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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8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8화

018. 무호

 

 

지닌 바의 무위가 곧 지위가 되는 검인의 나라 소우든.

 

거기서도 무려 조르디가의 가주전에서 한 자리씩 차지했을 정도니, 그들 전부가 적어도 화경에는 오른 무인들이었다.

 

허나 온-누르가 내뿜는 살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내진 못했다.

 

살을 누르는 중량감에도 아무렇지 않은 건 딱 네 명뿐이었다.

 

처음부터 살기에서 비켜난 린디아스 공녀와 안톤. 그리고 조르디가의 현 가주인 슐츠 조르디와 온-누르였다.

 

상황을 보다 못한 슐츠가 직접 나섰다.

 

“그만하시지요, 선생님. 지나치십니다.”

 

진중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에 실린 엄중한 기가 장내를 환기시켰다.

 

분명 그의 말은 정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선 느낌이 가득했다.

 

“슐츠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은 그만하지요.”

 

직접적인 무력행사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그 이상으로 숨 막히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재잘재잘 잘만 입을 열어 대던 가주전의 장로들이었지만, 현경의 무인 둘이서 내뿜는 강렬한 기세를 경험한 이후로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온-누르와 슐츠 조르디. 그 둘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슐츠 조르디였다.

 

“선생님께 제자라니. 일단은 축하드릴 일이군요. 그나저나 어떻게 된 겁니까? 그동안 제가 추천했던 아이들도 저 아이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저로서는 꽤나 서운합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듯이, 슐츠와 온-누르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다.

 

정식으로 사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슐츠가 어렸을 때 그에게 처음 검을 가르친 것이 온-누르였다.

 

그러나 그런 관계라고 하기엔 그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뭐, 서운할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그저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슐츠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안톤은 대단한 녀석입니다.”

 

슐츠는 10년 동안 온-누르에게 보여 주었던 기재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하나같이 범인은 아득히 뛰어넘은 천재들이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들 제각기 무호를 임명받으며 어엿한 무인이 되었다.

 

그런데 저기 옆에 서 있는 안톤이라는 북부인은 어떤가.

 

손색이 없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추천한 기재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못 미치지 않는가.

 

‘도대체 저 아이에게서 무엇을 본 거지?’

 

다시 한 번 보아도 잘 모르겠다.

 

물론 보통 그 나이대의 아이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건 모두 보통의 자질을 지닌 범재와 비교하였을 때의 이야기다.

 

‘겨우 기경의 중입부 정도인가. 하지만 그가 제자로 삼은 이상 그만의 이유가 있겠지.’

 

안톤에게 고정되어 있던 슐츠의 시선이 린디아스를 향해 옮겨졌다.

 

원래 오늘 이 자리에 사람들이 모인 것은 순례를 무사히 마친 린디아스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갑자기 이야기가 엄한 데로 새 버렸군요. 일단은 저 안톤이란 아이는 선생님의 제자이니 이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선 말을 않겠습니다. 그래, 넬. 너는 그동안의 순례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어른들이 몽땅 모인 자리라, 가만히 말을 아끼고 있던 린디아스도 그제야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정한 목적지는 펭 제국의 수도 그리딘이었습니다.”

 

린디아스 공녀는 담담한 어조로 지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리딘 다음으로 향했던 록티아. 하지만 록티아를 둘러싼 시련의 절벽을 넘지 못하고, 츠레이바 왕국으로 경유하게 된 이야기.

 

대륙의 아홉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고대 유적지를 지나치며 경험한 모험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톤을 만나게 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만남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있는 사실 그대로, 자신이 느끼고 보아 온 것을 과장 없이 얘기했다.

 

“……이상입니다.”

 

“수고했구나. 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헤스갈이나 에스닌과 비교해도 무색하지 않다. 무호(武呼)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음…… 뭐가 좋을까…….”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돌아오며 작은 인연을 끌고 왔으니 소연화(小緣花)란 무호는 어떠하냐?”

 

린디아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순례가 끝나고 장남인 헤스갈은 용살검(龍殺劍)이란 무호를, 장녀인 에스닌은 무정검(無情劍)이라는 무호를 받았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작을 소에, 인연 연. 거기다 꽃 화라니.

 

하나같이 무(武)와는 관계없는 글자들이 아닌가.

 

심지어 지난 순례의 과정에도 동떨어진 무호였다.

 

무에 대한 가치를 가장 우선으로 치는 소우든의 정서에서, 이런 무호를 받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아버님은 이제 나한테 무인으로서의 기대를 접었구나…….’

 

린디아스는 눈물이 왈칵 차올랐지만, 여기서 쏟아 내면 그땐 정말로 끝이라는 일념으로 어떻게든 겨우 참아 냈다.

 

“순례 중에 삼주령 중 하나를 사용했더구나. 지(地)급의 보영전(寶領殿)을 개방하마. 그곳에서 원하는 것 중 아무거나 한 가지를 골라 가지려무나.”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린디아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자리를 파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모두들 하나씩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온-누르가 다시 나섰다.

 

“껄껄. 슐츠 님도 많이 심술맞아진 모양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이런 말괄량이 공녀님께 소연화라니, 참으로 안 어울리는 무호가 아닙니까. 헤스갈 님이나 에스닌 님 모두 제가 삼주령인(三主領人)을 맡았는데 그런 무호를 받을 만큼 린디아스 공녀님이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자식의 무호를 지어 주는 것은 아비인 제 권리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이건 좀 심했습니다. 혹 공녀님이 안톤에게 제압당했다는 부분이 맘에 걸려서입니까?”

 

“으음…….”

 

그 질문에 슐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대답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헤스갈 님이나 에스닌 님 두 분에게 여기 이 안톤과 비무를 해 보게 하는 것은.”

 

“새로 들인 제자를 너무 과신하시는 건 아니신지요?”

 

“과신이 아니라 확신라고 해 주시지요.”

 

“선생님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선생님이 아닌 저 아이에게도 의사를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슐츠의 따가운 시선이 온-누르가 아닌 안톤에게 향했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 안톤?”

 

안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었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아직 소우든의 문화와 정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넬-린디아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과, 무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부친인 조르디의 가주가 린디아스에게 좋지 않은 무호를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맘에 안 드는 온-누르가 상황을 반전시키길 원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집중 속에서 안톤의 입이 열렸다.

 

“저는 좋습니다.”

 

조르디가의 장남과 장녀.

 

그 가문의 이름값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들이겠지만, 안톤은 믿었다.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온-누르가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붙여 놓진 않았을 거라고.

 

“허……!”

 

그것은 탄식일까 경탄일까.

 

그렇게 안톤이 이곳에 도착하고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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