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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20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화

시간의 탑 (4)

 

‘있다! 벌써 이게 몇 번 연속이냐!’

무혁은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핵을 도려냈다.

끔찍한 악취가 나는 라만병의 핵이었지만, 무혁은 개의치 않고 입에 쏙- 털어 넣었다.

“냠!”

꿀꺽!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0.54% 상승합니다.]

 

‘그렇지! 체력이구나!’

보석 도마뱀의 위장이 있기에 이왕이면 하나의 핵으로 두 개의 핵을 섭취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체력 상승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진짜 이런 속도라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강해지겠는데?’

라만병의 핵을 섭취하고 희희낙락거리는 무혁의 모습에 안소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그 악취미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데? 적당히 좀 하지?”

자그마치 7마리나 되는 라만병을 잡는 족족 심장 맛을 보고 있었으니 안소영으로서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기도 했다.

“내 취미에 간섭하지 말지?”

“취미도 취미 나름이지! 그런 고약한 변태 같은 미친 취미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너 말할 때마다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는 거 알아? 진짜 역겨워!”

진심으로 안소영은 무혁이 라만병의 심장을 먹을 때마다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고, 비위가 상해서 한 마디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난 다른 사람 기분을 생각하면서까지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내 입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리 몸에 이 냄새가 찌들었는데 뭘 새삼스럽게 유난이야? 네 정수리에서도 암모니아 냄새가 풍기고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핵을 섭취하는 것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었기에 무혁이 의외로 강경하게 나오자 안소영도 더 이상은 말도 섞기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더군다나 여자의 머리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안소영은 배려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무혁과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도 방금 느꼈던 생각을 꺼내놓았다.

“이제 작전도 바꾸자.”

“왜?”

안소영이 대번에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무혁이 라만병의 발을 묶어 놓고 기회를 만들면 곧바로 안소영이 일격에 끝장낸다.

이 작전은 처음 무혁이 홀로 라만병 한 마리를 처치할 때를 제외하곤 나머지 여섯 마리를 잡는 동안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무혁은 라만병을 상대로 훌륭한 제압 능력을 보여주었고, 안소영은 파괴력 높은 공격력으로 깨끗하게 라만병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과연 이보다 더 좋은 효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전투 조합이었다.

“혹시라도 힘들다면 잠시 쉬면서…….”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렇잖아? 널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약 네가 딴 마음을 먹는다면 나만 피 보는 거잖아? 반대로 너라면 나랑 역할을 바꿀 수 있겠어?”

“…….”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넌 나처럼 마전사 레퍼던트의 관통과 같은 일격 필살 공격 스킬이 없잖아- 라는 말을 들먹이며 논제를 흐릴 정도로 안소영은 뻔뻔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내가 앞! 네가 뒤! 간단하게 앞뒤로 라만병을 상대하는 거지. 이러면 너도 나도 서로를 시야 안에 둘 수 있으니까 괜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정면에서 내가 라만병을 최대한 유인하면서 상대하면 네가 한 방을 날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무혁의 제안을 가만히 생각하던 안소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라도 한 번씩 돌아가면서 라만병을 어그로를 끌자고 했다면 안소영으로서도 꽤나 곤혹스러웠을지 몰랐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안소영이 시원스럽게 동의하자 무혁도 더 이상 뒤통수가 뚫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고, 조금은 쪼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니 무혁으로서는 등 뒤를 더 이상 불안함에 노출시켜 놓고 싶지가 않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움직이자.”

무혁의 말에 안소영도 알겠다며 대충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삑!

 

K [ 1 ]

 

‘역시 내 쪽으로 올라가지 않았네.’

무혁은 자신의 킬 수를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7마리의 라만병을 잡는 동안 자신의 킬 수는 처음 혼자서 잡았던 한 마리를 제외하곤 단 한 마리도 카운트되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인즉, 아무리 무혁이 라만병의 어그로를 끌며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안소영에게 모든 킬 수가 누적되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딱 100마리만 잡고 끝낸 생각이 아니었기에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사냥을 하다보면 자칫 100마리의 킬 수를 채우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무혁은 역시 앞뒤에서 공격을 하자는 제안이 더욱더 맞는 거라고 여겼다.

‘작전을 변경했으니 최소한 지금보다는 킬 수가 더 늘어나겠지.’

킬 수는 안소영이 모두 먹었지만, 탑의 증표는 공평하게 배분이 되고 있었다.

무혁은 벌써 탑의 증표를 네 개나 모았다.

차후에 중앙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4천 포인트로 바꿀 수 있었다.

사냥을 시작한 지 고작 40분가량이 막 지났다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포인트가 빠르게 쌓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에는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가볍게 한 마리 잡아서 킬 수 올려야겠네.’

무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문득, 랭킹이 궁금해졌다.

‘확인이나 한번 해 보자.’

무혁은 곧바로 시계의 오른쪽 세 번째 버튼을 눌렀다.

삑!

 

1. 알렉스, K [ 12,367 ]

2. 키요시니, K [ 10,478 ]

3. 베키, K [ 8,950 ]

4. 송정민, K [ 7,819 ]

5. 카밀라, K [ 6,541 ]

6. 브라이트, K [ 6,326 ]

7. 창, K [ 5,899 ]

8. 디에보, K [ 5,706 ]

9. 이서준, K [ 5,553 ]

10. 왕룽, K [ 5,391 ]

 

‘1등은 12,367마리를 사냥한 거야?’

무혁은 절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렉스라는 인간이 다른 경쟁자들의 것까지도 모조리 빼앗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랭킹에 들어가 있는 이들 모두 하나도 다를 것 없다 여겼다.

“이서준? 설마 패검 이서준?”

무혁은 일전에 마우티 부락에서 봤었던 패검 이서준을 떠올리며 그 역시 랭킹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역시 이런 랭킹에 들어가는 인간들은 하나 같이 평범하지가 않구… 어? 어어어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랭킹을 훑어보던 무혁이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무혁의 행동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안소영이 깜짝 놀라서 덩달아 일어났다.

“왜? 무슨 일인데?”

안소영의 다급한 물음에도 무혁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무혁의 시선은 오로지 랭킹의 한 이름에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4. 송정민, K [ 7,819 ]

 

이서준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랭킹에 등록되어 있는 한국인.

문제는 그 이름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선생님도 랭킹에 이름을 올렸었던 거야?”

무혁은 허- 하며 바람 빠지는 웃음을 토해냈다.

지금은 완전한 폐인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한때는 헬-라시온 대도시 식민으로서 공식 랭킹 93위에 이름을 올렸던 어마어마한 존재였던 송정민을 떠올리며 무혁은 입안이 더욱더 쓰게 느껴졌다.

 

‘여긴 지옥이다. 단 한 순간의 방심과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아주 잔인하고도 혹독한 세계다. 무혁아,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머리에 각인시켜라.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그 누구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너 역시 언제고 반드시 죽고 만다!’

 

아무리 대단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순간에 폐인이 되거나, 죽어버리는 곳이 헬-라시온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무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래,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 이제 난 고작 출발선에 선 약해 빠진 인간일 뿐이야! 더욱더 강해져야만 해! 이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지금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는 더 강해져야만 해!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간의 탑을 최대한 이용해야만 해!’

무혁은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온갖 감정들과 복잡해지려는 생각들을 애써 정리했다.

강해지기 위한 초석으로 시간의 탑은 너무나도 적절했으니까.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안소영이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무혁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랭킹을 확인하다가 너무 놀라서.”

“랭킹?”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랭킹을 확인하고 꽤나 놀랐었기에 무혁의 반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사냥한다고 하더라도 랭킹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단언하듯 말을 하는 안소영과 다르게 무혁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럴 수도 있다.

정상적으로 몬스터를 한 마리, 한 마리씩 잡아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루트를 이용한다면?

무혁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길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은 말하지 말자.’

안소영을 바라보며 무혁은 더욱더 무겁게 입을 닫았다.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무혁은 안소영 역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인지 확인을 하면 된다.

 

#

 

무혁과 안소영의 두 번째 작전 역시 꽤나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기본적으로 무혁과 안소영 모두 혼자서도 라만병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앞뒤에서 벌어지는 협공은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꼬르르르륵!

뱃속에서 느껴지는 굶주림에 무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1D [ 09 : 49 ]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네?”

어느덧 시간의 탑에 들어온 지도 10시간에 가까웠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라만병과 싸웠으니 굶주림에 뱃속이 난리가 날만도 했다.

“배고프지 않아?”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배는 고프지 않아. 다만, 물이 떨어져서…….”

“물이 다 떨어졌다고?”

안소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모기소리로 대꾸했다.

“아낀다고 아꼈는데…….”

“물을 왜 아껴? 수분 공급은 충분히 넉넉하게 해줘야지. 물이 떨어졌으면 아까 웅덩이에서 물을 채웠어야지.”

무혁의 말에 안소영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설마 그 더러운 웅덩이 물을 마시라고?”

안소영의 반문에 무혁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정화 가루 없어?”

“어? 저, 정화 가루?”

전혀 모른다는 안소영의 모습에 무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중앙탑에서 정화 가루를 구입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특히, 이렇게 강제 사냥에 나가면 어떤 환경에 처할지 알 수 없으니까 정화 가루는 충분히 준비를 해둬야 해.”

무혁의 설명에 안소영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화 가루는 내가 충분히 챙겨왔으니까 걱정 마.”

“적당한 값을 치룰 게.”

“됐어.”

“아니, 더 이상 신세지기 싫어서 그래.”

안소영의 단호박 같은 태도에 무혁도 그럼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지금 바로 줘.”

안소영이 가죽 주머니에서 탑의 증표 2개를 꺼내서 내밀었다.

“음…….”

무혁은 탑의 증표 2개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화 가루는 굉장히 값이 싼 물품이다.

조끼와 가죽 주머니마다 적당량을 나누어서 넣어뒀는데, 그 모든 가격이 5백 포인트가 되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무혁은 탑의 증표 하나만 손에 쥐고 조끼와 가죽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정화 가루 5개를 내밀었다.

“나중에 딴말하지 마. 여기선 구할 수 없으니까 바가지 크게 썼다고 생각해.”

안소영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군소리 없이 탑의 증표와 정화 가루를 모두 같은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무혁이 혀를 찼다.

“정화 가루는 각기 다른 곳에 분산해서 넣어둬. 혹시라도 주머니를 분실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그리고 정화 가루는 써 봤지? 아주 극소량으로도 대량의 물을 정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 정도면 탑에서 열흘 동안 식수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거야.”

무혁의 조언을 안소영은 군소리 없이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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