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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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화
시간의 탑 (13)
“저깄네.”
무혁과 안소영은 14시간 만에 계단을 찾아냈다.
라만병과의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계단을 찾은 셈이었다.
“우선 시간부터 리셋시켜 놓고 타락 드워프부터 잡자.”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쉴 수만 있었으면 싶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타락 드워프를 잡아서 강철 삽을 얻었고, 4층으로 돌아와서 비트를 설치했다.
“저기… 오늘은 좀 오래 잤으면 싶은데.”
안소영이 주저하다 물었다.
무혁은 피로감에 찌들어 있는 안소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일곱 시간 정도?”
괜찮겠냐는 안소영의 물음에 무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일곱 시간 후에 일어나는 걸로 하자.”
안소영은 고맙다는 듯 간단하게 대꾸하고 자신의 비트로 들어가서 바위로 입구를 가렸다.
“힘들긴 정말 힘든가 보네.”
지금까지 자신의 사냥 속도에 군소리 없이 맞춰준 안소영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그녀를 혹사시켰나 싶어 무혁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그녀 역시 사냥을 통해 최대한 많이 탑의 증표를 모으겠다는 의도가 밑바탕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까지 사냥을 하게 된 강행군의 주체는 무혁이었기에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지?”
무혁으로서는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굳이 잠을 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우선 사냥부터 해보고 생각하자.”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체력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을 때 체력을 제외한 나머지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만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정마력이 올라가는 확률이 늘었고, 다른 고유 능력들도 골고루 올라가며 불균형을 이루었던 고유 능력치가 빠른 속도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정마력의 정밀 수치가 30퍼센트를 돌파하고부터는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의 쿨타임을 5분가량 줄일 수 있을 정도로 두통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했다.
보석 도마뱀의 위장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15분마다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3마리의 라만병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5분 동안 사냥을 하고 나면 15분을 쉬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혼자서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무혁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혼자만의 사냥을 시작했다.
#
5분 사냥, 15분 휴식.
무혁은 이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아니, 지킬 수밖에 없었다.
라만병 두 마리까지는 보석 도마뱀의 위장 스킬로 사냥을 할 수 있었지만, 3마리부터는 무조건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로 고유 능력을 뻥튀기 시켜놓고 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무혁은 탑의 증표가 가득하게 담긴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단단하게 묶으며 투덜거렸다.
“진짜 중앙탑으로 돌아가면 공간 주머니부터 사야겠어.”
벌써 두 개째 가죽 주머니가 꽉 찼다.
자그마치 800개로 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지만 거추장스러운 건 사실이다.
배영철 일행이 잡아 놓은 좀비들과 동남아 남자들이 남기고 간 탑의 증표를 모조리 수거하면서 무혁은 한순간에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많은 포인트를 얻었다. 물론, 시간의 탑을 무사히 빠져나가야만 그것도 온전한 포인트로서의 가치를 지니겠지만.
“넉넉하게 300킬로그램짜리로 살까?”
자그마치 50만 포인트나 하는 공간 주머니를 고민하던 무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300킬로그램짜리냐. 그냥 가장 기본적인 100킬로그램짜리로 하나만 구입하자. 그것만 있어도 충분할거야.”
당장 중앙탑으로 가면 80만 포인트가 생긴다.
무혁에게는 정말 꿈과 같은 액수였다.
더 행복한 사실은 탑의 증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시간의 탑을 나갈 때 자신의 손에 몇 개의 증표가 들려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무혁은 기대가 컸고, 그만큼 꿈도 커졌다.
“공간 주머니하고 일반 스킬은 반드시 사고 방어구랑 보조 장신구도 좀 살까?”
생각만으로도 흐뭇한지 중얼거리는 무혁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쿨 타임도 슬슬 끝났으니 또 사냥을 해야지.”
체력 7등급과 6등급의 차이는 상당했다.
흡사 예전 체력의 두 배 이상의 성장을 이룬 것처럼 피로가 쉽사리 쌓이질 않았다.
5분 사냥 15분 휴식이라는 패턴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덜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굳이 무혁은 잠을 잘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며칠 동안 한숨도 안자고 사냥을 한다거나, 열 시간이 넘도록 박 터지게 싸웠다는 말이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어.”
흔한 말로 높은 연차의 지구인들은 말 그대로 초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현재의 무혁만 하더라도 당장 지구로 돌아가면 사람들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춘 괴물로 보이겠지만, 헬-라시온에서 8년 이상을 버티며 살아온 지구인들은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슈퍼맨 혹은 헐크와 같은 대단한 존재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무혁은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는 앞으로 걸었다.
“저깄군.”
케라크라의 렌즈 덕분인지, 며칠 동안이나 탑 내부의 어둠에 익숙해졌음인지 이제는 제법 시야도 잘 보였다.
무혁은 천천히 뛰며 라만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척으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무혁은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사용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흡사 구름 위를 뛰는 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발걸음이 가볍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도끼의 무게감도 속이 꽉 찬 나무 배트에서 속이 텅 비어버린 알루미늄 배트로 바뀐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우선 한 놈 가시고!”
좌측의 라만병을 향해 무혁은 냅다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라만병의 가슴에서 피가 팍- 튀었다.
일격에 가슴 한쪽이 갈라져버리자 무혁은 곧바로 발을 뻗어서 뒤로 밀어 찼다.
쿵- 소리와 함께 벽까지 밀려난 라만병의 육중한 몸체가 스르르- 허물어진다.
한 마리의 라만병을 벽으로 밀어내 버린 무혁은 곧장 몸을 팽이처럼 빙그르- 돌리며 도끼를 크게 휘두르듯 내던졌다.
캉- 소리가 들리며 라만병이 휘두른 녹슨 대검과 도끼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피해는 온전히 라만병만의 몫이었다.
사람이었다면 크악-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을 정도로 힘에서 크게 밀린 라만병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자 무혁은 곧바로 땅을 박차고 뛰어들어서는 라만병의 흉측한 악어 대가리에 케라크라의 손톱을 박아 버렸다.
퍼퍼퍽!
핏물이 무혁의 얼굴로 사정없이 튀었지만, 그런 것에 이골이 난 무혁으로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연신 양손으로 케라크라의 손톱을 이용해 라만병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버렸다.
쿵- 2미터의 커다란 동체가 쓰러지며 묵직한 울림을 만들었다.
그런 감상을 느낄 새도 없이 무혁은 옆으로 몸을 굴리듯 날렸다.
퍽! 하고 방금 숨이 끊긴 라만병의 가슴팍에 녹 슨 대검이 꽂혔다.
하필이면 심장이 있는 쪽 가슴이었다.
“이런 X발! 핵이 망가지면 어쩌려고!”
잔인하게도 동족의 시체를 거리낌 없이 훼손하는 라만병을 향해 무혁이 쌍욕을 퍼부으며 접근했다.
통통- 튀듯이 스텝을 뛰며 무혁은 라만병이 휘두르는 대검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품으로 파고들어서 사정없이 복부에 날카로운 케라크라의 손톱을 쑤셔 넣었다.
몬스터의 피도 뜨겁다는 걸 느끼며 무혁은 능숙한 복서처럼 상대의 복부를 연타하듯 양손을 빠르게 놀렸다.
퍽퍽퍽퍽퍽퍽!
살가죽이 찢어지고, 몸속의 장기가 사정없이 꿰뚫린다.
“마무리!”
호쾌한 외침과 함께 무혁은 양손을 교차하듯 좌우로 크게 벌렸다.
촤아아악- 라만병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케라크라의 손톱이 가지고 있는 절삭력과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로 인해 향상된 근력은 라만병의 가죽과 뼈 등을 너무나도 손쉽게 찢고, 부숴놓기에 충분했다.
턱.
무혁은 땅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집어 들고는 처음에 가슴을 얻어맞고 벽으로 밀려났던 라만병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전히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고 있는 라만병을 향해 무혁은 도끼를 휙- 휘둘러서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휴우! 이건 마약이야. 마약.”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두고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황에 따라서는 본신의 힘을 배로 증폭 시킬 수도 있다.
이건 정말 한 번 맛보면 도저히 끊을 수 없다.
무혁은 핵부터 찾았다.
“…제길.”
우려했던 것처럼 동족의 손에 가슴이 찍힌 라만병의 심장이 무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혹시나 싶어 손으로 핵을 찾기 위해 더듬거려 보니…….
“하아아… 돌겠네.”
아까운 핵이 망가져 있었다.
이런 핵은 소용이 없다.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기에 무혁은 신경질적으로 심장을 움켜쥐어 터트리고는 핵을 망가트린 라만병의 심장을 더듬었다.
“와… 이 새끼 이거…….”
핵이 없다.
무혁은 뭔가 일타이피를 당한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빌어먹을 몬스터- 라고 연신 씩씩거리며 무혁은 이미 죽어 버린 라만병의 머리통을 자근자근 밟아댔다.
그렇게 잠시 분을 풀고 나서야 무혁은 마지막 남은 라만병의 심장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핵이 있었고, 무혁은 그것을 곧바로 삼켜버렸다.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순발력이 0.27% 상승합니다.]
그나마 하나라도 건졌으니 다행이지, 이마저도 없었다면 무혁은 죽은 라만병의 시체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탑의 증표까지 챙기고 나서야 무혁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스킬 링은 진짜 안 나오네.”
지금까지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죽였지만 스킬 링은 오히려 배영철 일행이 쓰러트렸던 좀비에게서 얻었다.
말 그대로 날름 남의 것을 주워 먹은 셈이다.
아이템 역시도 큰 쓸모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탑에 나오는 몬스터들의 무기라고 해봐야 그다지 쓸모가 없었고, 방어구 역시 마찬가지.
운이 좋다면 장신구 정도를 몬스터가 착용하고 있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호화스러운 몬스터를 만나지 못한 무혁이었다.
“이 정도면 저주 캐릭터 느낌인데…….”
쓰게 웃으며 무혁은 입맛을 다셨다.
게임을 하다보면 왜 그런 게 있다. 정말 하찮은 몬스터를 잡아도 희귀한 아이템이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가 있고, 반대로 희귀한 몬스터 그것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좋은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몬스터를 잡아도 쓸모없는 아이템만 얻는 캐릭터가 있는데, 무혁은 아무래도 자신은 후자 쪽인 듯싶었다.
“그래도 핵이라도 잘 나오니 그게 어디냐.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무혁은 낄낄- 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서 또다시 15분간의 휴식을 만끽했다.
#
5D [ 18 : 45 ]
이제 몇 시간 후면 시간의 탑은 6일차를 맞이하게 된다.
현재 시간의 탑 내부에 살아남아 있는 인원은 23명.
배영철이 리더로 있는 한국인 무리는 무혁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후 철저하게 시간의 탑의 리셋 시간을 맞춰서 생존 중이었고, 코우 신지가 리더로 있는 일본인 무리와 장추엔이 리더로 있는 중국인 무리는 처음부터 큰 어려움 없이 시간의 탑에서 사냥을 해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혁과 안소영 역시도 2층에서 놀을 상대로 18시간 만에 계단을 찾아내며 6일차 시간의 탑을 대비했다.
“진짜 놀은 상대하기 너무 싫다.”
무혁의 말에 놀이라면 가장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는 안소영도 피로에 찌든 얼굴로 동감한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놀은 단일 개체로는 그다지 위험성이 높지 않았지만, 동족을 호출하는 행위가 문제다.
더욱이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의 놀을 상대하다 보니 동족을 호출하는 울부짖음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킬 수와 탑의 증표는 빠르게 쌓였지만, 그만큼 전투는 무척이나 다급했다.
만약, 무혁의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이 없었다면 안소영과 무혁은 계단을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놀들에게 둘러싸여서 큰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파티원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몬스터가 바로 놀이었다.
“이제부터 무조건 놀이 머물렀던 층에서 몬스터가 리셋 되기를 기다려야겠어.”
무혁의 말에 안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놀이 머물렀던 층엔 다음날 똑같이 놀이 나타나진 않았으니 두 명의 파티로 이루어진 무혁과 안소영으로서는 놀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4시간이라도 좀 잘래?”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날이 갈수록 안소영은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제 실력을 완벽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틈틈이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무혁과 둘이서 몬스터와 싸우고 계단을 찾아야 하다 보니 피로가 중첩될 수밖에 없었다.
“넌 지치지도 않아? 어제도 내가 자는 동안 그렇게 혼자서 사냥을 했으면서.”
자신이 자는 동안 무혁이 혼자서 라만병을 사냥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안소영은 기분이 영 좋질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혼자서 사냥하다가 무혁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생존에도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람인데 조금 피곤하지. 아쉽지만 나도 좀 자야 할 것 같아.”
무혁은 진심으로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계단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만병을 찾아 사냥을 할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놀을 만나면서 계단 찾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어.’
무혁은 한숨을 내쉬고는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잠깐!”
무혁이 뒤를 따라오던 안소영에게 낮게 소리 내며 뒷걸음질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