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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52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52화

152. 거래

 

 

"가르톤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아르토르의 말에 수정구 속 인물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평소 가르톤과 티격태격하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쟈카론이었다.

 

"흉수는 누구지?"

 

그렇게 묻는 쟈카론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가르톤님의 사체에서 천검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젠장, 이번에도 세로게트인 건가!"

 

"어쩌면 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세로게트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천검술을..."

 

쟈카론이 도중에 말을 멈췄다.

 

그러고보면 세로게트 말고도 천검술을 쓰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자는 어쩌면 세로게트 보다도 상위에 있는 진짜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 자는 4년 전, 그들이 총력을 동원한 결과 차원의 틈새에 가둘 수 있었다.

 

"거기서 살아 돌아왔다고...?"

 

믿을 수 없다는 투의 중얼거림에 아르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그곳에 가보니 4년 동안 꽂혀 있던 검이 사라졌더군요. 그것만으로 확신을 하기엔 증거가 없어 지금까지 말을 아끼고 있었습니다마는... 시기가 너무 공교롭습니다."

 

"젠장. 정말로 그 괴물 녀석이 돌아온건가."

 

참담한 얼굴로 고갤 숙였던 쟈카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아르토르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지? 네 성격에 이렇게 말을 꺼냈다는 건, 분명 어느 정도 정보 확인이 끝났다는 소리일 것 같은데?"

 

그 추측은 사실이었는지, 아르토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해린을 주축으로 삼아 우리들을 대항할 연합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한창 포섭에 여념이 없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그냥 군대를 이끌고 녀석들을 짓밟으러 가면 되는 건가?"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쟈카론의 물음에 또다시 아르토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켜볼 겁니다. 그들이 동맹군을 만들어서 붙어준다면 저희에겐 귀찮은 일을 덜어주는 격이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 자식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나. 너도 알 텐데? 놈은 위험하다."

 

쟈카론의 걱정에 아르토르가 들고 있던 잔을 잘 보이도록 들었다.

 

"그 자는 여기 유리병 속에 호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싸워서 피를 볼 필요는 없죠. 우리는 그저 우리들의 일을 하면 됩니다."

 

말을 마친 아르토르가 유리 잔을 꽉 쥐어 깨트렸다.

 

산산조각 난 잔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고, 쟈카론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알겠다."

 

이후 자잘한 사안에 관한 이야기들만이 거론되다가 집회는 끝이 났다.

 

모든 수정구들의 빛이 꺼지고 침묵이 찾아오자, 어두운 방에서 홀로 수정구 앞에 앉아 있던 은발의 여인이 참아왔던 숨을 내쉬었다.

 

집회 내내 묵묵히 듣는 태도로 일관하던 카트락시아였다.

 

"후우."

 

그녀는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사람처럼 찬장에 진열된 술을 꺼내 병째로 입에 들이부었다.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고. 내용물이 빈 병들이 하나 둘 쌓여갔지만, 카트락시아는 취하지 못했다.

 

얼마를 마신들, 그녀가 지닌 재생 능력이 취기를 족족 몰아내고 있었다.

 

쨍그랑!

 

카트락시아의 손에서 던져진 술병이 벽에 부딪쳐 조각났다.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주변의 촛불처럼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뭘 하든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불길한 위화감.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취하지도 않는 술을 찾게 만든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은, 키리옌과 파서스가 미궁에서 안톤에게 죽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허나 그때는 안톤이 성물을 지니고 있단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위화감이 심하진 않았다.

 

허나 이후에 한 사건이 벌어진 후, 그러한 불길한 예감은 본격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다.

 

바로 아홉 번째 성물, 기억의 조각을 얻기 위해 호룸과 로푸스가 에반하임에 잠입했던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때 아르토르는 그들이 세로게트에게 당했다며 부고를 전해왔고, 그때부터 그녀는 짙은 위화감에 휩싸여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정말로 그 둘이 그렇게 당했다면, 성물 또한 우리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겠지.'

 

쟈카론이야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지만, 가르톤은 아니었다. 그는 집회에서 그러한 의심을 공식적으로 거론하며 아르토르의 말에 존재하는 모순을 꼬집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 대가였던 것일까.

 

오늘 이렇게 아르토르의 입에서 그의 부고를 듣게 되었고, 이제 카트락시아는 내심 암중에서 모종의 수작이 벌어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고보면 오늘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는 라트로이안도 뭔가 수상하단 말이지.'

 

어쩌면 이미 그는 산 목숨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들이 사실이라면, 필시 금방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 분명했다.

 

'젠장. 이제 난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한창 앞날을 걱정하던 때였다.

 

무언가 기척을 느낀 카트락시아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불시에 찾아온 객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쟈론? 당신이 어떻게 여길!"

 

"긴 말을 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으읏!"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쟈론의 이마에서 빛이 터져나왔다.

 

솨아아아!

 

일직선으로 뿜어진 빛줄기가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 빛을 직격으로 맞은 카트락시아는 곧이 곧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경란하며 전신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표독스런 그녀의 눈빛은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

 

처음에는 쟈론을 보며 배후의 흉수인가 싶던 카트락시아였지만, 그녀는 금세 그런 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강렬한 두통과 함께, 그의 기억이 뒤죽박죽인 채로 빛에 섞여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끄아아아앗!"

 

카트락시아는 마치 눈앞에서 겪은 일처럼 생생한 그의 기억을 엿보았다.

 

라바딘 블라디미르.

 

그가 탐욕스런 얼굴로 다른 이들을 집어삼키는 기억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닥. 차닥.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우는 소리에 카트락시아가 눈을 떴다.

 

천장에서 뜨겁게 질척거리는 액체 형태의 무언가가 그녀의 이마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 쟈론의 것, 아니 쟈론이었던 것들의 흔적이었다.

 

"나에게 그걸 보여주고선 죽은 건가..."

 

카트락시아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쟈론이 자신을 선택해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허나 살기 위해서 지금 그녀가 해야할 것은, 그의 행동에 관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그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나..."

 

카트락시아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 * *

 

펠샤인의 마법이 끝이 나고, 오르메넨과 함께 온 중년 사내는 멀쩡해 졌다.

 

허나 카린의 의구심 어린 표정은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저 여자가 거짓말을 친거면 어떡해요."

 

그러고보면 소우든의 국왕도 그녀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그는 펠샤인이 정말로 세뇌를 풀었는지, 아니면 멀쩡한 사람에게 도리어 세뇌를 걸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기에 혼란스러워 했었다.

 

허나 이것은 그 누구도 증명할 수가 없었고,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소우든 국왕은 검성 가우스트를 보고 안톤과 펠샤인을 신뢰하기로 결정했고, 이번 상황 역시 그와 비슷하게 전개됐다.

 

"...알았어요."

 

마지못한 기색은 역력했으나 끝내 카린이 수긍했다. 그리고는 펠샤인이 아닌 안톤을 바라보았다. 그 눈짓의 의미는 명백했다.

 

펠샤인은 신용할 수 없지만 대신 당신을 믿겠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건이 매듭지어지자, 세로게트가 안톤을 따로 불러냈다.

 

"나와 얘기 좀 하겠나? 자네가 잠깐 만나볼 자가 있네."

 

"급한 일이오?"

 

"그렇다고 생각하네. 게다가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안톤이 카린을 보며 살짝 고민하자, 그녀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괘념치 말고 다녀오세요."

 

카린과 나머지 인물들은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지만, 펠샤인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호위 약속을 들먹이며 기어코 안톤을 따라가려고 했다.

 

허나 세로게트가 이를 거부했고. 안톤도 그의 결정에 따라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혼자 다녀오곘소. 용도 있는데다가 클린턴도 있으니 안전할 것이오. 여차하면 카린을 통해 나를 부르시오."

 

"...흥!"

 

펠샤인이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내며 등을 돌렸지만, 안톤은 아랑곳않고 세로게트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대화를 나눌 요량이었는지, 앞장선 세로게트는 뛰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가면서 얘기나 나누지. 자넨 내게 묻고 싶은 건 없나?"

 

"설마 없을리가 있겠소."

 

"그럼 참지말고 해보게."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또 만나 볼 사람은 누구인지.

 

그것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어차피 이것은 조금 뒤면 알게 될 것이기에, 안톤은 이가 아니 다른 질문을 그에게 보냈다.

 

"혹시 내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 알고 계셨소?"

 

"나도 몰랐네. 그저 그러리라 믿었을 뿐이지."

 

"왜 그랬소? 어쩌면 내가 그곳에 있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 않소."

 

"그게 무슨 소린가?"

 

그는 안톤의 말에 담긴 의중을 전혀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당신은 예전에 내 몸 안에 성물이 잠들어 있다고 했소. 그러니 내가 다른 세계에 있다면 이 세계는 영원히 안전해 질 것 아니오?"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마는... 어째선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드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그들이 자네를 다른 세계로 보내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네."

 

그의 답변은 그 동안에도 안톤이 갖고 있던 의문이었고, 지금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올까 싶어 안톤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이건 단순히 내 짐작이네만... 뭔가 그들로서 대안을 찾은 게 아닐까 싶네. 그리고 그 대안이라는 것이, 왠지 전쟁을 벌인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만 같네."

 

"그랬으면 좋겠소."

 

"아무튼 다 왔네. 그리고 너무 고민하지는 말게나. 어쩌면 지금 만날 자가 그 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세로게트의 거처로부터 걸어서도 금방인 거리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세로게트가 먼저 들어가라는 듯 길을 비켜줬고, 안톤은 약간 떨떠름하면서도 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조르디가에서부터 질긴 악연을 이어왔던 카트락시아였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그녀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을 풀어내자, 카트락시아가 순순한 태도로 대답했다.

 

"다른 차원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고서, 너라면 반드시 에반하임으로 올 줄 알았다. 뭐, 이렇게 며칠도 걸리지 않아서 만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거니 싶었다.

 

다만, 그것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왜 혼자서 날 찾아왔지? 갑자기 죽고 싶어지기라도 한 건가?"

 

결국 어찌보면 그의 스승 온-누르가 단명하게 된 것에는, 그녀와의 격전에서 입은 부상이 큰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스승의 부고를 들은 안톤의 말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아니, 난 살기 위해서 왔다. 거래를 하자."

 

"거래?"

 

기가 차다는 듯한 안톤의 반응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정보를 주겠다. 대신 날 지켜줘라."

 

"지켜달라고? 설마 거래를 하자는 건가? 대체 무슨 수작이지?"

 

카트락시아가 코웃음치는 안톤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맹세코 다른 수작 같은 건 없다. 아르토르가 우릴 모두 죽일 속셈이다. 벌써 세 명, 아니 네 명이나 당했고, 나는 살고 싶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명확했다. 즉, 블라디미르를 배신하고 안톤의 쪽에 붙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톤은 카트락시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빛만을 보았을 땐 딱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만, 고작 그것만으로 사람의 말에 진위를 가릴 만큼 안톤은 성급하지 않았다.

 

"하려는 말은 그게 끝인가?"

 

"그럴 리가. 이제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 지금 동맹군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 동맹군을 만드는 거 그만둬라."

 

카트락시아가 준비해온 패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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