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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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7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7화
시간의 탑 (21)
계단을 찾은 건 3시간 후였다.
“대략 일곱 시간 정도 걸렸네.”
눈앞의 계단을 두고 무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법 빠르게 길을 뚫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열 몇 시간 동안이나 계단을 찾는 날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시원스럽게 길을 뚫었던 상황을 대입해보면 일곱 시간은 확실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순 없었다.
“그럼 내일 다시 보자고!”
계단을 향해서 배영철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껄끄러운 사이였는데 계단까지 찾은 이상 더 이상 함께 할 필요성이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4층에서 잠자코 10일째가 되길 기다렸다가 빠르게 계단을 찾아서 조용히 5층으로 오르면 될 뿐이었다. 물론, 조용히 오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누가 붙잡을 틈도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버린 배영철로 인해 코우 신지 일행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그들 역시 무혁과 안소영을 한 차례 바라보다가 이내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계단을 향해 걸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무혁과 안소영.
“저기 말이야.”
안소영이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무혁의 뒷말을 기다려주었다.
“우리 라만병 조금만 더 잡자.”
“심장 먹으려고?”
안소영의 물음에 무혁은 더 이상 숨길 것이 뭐 있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차피 자신이 말린다고 해서 말려질 것도 아니었기에 안소영은 순순히 승낙했고, 무혁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그녀와 함께 나란히 계단을 밟았다.
“2층부터 확인을 하고 4층에서 휴식을… 뭐야?”
무혁은 말을 하다 말고 황당한 눈으로 자신의 앞을 바라봤다.
계단이 끊겨 있었다.
아니, 아예 끝나 있었다.
“XX! 으아아악! 개X같네-!”
배영철의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무혁과 안소영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코우 신지 일행을 볼 수 있었다.
2층에 들어선 무혁과 안소영을 바라보며 코우 신지가 말했다.
“아무래도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왜?”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무혁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반문했고, 그런 그에게 배영철이 잔뜩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XX 놈아! 보면 모르냐? 룰이 X같이 바뀌었잖아!”
엉뚱하게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배영철에게 화를 내기보단 무혁은 갑작스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설마… 내일이 되면 또다시 우리는 1층으로 떨어지고 완전히 리셋이 된 계단들을 찾아서 5층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무혁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모두의 머릿속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적막한 침묵을 깬 건 배영철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XX 새끼가! 재수 없는 소리 지껄이면 주둥이를 확! 찢어 버릴 라니까 아가리 다물고 있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무혁의 상상에 배영철은 진심으로 그를 때려죽일 것처럼 화를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은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1층에서부터 5층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빠르게 머릿속에 계단을 해보기 시작했다.
‘정말 빨리 계단을 찾는다 하더라도 1층에 5시간이야. 5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만 20시간! 씨… X! 말도 안 돼!’
그나마도 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다.
운이 나쁘다면? 아니, 방금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찾는 것처럼 7시간이 걸린다면?
“…끝이야.”
시간의 탑과 함께 영원이 사라져버린다.
무혁은 주먹을 움켜쥐며 단 한 마디도 없이 룰이 바뀌어 버린 이 엿 같은 상황에 분통을 터트렸다.
#
2층에서 계단을 다시 찾기 시작한지 3시간 만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일행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계단을 찾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좀비를 빠르게 쓰러트리며 전진하느라 탑의 증표나 수거하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시X…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계단은 또다시 3층까지만 이어져 있었다.
꼼짝없이 4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또다시 찾아야만 했다.
배영철은 짜증을 부리더니 돌연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언제까지 뒤만 쫄쫄 쫓아올 거야? 더는 힘들어서 나도 못하겠으니까 너희 두 연놈이 앞장 서!”
무혁은 고개를 저었다.
“내 실력으로 어떻게 길을 뚫어? 난 도망가는 것 밖에 못해. 그리고 우리가 앞장서면 지금의 완벽한 자리 배치가 무너지는데… 그걸 저쪽에서 원하겠어?”
무혁의 대꾸에 배영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지금 상황이 우리끼리 치고 박고 싸울 상황인 것 같아? 당장 내일도 이 짓거리를 똑같이 해야 한다면 당장 한 사람이 아쉬울 판에 다 같이 죽자고 뒤통수를 치는 병신이 있겠냐? 안 그래?”
배영철은 말을 마치며 코우 신지를 바라봤다.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하는 코우 신지의 모습에 더욱더 힘을 받은 배영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일을 대비해서라도 우리가 체력을 보충하는 동안 너희가 조금이라도 길을 뚫어야 다 같이 살 수 있는 거 아냐! 그리고 XX! 개새끼야! 양심 좀 있어라!”
코우 신지까지 동의를 한 이상 무혁으로서도 더 이상은 뒤에서 느긋하게 뚫어놓은 길만 쫓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분명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몬스터를 사냥한다기보다는 도망가면서 지금까지 버텼으니까 우리의 방식에 가타부타 딴 소리 하지 마.”
무혁은 안소영의 어깨를 툭- 치며 속삭였다.
“무조건 치고 달리는 거야. 그냥 도망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길만 뚫으면서 가자.”
안소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무혁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도끼를 붕붕- 돌리며 의욕적으로 소리쳤다.
“자! 간다!”
무혁은 힘차게 앞으로 걷기 시작했고, 곧바로 3층을 장악하고 있는 라만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하필이면 라만병이냐.’
무혁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배영철과 코우 신지 일행이 길을 뚫었다면 어떻게는 몰래 핵을 섭취해가며 마지막으로 남은 정마력까지도 6등급으로 올릴 수 있는 라만병이었기에 무혁으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도끼를 냅다 휘둘렀다.
퍽!
무혁의 도끼질에 라만병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자 그 틈을 안소영이 적절하게 파고들며 좌우로 검을 휘둘렀다.
스억- 스억!
2마리의 라만병이 적당한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자 무혁과 안소영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재빨리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3마리의 라만병을 뒤로하고 무작정 도망만 가는 무혁과 안소영의 모습을 바라보며 배영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고, 코우 신지 일행 역시도 기가 막히다는 듯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뭐 저런 병신들이 다 있어?”
제법 그럴싸하게 선제공격을 성공시키고도 도망가기에 급급한 무혁과 안소영은 그들이 지난 8일 동안 시간의 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 만했다.
“…저런 병신 같은 것들을 굳이 따라가야 하는 거야?”
배영철의 물음에 코우 신지 일행은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장 내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행으로 데리고 있어야만 했다.
또한, 만약의 경우 방패로도 사용할 수도 있으니 무혁과 안소영을 버릴 순 없었다.
코우 신지 일행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배영철도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무혁과 안소영은 빠르게 길을 뚫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죽기 살기로 라만병을 헤치며 앞으로만 내달렸다.
덕분에 뒤를 따라야 하는 코우 신지 일행과 배영철만 더 피곤했다.
퍼억!
라만병의 가슴팍을 후려차며 하가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이런 식은 아니야. 차라리 차근차근 죽이면서 길을 뚫는 게 더 낫겠어.”
이토 역시 동의한다는 듯 말을 받았다.
“하가세 말이 맞아. 저들이 무작정 도망만 치고 있어서 라만병만 더 꼬여들고 있어. 이렇게 싸우는 건 효율이 좋지 못해.”
계단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라만병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현재 무혁과 안소영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극소수의 인원이 움직일 때나 가능한 일이지 지금처럼 코우 신지 일행과 배영철까지 합류한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라만병에게 꼬리를 잡히고 있었기에 자칫 막다른 길에 몰리기라도 한다면 수십 마리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라만병에게 뒤를 막힐 위험성이 있었다.
“XX! 저 새끼들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거야!”
배영철이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며 자신을 향해 대검을 휘둘러오는 라만병의 공격을 피했다.
이어진 포인트 폭발 스킬이 라만병의 안면에 적중했고, 비틀거리는 라만병의 목을 향해 배영철이 휘두른 검이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정말 저렇게 살아남았단 말인가?’
코우 신지는 무혁과 안소영의 행동에 의문스러움이 느껴졌지만, 문제는 현재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무력 자체가 전혀 특별할 것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8일 동안 꾸준하게 손발을 맞춰온 것처럼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니 마냥 의심만 할 수도 없었다.
“찾았다!”
이대로는 더 이상 무혁과 안소영에게 앞을 맡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모아지던 찰나에 환호에 찬 무혁의 외침이 배영철 등에게 들려왔다.
“운 하나는 존나게 좋은 새끼네.”
고작 2시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계단을 발견했으니 배영철 등은 정말 무혁과 안소영의 운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여겼다.
“우리도 그냥 뚫고 가자.”
하가세의 말에 나머지 일행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려드는 라만병들을 무시하고 앞으로만 내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단 앞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까지 하고 있는 무혁의 모습에 실소마저 짓고 말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밥값은 한 것 같은데? 안 그래?”
계단을 오르며 무혁이 그렇게 말했고, 다른 일행들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힘을 뺀 걸 생각하면 참 일관성 있게 뻔뻔한 놈이라 여기며 대답조차 거부했다.
“이젠 어쩔 거야?”
무혁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막상 4층에 올라오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후 일정은 누구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5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생기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구태여 4층을 헤매며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피로를 풀어야지.”
코우 신지의 가장 이상적인 의견에 하가세와 이토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나마 운이 좋아서 4층까지 빨리 올라왔지만, 내일은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 올려놔야만 했다.
만약, 내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오늘은 연습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어디서 늘어지게 잠이나 잤으면 좋겠네.”
배영철도 꽤나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어차피 여기엔 몬스터도 없으니까 푹 잠이라도 자면 되겠네.”
무혁의 말에 배영철이 헛소리 말라는 듯 핀잔을 줬다.
코우 신지 일행이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 어떻게 마음 편안하게 잠을 자겠냐고 투덜거리자 무혁이 뭘 걱정하냐는 듯 대꾸했다.
“지금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인데 설마 무슨 해코지를 하려고 하겠어?”
무혁의 시선이 코우 신지에게로 향하자 그가 곧바로 답했다.
“네 말대로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그르칠 수 없다.”
뒤이어 안 그런가, 하가세-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배영철에게 가장 날을 세우고 있던 하가세마저도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며 어떠한 분쟁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렇다면야…….”
배영철은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믿겠다는 듯 눕기 편한 곳을 찾아서 어슬렁거렸다.
“그럼 쉬고들 있어. 나랑 이 친구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사냥 좀 하고 올 테니까.”
“사냥?”
계단을 찾는다고 실컷 도망만 다니던 주제에 당당하게 사냥을 하겠다는 무혁의 말에 코우 신지가 불신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너희랑 다르게 여기에 들어와서 이렇다 할 전리품을 제대로 얻지도 못했어. 내일도 오늘처럼 빠듯하게 움직여야 한다면 역시 뭐 하나 변변하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니 지금처럼 시간이 남았을 때, 증표 하나라도 더 챙겨야지.”
“그런데 왜 아래층으로 가겠다는 거지?”
의심스러운 코우 신지의 물음에 무혁이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냐? 지금 4층에는 무슨 몬스터가 있겠어?”
“1층부터 타락 드워프, 좀비, 라만병이었으니… 놀이군.”
“설마 내가 놀 무리를 이리로 끌고 오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코우 신지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생각 없이 무혁의 말을 받아쳤다고 후회했다.
“그따위 허접한 실력으로 사냥을 하겠다고?”
배영철은 뒤가 뚫려 있으면서도 좌우가 막혀서 앞쪽의 시야가 훤하게 트인 절묘한 공간에 팔베개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사냥을 하면 세 마리 정도는 한 시간 안에 잡을 수 있으니까.”
“한 시간?”
배영철은 고작 세 마리를 잡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다는 무혁의 말에 비웃음을 지었다.
“진짜 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하다.”
그렇게 말을 던진 배영철은 정말로 피곤한지 눈을 감아 버렸다.
절대 깊게 잘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라도 설핏 잠을 자두면 최소한의 피로는 풀렸으니 배영철로서도 내일을 위한 대비를 단단히 하는 셈이었다.
“가자.”
무혁은 안소영과 함께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고, 이윽고 두 사람의 모습이 계단 아래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