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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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38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6권 - 13화
제국력 1390년 6월 10일.
그라다 왕국 레자 전선.
대륙 연합군 제4군의 대규모 병력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수는 무려 40만을 넘어 50만에 육박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50만의 병사들에게서는 어떠한 전의도, 투지도, 사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곤함과 극도의 불안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레자 전선을 빼앗기면 바로 그라다 왕국의 수도다. 그렇다보니 수도에서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절대적인 위기 앞에 대륙 연합군 제4군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
공작도 아닌 후작이 대륙 연합군 제4군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그라다 왕국에 공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라다 왕국의 존망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이다 보니 타 국가의 공작이 총사령관으로 내정될 수가 없었다.
끔찍하기만 한 전투는 한 달에 수십 차례나 벌어졌고, 많은 수의 병력이 자신의 한 마디에 죽어 나갔다.
또한, 왕국에서 거는 기대는 엄청난 부담감이 되어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그라다 왕국의 상황이 심각하게 변한 것은 불과 일 년이라는 시간에 무려 다섯 개의 영지를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연금술사의 탑에서 새롭게 전장으로 몰아넣은 몬스터들.
상상을 초월하는 몬스터들의 능력은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다독여야 할 지휘관들까지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검에 베이지 않는 오크, 창이 박히지 않는 트롤, 철퇴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오우거.
설령, 상처를 입혔다고 하더라도 급격히 회복하는 재생능력과 이전보다 배는 강력해진 힘과 속도 앞에 병사들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
죽일 수 없는 몬스터!
거기에 이미 악마의 기사단이라 불리기 시작한 수호 기사단까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라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싸우는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의 얼굴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차례나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전쟁터로 나간 지휘관들처럼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은 하루도 꺼지질 않았다.
수도에 남은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이었다.
그런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의 막사 안.
술병이 굴러다니는 막사 안과 탁자에 널브러져 있는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의 모습은 결코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라고 볼 수 없었다.
“틀렸어…… 틀렸어…….”
같은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 굴러다니는 빈 술병들을 다 마셨다면 잔뜩 취해 있어야 했지만 그는 조금도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
술을 마셔도, 잠을 자도, 잊히지 않았다.
전쟁의 패배. 그리고 죽음의 공포.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결코 이렇지 않았다. 그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고, 사명감 또한 남달랐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는 그를 절망감에 빠트렸다.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검술을 할 줄 모른다. 그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날 뿐이었다. 총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받은 이유는 후작이라는 위치와 그를 보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귀족들이 다수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쉬운 전쟁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몬스터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국왕 앞에서 다짐했었다. 그리고 전쟁터로 나왔다.
싸웠다. 너무나도 막강한 몬스터들 앞에 연이어 패배를 했지만 절망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 달 전 그의 곁에서 힘이 되었던 마지막 귀족까지도 오우거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본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그날의 전투 이후 절망감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곁에는 많은 지휘관들이 남아 있었지만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에게는 다른 나라의 인물들일 뿐이었다. 또 같은 나라 인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능력하게만 보였다. 그라다 왕국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진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또한, 패배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은 지휘관들의 시선은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총지휘관이 될 자격이 없어!!”
“당신은 언제고 나까지도 죽게 만들 거야!!”
“살인자! 겁쟁이! 무능력자!!”
회의가 있을 때조차도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두려웠다. 마치 전쟁터에서 몬스터를 앞에 둔 병사처럼 모든 지휘관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두려웠다.
“틀렸어…… 틀렸어…….”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서서히 잃어간다.
***
빽빽하게 들어찬 막사들을 바라보는 이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악마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수호 기사단의 단장인 루스티 히에브의 곁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정탐 결과 지금이 기회입니다. 더 기다렸다가는 늦을 것 같습니다.”
40대 초반의 기사가 보고를 했고, 루스티 히에브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브레코, 네가 직접 가도록.”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브레코라 불린 사내는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루스티 히에브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끝났군.”
50만에 이르는 대륙 연합군 제4군을 바라보던 루스티 히에브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마지막 불꽃이라도 태우듯 6월의 태양은 뜨겁기만 했다.
***
꿈을 꾸었다.
아주 지독한 꿈을 꾸었다.
오우거에게 팔이 뜯기고, 오크에게 다리를 먹히고, 미노타우로스의 발에 몸이 짓밟히는 끔찍한 꿈을 꾸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에게 당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구해주는 이는 없었다.
웃었다.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웃었다.
오우거에게 팔이 뜯기자 한 지휘관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듯 비웃었고, 오크에게 다리를 먹히자 또 다른 지휘관이 잘 됐다는 듯 웃었으며, 미노타우로스의 발에 몸이 짓밟히는 순간 모든 지휘관들이 꼴좋다며 배를 부여잡고 통쾌하게 웃었다.
“허억, 허억, 허억…….”
땀에 흠뻑 젖은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가쁜 호흡을 뱉어내며 너무나도 생생했던 꿈을 떠올렸다.
부들부들…….
너무나도 끔찍했던,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은 온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두려움이고, 공포였으며, 절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의 눈빛과 행동, 조소가 싫었다.
“물, 아니 술…… 술이 어디 있지? 술이 어디 있는 거야!!”
캄캄한 막사 안에서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손을 더듬이 술병을 찾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술이 없자 그는 화를 냈다.
“여기.”
턱!
술병을 집어든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곧바로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러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척.
“쉿.”
차가운 금속이 목덜미에 느껴졌다.
흠칫!
“꿀꺽…….”
“좋군.”
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성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웃는 것 같았다.
“누, 누구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잠시 말을 멈춘 사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내 손에 죽느냐, 다른 이들의 손에 죽느냐.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후작.”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빠르게 머릿속을 회전시켰다. 사내의 음성으로 아는 사람들을 모두 떠올려봤지만 일치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죽인다고 했으니 정적일까?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전쟁에서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으며, 총사령관답지 않게 절망과 불안감에 휩싸여 이미 병사들과 왕국에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 자신을 굳이 죽일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원, 원하는 게 뭔가?”
“나는 이래서 검술을 익히지 않은 자들이 좋단 말이야. 역시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하.”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사내의 음성에서 호감을 느꼈다.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전율처럼 머릿속을 타고 흘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
아니, 그건 사내가 말을 할 테니 중요한 것은 그가 원하는 바를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목숨.”
간단한 두 마디의 말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전율처럼 머릿속을 흘렀던 것처럼 당장 죽음이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온몸을 뒤덮는 것만 같았다.
“내, 내 목숨을 원하는 건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사내는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후작.”
무덤덤한 그 음성이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을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 나는…….”
“아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내가 당신을 죽인다는 것은 아니니까.”
“후우…….”
우습게도 안도의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해서 사내는 웃었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순수한 즐거움의 표현인지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알 길이 없었다.
“총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직책.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그렇네.”
바로 대답을 한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자연스럽게 나온 말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러한 한마디의 위로를 듣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패배.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무능력자라는 노골적인 시선들. 위에서 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잃어가는 신임. 전장의 공포! 죽음의 절망감!”
“으으으…….”
자신의 속을 꿰뚫는 사내의 말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할 말이 없었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 죽고 싶을 뿐이었다.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죽여 드리겠습니다. 후작.”
핏.
“아, 아니네! 아니야!”
따끔한 고통과 함께 흘러내리는 핏물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뿌리 뽑듯 없애버렸다.
“쉿! 목소리가 크면 곤란합니다.”
귓가로 다가와 말을 하는 사내의 음성이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 알았네.”
“하하하, 말이 참 잘 통해서 기쁩니다.”
사내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가 유쾌하게 웃을수록 목숨의 위협이 줄어들 거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몰랐다.
“자, 그럼 이제 제가 예의 없이 이 늦은 시간에 찾아 온 목적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경고를 하자면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놀라서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소리가 나올 시에는…… 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후작.”
“아, 알았네.”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사내가 인간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만 같은 그의 말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간단하게나마 소개를 드리자면 전 연금술사의 탑에서 왔습니다.”
“……!”
“역시 말이 통해서 아주 흡족합니다. 후작.”
놀라더라도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경고를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착실하게 지켜나갔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사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것을.
결코 소리를 내지 않으리라! 후작은 다짐했다.
“총사령관님이시니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전쟁의 승패를.”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깊은 절망감에 빠진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이다.
“우리는 대륙을 피로 물들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동안 찾지 못했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후작도 아시다시피 그러기엔 세상이 그리 맑지만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뜻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면 이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필요도, 애꿎은 피를 보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말입니다.”
사내는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결정은 앞으로 5분 드리겠습니다. 5분이면, 딱! 자신의 생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알맞은 시간이라고 판단합니다. 지금까지 말이 잘 통했으니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믿겠습니다. 그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후작.”
사내에게서 받은 5분이라는 시간.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미친 듯이 생각했다.
자신이 처지, 미래, 연금술사의 탑과 대륙의 관계, 그라다 왕국의 귀족으로써의 올바른 행동, 가족들의 생사, 50만에 이르는 병사들의 생사 등등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엉키고 엉켜들었다.
그렇게 5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촉박하게 지나갔다.
“5분 끝.”
사내는 간단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살짝 베인 목에 검날을 자극시켰다.
“내, 내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사내가 대답했다.
“원한다면 조용히 모시고 오겠습니다.”
“가, 가능한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기사라는 말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그제야 사내가 악마의 기사단인 수호 기사단의 기사임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사내는 어둠 속에서 피식 웃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맹세를 해주게.”
“꽤나 까다롭습니다. 하하하. 뭐, 가족들의 생사가 걸렸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사내는 정식으로 맹세를 했다.
그리고 그 맹세가 끝나자 에르셀 티모슈크 후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우선 잘 부탁드립니다. 티모슈크 후작님.”
사내는 어둠 속에서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고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