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7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79화
셀린의 창백한 얼굴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즉시 셀린의 입에 이물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기도를 확보해 셀린과 입을 맞추고 내 호흡을 불어넣었다.
고등학교 때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인공호흡법을 설마하니 이 세계에서 사용할 줄은 몰랐지만, 당시엔 귀찮았더라도 이러한 지식을 배웠다는 사실에
정말로 감사했다.
오랜만에 하는 인공호흡인 만큼 다소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셀린에게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손으로 꾹꾹 누르기를 여러 차례.
쿨럭! 하고 셀린의 입에서 물이 조금 흘러나오며, 그녀가 조금씩 스스로 호흡하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였다.
협곡을 이용해 드레이크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계획은 정말 무모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셀린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둘 다 지칠 대로 지쳤고, 셀린은
의식을 잃었으며, 현재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검은 드레이크가 우리를 추격하려고 따라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 우선은 어디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후우, 후……! 크윽……!”
움직이지 않는 몸을 다그쳐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등에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도 마지막에 통나무와 부딪친 시점에서 오러가 바닥나 제대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어떻게든 움직일 수는 있었다.
나이아스 씨의 보조 마법도 아직은 효과를 발휘했으나 그만큼 충격을 흡수하고 우리의 몸을 지켜 주었는데, 제아무리 마스터의 마나라고 하더라도 언제
보조 마법이 해제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스트렝스 마법이 풀리기 전에 서둘러 셀린을 등에 업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릿속이 핑핑 도는 감각을 느껴야 했지만, 이대로 나까지 정신을 잃으면 둘 다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입술에 피가 나도록 물어뜯으며 그 피 맛과 고통에 정신을 다잡고서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를 그렇게 더 움직였을까?
그야말로 에레나 여신님의 가호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비를 피할 용도로 사용할 만한 작은 바위 동굴이 보였다.
만약 이것이 여신님의 가호가 아닌 이름 없는 옛 신의 저주라면, 저 동굴에는 아마 몬스터가 살 것이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가장 하급의 고블린이 한 마리 나타난다고 해도 도저히 쓰러뜨릴 것 같지가 않았지만, 선택할 만한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제발
몬스터가 없기를 바라며 천천히 동굴로 향했다.
“……여신의, 가호였나?”
동굴 안은 깨끗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입구에 핏자국이나 동물의 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몬스터가 보금자리로 삼았던 곳은 아니라는 의미겠지.
검은 드레이크의 추격을 피하며 협곡에 몸을 던지고, 간신히 살아 나와 향한 곳이 이런 몬스터가 없는 안전한 동굴이라니!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자, 여신의 가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헛웃음 지으려니, 머릿속이 핑! 하고 도는 것이 느껴지며, 내 몸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하필 이럴 때에…….’
오러가 한 톨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러 탈진 현상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억지로 정신을 붙잡아 가며 몸을 혹사시켰으니, 그야 기절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동굴에 도착해 비는 피했지만, 나까지 정신을 잃으면, 셀린과 나는 이대로 차가운 동굴에 방치된다.
체온을 지속해서 빼앗겨 둘 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이젠 입술을 물어뜯을 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이 스르르 감겨 왔다. 이번엔 미처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으윽, 추워…….’
몽롱한 정신 속에서 온몸이 싸늘함을 느끼곤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이나 무거웠고, 눈은 떠지지 않았으며, 마치 나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정신이 있는데도 그저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뭐지?’
그 순간, 무언가 보드라운 것이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만큼이나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달라붙는 데 기분이 나쁨을 느끼거나 그렇진 않았다.
도리어 마음 한구석이 안심되는 것이 아직은 추위가 제법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무언가가 내게 닿는 순간 덜덜 떨리던 몸이 안정을 되찾듯 떠는
것을 멈추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 손을 더듬거려 나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그것을 끌어안았다.
그 때문에 그것과 피부가 달라붙는 면적이 훨씬 넓어져, 차갑고 축축하고 끈적한 그 느낌이 더욱 내 피부에 와 닿았으나 마음은 훨씬 더 안정되어
알 수 없는 충족감 같은 것이 채워짐을 느꼈다.
또한 처음엔 차갑고 축축하기만 한 그것을 제법 오랫동안 끌어안으려니, 내 체온이 보존되어서 그런지 조금씩이지만 점점 몸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차갑게 식은 몸이 온기를 느끼기 시작하자, 다시금 수마가 몰려들며 몽롱한 내 정신을 의식의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고, 나는 다시금 정신을
잃고 보드라운 그 무언가를 껴안은 상태로 잠이 들고 말았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는 몸에 추위 따위는 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 ‘내가 추위를 느꼈나?’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몸은 따뜻했고, 또한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팔이며 다리, 가슴에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찰싹 달라붙어 기분 좋은 감촉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부드러운 그것을 살짝 쓸어내리자, 어쩐지 그것이 자신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조금 꿈틀하는 듯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고 손을
계속 움직여 그 부드럽고 말랑한 촉감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잠든 의식을 일깨웠다.
‘내가 대체 얼마나 잠들었지?’
머리가 꽤 지끈지끈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잠을 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내 동료는 늦잠에 그다지 관대한 성격이 아니다.
루시안은 천연 알람시계라도 되는 듯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잘 일어나고, 셀린 역시 아침형 인간이라 그런지 해가 뜨면 빠릿빠릿 잘도 일어난다.
유일하게 나만이 늦잠을 사랑하는 편이라, 그날 딱히 급한 일이 없다면 일어날 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자주 침대나 침낭 속에서 뭉그적거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루시안과 셀린은 나를 가볍게 나무라며, 이불과 침낭을 걷고 잠에 취한 나를 깨워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릿속이 엉망일 정도로 오래 잤는데, 루시안과 셀린 둘 중 아무도 나를 깨워 주지 않았다니,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할 일이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밥 먹을 때는 깨워 주고는 했는데 말이다.
‘……잠깐만, 내가 대체 어디서 잠이 들었지?’
의아함을 느끼며 기억을 천천히 되돌려 보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엘리시아, 루시안, 셀린 그리고 세라 누나와 함께 국왕을 만나고 영원의 숲으로 향한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그렌 씨와 케르츠 씨, 루웬 씨 남매를 만나 영원의 숲 안내를 받았으며, 우리는 뤼피올 마을에 당도했다.
그 후 목표했던 프롤륀 사제님을 만나 검은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영원의 숲 금역으로 이동해 봉인된 옛 신의 신전을 발견해…….
‘……!’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의식이 각성하듯 맑아지며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주위를 둘러보며 다급히 나와 함께 검은 드레이크의 추적을 피하며 급류에 몸을 맡긴 뒤에 의식을
잃었을 셀린의 모습을 찾았다.
“셀린, 셀린!”
그러나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아직도 밖은 쏴아아! 하며, 빗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더듬거려 만져 보니,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것이 만져지는 것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밖이 아니라 내가 셀린을 데리고 들어왔던 동굴임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동굴 속이기 때문인가? 검은 드레이크에게 쫓겼던 시점이 슬슬 점심시간이 넘어가는 오후 무렵이었으니,
정신을 잃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벌써 한밤중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 이상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당시에 나와 셀린은 비와 물 때문에 몸이 차갑게 식었는데…… 정신을 잃었다면 분명히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거야.’
그러나 나는 살아 있었고 또한 몸은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냉정함을 되찾고 어둠 속에서 다시금 손을 더듬거려 보자, 바닥이 조금
축축하긴 하지만 옷으로 생각되는 천이 깔렸음을 알았다.
그리고 내 몸은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라는 것 또한 알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설마하니 기절하면서 옷을 벗으며 기절했을 리 없을 테고, 평소 자신의 잠버릇 중에 옷을 허물 벗듯 탈피하는 그런 잠버릇은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도 옷을 벗고 있고, 벗은 옷은 이불 대용처럼 바닥에 깔려 있다?
내가 한 기억이 없으니 분명히 다른 누군가가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의미다. 이곳엔 나를 제외하면 단 한 명뿐이다.
“셀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몸에 딱 달라붙은 그 무언가를 손으로 더듬거려 보았다.
처음 동굴 바닥을 확인할 땐, 단순히 이불이거나 뭔가의 짐 덩어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만져 보니 그것은 분명히
살결이었다. 그것도 나와 같은 딱딱한 남성의 살이 아니라 부드럽고 말랑한 여성의 살결이다.
“……간지러워. 아넬.”
“……아! 미, 미안…….”
그리고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그것을 살짝 쓰다듬으려니 나지막이 셀린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황급히 손을 떼고 작게 헛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했던 그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에, 적잖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굴에 남녀가 추위에 떨고, 그 뒤엔 둘 다 알몸으로 붙어 있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시나리오는 내가 인공호흡으로 간신히 셀린의 호흡을 되찾게 해 힘들게 동굴까지 셀린을 옮겼지만, 곧이어 나 역시 탈진하고 말아
정신을 잃었고, 그 사이에 셀린이 정신을 되찾아 서로의 잃어버린 체온을 되찾으려고 옷을 벗고 밀착했다는 것이다.
체력이 전부 소진된 상태에서 불을 피울 만한 도구도 없고 또한 비가 이렇게나 지속해서 내리는 상황에서, 설령 도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을 제대로
피우기란 힘든 일이니까, 서로의 체온을 나눔으로써 저체온증으로 죽는 것을 막은 것일까?
그렇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내가 맘껏 쓰다듬고 더듬었던 그 부드럽고 말랑한 무언가는…….
“몸은 좀 괜찮아?”
“어? 아, 그래 괜……찮은 것 같아. 셀린, 너는?”
“나도, 크게 다치거나 한 곳은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미안해. 도중에 의식을 잃는 바람에…… 아넬도 많이 지쳤을 텐데, 이곳까지 날 데리고
오느라 힘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