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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54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54화

154. 연합

 

 

날이 밝은 후.

 

카린과 클린턴은 트릭 씰을 이용해 동맹 협정을 맺기 위해 그레일시아로 떠났고, 안톤을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레노테이르의 수도 알서스로 향했다.

 

의결회에 대거 포진해 있을 블라디미르의 잔재들을 걷어내고, 오르메넨을 수장으로 앉히기 위해서였다.

 

파밧! 파밧!

 

새롭게 추가된 몇몇과 함께 마룡 안타로스리니얼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막 에반하임의 영공을 벗어난 찰나였다.

 

광활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들을 막아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퍼덕이는 비행 생명체.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였다.

 

"호오. 뭘 믿고 배신했나 싶었는데, 역시 당신이 옆에 있었군요."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그 중간에는 바람 소리가 가득했지만 안톤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내의 정체를 알아챘다.

 

"아르토르."

 

일단 안톤은 곧장 팔찌에서 대검을 꺼내 싸울 준비를 취했다.

 

배신자라는 단어로 유추해 볼때.

 

정황상 아무래도 카트락시아를 찾으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 같지만, 혹시 몰래 함정을 파둔 것일지도 몰랐다.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카트락시아는 말했다.

 

사실상 블라디미르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아르토르라고.

 

그러니 당장에라도 박차고 뛰어들어 녀석의 목을 따내면, 이 모든게 끝이 난다.

 

허나 워낙 당한 게 있다보니, 자꾸만 선뜻 몸을 움직이기 망설여졌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살벌한 눈빛을 보내는 안톤을 보며, 아르토르가 손에 쥔 부채를 좌우로 흔들었다.

 

"검은 집어넣으시지요. 저는 오늘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순순히 도망치게 둘 것 같으냐?"

 

그런 외침과 달리, 안톤은 그저 서서 그를 노려볼 뿐 달려들지 않았다.

 

자꾸만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 우연이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든 것이다.

 

아르토르가 안톤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아무튼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은 대충 끝났습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을 태우고 있던 용이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안톤이 지상으로 떨어져나갈 뻔 한 케이혼을 잡아챘다. 그리고 펠샤인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오?"

 

"뭔가 수작을 부렸나봐요. 갑자기 제 지배력이 사라졌어요."

 

솨아아아아!

 

펠샤인의 정신 조작 마법에서 해방된 마룡이 등에 실린 인간들을 떨쳐내기 위해 위아래를 활강하며 묘기 비행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보시오!"

 

"좀 기다려봐요!"

 

펠샤인이 다시 마룡을 종속시키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안톤은 그 동안 떨어지려는 일행들을 잡아주며 버텼다.

 

"후! 살았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은 케이혼이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았다.

 

그리고 다들 한바탕에 난리를 겪은 탓에 심력 소모가 심했는지 숨을 돌리던 때.

 

안톤은 홀로 멍하니 서서 텅 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르토르는 그들이 혼란을 겪는 사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바로 움직여서 놈을 잡았어야 했던 건 아니었는지,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이렇게 곧바로 사라질 줄 가능성을 간과했던 것이 실착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분명 아르토르는 처음엔 배신자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톤은 그 배신자가 카트락시아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가 도주하기 전에 남긴 한 마디가 모순으로 남아 안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대충 끝냈다고? 대체 그게 뭔 소리지? 처음부터 카트락시아를 찾아온 게 아니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아르토르가 배신자라 칭할 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천천히 주변의 인물들을 하나씩 살피던 안톤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방금 전 용을 진정시키느라 지친듯 늘어져 쉬고 있는 펠샤인에게서였다.

 

그가 알기로 여기 일행 중 그녀만이 유일하게 아르토르와 만나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그녀였다.

 

"이보시오. 펠샤인."

 

"왜요?"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안톤은 무언가 하려던 말을 관뒀다.

 

"아니오. 됐소."

 

원래 그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정말 갑자기 용의 세뇌가 풀렸던 것이느냐고.

 

 

* * *

 

비행 내내 안톤은 생각했다.

 

아르토르가 이곳에 모습을 비췄던 이유가 무엇일지.

 

그것을 알게 된다면 뭔가 거대한 진실을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첫 번째 가정.

 

'아르토르는 카트락시아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가장 설득력있고 개연성이 있지만, 이는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와 상충된다. 심지어 그는 카트락시아와 만나지도 못했지 않은가.

 

뭐 그냥 혼란을 줄 목적으로 아무렇게나 말을 한 걸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두 번째.

 

'용의 협곡에서 아르토르와 펠샤인이 무언가 거래를 했고, 펠샤인이 추후에 배신을 했다. 그래서 아르토르가 그녀를 배신자라고 불렀다.'

 

이또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얘긴 아니었다.

 

그들이 예전 만남에서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 펠샤인은 아직까지도 안톤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녀가 이미 아르토르를 배신한 것이라면, 모두 상관이 없어지는 이야기긴 하다.

 

허나.

 

'아까 그 자리에서 나만 모르게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래서 아르토르가 그녀가 진짜 자신을 배신한게 아님을 알고선 그냥 물러갔고, 펠샤인은 일부로 용을 조종해 그를 쫓지 못하게 만든 것이라면.

 

'너무 큰 비약이군.'

 

안톤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 증거도 없이 그녀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더욱 유심히 지켜봐야겠지.'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그들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레노테이르의 수도이자, 심장부인 의결회가 있는 도시 알서스.

 

원래는 멀리서 내린 후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정신 마법이 특기인 펠샤인과 다르게 다른 마법들에도 능한 오르메넨이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투명막을 펼쳐준 덕이었다.

 

따라 곧바로 의회장으로 직행했다.

 

쿵.

 

건물 꼭대기에 용이 앉으며 흔들림이 생겼지만, 아무도 꼭대기에 용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리라.

 

"자, 갑시다."

 

전쟁이 시작된 후.

 

알서스의 의회장엔 하루도 쉬지 않고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오르메넨의 예상은 맞았다.

 

의회장 안에는 공화국의 수뇌부들이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오르메넨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이에요?"

 

"시간이 없으니 화끈하게 갈 생각이오만?"

 

"화끈하게라니..."

 

콰당!

 

오르메넨이 말꼬리를 흐리는 사이.

 

회의장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려졌다.

 

당연히 끊기지 않고 이어졌던 회의는 끊어졌고, 그 안에 있던 레노테이르의 수뇌부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의회를 주관하던 의장이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비를 추궁하려 손짓하는 것도 잠시.

 

의장은 안톤과 함께 난입한 오르메넨을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오르메넨 프로젠마임 의원! 이게 무슨 무례인가?"

 

사실상 레노테이르의 최고 권력자인 의장의 호통에 오르메넨이 아무말 못할 때.

 

안톤이 그녀를 대신해 의회장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뭐, 당신들이 공사가 너무 다망해서 전쟁터에 나가진 않고 안전한 곳에서 말만 나누고 있다는 건 알고 있소. 그래도 시간을 내서 내게 협조를 해줬으면 하오."

 

"..."

 

이백 명 가량의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정적이 생겨났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어야 상황 파악을 하겠는데, 지금 안톤의 선언은 너무 뜬금없고 상식 밖에 있었다.

 

"허..."

 

뒤늦게 제정신이 돌아온 의장이 소리쳤다.

 

"대체 웬 놈이냐! 정체부터 밝혀라!"

 

"이분은 카린님의 동료분이십니다."

 

오르메넨의 부연설명에 의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왈츠 가주의 동료라고? 그런 자가 어찌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한단 말인가! 프로젠마임 의원은 또 왜 이런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고!"

 

할 말이 없어진 오르메넨이 입을 꾹 다물자, 의장이 기가 찬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귀중한 손님인들 지켜야할 예의가 있는 것이오! 우리들의 협조를 바라거나 할 말이 있다면, 절차대로 했으면 되는 것 아니오?"

 

구구절절 옳은 소리에 안톤도 절로 고갤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오."

 

"나는 오늘의 무례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 단단히 각오해야할 것이오. 경비! 다들 뭣들 하고 있소? 어서 이 자들을 끌어내지 않고?"

 

벙쪄 있던 경비들이 그의 호통에 황급히 걸음을 뗐다. 아니, 떼려했다.

 

경비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발이라도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가!"

 

그것은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의장의 연이은 호통에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안톤은 고개를 돌려 펠샤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나 경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미 그녀가 다 손을 써놨기 때문이었다.

 

안톤이 당황해 연신 주위를 둘러보는 의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자는 어떻소?"

 

"아니네요."

 

명색이 레노테이르 의결회의 의장이라길래, 벌써 블라디미르의 수작질에 당했을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니.

 

"그것 참 아쉽게 됐군.'

 

안톤의 중얼거림을 들은 펠샤인이 피식 웃었다.

 

"정말 못됐네요 당신은."

 

"아니,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시오. 난 그저 오르메넨이 수월하게 의장직에 오르려면 저자가 멀쩡하면 귀찮아지리라 생각했을 뿐이니까."

 

"그러시겠죠."

 

"그래서 얼마나 있소?"

 

펠샤인은 안톤의 두서없는 물음에도 여전히 착착 대답했다.

 

"대충 마흔 명쯤 되는 것 같네요."

 

"후. 그럼 하루에 네 명씩 고친다고 해도 대략 10일은 걸린다는 뜻이군."

 

"그 시간동안 일을 하는 건 난데, 한숨을 왜 당신이 쉬어요?"

 

 

* * *

 

그로부터 열흘 후.

 

아직 오르메넨이 의장직에 오른 것은 아니나, 레노테이르의 의원들을 정화하는 작업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무렵에 카린으로부터도 동맹 체결을 끝마쳤다는 연락이 왔다.

 

이로써 레노테이르, 그레일시아, 소우든, 해린, 에반하임까지.

 

총 오개 국가가 뭉친 거대 연합이 탄성한것이다.

 

안톤은 도중에 방해를 받지 않을만한 밀실에서 위스퍼 스톤을 꺼냈다.

 

이는 예전에 카린이 주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고, 예전 것에서 발전해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기능이 생겨 있었다. 또한 다중으로도 연결이 가능했다.

 

카린과 안톤은 이것을 각 국의 지도자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명색이 같은 연합에 속했는데, 거리가 멀다고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로묵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대망의 오늘.

 

드디어 각국의 수장들이 멀리서나마 다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흐음..."

 

안톤이 위스퍼 스톤을 통해 얼굴을 비추자마자, 레노테이르의 의장이 유독 불편한 시선으로 안톤을 쳐다봤다.

 

"레이왈츠 가주야 이해를 하겠는데, 대체 저 자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

 

그 질문에 소우든의 국왕과 에반하임의 대장로가 그를 비웃었다.

 

"아무래도 의장께선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모양이구려."

 

"껄껄. 레노테이르 공화국엔 다들 눈뜬 장님뿐인가?"

 

조롱의 의미는 없었지만 핫산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의장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그야말로 이 연합을 이루어낸 기여자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참가할 자격은 차고 넘칩니다."

 

그말에 얼굴이 시뻘개진 의장이 입을 꾹 다물었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카린이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다들 서로 얼굴은 익히신 것 같으니, 이제 슬슬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카린이 입을 열자 다들 눈빛이 차분해졌다.

 

안톤 만큼이나 그녀 또한 이 연합을 만드는 것에 기여를 했기에, 이 자리서 그녀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을 다 불러 모은 이유는 뭔가?"

 

에반하임의 대장로의 질문에 안톤이 씩 웃었다.

 

이어질 카린의 말을 미리 들어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일단 오늘은 우리 연합의 이름부터 정하려 합니다. 그러니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주저말고 내주세요."

 

"..."

 

"..."

 

위그드라실이라는 이름의 연합군이 역사서에 처음으로 적힌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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