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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35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35화

135. 전이

 

 

펠샤인에게 극도로 단련이 된 정신.

 

세로게트와의 수련으로 한층 높은 경지로 뻗어 간 검술.

 

그리고 마법 각인술을 이용해 칸타타에게 선물받은 초인의 육체까지.

 

비로소 심기체의 조화를 이룬 안톤의 검은 매서웠다.

 

콰캉!

 

검에 맞닿은 쟈카론의 도끼가 파편이 되어 흩날린다.

 

전에는 힘도 검술의 정교함도 모자랐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일곱 명이나 되는 적의 합공 속에서도 안톤은 틈을 찾아 노리며 정확한 지점을 베고, 찔렀다.

 

백결검이라는 기술을 터득하기 이전엔, 안톤은 베는 것만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늘 안톤은 투박한 대검에 걸맞은, 힘에 치중한 검술을 펼쳤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안톤의 검은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자유롭게 변화하며 유려하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전보다 위력이 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쉬이이잉!

 

파바바바밧!

 

가볍게 휘두른 일격에 안톤을 둘러싼 악마병들이 무참히 박살 난다. 아르토르가 호리병으로 소환해 낸 병사들이었다.

 

악마들은 하나하나 험상궂고 강력해 보였지만, 안톤의 검이 지나갈 때마다 마치 피부가 두부처럼 베어져 나갔다.

 

“……놀랍군.”

 

이를 바라보던 아르토르가 침음을 흘렸다.

 

겨우 1, 2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았다. 이미 천검술의 원류인 세로게트의 경지조차 초월한 것 같았다.

 

“과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인가.”

 

일시적으로 한계를 초월하게 해 주는 잠력단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모두 최대 출력으로 고유 능력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해 안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세에 몰리는 쪽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지금이다, 쟈카론!”

 

중력 제어의 고유 능력을 통해, 일반인이었다면 즉시 몸 전체가 터졌을 정도의 압력을 가한들 안톤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다.

 

“라푸나덴 갸온느 데프란!”

 

절묘한 타이밍에 라트로이안이 마법을 펼쳐 내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을 전체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만큼의 위력을 지닌 불꽃의 창을, 안톤은 그저 검을 한 번 쓱 찔러 내는 것으로 이를 무위로 돌려 버렸다.

 

“젠장, 로푸스가 당했다!”

 

심지어 그런 와중에도, 이리저리 그림자들을 타고 다니며 불시의 기습을 가한 로푸스에게 반격을 하며 복부에 깊은 자상을 입혔다.

 

그들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지만, 특성상 전위에 서야 하는 카트락시아 같은 경우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잠력단을 삼켜 잠식 상태로 들어가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물론 그 상태로도 안톤의 검을 피하거나 막아 낼 순 없었지만 말이다.

 

크워어어어어!

 

한쪽 팔이 절단된 괴수가 울부짖는다.

 

아르토르는 왠지 현재 카트락시아의 모습보다 오히려 안톤이 훨씬 더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톤이야말로 세계가 만들어 낸 운명이란 괴물이었으니.

 

아르토르가 한 걸음 물러나 전투의 흐름을 관망했다.

 

악착같이 안톤의 빈틈을 노리던 로푸스가 부상당하자, 안톤은 보다 과감하게 움직이며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고 있었다.

 

‘슬슬 잠력단을 쓰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겠군.’

 

아르토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눈빛을 지어냈다.

 

평소 가면을 쓰는 것에 익숙한 그였기에 이 정도의 연기는 아주 가뿐했다.

 

허나 그로서도 미처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는지,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간다.

 

‘좋아!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어.’

 

만약 그가 속내를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내는 자였다면, 분명 그는 지금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으리라.

 

참으로 길었던 기다림의 세월.

 

마침내 오랜 숙원을 이루어 낼 때가 찾아왔다.

 

아르토르는 오늘만을 위해 준비해 온 칼날을 꺼내 들었다.

 

쉬이이이.

 

그의 호리병 속에서 흑발 소년이 튀어나온다.

 

소년의 이름은 라바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의 시초인 카프란의 자식이자, 실패한 그들의 선조가 영혼을 바쳐 만들어 낸 비밀 병기였다.

 

“라바딘 님. 준비는 되셨나요?”

 

그의 물음에 소년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떨리는지 살짝 몸이 굳어 있긴 하지만, 그거야 어차피 직접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아르토르는 한창 안톤을 막느라 바쁜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계획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신호를 받은 이들은 서로 제각기 눈짓을 주고받더니 주저 없이 잠력단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라바딘이 눈을 감고 주문을 달달 외기 시작한다.

 

고대의 룬어도 아닌,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형식의 주문이다.

 

“안 바르 디안 파로세운 트리빌…….”

 

마치 노래처럼 음률의 높낮이가 존재하는 주문은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 갔다.

 

라바딘의 몸에서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안톤은 그제야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렸다.

 

허나 아무리 안톤이라고 해도 부작용을 감수하고 잠력단까지 삼킨 이들의 견고한 수비를 뚫어 낼 순 없었다.

 

“자온 드 그라비텔!”

 

울부짖는 듯한 외침과 함께 라바딘의 주문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위이이잉.

 

번뜩했던 섬광이 잦아들며 이내 정적이 찾아왔다.

 

라바딘은 그 고요함 속에서 한 마디를 남긴 채 바닥으로 몸을 기울였다.

 

“잘 해낸 거 맞죠……?”

 

풀썩.

 

흑발이 아닌 적발.

 

왜소하고 마른 소년의 몸이 아닌, 극에 오른 무인의 몸뚱이.

 

그리고 상체를 가득 채운 문신까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라바딘은 영락없이 안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 잘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오래전, 블라디미르는 쓰디쓴 실패를 겪고 재기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선조들이 후대에 남긴 비밀 병기인 라바딘이 완성되기까지 소요되는 막대한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보다 큰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희망을 외칠 때에도 아르토르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설령 라바딘이 완성된다 한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실패를 직접 겪은 선조들의 생각은 단순해도 너무 단순했다.

 

그들은 운명의 주인을 상대하기 위해선, 세계의 눈을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하나여야 할 운명이 둘로 늘어나 버린다면, 세계는 이도 저도 못 하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때를 노리면 아무리 운명이 가호하는 적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허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허튼소리였다.

 

일찍이 운명의 주인을 발견했다면 모를까.

 

늦게 발견했을 경우는 전혀 상정하지 않은 해답이었으니까.

 

‘도대체 저렇게까지 성장한 녀석을 어떻게 죽이라고?’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후대의 몫이었다.

 

그리고 아르토르는 실질적으로 블라디미르의 책사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 방법을 착안해 냈다. 쉽진 않은 일이었다.

 

허나 한 가지 대전제를 포기하니 방법이 떠올랐다.

 

‘애초에 반드시 죽일 필요는 없었지.’

 

오래된 이야기들을 보면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마왕이 현세에 재래하고, 영웅이 이를 봉인시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죽일 수 없다면, 가두면 된다.

 

참 간단한 얘기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야기 속의 봉인은 대개 후대에 책임을 넘기는 짓거리였지만, 자신들은 그럴 일도 없었다.

 

‘어차피 네놈만 없으면 이 세계는 끝이니까.’

 

모든 준비를 끝낸 아르토르가 섬이 진동하도록 크게 외쳤다.

 

“쟈카론!”

 

그의 부름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도끼를 들고 가장 앞에서 안톤과 혈전을 벌이던 쟈카론이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리고 기합과 함께 최대 출력으로 고유 능력을 발현했다.

 

“흐아아!”

 

잠력단까지 삼킨 그의 중력 제어 능력은 몇 배는 강화되어 있었고, 이번엔 안톤으로서도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라트로이안이 지팡이에 박힌 수정구로 빛을 뿜어냈다.

 

파바바밧!

 

바위로 이루어진 섬 표면에 육망성이 그려지며, 아홉 개의 돌기둥이 안톤을 포위하는 형세로 솟아난다. 그리고 이내 기둥끼리 마나가 이어지며 결계가 펼쳐진다.

 

육안으로도 기의 흐름이 보일 정도로 두꺼운 결계였으나, 안톤을 막기엔 부족했다.

 

그저 잠시간의 시간 벌기밖에 되지 못한다고나 할까.

 

콰아아아앙!

 

단숨에 깨지진 않았으나, 안톤의 검이 맞부딪친 결계의 표면에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생겨난다. 이는 그가 검을 휘두를수록 그 크기를 키워 갔다.

 

콰아앙!

 

콰아앙!

 

지진이라도 난 듯 섬이 흔들린다.

 

아르토르는 서둘러 그동안 모은 성물들을 꺼냈다.

 

안톤이 카린과 교환하며 건넨 왕관까지 총 다섯 개의 성물이 그의 수중에 있었다.

 

세계를 탈출할 열쇠.

 

마스터피스를 완성시키려면 아직 네 가지의 조각이 부족했으나, 이 정도면 차원의 틈새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기에 어디로 이어질지는 그 아무도 예상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르토르는 성물에 담긴 발동 주문을 하나하나 읊었고, 이내 다섯 가지의 성물들이 제각기 다른 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안톤을 가둔 돌기둥에서도 같은 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쿠오오오오오!

 

결계의 표면에 생긴 거미줄의 실금들처럼, 결계 안에 있는 공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입이 벌어진다.

 

스아아아아아!

 

그것은 탐욕스럽게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였다.

 

폭풍의 한복판처럼 바람이 휘몰아쳤고, 호수의 표면으로부터 물줄기가 역으로 솟구쳐 오른다. 섬 바깥에 가득하던 안개들이 거둬지는 것도 한순간이면 족했다.

 

“이 정도도 못 버틸 얼간이들은 없겠지? 버텨라!”

 

정면에서 바람을 맞겠다는 듯 쟈카론이 우뚝 서서 팔짱을 낀 채 광소를 흘린다.

 

“젠장, 지 혼자 편하다 이거지?”

 

가르톤이 툴툴거리더니 땅에 발을 무릎까지 파묻는다.

 

쟈카론의 경우는 중력 제어를 통해 편하게 버텨 내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로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칫 차원의 틈새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만큼 차원의 틈이 빨아들이는 힘은 강했다.

 

압력감은 시간이 지나며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하나의 섬이었던 바위가 겉에서부터 부서지며 뽑혀 나가고, 한없이 깊던 호수도 바닥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안톤은 그 중심에서도 검을 바닥에 깊숙이 박아 놓고 꾸역꾸역 버텨 내고 있었다.

 

“역시 단 한 번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니까.”

 

아르토르는 악마병들을 소환한 뒤, 뒤에서 자신을 붙잡게 한 후, 안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거리가 좁혀질수록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아르토르는 더욱더 크게 눈을 떠 안톤을 바라보았다.

 

“잘 가라.”

 

아르토르가 거침없이 호리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악마병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개 지면을 밟기도 전에 폭풍에 휘말렸다.

 

안톤은 양손으로 검을 쥐고는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아르토르와 그는 직선상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악마병들은 일차적으로 그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퍼퍼퍽!

 

악마병들의 육중한 무게와 속도가 더해진 연이은 충격.

 

결국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힘겹게 버텨 내던 안톤이 검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이윽고 허공에 뜬 안톤의 체구가 폭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솨아아아아.

 

“끝났군.”

 

안톤이 차원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고 한참이나 지난 후.

 

라트로이안이 결계의 작동을 멈췄다.

 

성물과 돌기둥에서 뿜어내던 세찬 빛무리가 서서히 잦아들며 찢겨진 차원의 틈새가 닫혔고, 그럼으로 인해 귀를 먹먹하게 하던 바람이 그쳤다.

 

어느덧 주변에 가라앉은 고요함 속에서 아르토르는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내뻗었다.

 

사방의 모든 곳이 폐허가 된 이곳에서, 그의 검만이 유독 고고하게 땅에 박혀 있었다.

 

그 앞에서 멈춘 아르토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톤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번엔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와 자신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본 아르토르였으나, 떠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짐작이 가는 것조차 없었다.

 

도대체 뭔 말을 하려 한 것일까.

 

한참이나 고민을 하던 중에 아르토르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것은 그에게 한 약속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한 약속이었다.

 

심지어 그 약속은 바로 얼마 전에 그의 눈앞에서 행해졌었다.

 

“금방 돌아오겠다, 이건가.”

 

어째선지 최후의 순간까지 내짓던 그의 차분한 눈빛을 떠올리면, 정말로 실현이 될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예감이 치솟는다.

 

“아마 빨리 돌아와야 할 거야. 아니면 돌아오고 싶어도 그럴 장소가 없어지게 될 테니까.”

 

안톤의 검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아르토르가 등을 돌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거사를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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