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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01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01화

101. 난입

 

 

‘몸이 엄청나게 상했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해.’

 

델-트로그 도적단의 주둔지에서 벗어난 안톤은 사막 위를 질주했다. 그녀를 잘 부탁한다는, 탈티온의 부탁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도시로 가야겠군.’

 

목적지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크렌디아.

 

그곳에서 이 여인의 몸 회복을 도운 후, 안톤은 다시 델-트로그 도적단들과 싸우러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을 달리니, 크렌디아의 성문이 나타났다.

 

도적단으로 인해 상인들의 발길이 끊겼기에 성문 앞은 굉장히 한산했고, 삼엄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성문 경비를 맡고 있던 경비 셋이 창을 치켜든다. 보루 위의 병사들은 활시위까지 걸어 당기고 있었다.

 

안톤은 군말 없이 가지고 있던 신분패를 경비에게 던졌다.

 

“조르디가에서 온 자인가 봅니다. 어떻게 할까요?”

 

처음 신분패를 받아 확인한 경비 하나가, 옆에 있는 이에게 그것을 건넨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자인 것 같았다.

 

“안톤이라……. 뭔가 이름이 낯익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경비대장이 결정을 내렸다.

 

“혹시 정체를 숨긴 도적놈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몸수색을 확실히 하고 경위를 캐묻는다. 그래도 별게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출입을 허가한다.”

 

뭔가 나오기라도 바라는 듯한 눈치다.

 

아무튼 그의 지시에 맨 처음 안톤의 신분패를 확인했던 경비대원이 다가왔다.

 

“알겠습니다. 자, 이름이 안톤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잠시 이리 와 보시겠소?”

 

그를 따라서 성문 앞에 마련된 막사로 들어간 안톤은 한참이나 검문 수색을 받아야 했다.

 

먼저 그레일시아로 향하며 아공간 가방은 카린이 가져갔기에 안톤이 가진 소지품은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지품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서였다.

 

위스퍼 스톤이나 검은 매 형상의 옥새, 팔찌 등등.

 

이것들의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경비대원은 꼼꼼히 물어 왔고, 안톤은 숨김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딱 한 가지 물품만을 빼고는 모두 소지 허가가 떨어졌다.

 

이는 다름 아니라 안톤의 손에 들려 있던 대검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무기로군. 이건 도시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소. 우리가 보관하고 있다 나갈 때 돌려 드리리다.”

 

“그렇게 하시오.”

 

무기를 몸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것은 싫었지만, 안톤은 그들의 요구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도적들 때문에 한껏 예민해 보이는데, 괜히 마찰을 일으키지 말자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어진 경위 조사에서 안톤은 그만 열이 뻗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레노테이르에서 오셨다고?”

 

금방 끝나리라 여겼던 경위 조사가 예상 외로 길게 늘어진 것이다.

 

경비대원은 굳이 필요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집요하게 물어 오며 귀찮게 했고, 결국 하나하나 대답해 주던 안톤도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보다시피 지금 동행이 아프오. 그녀라도 먼저 도시 안에서 쉬게 할 순 없겠소?”

 

안톤의 요청에 질문을 하던 경비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 대뜸 옆에서 과정을 지켜보던 경비대장이 나섰다.

 

“불가. 전염병일지도 모르거니와, 아직 신분 확인도 끝나지 않았다.”

 

나름 예의는 지키던 경비와는 다르게 굉장히 말투가 오만하다. 게다가 깔아 보는 듯한 고압적인 시선까지.

 

안톤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마, 신분 확인이 끝나도 출입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오?”

 

“그렇다.”

 

“그럼 이곳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군.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리다. 어서 내 검이나 돌려주시오.”

 

규모는 훨씬 작지만 굳이 이 도시가 아니라도 남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도시가 나온다.

 

대충 하루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

 

하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안톤은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안에 그곳에 도착할 자신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나갈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난 안톤이었으나, 경비대장은 여전히 권위적인 대응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것 역시 불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이런 수상한 인물들을 국내에 풀어 둘 수는 없지.”

 

기가 찼던 안톤은 무심코 비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허! 날 잡아 두겠다는 것이오? 겨우 당신들로? 그럼 한 번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오.”

 

안톤은 우선 앞 탁자에 올려 두었던 신분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옆에 누워 있던 여인을 다시 들쳐 멨다.

 

“막아라!”

 

경비대장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경비들이 창을 힘껏 내찌른다.

 

안톤은 팔을 휘둘러 창대를 모조리 부러뜨려 버렸다. 그리고 내내 깔아 보던 경비대장의 목을 부여잡고 땅으로 패대기를 쳐 버렸다.

 

짜증이 담겨서 다소 힘이 실리긴 했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나는 급해서 이만 가 보리다.”

 

막사에서 나온 안톤은 일단 자신의 무기를 찾았다.

 

들고 가기엔 너무 무거웠는지, 아까 성벽에 비스듬히 세워 둔 지점에 그대로 있었다.

 

안톤은 그 앞에 서성이는 경비병 둘을 쓰러뜨린 뒤 대검을 탈취하고 성벽 위로 도약했다.

 

“자, 잡아라!”

 

성벽 위에 있던 경비들이 안톤을 보고 각자 무기를 꺼내 들고 다가오고 있었고, 아래에선 예의 경비대장이 잔뜩 노한 얼굴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듯싶으냐!”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지.”

 

어차피 마찰이 생긴 거, 그냥 한 번 막 나가 보자.

 

그런 생각 안톤은 성벽에서 뛰쳐내렸다. 성 밖의 사막이 아니라, 성벽 안쪽의 도심지를 향해.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 병사들의 힘으로는 안톤을 막아서기는커녕 따라오는 것조차 힘겨웠다.

 

안톤은 금방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도시 전체로 종소리를 울려 퍼트리며 소란을 피우는 것뿐이었다.

 

도심지에 들어선 안톤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로 단숨에 올라갔다.

 

필시 주변에 있을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분명 이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아넨교의 신전도 있겠지.’

 

그 예상은 곧이 들어맞았다.

 

안톤의 눈에 한 건축물의 상징이 보였다.

 

윤회와 운명을 상징하는 톱니처럼 테두리가 뾰족한 원.

 

아넨교의 신전에는 항상 붙어 있는 구조물이었다.

 

안톤은 당장 위에서 뛰어내려 그곳으로 향했다.

 

팍!

 

막 예배가 끝이 났는지, 신전 앞은 나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안톤이 신전 내부로 진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꺄아아아아!”

 

신이 홍해를 가르듯, 알아서 길이 열렸으니까.

 

하기야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괴인을, 그것도 한 손으로 거대한 대검까지 들고 있는 괴인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뭔가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군.’

 

문득 콜로세움에서의 탈출극이 절로 떠오른다.

 

그때도 이렇게 경비들이 그를 뒤쫓았고, 안톤은 대로변을 통해 그들의 추격을 물리치며 도주했었다.

 

다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렇게 조급해할 게 없다는 것 정도일까.

 

솔직히 명인급의 무인만 이곳에 없다면, 몇 명이 덤비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그, 그대는 누구신지요?”

 

사제복을 입은 젊은 사내는 마른 천으로 경전을 닦던 중에 안톤을 보고 기겁했다. 안톤은 신안을 개방해 그를 확인해 보았다.

 

하얀빛의 기운이 그의 심장에 계란 한 개 정도의 크기로 쌓여 있었다.

 

‘잔챙이군.’

 

그나저나 신이 없다면 저 신성력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한가하게 궁금증이나 해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안톤은 놀라 자빠지는 사제를 뒤로하고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적어도 앞에 있는 사제보단 수십 배는 거대한 신성력을 지닌 자가 있었다.

 

덜컥.

 

안톤이 고풍스러운 목재 재질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 안엔 7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노사제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주, 주교님!”

 

“진정하거라, 프라이안. 손님께선 이곳에 무슨 용무로 오셨는가?”

 

주교라 불린 노사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안톤과 눈을 맞췄다.

 

어째선지 서로 긴말은 필요 없었다.

 

“당신이 치료를 해 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소.”

 

“업고 있는 그 여인인가?”

 

“그렇소.”

 

“이리 내려놓게.”

 

노사제가 옆으로 물러나며 자신이 앉아 있던 소파를 가리켰다. 안톤은 여인의 몸을 그쪽에 뉘어 주고는 노사제를 향해 경고의 말을 날렸다.

 

“허튼짓을 하면 재미없는 일이 벌어질 거요.”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주교가 진중한 얼굴로 여인의 몸에 신성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는 뒤에 무장한 안톤이 있음에도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지, 아주 경건하게 신성 마법을 펼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치료 작업에 열중하던 노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을 치료하고 기력을 채워 넣었으니 금방 깰 것이네.”

 

아픈 이를 치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 생색도 내지 않는 그를 보며 안톤은 조금 민망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이내 뭔가 생각이 난 안톤은 급하게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풀었다. 그리고 거기서 10골드 가치의 금화 세 개를 꺼내 노사제에게 건넸다.

 

“……고맙소. 이건 보수요.”

 

“헌금인가?”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그럼 헌금이라고 생각하겠네. 이 여인처럼 아프고, 자네처럼 배고파 보이는 자들을 위해 쓰지.”

 

“내가 배고파 보이시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네. 이제 용무가 끝났다면 떠나 주겠나? 객을 이렇게 내쫓는 건 내키지 않는다만, 신을 모시는 곳이 소란스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아서 말일세.”

 

“그러겠소.”

 

직설적인 축객령에 안톤은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정 같은 것은 일절 제쳐 놓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자신은 영락없이 천하의 무뢰배이며 악당이었다.

 

‘왜 명인들이 하나같이 안하무인에 성격이 꼬였는지 이제야 알겠군.’

 

성문을 그냥 돌파하고 도심지를 쏘다니다, 신전에 들어와 주교를 협박해 강제로 치료를 시켰다.

 

곧 자신을 잡기 위해 군대가 이곳에 들이닥칠 거다. 아니, 이미 밖에서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뒷일 따위는 별로 생각지도 않고 벌인 일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혀 두렵거나 긴장되지 않는 건, 이렇게 깽판을 친 것에 대한 대가를 온전히 감당할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리다.”

 

“잘 가게나.”

 

다시 문을 열고 나온 안톤은 예배당을 걸어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닫혀 있는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눈부신 햇살과 함께 활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이 보인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활에 시위를 걸어 당긴 채 이쪽을 노리고 있었다.

 

“붉은 머리에 대검. 미리 들었던 인상착의와 똑같군. 레칸, 저놈이 맞나?”

 

“예, 맞습니다. 저놈입니다!”

 

곱슬머리 사내의 질문에 아까 성문에서 보았던 경비대장이 공손히 대답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양질의 은빛 무구들은 물론이며, 체내에 가득한 마나까지.

 

그 사내는 확실히 주변의 병사들과는 달랐다.

 

‘저 정도의 양이면 오러 유저겠군.’

 

남부로 따지면 대략 화경에 접어든 무인인 셈.

 

나이도 20대 후반 정도로 꽤나 젊어 보이니, 저런 오만한 표정도 이해는 간다.

 

허나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인질로 잡고 있는 주교를 석방하고 순순히 투항하라.”

 

그 말에 안톤이 코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인질로 잡고 있지도 않은 주교를 어떻게 석방한단 말인가.

 

“이 자식이 날 비웃는 것이냐!”

 

곱슬머리 사내가 검에 오러를 피워 냈다.

 

검신 위로 5cm 이상을 뒤덮은 그의 오러는 바람 부는 초원의 횃불처럼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결국 빛 좋은 개살구지.’

 

오밀조밀 뭉쳐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오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것 자체가, 사용자의 마나 제어력이 달린다는 뜻과 동일하다.

 

그 증거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온-누르나 탈티온, 가우스트의 오러는 아무리 두껍게 크기가 커져도, 바위처럼 단단했었다.

 

‘차라리 출력을 내리고 안정성을 추구했다면 더 나았을 것을.’

 

안톤의 눈에는 보인다.

 

지금 사내가 피워 내는 저 오러가 겉보기론 강해 보일지언정, 얼마나 불안정하고 틈이 많은지.

 

굳이 신안을 개방해 결을 찾을 필요조차 없는 수준 이하의 오러.

 

“오오!”

 

하지만 그런 안톤과는 다르게, 사내의 오러를 본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그저 보여 주기 식이었나? 그렇다면 왠지 미안해지는군.’

 

사내가 멋들어지게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분명 그는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망신살을 뻗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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