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64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64화
064. 조우
쟝-그리던을 벗어난 이후 첫 번째로 도착한 도시, 페논.
안톤은 그곳에서 정확히 일주일간 머무르며 세상 구경을 하다가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전력으로 조르디가를 향해 직행했다.
전력으로 운신술을 행하니 3일이면 충분했다. 비록 한밤중이 되어서이긴 했다만, 안톤은 조르디 가문령 내에 진입할 수 있었다.
페논까지 걸어서 5일, 그리고 도시 안에서 7일을 보냈으니 총 보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소우든의 국경을 넘어서부터는 항상 인적 드문 곳을 토대로 이동하였기에, 안톤은 지금 산속이었다.
“피 냄새?”
진득한 풀 냄새에 섞여 희미했지만 이건 분명히 혈향이었다.
더군다나 짐승이 흘린 피도 아니었다.
이렇게 산 전체에 눅눅하게 퍼진 혈향이 겨우 짐승의 것일 리가 없지 않은가.
안톤은 주변을 세세하게 관찰했다.
도처에 깔린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둘러보던 그의 초점이 한 군데에서 멈췄다.
‘화살?’
널리고 널린, 평범한 나무 한 그루였다.
다만 그 나무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안톤은 앞으로 다가가 화살을 휙 뽑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화살촉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았어. 얼마 되지 않았군.’
이 야밤에.
그것도 울창한 산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싶어진 안톤은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했다.
벌레가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예민해진 청각.
그 범위는 특이점이 나타날 때까지 점점 확장됐다.
“정신 차려! 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한 남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귓가로 전해졌다.
건너편에 위치한 산등성이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안톤은 망설임 없이 즉시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일단 가 보자.’
남자의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해 보였기에, 안톤은 청각을 열어 두는 걸 잊지 않았다.
대화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그게 뭐 어때서? 어느 쪽에서나 이용당하는 건 매한가지다.”
한 걸음. 한 걸음.
안톤이 지면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마다 비릿한 혈향과 음성은 점점 가까워졌다.
“좀 더 이 순간을 즐기고 싶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아쉽군. 그래도 마지막 정을 생각해서 편히 보내 주마.”
이제 안톤은 일반인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갔다.
안톤의 비상식적인 보폭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 번의 도약만이 남은 거리.
‘젠장, 늦었나?’
이미 검은 휘둘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냐. 아직이다.’
안톤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지면을 거칠게 박찼다.
일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
안톤의 신형이 평소보다 몇 배나 높은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몸이 딱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쯤.
‘지금이다.’
안톤은 자신의 중량을 한계까지 늘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안톤의 몸이 만근의 바위처럼 무겁게 추락했다. 떠오를 때만큼 빠른 속도였다.
육중한 갑옷의 무게까지 더해져서였을까.
휘둘러지던 검 위로 정확히 떨어진 안톤의 다리가 지면에 닿자, 둔탁한 굉음과 함께 땅이 크게 흔들린다.
콰앙!
흙먼지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안톤은 대치 중이던 두 명의 남자를 한 번씩 훑어보았다.
둘 모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안톤의 시선이 칼을 들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비록 그들보다 옅기는 하지만, 검은 늑대 단원들이 풍기던 구린내가 그에게서 나고 있었다.
‘요력.’
이제 누가 자신의 적인지는 자명해졌다.
투구에 가려진 안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도착하기 무섭게 일이 벌어지는군.’
지난날의 설움을 갚아 줄 시간이었다.
* * *
타르티안은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이자는 누구지?’
난데없이 등장한 의문의 남자.
겉보기로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허나 그렇기에 더욱 범상치 않다.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등장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기에.
‘설마…… 반박귀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다.
현경에 오른 무인이라면, 자신의 경지로는 실력을 짐작조차 못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여유롭게 주변을 관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니 그 추론에 대한 신뢰는 더욱 높아졌다.
정말 기공술을 배우지 않은 이가 이런 피바다 속에서 침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게 나쁜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이미 죽음을 수용한 상황에서, 더 최악인 상황이 무엇 있으랴.
타르티안의 사고가 인생 최대의 속도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낌새조차 없이 등장한 변수에 대해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철컥.
전신을 중무장한 그가 쇳소리를 내며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타르티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르디가는 지금 에스닌과 헤스갈, 둘로 파벌이 나뉘어 내전 중이라고 들었다. 맞나?”
목소리가 꽤나 어리게 느껴진다.
혹시 자기보다 어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그런 의심을 하면서도 타르티안은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줌의 기도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괴한이 내뿜는 그 분위기 자체에 압도된 것이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느 쪽이지?”
“그게 무슨 뜻…….”
무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타르티안이 뒤늦게 그의 질문을 이해했다.
“아! 저는 에스닌 공녀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군.”
의문의 괴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는 더 이상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타르티안은 혼란스러워졌다.
도통 상황을 알아먹을 수가 없던 탓이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가 용기를 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화는 나중에 마저 하는 걸로 하고…… 일단 정리 좀 해야겠군.”
그제야 타르티안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내에게 한눈이 팔린 사이에 주변은 샅샅이 포위된 상태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족히 쉰은 되어 보일 숫자의 복면인들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타르티안은 그들이 자신의 동료들을 해한 장본인들임을 깨달았다.
일단은 어둠 속에 계속 숨어 있다가 변수가 나타나니 즉시 그들이 몸을 내비친 것이다.
“넌 누구지?”
그렇게 물음을 던져 온 것은 새롭게 나타난 복면인 중 하나였다.
모두들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제일 상급자인 것 같았다.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이놈! 정체를 밝혀라!”
“너넨 모두 죽을 건데.”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내뱉는 말투.
그 짧은 한 마디에 때 아닌 정적이 찾아든다.
어이없게만 느껴지는 단언에, 그만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복면인들의 눈에서 일말의 경계심과 가소로움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그때 그 중심에 서 있던 괴한이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검사가 검을 뽑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었으나, 타르티안은 왠지 그 모습이 숭고하고 고결하게만 느껴졌다.
“쳐라!”
우두머리의 호령과 함께 복면인들이 바닥을 박차며 날아들었다.
그들의 검에는 하나같이 흉흉한 기운의 오러가 피어나 있었다.
타르티안은 경악했다.
쉰 명이 넘는 무인, 그들 모두가 화경에 오른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공세를 맞이하는 괴한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경의 무인이 맞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허나 그러한 감정은 길게 가지 못했다.
안톤이 검을 휘두르는 즉시, 자신의 생각이 큰 오산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저건…… 그냥 철검이잖아?’
그의 검엔 어떠한 기운도 서려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눈을 감았다 떠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검강, 아니 하다 못해 검기조차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복면인들의 검과 닿는 즉시 그의 검이 두 동강이 나 버리고 말리란 것은, 세 살배기 아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자명한 사실.
‘헛된 희망이었군. 뭘 기대했던 거냐.’
타르티안은 자신의 미래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해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이, 이게 무슨!”
그는 다시금 눈을 부릅 치켜떠야만 했다.
평범한 장검이 오러를 휘감은 검을 베어 낸 것이다.
그것도 두부를 가르고 지나간 것처럼 매끈하게!
순간 타르티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지니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검만이 아니었나!’
오러가 담긴 검을 베어 냈음에도, 괴한의 검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결국 그의 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복면인의 목을 베어냈다.
그 비이상적인 광경에 자리에 있는 충격에 빠진 것은 결코 타르티안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든 그의 심정과 마찬가지였으리라.
하지만 이미 전투는 시작된 이후.
복면 사내들은 수그러지지 않고 괴한을 향해 뛰어들길 주저치 않았다.
그러나 괴한은 오히려 그것이 아주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자세, 아주 좋지.”
괴한이 본격적으로 검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철로도, 바위로도, 검강으로도.
그의 검을 막을 순 없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베고 찌르기 위해 태어난 인간 같았다.
그의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서넛씩 피를 흩뿌리며 죽어 갔다.
타르티안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피하지 못하는 거지?’
무슨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으로도 그 검을 막지 못한다는 건 알겠다.
허나 결코 피하지 못할 만큼 그의 검이 신속하거나 현란하진 않았다.
외부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자니, 복면인들이 마치 검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일 정도다.
아무튼 전투가 끝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원래 있던 동료들의 주검 위로 그들의 시체가 쌓여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직 한 사람 뿐이 남지 않았다.
복면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던 자는 아니었다.
그는 괴한이 네 번째로 검을 휘둘렀을 때, 심장에 검을 틀어박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자는 처음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자였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멀리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서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타르티안은 그가 혐오스러우면서도 이해가 갔다.
자신 또한 막상 저런 무지막지한 검격 앞에 선다면 덜컥 겁이 나 몸이 굳어 버릴 테니까.
“대충 정리가 됐군. 그럼 당신이 할 텐가?”
이런 일을 벌여 놓고도 좀 전과 같은 말투다.
갑옷으로 온몸을 감추고 있어서 그런지, 타르티안은 더욱 더 그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치솟는 공포감.
타르티안은 그가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걸 감사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무, 무, 무엇을 말입니까?”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살아생전 이렇게 말을 더듬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인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창피했으나, 정작 괴한은 그런 것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저 녀석을 해치우는 일. 은원이 있을 것 같은데.”
“괘, 괜찮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인 괴한은 아직도 공황 상태인 녀석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그리고선 곧바로 자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이야기를 해야겠지. 당신은 암검, 혹은 린디아스 공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타르티안이 흠칫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
너무 예상외의 질문을 받은 탓이다.
암검 온-누르와 넬-린디아스 2공녀.
그들이 에스닌파에 가담하고 있다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렇다고 말단 검사들도 알 만큼 흔한 정보는 아니다.
타르티안의 신분은 사실 말단에 다름없었으나, 고위직인 아버지 덕에 내부 사정에 꽤나 밝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아마, 지금쯤 자신처럼 함정에 빠져 접전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자라면, 구해 낼 수 있을지도 몰라!’
허나 이건 자신만의 기대일 뿐이다.
금방 전에 서툴게 움직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몸으로 겪은 이후가 아니었던가.
타르티안은 본능적으로 치솟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억누른 채 신중히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죽었던 목숨. 아까울 게 무엇 있으랴.’
사는 것을 포기하니, 난잡했던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된다.
덕분에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었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해 주시오.”
* * *
“지켜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공녀님. 먼저 가겠습니다.”
린디아스의 옆에서 호위를 하던 검사 중 마지막 남은 이가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이들이 모두 주검으로 사라질 동안에도 꿋꿋이 그녀를 지키는 데만 집중했던 그였지만, 이미 상황은 끝났다.
적은 강했고, 추격은 끈질겼다.
결국 이렇게 막다른 곳까지 내몰렸다.
만에 하나.
실낱같은 가능성일지라도 타개할 방법이 있었다면, 검사는 끝까지 곁을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곁을 떠난 다는 것은 다른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전장으로 뛰쳐 들어간 검사는 무자비한 검에 난도질당하면서도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만신창이의 몸으로도 두 명의 적을 베는 투혼을 발휘한 그는 결국 목이 베여 흙투성이 위를 굴렀다.
유능함과 더불어 늘 미소를 달고 살던 그는, 검사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걸, 린디아스는 잘 알고 있었다.
“아…… 아…….”
머리가 어지럽다.
린디아스는 밀려오는 현기증에 그만 휘청거렸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쇳소리와 고통에 흐느끼는 신음.
욕설이 난무하며 서로를 증오하는 눈빛들까지.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는 곳이었다.
“어째서……!”
서로를 상처 입히고 해쳐야만 할까.
“도대체 왜!”
그리고 그 세계에 염증을 느껴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가겠다던 자신은 왜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누가 날 좀…… 도와줘요, 제발…….”
그 작은 읊조림은 전장의 소음에 묻혀 의미 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린디아스는 문득 고개를 뒤로 돌렸다.
역시 도망칠 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낭떠러지 너머의 어둠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아.”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걸어가 절벽 끄트머리에 선 린디아스는 슬그머니 그 아래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어둠이 깊은지, 그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낭떠러지.
그녀는 눈을 감고 그 아래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런데.
균형 잃고 쓰러지는 그녀를 누군가가 잡아챘다.
그리고 들려오는 낯익은 음성에 린디아스는 눈을 떴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절벽 아래서부터 솟아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색 머리.
하염없이 바라보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깊은 회색 눈.
예전 얼굴에 남아 있던 앳된 기가 많이 사라졌으나, 자신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랜만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