운 악취가 진동을 했다.
“죽어! 이 쪽발이 새끼야!”
배영철의 거친 고성이 고막을 때렸고, 곧바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서 허우적대듯 팔을 휘둘러대던 좀비의 어깨를 장작 패듯 도끼로 내려찍어 쓰러트린 무혁은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입에서 핏물을 울컥울컥- 쏟아내며 코우 신지가 벽에 기댄 상태로 겨우 서 있었다.
‘진거야? 배영철 저 새끼가 둘을 잡은 거야?’
진심으로 배영철의 무력과 독기에 무혁은 감탄 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좀비를 아니, 안소영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섣부르게 배영철을 공격할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 무혁이 빠지면 안소영은 무조건 죽는다.
“젠장! XX! 빌어먹을!”
무혁은 다급하게 좀비들을 도륙했지만, 숫자는 여전히 십여 마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이 X같은 쪽발이 새끼야! 니들은 내 손에 다 뒤진다고!”
배영철은 그렇게 승자의 포효를 터트리며 코우 신지의 가슴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찌르고, 가르기를 수차례나 반복하고 나서야 배영철은 낄낄- 대며 웃다가 좀비들을 상대로 도끼를 휘두르는 무혁을 바라봤다.
“하아… 나. 저 X밥 새끼가… 사람을 가지고 놀았네.”
배영철이 어이- 이 X밥 새꺄- 라며 다가오기 시작하자, 무혁은 조급함에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젠장!”
눈앞에는 좀비, 뒤에는 배영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어렵지 않다.
아니, 무조건 배영철부터 죽여야 한다.
그런데… 배영철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면 안소영은 좀비들에게 둘러싸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5분? 아니, 3분? 어쩌면…….
‘1분도 버티지 못할 거야!’
이런 상황이 오게 될 줄이야!
이런 X같은 상황에 놓일 줄이야!
모두 자업자득이다.
누구든 일 대 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자만하던 무혁이었기에 결국 이런 화를 불러 온 거다. 아니, 지금이라도 안소영의 안위 따윈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배영철을 상대하면 된다.
어차피 죽어도 그만인 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이 지옥 같은 헬-라시온에서 나 외엔 누구도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고 자신했던 무혁이다.
그런데 왜 배영철을 향해 달려가지 못하는 걸까?
“…찌질한 새끼.”
무혁은 좀비의 머리통을 쪼개며 스스로에게 조소를 지었다.
이제와 알량한 동정심, 혹은 동료애 따위에 발이 묶인 거다.
어쩌면 그 이상의 다른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 터놓을 수 없는 헬-라시온에서 만난 ‘믿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안소영이 죽는다면 무혁은 엄청난 허무감과 박탈감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또다시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고독하게 혼자만의 치열한 삶을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이 싫었다.
무엇이 되었든 현재 무혁에게 있어서 안소영은 굉장히 큰 존재가 되었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안소영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혼자서만 살아남는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내가 다 망쳤어. 병신 같은 새끼… 꼴좋다.”
자책을 하고, 아무리 후회를 해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야, 가.”
“…뭐?”
무혁은 자신을 향해 힘겹게 말을 하는 안소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홀가분해 보였고, 입가엔 은은한 미소마저 엿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진심으로 고마워.”
“무슨 소리야! 나는 너와 함께…….”
“알아. 그러니까 그만하고 가.”
순간 무혁은 시간이 멈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향해 웃는 안소영의 얼굴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고, 지루하고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재생되는 슬로우비디오처럼 보였다.
“두 번은 싫어. 한 번으로 충분해. 너한테 빚지는 거.”
“너…….”
“대신, 우리 목표는 꼭 지켜.”
“목표?”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인가?’
‘동지라… 이왕이면 용사라고 하자. 마신의 귓방망이를 후려칠 용사들! 크핥핥핥핥핥!’
시간의 탑에 들어와 진심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유쾌하게 웃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정말 고마워. 죽어서도 잊지 않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소영의 목덜미가 좀비의 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혔다.
“놔! 이 개새끼야-!”
무혁이 발작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안소영이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서 무혁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 손짓을 했다.
가라고.
우득!
우악스러운 좀비의 손에 안소영의 목이 꺾였고, 무혁은 초점을 잃고 축- 늘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터져서 나왔고, 시야에 뿌옇게 물안개가 차올랐다.
“에이, 계집은 죽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리병신을 만드는 게 아니었는데. 마지막까지 살려 뒀다가 진하게 눌러주려고 했는데. 너 이 새끼야! 니가 저 계집보다 조금만 더 강하다는 걸 알려줬으면 널 노렸을 것 아냐!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무혁은 고개를 돌려 배영철을 바라봤다.
왼쪽 어깨가 부서지고, 옆구리에서 핏물을 흘리면서도 배영철은 이죽거리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아니 발끝에서부터 진득한 살의 욕구가 치솟았다.
무혁은 배영철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개처럼 빌어도 소용없다.”
“응? 뭐라고오-?”
배영철이 과장될 정도로 귀를 기울이는 척 하며 빈정거렸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팔을 휙- 휘둘렀다.
“이거나 맞아! 이 X밥 새끼야!”
배영철은 안소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혁을 향해 좀비의 시독이 잔뜩 묻은 쇳조각을 날렸다.
뻔히 보이는 동작에 속을 정도로 무혁은 약하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배영철을 노려보면서도 허리를 빠르게 비틀어서 날아오는 쇳조각을 피해냈다.
“어쭈?”
말과 다르게 배영철은 무혁의 움직임에 눈가에 작은 떨림이 일었다.
빠르다.
코우 신지나 하가세보다도 훨씬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너 같은 놈은 더 이상 살 자격이 없어!”
무혁은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배영철에게 던졌다.
후우웅- 하는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끼가 원을 그리며 날아오자 배영철은 본능적으로 막으면 위험하다라고 느끼곤 황급히 바닥을 굴러서 몸을 피했다.
“이 새끼가 해보자는……!”
어깨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일어서던 배영철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무혁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퍼억-!
무혁이 차올린 발이 배영철의 입안에 처박혔다.
“커헉!”
앞니가 몽땅 부러졌다.
입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만 같은 고통에도 배영철은 독할 정도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여기서 후속타까지 맞으면 정말 가망이 없다는 걸 순전히 본능적으로 알고 한 행동이었기에 배영철은 그것만 놓고 보더라도 타고난 싸움꾼의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천부적인 싸움꾼이라 하더라도 고유 능력이 7등급인 배영철과 6등급인 무혁의 신체적 차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격차였다.
카앙- 무혁의 손에서 튀어나온 케라크라의 손톱이 배영철의 검을 막았다.
피부를 뚫고 나타난 날카롭고도 단단해 보이는 케라크라의 손톱에 배영철은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게 뭐냐는 듯, 도대체 뭘 숨기고 있었냐- 는 듯한 배영철의 의문 가득한 표정을 보며 무혁은 냉혹하게 말했다.
“우선 팔부터 가져간다.”
콰작!
“으아아아악-!”
무혁은 그나마 멀쩡했던 배영철의 오른쪽 팔을 깨끗하게 잘라냈다.
그사이 좀비 두 마리가 접근을 해왔지만, 몸을 비틀어 회전시키며 양팔을 쭉- 뻗는 것으로 좀비들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박살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무혁 역시 등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고통스러워하는 배영철의 허벅지를 오른손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 꽂았다.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는 케라크라의 손톱이 허벅지의 살과 근육, 그리고 뼈까지도 깨끗하게 갈라버렸다.
“크아아아아아-!”
“너 같은 새끼는 곱게 죽어서도 안 돼.”
무혁이 말을 하며 남은 한쪽 허벅지에 왼손 주먹을 박아 넣으려고 할 때였다.
퍼엉!
무혁은 갑작스럽게 느껴진 공기의 압축에 다급히 고개를 옆으로 젖혔고, 그 순간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왼쪽 귀가 뜯겨져 나가는 것만 같은 찌릿찌릿- 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통 속에서도 무혁의 머리를 노리고 포인트 폭발 스킬을 사용한 배영철이었다.
물론, 원하는 곳에서 정확하게 폭발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무혁의 머리가 단숨에 터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포인트 폭발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줄 뿐이지 단단한 두개골을 부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은 없었으니까.
무혁은 찢어진 자신의 귓불을 만져보고는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웃으려고 하는 배영철의 모습에 큭큭- 거리며 마주 웃었다.
“그래, 발악해라. 여기서 네가 살려달라고 나한텐 애원하면… XX, 더 기분이 더러울 것 같으니까!”
무혁은 온전했던 배영철의 남은 허벅지에 케라크라의 손톱을 박아 넣고는 빙글- 손목을 돌리기까지 하며 후벼 파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배영철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무혁은 이제는 지척까지 다가온 10여 마리의 좀비들부터 처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렇게 처절하게 고통 좀 느끼고 있어.”
말을 마친 무혁은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어 악귀처럼 싸웠다.
온몸이 처참하게 뜯겨진 안소영의 시체를 보고 있자니 눈앞의 좀비들도 똑같이 만들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머리통을 부수고, 가슴을 찢어발기고, 팔다리를 뜯어버리는 등 무혁은 반쯤 미친 사람처럼 좀비들과 싸웠다.
상처가 몸에 하나, 둘 늘어났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광전사처럼 무혁은 끝내 모든 좀비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서야 가쁜 숨을 헉헉- 거리며 배영철에게 다가갔다.
“벼어어시이이… 낄낄!”
고통이 어느 정도 적응되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자신에겐 가망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는지 배영철은 무혁을 향해 조롱하듯 웃음을 지었다.
마치 그 웃음은 자신이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안소영이 죽는 일 따윈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 같아 무혁의 마음을 더욱더 쓰라리게 만들었다.
“그래, 맞아. 네 덕분이다. 이제 내가 어떻게 이 X같은 곳에서 살아야 할지 알게 됐다.”
무혁은 발을 들어 배영철의 얼굴을 지그시 밟았다.
“개새끼야… 잘 가라.”
콰작!
머리가 짓밟혀 처참하게 죽은 배영철의 시신을 바라보다 무혁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혼자서 살아남았지만,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다.
주변엔 좀비와 5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함께 찾았던 이들의 싸늘한 시체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무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끅! 끅끅끅!”
무혁의 입에서 작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어느새 무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