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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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화
시간의 탑 (14)
갑작스런 무혁의 행동에 안소영이 잔뜩 긴장해서 그를 바라봤다.
차마 왜- 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뒤로!”
무혁은 다급하게 말을 내뱉고는 재빨리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움직였다.
무혁과 안소영이 몸을 막 숨기고 났을 때, 계단을 통해서 시끌시끌- 거리며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다섯에 여자 둘로 이루어진 총 인원 7명의 무리였다.
“중국인들이야.”
무혁의 말에 안소영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정정을 해주자면 7명의 인원 중 2명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국적이 다른 두 명의 한국인이 속해 있었지만, 조금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리의 일원으로 잘 섞여 있었다.
“장추엔, 리셋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어쩔 생각이야?”
대머리의 중국인이 묻자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리더, 장추엔이 곧바로 대답했다.
“1시간 정도 쉬었다가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장추엔의 말에 일행들은 그렇게 하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계단 앞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제 각각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망했네.”
무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냈다.
계단을 통해 타락 드워프를 찾아내고 강철 삽을 얻어 비트를 설치해야만 하는데, 그 계획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온다.”
안소영의 말대로 장추엔과 대머리 중국인,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지만 예쁘장한 여자가 두 사람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나란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수가 너무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으로 저 많은 인원과 맞부딪히는 건 위험한 일이다.
시간의 탑에 들어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실력이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무혁을 비롯해서 배영철과 같은 몇몇 사람들만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혼자서 대여섯 명을 상대하는 건 죽여 달라고 덤벼드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자니 그것도 어렵다.
무혁 혼자서만 몸을 내빼는 거라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안소영과 함께라면 가능성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확률이 줄어든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행동을 해야만 한다면?
‘…발각되면 리더로 보이는 놈부터 친다!’
무혁의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번뜩이며 장추엔에게 고정되었다.
빠르게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손에는 어느새 긴장감으로 땀이나 축축 젖었지만 무혁은 등 뒤의 도끼를 언제든 내던질 준비를 마쳤다.
곁에 나란히 숨죽이고 있는 안소영의 표정도 잔뜩 경직되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독이 바짝 오른 암고양이처럼 표독스럽고도 고집스럽게 번들거렸다.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의 몫은 해줄 터.
무혁은 만에 하나라도 전투가 벌어지면 안소영의 안위는 머릿속에 넣지 않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상대를 쓰러트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정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혼자서라도 몸을 빼는 수밖에.’
안소영에게는 미안하고 냉정한 소리지만, 그녀를 위해 무혁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질 의무나 의리 따윈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섯 발자국 안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친다!’
무혁이 숨까지 죽이고 자신의 거리를 노린다.
도끼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무혁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을 때, 장추엔 등이 정확하게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멈춰 섰다.
이어서 그들은 무혁과 안소영이 숨어 있는 곳이 아닌 자신의 일행들이 쉬고 있는 곳을 슬쩍 돌아보고는 머리를 맞대고 속삭였다.
“킬 수는 얼마나 돼?”
장추엔의 물음에 대머리가 대꾸했다.
“사람당 250킬은 넉넉히 채웠어.”
“250이라…….”
장추엔이 자신의 뾰족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러울 정도로 많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킬 수였다.
그런 장추엔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여자, 금왕정이 투덜거렸다.
“저기 있는 것들 다 합쳐봐야 천 킬 밖에 되지 않잖아? 너무 적은 것 아냐?”
금왕정의 말에 대머리가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리해서 킬 수를 늘렸다가는 괜히 불만만 많아졌을 거야. 그나마도 나는 최대한 킬 수를 자제하고 있었다고.”
쳇- 난 고작 120킬을 겨우 넘겼단 말이야- 라는 말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대머리의 모습에 장추엔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왕첸 네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나는 잘 알아.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게 해줄 테니까 기분 풀어.”
장추엔의 말에 왕첸은 그렇다면 더 이상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다는 듯 씨익- 웃었다.
“어쩔 생각이야? 저렇게 킬 수가 적어서는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잖아? 이제부터라도 사냥 속도를 좀 늘려야 하지 않겠어?”
금왕정의 물음에 장추엔이 고민스럽다는 듯 말을 아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여기서 갑자기 사냥 속도를 높이면 분명 눈치가 빠른 놈은 이상하다는 걸 생각하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만에 하나라도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쩔 생각이야? 마지막 날에 저놈들을 싹 죽이고 장추엔이 랭킹에 이름을…….”
“어차피 죽일 건데 눈치를 채봤자 무슨 상관이야. 여기서 딱히 도망갈 곳도 없는데.”
도망가 봐야 몬스터든 상대 경쟁자들에게 죽기 봐야 더 하겠냐는 듯 금왕정이 코웃음을 치자 왕첸이 곧장 반박했다.
“다른 놈들을 불러오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아닌 말로 우리 스킬을 싹 다 말해 버리면 그만큼 우리가 불리해지는 거잖아?”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처럼 느긋하게 사냥을 하자고? 그래봐야 킬 수가 얼마나 늘겠어?”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냐는 듯 여자가 따지듯 묻자 왕첸도 그것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장추엔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 계단에 오르는 놈들을 모조리 잡을 생각이니까 랭킹에 이름을 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우리처럼 사냥을 했다 하더라도 탑에 들어온 인원이 우리 셋을 제외하고 스물넷이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킬 수가 칠천은 넘을 거야.”
장추엔의 말에 곧장 금왕정이 자신의 시계를 조작했다.
“랭킹 4위가 7,800이 넘네. 아직 며칠 남았으니까 부지런히 장추엔 네가 사냥을 해서 킬 수를 올리면 4위까지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장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목표는 4위로 잡아둬야지. 그리고 혹시 모르지. 내가 앞장서서 더 많은 킬 수를 높이고 희박한 확률이라도 스킬 링이나 장신구가 나온다면…….”
“그때는 저것들도 눈이 벌겋게 변해서 달려들겠지.”
왕첸이 말을 이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나저나 여긴 정말 스킬 링하고 장신구가 나오질 않는다. 지난 사냥에서는 제법 괜찮게 나왔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특전이니까 그런 거지. 대신 여기선 탑의 증표가 반드시 나오니까 그것만 잘 모아도 수십 만 포인트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잖아. 물론,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장추엔이 서늘하게 웃자 왕첸과 금왕정도 마주 웃었다.
“우리도 좀 쉬자. 괜히 우리끼리 너무 떨어져서 대화를 나누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장추엔이 앞장서서 일행들에게 돌아갔고, 그 뒤를 왕첸과 금왕정이 따랐다.
본의 아니게 세 사람의 대화를 모두 엿들은 무혁과 안소영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함께 힘을 합쳐서 생존한 동료까지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직접 듣게 되자 아무리 타인의 일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상당히 불쾌해졌다.
동시에 다시 한 번 헬-라시온에서는 믿을 이가 없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대로 저들이 움직이기 전까지 숨어 있을 거야?”
안소영의 물음에 무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위치가 좋지 않아.’
잠깐이야 숨어 있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공간이 너무 좁고 만에 하나라도 저들 중 한 명이라도 볼일을 보겠다며 움직인다면 발각될 가능성이 컸기에 마냥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저쪽으로 가보자.”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알겠다면서 좌표부터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미로와 같은 모퉁이를 돌자 멀지 않은 곳에 세 마리의 놀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싸우면 안 될 것 같은데…….”
안소영의 말에 무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한 마리는 반드시 동료를 부른다.
다른 때였다면 강행 돌파를 해서라도 싸웠겠지만, 지금은 놀뿐만이 아니라 중국인 무리까지도 불러들일 가능성이 컸기에 무혁으로서도 전투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잠깐.”
“왜?”
안소영의 물음을 뒤로하고 무혁은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벽면 한쪽으로 달려가 등 뒤로 매고 있던 도끼를 꺼내 바닥을 살살- 긁어봤다.
다행스럽게도 흙은 부드러웠다.
“강철 삽을 항상 한 자루 들고 다녀야겠어.”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끼로 어떻게든 땅을 파기 위해 낑낑- 거렸다.
“뭐하는 건데? 여기에 숨으려고?”
안소영의 말에 무혁은 그녀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바라봤다.
“검 좀 빌려 줘.”
소중한 검으로 땅을 판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한 자루는 동남아 남자가 죽으면서 습득한 것이었기에 크게 망설이지 않고 건네줬다.
확실히 도끼보다는 검이 땅을 파기에 훨씬 수월했다.
“들어가 봐.”
안소영은 별다른 말없이 비트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삽으로 팠을 때보다 안락함은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무혁의 다음 행동에 안소영의 표정이 구겨졌다.
“너는? 검을 주면 넌 어떻게 땅을 파려고?”
“나는 숨지 않을 거니까 땅을 팔 필요도 없어.”
“뭐?”
안소영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대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는 듯 다그치듯 눈을 부라렸다.
“아까 들었잖아. 킬 수가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는 소리. 그래서 내가 도와주려고.”
“돕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무혁은 고개를 돌려 서성거리고 있는 세 마리의 놀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여기만큼 무대가 좋은 곳이 어디에 있겠어? 발바닥에 땀은 좀 나겠지만, 내가 열심히 뛰어다니면 아까 그놈들이 말했던 킬 수는 확실하게 올릴 수 있겠지. 뭐, 싸우다 죽어 버리면 어쩔 수 없겠지만, 도망을 가더라도 우리한테 남는 건 많을 것 아냐? 넌 잠시 숨어 있어. 무대는 내가 다 만들어 놓을 테니까.”
“위험해! 그러지 말고 그냥 너도 숨어! 숨었다가…….”
“내가 말했잖아. 난 랭킹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 아! 물론, 이건 확실해. 아무리 내가 랭킹에 관심이 많아도 널 상대로 뒤통수를 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 그러니까 혹시라도 날 의심하거나 경계하지는 마. 말뿐이라 얼마나 믿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혁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듯 그렇게 말을 뱉어내고는 근처에 있던 바위를 가져다가 안소영이 숨어 있는 비트의 입구를 가리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해?”
불안감으로 인해 떨리는 안소영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혁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진심이 무엇인지는 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소영 역시 홀로 버틸 수 없기에 결과적으로는 그녀 자신을 걱정하는 것임을.
‘그래도 내가 의지가 된다는 소리니 그걸로 충분하지 뭐.’
무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비트의 입구를 가리기 직전, 안소영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걱정 말고 한숨 자. 이따가 보자.”
“…야, 죽지 마.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안소영의 말을 마지막으로 비트의 입구가 완전히 가려졌다.
무혁은 허리를 펴며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계획을 그려봤다.
2, 3분가량 머릿속으로 계획을 복기한 무혁은 가볍게 좌우로 목을 돌리고, 허리도 풀며 스트레칭을 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