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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45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45화

145. 재회

 

 

"이제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에요."

 

펠샤인의 말에 안톤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확 트인 시야 너머로 저 멀리서 해린의 수도 쟝-그리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록티아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겨우 이틀 밖에 걸리지 않았군.'

 

안톤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만약 그가 직접 뛰어서 왔다면 최소 열흘은 걸렸을 거리이니, 단순계산으로만 봤을 때 이 안타리얼리니온이란 용은 안톤보다 다섯 배는 빨랐다.

 

게다가 심지어 이틀이란 시간에는 중간 중간 멈춰서 쉬던 시간까지 껴 있지 않은가.

 

'그 정도로 빠른 것 같진 않은데... 음, 그저 지형지물에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인가?'

 

속으로 그런 의문이나 갖던 안톤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경쟁심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직 멀었단 생각이 들은 것이다.

 

'덕분에 편하고 빠르게 왔으니 그냥 좋다 여기면 될 것을.'

 

이내 안톤은 위스퍼 스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카린에게 연락을 취해 곧 도착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제 곧 서로 얼굴을 보게 되니 그때 해후를 나누면 된다 여긴 것일까.

 

카린은 기쁜 내색은 감추지 않았으나,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예전에 당신이 거했던 그 별채에서 기다릴게요. 금방 봐요.

 

그 말을 끝으로 둘의 연락은 끝이 났다.

 

안톤은 자꾸만 씰룩거리는 입가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펠샤인. 들었소?"

 

"들었어요. 그때 거기로 가면 되는 거죠?"

 

"그렇소. 부탁하리다."

 

자세한 위치에 대해서 펠샤인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 또한 한때는 해린 왕궁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안톤이 점점 가까워지는 쟝-그리던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카린이 전에 말했던, 반가운 얼굴들이 누구일지 기대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4년 동안 카린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애써 들뜬 마음을 잠재우는 그를 향해 펠샤인이 말을 걸었다.

 

"기뻐 보이네요."

 

"그렇소?"

 

"네. 뭔가 예전이랑 달라요."

 

"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소?"

 

"글쎄... 재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군."

 

펠샤인은 어딘가 모르게 뚱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이후 둘 사이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둘을 태운 용이 해린 왕궁 한구석에 마련된 별궁 후원에 안착했다.

 

그곳에는 열 명이 좀 되지 않는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핫산의 호위로 보이는 몇을 빼면은 모두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오오, 이게 바로 용인가!"

 

전설 속에서나 듣던 용의 실물을 보고 놀라는 것도 잠시, 그들은 환한 웃음을 내지으며 땅에 내려온 안톤을 맞아주었다.

 

그중 가장 먼저 그에게로 다가온 것은 카린이었다.

 

"잘 왔어요."

 

이보 정도의 간격을 두고 앞에 선 카린을, 안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모습이 많이 변했군."

 

누군가 여인에게 세월이 독이랬던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펠샤인이 그러했듯 카린 또한 여인으로서의 성숙미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4년이나 지났으니까요."

 

그렇게 안톤이 뚫어지레 그녀를 바라보자, 카린이 부끄러운 듯 한 걸음을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시금 몇 걸음 다가가 안톤의 손을 부여잡았다.

 

"아무튼 정말 다행이에요. 무사히 돌아와서."

 

안톤과 카린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며 그들의 눈빛이 얽혀들어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래, 정말로 다행이야! 무사히 돌아와서!"

 

뒤에 포진해 있던 무리들 중 한 사내가 감격스레 외치며 안톤을 향해 달려왔다.

 

사내의 이름은 케이혼 아델로만.

 

미궁 속에서 만나 친구관계를 맺게된 성국의 성자였다.

 

"아..."

 

느닷없이 뛰쳐나간 케이혼을 본 클린턴이 자기도 몰래 탄성을 내뱉었다.

 

저 성자 녀석은, 다들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유를 정말로 몰랐던 걸까.

 

도대체 얼마나 분위기 파악을 못해야 그게 가능한가 싶었으나,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직도 저렇게 헤실헤실 웃을 수 있는 걸 보니, 지금 태양조차 녹여버릴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카린의 눈빛의 의미조차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니까.

 

"후우..."

 

한숨을 크게 내쉰 클린턴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케이혼의 어깨에 묵직한 손을 올린 후 카린에게 대신 사죄의 말을 전했다.

 

"카린. 부디 이 멍청한 친구를 용서하게."

 

그리고는 안톤에게 다가가 웃으며 손을 건넸다.

 

"반갑네. 안톤.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네."

 

"나 역시 마찬가지오."

 

안톤이 클린턴의 손을 꽉 마주잡았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 했을 때부터 갖기 시작한 의문을 털어놓았다.

 

"근데 당신들이 어떻게 여기 있는 것이오?

 

성국 출신인 케이혼이라면 모를까.

 

제국 타도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카린의 옆에, 클린턴이 함께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겠나? 바로 저 당찬 여인 때문이지."

 

클린턴이 턱을 움직여 카린을 가리키자, 카린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내지었다.

 

허나 안톤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기색이 겉으로 표출된 것일까.

 

클린턴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자네 뭔가 오해한 것 같군. 나는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인 게 아니네. 단지, 카린에게 지금 무슨 일이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기에, 제국을 위한 진정 옳은 일을 하리라 마음 먹은 것일 뿐. 나는 블라디미르의 수족에 불과한 현 황제를 쳐내고 7황자님을 즉위 시킬 걸세."

 

이제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안톤이, 이번에는 케이혼을 바라보았다.

 

"그럼 혹시 당신도 그런 이유에서요?"

 

"허허. 나도 저기 검쟁이 친구와 대충 비슷한 이유네. 아무래도 우리 교황 성하께도 문제가 생긴 듯 싶어서 말이지. 처음에는 그저 노년에 노망이 났나 싶었는데, 카린 양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이렇게 함께하게 됐네."

 

케이혼의 말이 끝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뒤에 있던 두 명의 사내가 안톤에게 다가왔다.

 

"슬슬 우리 차례가 왔나 보군."

 

"핫산... "

 

"드디어 이름으로 불러주는구먼 그래."

 

핫산이 호쾌한 웃음을 내지으며 안톤을 끌어안았다.

 

심정적으로는 무척 반갑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내가 덜컥 끌어 안다니, 조금 부담스러운 환영인사였다.

 

짧았던 포옹이 끝나고, 약간 머쓱했던 안톤은 고갤 돌려 옆에 있던 사내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레버르트 남작도 오랜만이오. 어째 검술에 큰 진전이 있었던 모양이군."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의 체내를 감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헤어지기 전에 보여줬던 삼일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모두 자네 덕분이지 뭐. 그리고 이제는 백작이라네."

 

"축하하오."

 

"고맙네. 아무튼 난 자네가 반드시 살아 있으리라 믿었네. 물론 그건 나 뿐만 아니라 전하께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대략적인 인사가 끝이 나고, 이제 안톤에게 집중되어 있던 관심이 다른 한 곳으로 옮겨졌다.

 

바로 무시무시한 마룡을 길들인 장본인에게로였다.

 

클린턴이 이들을 대표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럼 이분이 용의 현자라는 분이시겠군."

 

펠샤인은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었기에, 핫산은 그녀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안톤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함구할 생각이었다. 펠샤인이 그렇게 해달라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펠샤인이 로브를 벗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한창 물 오른 그녀의 미모가 장중에 드러났고, 모두가 입을 떡 벌리며 경악의 눈초리를 쏘아냈다.

 

허나 그들 중 그녀의 눈부신 외모 때문에 놀란 것은 오로지 케이혼 한 명 뿐이었다.

 

"워어... 신이시여."

 

그를 제외하고서 남은 이들은 모두 다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놀랐다.

 

혈족관계인 핫산을 빼고도 다들 해린에 있을 적에 펠샤인과 일면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왜 펠샤인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펠..."

 

"네. 오라버니."

 

멍하니 뱉어진 핫산의 중얼거림에 펠샤인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어떤 말을 해야할까 수도 없이 고민하던 핫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떠난 이유에 대해 물을 것이란 안톤의 예상과는 달리,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그저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잘 지냈느냐?"

 

"네. 덕분에요."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네가 용의 현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것이냐?"

 

"말 그대로에요. 오라버니. 다른 말이 더 필요한가요?"

 

혹시 그 둘 사이에 안톤이 모르는 어떤 사건이라도 있었던 걸까.

 

펠샤인이 뚫어지레 핫산을 바라보자, 그는 뭔가 켕기는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아니다. 내가 하등 쓸모없는 질문을 했구나.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로 기쁘다."

 

그렇게 둘 사이의 재회가 일단락 되고, 아예 중심에 나서겠다는 것인지 펠샤인이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의 계획은 어떤가요? 설마 없는 건 아니겠지요?"

 

그녀의 당돌한 물음에 화제가 또다시 옮겨졌다.

 

사실 뭐,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금방 나왔을 화제긴 했다.

 

지금 이 자리에 각기 다른 인물들이 모인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제국, 아니 블라디미르 타도인가.'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안톤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야 이제 내가 왔으니..."

 

안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려 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는 듯, 카린이 대뜸 그의 말을 끊으며 등짝을 후려친 것이다.

 

"혼자 힘으로 하려는 버릇 좀 고쳐요. 만약에 당신이 혼자 다니다가 또 같은 방식으로 당해버리면 어쩔려고요?"

 

"으음..."

 

카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솔직히 4년 전의 격전으로 안톤은 확신을 얻었다.

 

혼자의 힘만으로도 그들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그들과의 대결은 단순한 무력의 격돌이 아니다.

 

분명 무력만이 아닌 다른 술수들이 껴 있을 터였고, 방금 카린의 말대로 한 번 더 같은 방식으로 당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같은 장소로 간다는 확신도 없을 뿐더러, 설령 몇 년이 걸려서라도 나온들 그때까지 이 세계가 멀쩡하게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안톤을 보며, 펠샤인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굉장히 오묘한 시선으로 카린과 안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흐음. 둘은 이제 진짜로 연인 관계가 된 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린 그저..."

 

당혹스런 질문에 안톤이 난감한 기색으로 뭐라 말하려는 것도 잠시.

 

카린이 가만 있어보라는 듯 안톤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그게 왜 궁금하시죠. 공주님?"

 

"별 이유는 아니에요. 게다가 아닌 것 같으니 상관도 없고요. 아! 그리고 전 이제 공주가 아니니 그런 호칭은 삼가해주시겠어요?"

 

"어머, 그럼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공주님. 아차, 말이 잘못 나왔네요."

 

"글쎄요? 저는 그냥 안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음!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의 시선이 교차한다.

 

둘 모두 입과 눈이 웃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잘 버려진 명검처럼 서슬퍼런 빛을 뿌리고 있었다.

 

안톤은 마치 중간에서 찌릿찌릿하며 불똥이라도 튀는 것 같은 가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옆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

 

"..."

 

주변에 도처한 건장한 사내 여럿이 이 상황을 지켜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땀만 삐질 흘린다.

 

검을 찔러 들어가야할 순간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그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의 눈으로도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상황을 정리한 것은 무예와는 관계도 없던 핫산이었다.

 

"하하! 여기서 이럴 것 없이 다들 안으로 가시지. 그리 성대하다 할 순 없지만, 연회를 준비했소. 거기서 다들 말씀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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