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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40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40화

140. 전쟁

 

 

아로스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벽 내부 쪽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를 스치고 간 무언가가 떨어진 위치는 민가와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다.

 

"반은 자리를 지키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라!"

 

아로스는 병력을 이끌고 그곳으로 황급히 향했다.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 인간이었다.'

 

운석도 아니고, 인간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이 세계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 아닌가.

 

일단 불안한 예감이 자꾸만 들었기에, 아로스는 서둘러서 성벽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지면에 생겨난, 반경 40m는 될 법한 거대한 크레이터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것이 민가나 도심지에 떨어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을 참상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크레이터의 중심으로 향한 아로스는, 이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정말로 인간이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곳에 인간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육안으로 봤을 때 어딘가 다친 곳도 보이지 않았다.

 

무려 이만한 크레이터를 남길 만큼의 충격이었는데 말이다.

 

아로스는 숨 죽인채 슬그머니 다가가 인간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아니, 사실 가져다 댈 필요도 없었다.

 

안 그래도 코에서 하얀 김이 스르륵 올라오는 것이 보였으니까.

 

이 인간은 정신만 잃었을 뿐,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침입자다! 얼른 구속구를 가져와라!"

 

아로스는 침입자의 사지를 마나 구속구로 결박한 후, 꼼꼼하게 침입자의 소지품들을 살피고 압수했다.

 

일단 아티팩트로 추정되는 팔찌를 두 개를 벗겨냈고, 품 속에 갈무리된 짐들을 모조리 꺼내놨다. 그 중엔 인간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도 껴 있었다.

 

"안톤?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 같은데..."

 

아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흐릿한 기억이 선명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끝낸 그는 사내의 몸을 계속해서 뒤져보았다.

 

그러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됐다.

 

'대체 뭐지 이 이상하게 생긴 반지는?'

 

그것은 사내의 왼손 검지에 끼워진 반지로, 암만 빼내려해도 빠지지가 않았다.

 

 

* * *

 

철컹.

 

울퉁불퉁한 산의 비탈길을 빠르게 오르는 동안 마차는 수도 없이 덜컹거렸고, 그러면서 생긴 충격으로 인해 안톤이 깨어났다.

 

'여긴 어디지?'

 

슬며시 눈을 떠 보니 코앞에 철창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철창 너머론 길을 걷는 병사들이 보인다.

 

하나 같이 장건하고 우람한 체격의 병사들이었다.

 

안톤은 그들이 일반적인 인간 병사가 아니란 걸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인종들이로군.'

 

커다란 덩치만 보고 지레짐작한 것은 아니었다.

 

투구 아래로 보이는 목 부근에 돋아난 작은 두 개의 뿔.

 

이는 아인종들 중에서도 선천적인 육체 능력이 가장 대단하다는 도리안임을 의미하는 증표였다.

 

'저기 피부에 갈기가 돋아난 녀석들은 애니반인가?'

 

도리안. 애니반. 에븐. 벨보르.

 

혼요종들과는 다르게, 아인종은 네 가지 종족을 한 데 싸그리 묶어서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아마 그랬던 이유는 그들의 구심점이 하나였던 점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긴... 분명 록티아겠군.'

 

그랜드 게이트를 성벽으로 삼아 만들어진 아인종들의 국가. 록티아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아인종을 보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다.

 

그만큼 그들은 폐쇄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한 뭉텅이로 보인다는 것은, 아마 이곳이 록티아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이게 뭔 일인지...'

 

몇 개의 정황을 통해 안톤은 일단 이곳이 어딘지는 추측해냈다.

 

허나 왜 자신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안톤은 병사들에게 정신을 차린 것을 들키지 않게 다시 눈을 감은 후, 차분히 현 상황을 점검해보았다.

 

일단 그의 사지는 구속구로 인해 꽁꽁 결박되어 있었다.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마나 구속구일 확률이 높았다.

 

마나 구속구는 명인 급에 오른 무인이라도 힘 하나 못 쓰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지만, 다행히 안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능력이었다.

 

애초에 안톤은 마나를 쓰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내 몸이 멀쩡할 때의 얘기지만.'

 

안톤은 굳어 있던 몸에 힘을 조금씩 줘보며 상태를 점검하고는 희미한 웃음을 내지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군.'

 

태초의 세계에서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다녀서였을까.

 

현재의 몸이 내포한 기운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활력적이게 느껴진다.

 

분명 살짝만 힘을 줘도 이 구속구 따위는 단숨에 가루가 되어버리리라.

 

또한 구속구와 마찬가지로, 사방을 포위한 병사들 역시 문제가 안 된다.

 

검이 있든 없든, 몸이 멀쩡한 이상 그들로는 절대 안톤을 막아내지 못할 테니까.

 

'그럼 이제 어떡할까...'

 

일신의 위협이 사라지자, 안톤은 보다 느긋해졌다.

 

언제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 기회를 빌어 약간의 정보나 얻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날짜부터.'

 

"이봐, 지금이 몇 년도지?"

 

안톤의 물음을 받은 병사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마냥 기겁을 하며 도망친다.

 

"히익! 아, 아로스 님! 침입자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 탓에 굉장히 무안해지긴 했지만... 뭐, 그래도 정보는 얻었다.

 

'침입자... 인가.'

 

원래 세계로 돌아온 기념비적인 첫 날.

 

조용하게 보내기엔 이미 시작부터 글러먹은 모양이었다.

 

병사의 외침을 듣고 다가 온 사내가 질문을 던져왔다.

 

"내 이름은 아로스 탈노비안. 네 놈은 제국의 첩자인가?"

 

거의 심적으로 단정을 짓고 있는 듯한 어조에 안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제국과 록티아가 사이가 좋지 않단 건 유명했지만, 첩자라고까지 확신할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지금이 몇 년도인지 좀 알 수 있겠소?"

 

"미친 놈인 척 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내겐 중요한 일이오. 부탁하오."

 

코웃음을 치던 아로스가 안톤의 진중한 눈빛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안톤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75년... 아니, 제국력으로 치면 423년이다."

 

말을 하고도 아로스는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안톤은 잠시 멍해졌다.

 

'423년이라니...'

 

블라디미르의 합공을 받은 그 날로부터 무려 4년이 지난 시기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쪽과 이쪽은 시간의 흐름이 비슷한 모양이군.'

 

대충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니 입술이 쓰다.

 

'그럼 카린은 어떻게 됐지?'

 

4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장 먼저 카린에 대한 걱정이 샘솟았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한 번 블라디미르의 표적이 되었었기에 그 걱정은 더 했다.

 

"주고 받는 게 거래의 기본이지. 자,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라. 제국에서는 무슨 이유때문에 널 보냈지? 설마 그레일시아의 다음 표적으로 우리를 고른 건가?"

 

아로스가 매서운 눈길로 안톤을 째려본다.

 

그나저나 그레일시아의 다음 표적이라니.

 

어감이 지닌 분위기가 뭔가 싸하다.

 

'그러고보면... 한창 전쟁이 시작될 시기군.'

 

전생의 역사를 떠올려 본 안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제국이 전쟁을 벌인 것이오?"

 

이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아무래도 안톤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아로스가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연기라면 집어치워라!"

 

그리고 그 반응을 보자 확실해졌다.

 

정말로 전쟁이 벌어졌다.

 

많은 이들의 피를 무의미하게 흩뿌릴 그 비참한 전쟁이.

 

"그러리다. 연기는 집어치우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안톤을 결박하던 구속구가 조각이 되어 흩뿌려졌다.

 

채채챙!

 

주위를 경계하던 병사들이 제각기 무기를 꺼내들었고, 안톤은 자유로워진 몸을 일으킨 후 단단한 철창을 진흙처럼 구부리며 그 사이로 빠져 나왔다.

 

"진정하시오. 이제부터 묻는 거에만 잘 대답해준다면 별 탈은 없을 테니까."

 

안톤의 싸늘한 시선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 * *

 

안톤은 손을 한 번 까딱 움직이는 것으로, 아인종들의 병력들을 한 번에 무력화 시켰고, 이제 상황은 변했다.

 

부하들의 목숨이 인질로 잡힌 아로스는, 안톤이 묻는 것들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4년 전 아이론이 즉위했고, 그 이후 곧바로 그레일시아를 침공했다 이 말이오?"

 

"그, 그렇소."

 

곡식 문제는 잘 해결됐을 텐데, 아이론은 대체 왜 전쟁을 시작한 것일까.

 

그 이후에 찾아왔을 역병 때문인가도 싶었지만,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들어보니 원래 역사와 다르게, 제국에는 아예 역병이 돌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론은 원 역사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설마 아이론도 블라디미르의 협력자인가?'

 

설령 그렇다 한들 의문은 남아 있었다.

 

성물을 모아서, 이 세계를 탈출하면 끝인 그들이 왜 대륙을 전란으로 몰아넣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복수라는 명분을 꺼내들었소. 가뭄으로 힘들어 할 때, 외면했던 그들을 응징하자는 것이 대외적인 명분이었지."

 

"그럼 츠레이바는? 그들은 어떻게 됐소? 그레일시아를 가려면 분명 그들을 지나쳐야만 할 텐데?"

 

"이미 그 둘은 협정을 맺었소. 츠레이바는 항상 눈엣가시였던 레노테이르를, 펭 제국은 그레일시아를 치기로 했지. 당신을 첩자라고 의심한 것도 그 이유요. 그레일시아를 손에 넣어봤자, 그들로서는 멀리 떨어진 섬이나 다를 바 없을 테니까."

 

펭 제국은 그레일시아와 국경선을 맞대지 않았다.

 

그들이 그레일시아까지 가기 위해선 반드시 츠레이바를 거치거나, 혹은 록티아를 넘어야만 한다.

 

그리고 제국은 현재 츠레이바와 동맹 관계라 하였으니, 안톤을 제국의 첩자라고 생각한 것도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렇군."

 

안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로스는 갈 수록 표정이 이상해졌다.

 

"정말로 당신은 제국의 첩자가 아니오?"

 

"아직도 그런 의심이나 하고 있다니, 우습군."

 

안톤이 피식 웃자, 아로스가 억울하단 듯 답답한 심정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럼 도대체 왜 록티아에 침입했단 말이오?"

 

"그건 내 의사가 아니었소. 그냥 사고 같은 거요."

 

"사고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

 

안톤이 아로스의 말을 대뜸 끊었다.

 

딱히 그를 이해시킬 필요는 없었다.

 

"일단 내 짐이나 갖고 오시오. 어디 있소?"

 

"...여기 있소."

 

아로스가 안톤의 소지품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왔고, 안톤은 주머니서 보석 하나를 꺼냈다.

 

"산을 덮는 파도."

 

위잉.

 

위스퍼 스톤이 빛을 발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했고, 이는 한참아니 계속됐다.

 

'받질 않는군...'

 

다치거나 한 것이 아니라, 뭔가 일이 바쁘거나 한 것일 거라는 바람을 가진 채 안톤은 위스퍼 스톤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아로스가 무언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그건 위스퍼 스톤이란 물건 아니오?"

 

누군가 이걸 알아볼 거라 생각치는 못했기에 안톤은 조금 놀랐다.

 

"...이걸 아시오?"

 

"들어 본 적 있소. 위스퍼 스톤이라는, 남부의 푸른 상인들이 쓰는 연락책이 존재한다고 말이오. 허나 그건 외부인에게는 철저히 금지됐다고 들었는데... 혹시 당신은 청백상인과 연관이 있소?

 

"청백상인이라니?"

 

"카린 세이건 레이왈츠. 화검선녀와 함께 요즘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젊은 여인 말이오."

 

"...카린이 지금 남부에 있소?"

 

안톤이 친근하게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자, 아로스가 내심 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놀란 것은 안톤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생각해보면 그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일도 아니었다.

 

만약 제국이 블라디미르의 손에 넘어간 것이라면, 필시 카린으로서는 근거지를 옮기는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남부에서 활동을 해서 그런 별명이 생겼나보군.'

 

안톤이 다시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귀에 걸리는 단어가 있었다.

 

"근데 화검선녀라니 그건 또 누구요?"

 

"넬-린디아스 조르디. 그녀는 조르디 가문의 공녀로서... 아! 안톤! 그러고보니 당신이 그 검신이라는 자였군! 4년 전에 명인에 등재되자마자 곧바로 실종이 됐다던 조르디가 출신의 그 검객이 바로 당신이었어!"

 

아로스가 말을 하다 딴길로 새더니, 이내 안톤의 정체를 깨닫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것은 안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뜬금없이 린디아스 공녀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화검선녀라고, 몇 년 사이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무척이나 궁금하긴 했지만, 추후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여튼 아로스는 조르디가를 떠올리자 안톤의 정체까지 사고가 이어진 모양이었고, 안톤은 그의 추측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럼 제국의 첩자가 아니란 건 증명 됐군. 아무튼 그럼 이제 가보리다."

 

그렇게 망설임없이 등을 휙 돌리자, 아로스가 그런 안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자, 잠깐! 내 얘기 좀 들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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