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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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7화
007. 결행
“쯧쯧, 얼마 못 버티겠구만.”
연병장을 지켜보던 콜로세움의 상인이 혀를 찼다.
상인의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역 검투사를 상대로 위태롭게 버텨 내던 훈련생 하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무참히 흙 위로 패대기쳐졌다. 더 볼 것도 없다. 쓰러진 훈련생이 근성을 발휘하여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인은 냉정히 가격을 책정했다.
“3골드.”
그 말에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벨토스의 표정이 굳었다. 같이 있던 양성소의 훈련 교관도 마찬가지다. 헐값에 사 온 노예를 3골드에 되팔게 되었으니 얼핏 큰 차익을 얻은 걸로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적어도 4, 5년 훈련을 시키며 드는 식비며 츠레이바의 국경을 넘는 입국비, 그리고 50일간의 긴 여정에 쓰인 인건비까지 고려한다면, 어떻게 본전이나 겨우 찾을 수 있을까.
“시험관이 예전과는 좀 다른 거 같습니다?”
벨토스는 원망의 눈초리를 담아서 시험관 역할을 맡은 검투사를 향해 쏘아 냈다.
이게 다 저놈 때문이다.
“다음!”
악착같은 거구에 극도로 단련된 육체. 확실히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의 몽둥이질에 훈련생들은 몇 번의 휘두름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으니.
시험이라는 특성 때문에 날이 없는 무기를 준 것이 아니었다면 모조리 죽어 나갔으리라.
“하하, 조금 기준치를 높이기로 했소이다. 처음이야 벨토스 경 말고는 검투사를 납품하는 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잖소? 우리도 잔챙이를 걸러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려는데 상인이 대뜸 끼어들어 나머지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벨토스 경이 지닌 양성소의 명성이라면, 기준이 조금 올랐다고 별반 다를 것도 없지 않소? 이건 그저 잔챙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벨토스가 이를 악물었다.
하는 수 없다.
여기서 더 발끈하였다간 스스로가 잔챙이라고 인정하게 될 판이었으니, 그저 다음 훈련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시험을 치를 다음 훈련생이 입장하자 콜로세움의 상인의 눈에 잠깐 흥미가 서렸다.
“호오? 저 친구는 꽤나 특이하군요. 혹시 ‘스티그마’입니까?”
“스티그마라니요?”
생소한 단어라는 생각을 하며 벨토스는 다음 훈련생에게 시선을 옮겼다.
상체에 빼곡하게 채워진 문신.
상인이 무얼 보고 특이하다 하였는지 벨토스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 혹시 각인마법이 새겨진 노예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맞습니다. 일반 노예들보다 서너 배는 더 비싼 값을 주고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잘 키우면 그만큼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구매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모두 잘 성장해 주었을 때의 이야기.
‘자체 점검에서 중하를 받았었나? 아무래도 본전치기도 못 할 것 같군.’
벨토스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기대를 접었다. 앞선 훈련생의 경우, 중상을 받았는데도 열 합을 채우기 전에 쓰러졌다. 그런 와중에 중하라니.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지 않은가.
저기 저 잔악무도한 검투사 놈을 상대로 일말의 시간조차 버텨 내지 못하리라.
‘그나마 마법각인술을 빌미로 가격을 조금 올릴 수는 있겠군.’
벹토스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연병장에서 시합이 시작됐다.
* * *
“다음!”
앞선 열댓 명의 훈련생들이 무참히 바닥에 널브러트린 검투사의 그 외침은 마치 어느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이제 다음은 안톤의 차례였다. 옆에서 대기하던 콜로세움 측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안톤은 연병장에 올라갔고, 이내 그 검투사 앞에 섰다.
2미터 가까이 될 법한 압도적인 체구에 흉폭한 근육들.
‘앤더슨보다도 큰 거 같군…….’
들고 있는 수련용 철검이 흡사 막대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앞에 선 안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머금었다. 연기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 안톤은 정말로 긴장했다.
앞에 선 검투사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러 마스터 앞에서도 안톤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은, 안톤이 그간 꿈꿔 오던 미래가 찾아오느냐 마느냐의 기로였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이번 기회가 실패로 돌아가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구속되어 평생을 살게 될 것이란 사실, 그 사실이 안톤을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후우…….”
안톤은 크게 숨을 내쉬며 정신을 환기시켰다. 전생부터 이어진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머리에 몰렸던 피가 조금 연해지는 듯 정신이 맑아졌다.
‘보아하니 고등 검투사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잘됐어.’
앞에 선 이 시험관은 이제 갓 이곳에 입성하는 훈련생들에겐 악몽처럼 느껴질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물론 결국엔 검투사 수준에서 하는 얘기였지만, 현재 안톤은 검투사도 되지 못한 일개 노예 훈련생의 신분이다.
‘한 방에 기절한다 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거야.’
안톤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철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잔뜩 겁에 질린 애송이처럼 보였던 것일까. 이를 지켜보는 상대 검투사는 씨익 웃었다. 조롱의 의미가 다분한 미소였다.
“나 원 참.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검투사의 목소리엔 경계심 따윈 조금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피비린내 나는 콜로세움의 경기장도 아니었고, 그 상대라곤 아직 첫 경기도 치르지 못한 훈련생이었으니까.
심지어 무기엔 날도 세워져 있지 않았다.
“한 방에 끝내 주마. 아프기야 무진장 아프겠지만 뭐, 죽지는 않을 테지.”
근육질의 검투사는 성큼성큼 안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중간 지점부터 확 하고 달려들었다.
휘잉-.
수련용 철검에서 파생되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육중한 파공음.
첫 수는 우측 하단에서 좌측 상단으로 이어진 사선 베기였다. 안톤은 허리를 뒤로 당겨 피했다. 콧등이 살짝 닿을랑 말랑 하는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검투사는 원래부터 연속 동작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공격을 이어 갔다.
휭!
검투사는 검의 무게를 이용해 몸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회전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더 빠르고 무겁게 횡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빠각-.
무언가가, 아니 뼈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안톤은 앞선 훈련생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멀리까지 날아갔다. 그 누구도 안톤이 다시 일어나리라 생각지 않았다.
“음…….”
그의 잔인한 성정상 호쾌한 일격이었다며 상쾌한 표정을 지을 법도 했지만…….
검투사는 저 멀리 날아가 내동댕이쳐진 안톤을 바라보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로 세게 친 거 같진 않은데……. 그리고 묘하게 손맛도 나지 않았고…….’
마치 솜으로 가득 찬 천 쪼가리를 때린 것 같달까.
검투사는 한 번 더 안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고통에 몸부림침도 없이, 마치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뭐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수긍하며 검투사는 외쳤다.
“다음!”
* * *
“크흠…….”
상인과 함께 창가에 앉아 이를 지켜보던 벨토스가 침음을 내뱉었다.
암만 약해도 겨우 두 수 만에 저 꼴이 날 줄이야. 벨토스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인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5골드로 합시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의지를 표명하듯 단호한 어조.
비싼 값이 드는 마법각인술이라는 것을 피력해 본들 값을 더 쳐줄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저걸 얼마에 샀더라? 2골드? 3골드? 이 녀석은 외려 손해를 봐 버렸군.’
벨토스는 순순히 고개를 까닥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녀석의 경우는 다른 노예와는 다르게…….”
“술주 전이 의식을 말하고자 함이겠지요?”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자꾸 말을 끊어 온다.
그렇다고 언짢음을 내색해선 안 된다.
이런 게 갑과 을의 관계라는 것일까. 벨토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예. 아까도 느낀 거지만 잘 아시는군요?”
“하하! 전에도 저런 노예를 사들인 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말이 나온 기회에 지금 당장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하지만 아직 나머지 노예들이…….”
“그 아이들도 오늘은 지쳤을 테니, 시험은 내일 마저 치르는 걸로 하시지요. 앞에 시험을 본 아이들의 계산도 그때 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상인은 주머니에서 금화 5개를 꺼내어 벨토스에게 건넸다.
“일단 이 녀석은 당장 사는 걸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