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5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5화
005. 수련
“어찌 됐건 수련할 시간이 늘어났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씁쓸한 미소를 내지으며, 안톤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내려다보았다. 부러진 건 팔뿐이었지만 삭신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탓에 온 피부가 멍 자국이었다.
‘망할 자식. 뭐가 악의는 없다야.’
안톤은 잔혹하기 그지없던 앤더슨의 폭행을 떠올렸다.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무력화된 상태에서도 교관의 멈춤 신호는 떨어지지 않았고, 대련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안톤은 그 시간 동안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앤더슨의 일방적인 공세를 맨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결국 그 덕에 팔이 나을 때까지 또 요양 기간을 얻어 내긴 했지만…….’
굳이 계속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그가 암만 고통을 잘 인내해 낸다고 해도, 그 과정이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니까.
무엇보다 계속 이 짓을 반복했다간 몸이 먼저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이걸로 교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으면 다행이겠지만…….’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철컹!
닫혀 있던 철창이 열리며 금발 머리의 소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소년의 이름은 레온으로, 불행히도 안톤과 같은 방을 쓴다는 이유로 병간호를 전부 도맡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어. 깨어 있었네, 안톤? 달리 불편한 건 없고?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막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지쳤을 법도 한데 레온은 안톤의 안부 먼저 물어 왔다.
“아니, 괜찮아. 훈련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너도 어서 쉬어.”
“알았어. 몸은 좀 어때?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고맙다, 레온.”
타인에 대한 순수한 선의.
전생에서도 그런 레온의 모습이 맘에 들어서 양성소 시절에 꽤나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까운 맘이 절로 피어났다.
다른 장소에서는 그것을 혹 미덕으로 여길 수도 있다.
허나 현재 이곳은 노예 검투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고, 언젠가 때가 되면 모든 훈련생들은 콜로세움으로 팔려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투사란 허명을 부여받고 서로 치고받으며 관객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한다.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지옥의 레이스.
레온은 그곳에서 얼마 버티지 못했다. 성실함을 기반으로 실력은 괜찮았던 것 같았지만, 그 유약한 심성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본인의 문제다.
안타깝기는 하여도 안톤이 도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혹시 지금부터 레온을 도와 검술 실력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평생을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빴다.
“오늘도 그 명상이라는 걸 하려는 거야?”
“어. 생각할 게 많거든. 근데 혹시 누군가에게 이걸 말하거나 하진 않았지?”
“응. 안톤 말대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 계속 비밀로 해 줘.”
몸을 누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레온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안톤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도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야겠군.’
바닥에 편히 앉은 자세를 취한 안톤이 눈을 감고 천천히 감각을 하나씩 깨우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호흡을 유지하며 본격적인 마나 연공이 시작됐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전생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빨리 늘어나는군.’
인간의 몸에는 마나 홀이라는 기관이 있다.
체내에 마나를 보관할 수 있는 그릇 같은 것으로 그것이 커질수록 축적할 수 있는 마나의 양 또한 늘어난다. 마나 홀을 늘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계속 마나를 밀어 넣다 보면 고무가 늘어나듯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통해 대기 중의 마나를 마나 홀까지 밀어 넣는 방법을 마나 연공법이라 부른다. 물론 이 호흡법 또한 가지각색으로 가문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어느 곳을 가던 연공법을 비밀리에 계승시켜 나간다는 것은 같았다.
허나 안톤의 경우, 완벽한 비밀 유지가 가능했기에 직계 혈손들이나 익힐 수 있는 비전까지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이름난 무가들의 것에 비하면 조금 손색은 있겠지만…… 코르보 마나 연공법 정도면 꽤나 괜찮은 편이지.’
안톤은 체내에서 정해진 혈로를 따라 마나를 순환시키며 마나를 계속해서 홀로 집어넣었다.
전생엔 마나 응용 같은 부분에선 꽤나 소질이 좋았지만, 마나 홀이 유연하지 못하고 너무 뻣뻣하게 굳어서 마나를 늘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과 달리 마나 홀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민감한 기감으로 잡힐 정도로 수련의 성과가 좋았다.
‘이 정도 속도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3년. 그 안에 마나 유저 중급 정도의 마나양까진 모을 수 있겠어.’
그러고 나서.
이제 그 언젠가를 꿈꾸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안톤이었다.
* * *
“안톤, 어서 일어나! 아침이야!”
새벽부터 호들갑을 떨어 오는 레온을 마주하며 안톤은 잠에서 깼다.
늘 느끼지만 이 시간이 제일로 고역이었다.
본래 그는 아침잠이 많은 편은 아니다.
허나 매일같이 자는 시간을 쪼개 가며 늦은 밤까지 마나 연공을 붙들며 지내니 유독 아침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펴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안톤은 한결 개운해진 정신으로 입을 열었다.
“레온, 너 요즘 키가 더 큰 거 같다?”
“그래?”
안톤은 위아래로 레온을 쑥 훑어보았다. 예전 그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톤은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하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군…….’
정처 없이 지나간 3년.
안톤은 짧게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보았지만, 사실 별로 떠올릴 것도 없었다.
앤더슨이 콜로세움으로 납품될 때까지의 몇 개월을 제하면 오로지 수련, 그리고 수련뿐인 일상이었으니까. 앤더슨이 훈련소를 떠나고 나서는 교관도 슬슬 시들해졌는지, 더 이상 안톤을 못살게 굴지 않았다.
참 다행인 일이었다.
“나보다는 안톤이 훨씬 더 많이 변했지.”
열두 살 성장기의 소년이 어느덧 청년이 될 수도 있을 만한 시간. 변화가 있었던 것은 레온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3년간 안톤에게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은 외적인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떡 벌어진 어깨에 평균 신장을 웃도는 훤칠한 키.
아직 열다섯밖에 안 된 소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건장한 체격을 지니게 되었다. 변한 것은 육체의 성장만이 아니다. 내적인 부분에서의 성장 역시 엄청났다.
‘이 정도면, 마나 홀의 크기만으로 따지면 일반 평기사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인가.’
고작 마나 연공을 시작한 지 3년째라기엔 대단한 성과물.
밤잠을 줄여 가며 마나 연공에 매달린 덕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마나만 있으면 오러도 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러를 뽑아내던 순간의 감각과, 발현되기까지의 기의 흐름.
단 하루뿐이었던 경지였지만, 눈만 감으면 그 모든 것이 선명했다.
‘역시 마나가 가장 문제인가.’
일반적인 무인들의 경우 매 단계마다 벽에 부딪치기 마련이라지만, 이미 그 길을 한 번 지나친 경험이 있는 안톤이다. 마나양만 충족된다면 이전 생에 도달하였던 오러 유저의 경지까지는 막힘없이 도달하리라.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서 자유의 몸이 된다면, 일단은 어딘가 산속에 틀어박혀서 몇 년이고 수련만 하고 싶군……. 그러다가 만족할 만큼 강해지면, 대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연병장에 집합한 안톤은 교관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