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24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24화
024. 믿음
“쯧쯧. 어쩌자고 저런 무식한 검을 갖고 온 건지…….”
수련장에 도착한 안톤을 바라보며 온-누르가 혀를 찼다.
벌써 한 달이나 이어진 툴툴거림은 이제 하루의 시작 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안톤은 한 귀로 흘리며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풀었다.
“이 검이 뭐가 어때서 그렇습니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온-누르와는 달리, 안톤은 자신의 새로운 검이 썩 마음에 들었다.
무슨 이런 단순무식한 검이 있냐며 온-누르는 질린 표정을 했었지만, 프로텍트 마법만 3중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저 느낌만으로 선택했는데 여러모로 자신과 잘 맞는 검이었다.
“이딴 걸 만든 놈이나 그걸 좋다고 쓰는 놈이나…… 하여간 북부 놈들은 하나같이 이해를 못 하겠구나.”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게 반응하는 안톤을 보며 온-누르가 고개를 도리질하는 것으로 검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뭐 그래도 지금 당장을 보면 네게 딱 맞는 검일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이라면 검강은 몰라도 검기는 능히 버텨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시작해 볼까?”
어느새 대검을 치켜세운 안톤은 철강석을 노려보았다.
휘익! 팅! 휘익! 팅!
육중한 파공음을 피워 내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대검이 목표지에 도달하자 그 기세와 상반되도록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다.
그 목표지란, 안톤이 육체를 단련할 당시 온-누르가 어디선가 구해 온 철강석이라는 이름의 바위였다.
철강석의 강도는 중량감 이상으로 어마무시했다.
암만 내리쳐 봤자 흔적도 남지 않는다.
허나 안톤은 이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강철 같은 의지와 기공에 비해 압도적으로 월등한 검술. 너는 참 불완전하고 기묘하다. 그리고 그 모순이 네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온-누르는 이를 지켜볼 뿐 아니라, 그 옆에 서서 끊임없이 불호령을 내며 안톤을 채찍질해 주었다.
굳게 믿으면 할 수 있다.
그러니 의심을 버려라.
질문은 받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는 안톤이 지닌 모든 의문을 일축했다.
“기. 즉 마나만이 전부가 아니다. 생명의 정신력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다. 반드시 베어 내겠다는 굳은 의지. 그것을 검에 담아내거라.”
휘익! 팅! 휘익! 팅!
온-누르는 앞에 있는 철강석을 반으로 갈라낼 수 있게 되어야 이번 수련이 끝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만 하여도 벌써 수십, 아니 수백 번의 검격을 받아 낸 저 철강석의 표면은 작은 실선조차 없이 매끈하기만 하다.
목표가 너무 까마득한 탓일까.
검을 휘두르다 보면 온갖 상념이 치밀어 오른다.
‘의심은 독이다.’
안톤은 고개를 떨치며 나약한 마음을 뿌리쳤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그다음 날.
‘언젠가 저 바위를 베어 내고야 말겠다.’
각오를 되새기며 약해진 정신을 붙잡았지만, 몸은 아니었다.
“하아. 하아.”
찢어진 손아귀에서 피가 뚝뚝 배어 나온다.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팔의 근육은 미칠 듯이 경련하고 있다.
몸은 마치 목욕이라도 한 듯 흠뻑 젖은 지 오래였고,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반동으로 땀방울을 하나둘 떨궈 냈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몸이 외쳐 온다.
하지만 안톤은 그런 외침들을 무시하며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멈추지 마라!”
이는 결코 계속해서 들리는 그의 다그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부터가 믿어야 한다.’
이 모든 수련은 믿음이라는 전제하에 성립된다.
스승인 온-누르를 믿지 않으면, 또 자신이 휘두르는 검을 믿지 않으면 결국 모든 과정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여기선 낙장불입이라고 하던가…….’
현재 자신의 상황에 이보다 알맞은 사자성어가 있을까.
한 달 전. 안톤은 단전을 부수는 파(破)의 과정을 거쳤다.
돌아올 수 없는 강에 발을 훌쩍 담근 것이다.
이제 돌아갈 길은 막혔다.
그러니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안톤은 또다시 스멀스멀 속에서 기어오르는 한 줄기의 의심을 떨쳐 냈다.
그리고.
휘익- 틱!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소리를 들으며 안톤의 의식이 깨어난다.
흠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하던 철강석.
그 표면에 전에는 없던 가느다란 실선이 생겨 있었다.
“수고했다.”
주변을 보니 어느새 석양이 붉게 물들었다.
정말로 한나절 동안을 전력을 다해 검만 휘두른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지루할 수도 있는 수련 방식이다.
하지만 온-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옆을 지켜 주었다.
“으음.”
그제야 안톤이 지친 몸을 바닥에 뉘었다.
대충대충 휘둘렀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었기에 정신력의 소모가 대단했다.
“앞으로도 의심이 생긴다면 내가 아니라 저 흔적들을 보거라. 그것들이 네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더해 줄 것이다.”
“멋있는 척은 그만하시죠, 스승님.”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톤은 고개를 들어 철강석을 바라보았다.
겨우 한 치 길이의 얇디얇은 선 하나.
철강석을 상대한 지 어느덧 보름이나 지난 지금 처음 낸 결과물이라기엔 얼핏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분 좋군.’
안톤은 자리에 누워서 지는 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하늘은 어느새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참이냐? 자려면 방에 들어가서 자거라. 뭐, 어차피 그 몸뚱이면 감기 따위야 걸리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온-누르는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어디, 새로운 몸은 마음에 들더냐?”
“새로운 몸이라는 말에 조금 어폐가 있는 듯하지만 뭐, 마음에 듭니다.”
“단전을 부숴 놓고 겨우 감상이 그거더냐? 하여간 삭막한 거 하고는……. 쯧쯧.”
대답이 너무 간소했기 때문일까.
온-누르가 실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마음에 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새로운 몸.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환골탈태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루 종일 상시적으로 체내의 마나를 순환시키는 기분이었다.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도 몸에 활력이 넘쳤다.
그게 너무 과했던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밥을 먹으려는데 수저가 부러지고, 문고리를 잡으면 문고리가 바스러졌다.
그 때문에 이 몸에 적응할 때까지 적잖이 골치를 앓아야 했다.
‘기의 발현을 아예 할 수 없다는 건 아직도 어색하게만 느껴지지만.’
기의 발현 여부는 전투에서 가장 큰 기여도를 차지한다.
허나 이제 안톤은 검강은커녕 검기도 발현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평생을 갈고닦은 무기를 잃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박탈감이라고나 할까.
육신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쳤음에도 배에 구멍이 난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실제로도 단전 자체가 날아갔으니 당연한 걸지도.’
이제 와서 미련을 가져 봤자 소용없다.
안톤은 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이 상태에서 싸운다면 린디아스 공녀와의 일전도 가늠치 못하겠군.’
가지고 있던 무기를 버렸으니, 이제 새로운 무기를 얻을 차례다.
이제 그만 들어가 쉬라는 온-누르의 말에도 안톤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더, 조금만 더 하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온-누르 역시 동이 틀 때까지 그 옆을 지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