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19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9화
019. 입문
별관 하나를 통째로 배정받은 안톤과 온-누르는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앞으로 안톤이 상대해야 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화경……. 그러니까 오러 유저라는 말씀이십니까?”
처음엔 당연히 잘못 들은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분명 기경의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하고 빌빌대고 있었는데, 방금 알아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더구나.”
무책임한 말을 참 쉽게도 던진다.
안톤이 타박의 시선을 던지자 온-누르가 뺨을 긁적였다.
“거, 언제 그렇게 실력이 확 늘은 건지. 참 의아하단 말이야.”
“됐고,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무위의 경지는 크게 넷으로 나뉜다.
소드 유저, 마나 유저, 오러 유저, 오러 마스터.
그리고 거기서도 작게 셋으로 또 나뉜다.
하급, 중급, 상급.
소우든에서는 그것을 인(人)급, 지(地)급, 천(天)급이라 구분하는 듯했지만 아무튼.
실전 경험과 검술로 어떻게 비벼 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같은 경지일 때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톤과 똑같이 마나 유저였던 린디아스처럼.
암만 마나를 검에 둘러 봤자 오러를 막아 내진 못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 세상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달 뒤에 돌아오시는 에스닌 님은 아직 화경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지. 헤스갈 님이 돌아오는 기일은 기약이 없고. 그러니…….”
잠시 말을 흐리던 온-누르는 이내 확고한 눈빛을 자아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준비다.”
준비.
그 단어에서 그가 어느 정도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란 생각에 안톤이 의뭉스러운 눈빛을 그에게 던졌다.
“준비라면……?”
“무인이 해야 할 준비라면 당연히 하나 아니더냐? 수련이다.”
그렇게 말하는 온-누르의 표정은 태평하기만 했고, 안톤은 한 번 그를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안톤과 온-누르는 별채에 속해 있는 후원에 마주 섰다.
어제 말하였던 비무를 위한 준비, 즉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전날에 대충 설명은 하였지만, 기공이 아니라 검으로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아직 네게는 생경하게만 들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걱정하지 마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너는 이미 한 번 그것을 행한 적이 있다.”
해낸 적이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릴까 싶었지만, 온-누르의 말이 이어졌기에 일단 귀를 기울였다.
“그 첫 번째는 체내에 지니고 있는 마나 홀, 즉 단전을 깨부숴 버리는 파(破)의 단계다.”
마나 홀을 깨부수겠다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뜻이 무색하도록, 시작부터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사실 기공을 배제한다 하였지만 완전히 그럴 수는 없다. 심기체 중 기를 포기한다고 하여도 지닌 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무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런 면에서 네가 쌓아 올린 기공은 참 적절하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지. 내 도움을 받으면 파의 과정은 손쉽게 이뤄 낼 수 있을 거다.”
온-누르의 방대한 기를 사용해 단숨에 단전을 부숴 낸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용하여 전신의 세맥을 넓게 확장하며 기를 분산시킨다.
그럼으로써 기의 발현은 더 이상 불가능해지지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기가 체내에서 순환되는 육체를 지니게 된다.
여기까지가 그가 설명한 1단계, 파의 단계였다.
안톤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은 나머지 설명을 다 듣고 나서 하기로 했다.
“앞선 파의 단계에서 강인한 육체를 만들었으면 이제 두 번째 의(意)의 단계로 넘어간다.”
“의라니요?”
“고된 수행으로 심(心)을 완성시키는 단계로, 최종적으로 사물에 의지를 담아내는 것이 그 목표라 할 수 있겠지. 여기선 기를 이용해서 검을 예리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의지, 즉 정신력을 사용한다. 네 의지가 무엇이든 베어 낼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어떤 고난에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면, 네 검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정신력…… 말씀이십니까…….”
“어쩌면 이 단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검신합일(劍身合一)이라 할 수 있겠지. 믿어라. 그만큼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인간의 정신은 기(氣)나 술(術)에 비해 그 힘이 부족하지 않다.”
믿으라고 하였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생각만으로 검이 단단해지고 예리해졌으면, 어느 누구도 귀찮게 기공을 수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안톤의 생각을 알기나 하는지, 이어진 온-누르의 말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의심하지 마라. 이 과정에서 의심은 독이다. 나는 일전에 그 남자를 통해 이를 확인했고, 게다가 아까 말했듯이 너 또한 검에 의지를 실은 적이 있다. 모르겠다는 표정이구나.”
스릉.
온-누르가 허리에 둘러맨 검을 뽑아냈다. 수수한 외형의 평범한 철검이었다.
“보이느냐?”
안톤은 그가 손으로 가리킨 끝을 보았다.
고운 선을 자아내는 검선에 작은 흠이 나 있었다.
“너와 내가 처음 만났던 날. 너의 마지막 일격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검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상처가 나고 말았지. 네 기력이 모두 바닥나고서 무의식중에 한순간이나마 강렬한 의지를 검에 담아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쩌면 그동안에 온-누르가 안톤을 매번 한계까지 몰아넣는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안톤에게 있어서 검에 의지를 담는다는 것은 너무나 애매모호한 개념이었다.
“처음에는 파. 두 번째는 의. 그럼 세 번째는 뭡니까?”
혹시 그곳에 해답이 있을지 몰랐다.
“세 번째 단계는 안(眼)의 경지이다. 내가 임의적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기에 너무 포괄적인 구분일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칭하자면 보는 경지라 할 수 있다.”
“보는 경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경지에 도달하여 신안(神眼)을 개방할 수 있게 된다면, 너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도대체 온-누르의 설명 중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잠깐 쉬어 가며 생각할 시간을 줬다면 모를까.
안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예를 들면 분명히 존재하고 느낄 순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기 같은 것이 그에 속하겠지. 너를 속박하고 있는 마법각인술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그걸 느낄 순 있지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네가 안의 단계를 완성하면 이 또한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의가 담긴 검으로 이를 베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거군.’
말이 잠깐 끊긴 틈을 타서 안톤이 질문을 던졌다.
“파와 의. 그리고 안의 단계까지 대충 알겠습니다. 헌데 그 순서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검에 의지를 담아내는 것의 윗 단계가 겨우 보는 것인지가 이상하더냐?”
“……그렇습니다.”
“신안이라는 것은 보겠다는 의지를 눈에 담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보다 육신에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더 어렵지. 생각이 많은 네 녀석은 어쩌면 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왜 사물보다 자신의 몸에 의지를 싣는 것이 어렵냐고.”
혹시 그가 독심술이라도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톤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생각해 보아라. 흰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과 검은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게 어렵겠느냐? 내가 생각하기에도 비유가 그리 적절치는 않다만, 너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물에는 의지가 없는 공백의 상태지만, 인간의 몸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온-누르가 옳거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스스로가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그런데 조금 부족할 수도 있는 설명을 듣고 잘 알아듣는 안톤이 기특했다.
“그렇다. 태어났을 때부터 장님으로 살아왔다면 모를까. 눈에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선 먼저 여태껏 보아 온 모든 경험들을 부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길고 길었던 그의 설명이 끝이 났다.
“내 말재주가 부족한 탓에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구나.”
이제야 안톤이 혼자서 잠깐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지만,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몸으로 직접 해 보는 수밖에.’
온-누르와 안톤은 본격적인 수련에 돌입했다.
제대로 된 순서로 행하자면 파(破)-의(意)-안(眼)의 순서로 수련을 시작해야겠지만, 일단은 파의 과정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한 달 뒤에 에스닌 공녀와 비무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결국 앞으로 뻗어 나가는 과정이다.
허나 파의 단계를 막 거친 이후에는 일시적인 무력의 상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그것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놀 수는 없으니 육체나 단련하자꾸나. 단전을 부수며 생기는 부담감을 보다 줄일 수 있을 테니 결코 무의미한 짓은 아닐 거다.”
“부담감…… 말씀이십니까?”
무언가 단어의 어감으로부터 불길한 느낌이 감지된다.
“혹시 파의 과정이 위험하거나 그런 겁니까?”
“껄껄. 쓸데없이 예리하기는. 아무렴, 멀쩡한 단전을 깨부수는데 몸이 멀쩡하겠느냐?”
그러고 보니, 안톤의 기억을 스치는 이들이 있었다.
마나 홀을 잃고 폐인이 된 무인들이었다.
“걱정 말거라. 내가 있지 않느냐?”
껄껄껄.
참 믿음직스러운 웃음이 아닐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