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56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56화
대도시인 만큼 적잖은 모험자들과 이종족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방을 잡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고민했었지만, 아직 낮 시간대이기도 하고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여관의 숫자도 적은 편이 아니었기에 의외로 방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루시안이 사용할 방 하나와 여성 동료들이 사용할 큰 방 하나를 빌리고 나서, 우리는 조금 늦은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식사에는 우리들과 동행한 이종족 삼남매도 자리에 동석했다.
“설마하니 너희들이 세르피안 왕국의 세 신성들일 줄이야. 이거 놀라운데.”
“응? 저희를 알고 계셨나요?”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래도 마냥 음식을 기다리고 있기엔 좀 심심하기도 하고 거기에 우리들도 그렇고 그렌 씨네도 그렇고 서로 모험자이다 보니
의뢰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그렌 씨를 비롯한 루웬 씨, 케르츠 씨는 우리들이 세르피안 왕국의 세 신성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딱히 직접적으로 신성이라는 칭호를 말한 것은 아니었고(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대놓고 ‘은빛 검사’니 ‘마검사 루시안’이니 말하는 것은 쪽팔리지
않은가.) 그저 세르피안 왕국 모험자 길드 본부 소속의 모험자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단번에 그렌 씨가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맞혀 버린 것이었다.
거리상으로 세르피안 왕국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우리들의 칭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 놀라면서 말하자,
그렌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그야 물론 알다마다. 각 왕국의 모험자 길드는 서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지만, 어차피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평민들의
집단이라는 점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최소한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너희들도 가끔씩 타 왕국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면 소식 정도는 길드에서
들을 수 있었을 테지?”
그렌 씨의 말에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세르피안 왕국에서 있었던 큼직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문이 이곳까지 흘러오지. 최근 세르피안 왕국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하면 세르피안
검술학교 학생들이 토벌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다수의 이상 현상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았던 일이 있겠지. 그 이전에도 이상 현상 몬스터 관련으로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에 대부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너희 신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은빛 검사라 불리는 소년이 열 살의 나이에
B급 이상 현상 몬스터를 단독으로 토벌하고, 다른 신성들 역시 크고 작게 몬스터 토벌에 힘쓰는 등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워낙 믿기 힘든
이야기여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소문이었는데, 네가 그 길드 본부 소속의 모험자이고 보기 드문 은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던 거다.”
그렌 씨의 말을 듣고 있던 케르츠 씨는 ‘냥냥.’ 하고 소리를 내며, 자신의 꼬리를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면서 그렌 씨의 말을 이었다.
“한때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곳 모험자들끼리 장난삼아 내기 같은 것을 걸기도 했을 정도였다냥.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소문들이 들려오고 세르피안 왕국의 국왕조차 공식적으로 신성들의 공을 치하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그 허무맹랑한 소문들이 거의 대부분 사실이라는
것 또한 빠르게 소문이 번졌었다냥.”
“즉 대륙의 모든 모험자들에게 있어서 여러분들은 꽤나 유명인이라는 소리예요. 설마하니 그렌의 말처럼 이곳에서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새삼 대륙의 정보력에 대해서 너무 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처럼 초고속 네트워크 시스템 같은 것이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연락책이라고는 고작해야 편지를 보내고 배달부나 비둘기가 직접 움직이는 것
정도가 전부이고 급한 경우에 한에서만 음성전달 수정구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다인 이 세계에서 소문의 전달력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일까.
“그런데 아까는 아가씨를 호위하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네냥? 신성이라는 칭호까지 가지고 있는 너희들이 단순한
호위 때문에 세르피안 왕국에서 이곳까지 이동했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냥. 혹시 뭔가 따로 의뢰 같은 것을 받은 것이냥?”
케르츠 씨의 질문엔, 잠깐이지만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세르피안 모험자 길드 소속의 모험자라는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정체를 정확하게 간파당하고, 또한 의뢰 내용에 대해서도 재차 질문을 받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검은 결정에 관한 이야기는 왕국 자체에서도 보안을 신경 쓰고 있을 정도로 기밀로 취급되는 사항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검은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섣불리 꺼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기에도 좀 애매한 것이 어차피 동행을 하든 하지 않든 이들도 우리가 목적지로 하는 뤼피올 마을로 향할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들이
뤼피올 마을에 가게 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신관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그곳은 그들의 고향이니까 말이다.
‘이걸 어쩐담…….’
사실 무슨 의뢰를 받았는지에 대해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냥 넘기기도 찝찝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의외로 케르츠 씨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려온 곳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엘리시아에게서였다.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뤼피올 마을에 대신관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가는 중이에요. 저희 가문에서 뭔가 불길한 물건이 발견되었거든요.
마법사들과 주변 신전에 요청해 물건에 대해 조사해 보고자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곳은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뤼피올 마을에
대해서 듣게 되었지요. 그곳에 계신 대신관님은 지혜롭고 아는 지식이 많아 저희 집에서 나온 이 불길한 물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호오…… 불길한 물건이라. 혹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물건을 한번 구경해도 될까?”
그것은 엘리시아의 말에 의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엘리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 가지고 있던 검은 수정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그렌 씨 일행에게 보여 주었다.
‘그거 보여 줘도 되는 거야?’ 하고, 엘리시아에게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으나 엘리시아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고 검은 수정이 든 유리병을 탁자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
유리병 안에 든 조그만 검은 결정을 본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흐음? 뭔가 광석 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수정도 아닌 기이한 물건이로군. 확실히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어. 그렇지만 딱히
불길하다고까지 느낄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히약?! 이, 이게 뭐다냥?!”
“케르츠 누님, 왜 또 발작이십니까.”
느닷없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듯(수인족에게 그다지 동물의 털은 없기 때문에 귀와 꼬리가 빠짝 선 것에 불과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케르츠
씨에게 그렌 씨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지만, 의외로 케르츠 씨의 얼굴 표정이 상당했기에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케르츠 누님?”
“이거, 이거, 불길하다냥. 이게 뭔진 모르겠는데 보는 순간 귀랑 꼬리가 곤두섰다냥.”
“그야 그건 보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만, 왜 이게 불길하단 말씀인가요? 조금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외엔 평범한 수정 같긴 합니다만?”
“으음, 아냐. 내 생각도 케르츠랑 같아. 이거, 뭔가 좀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수정인걸.”
“어라, 루웬 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들이 보기엔 그냥 평범한 수정, 조금 집중해서 느껴야 뭔가 살짝 기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정도인데 기감에 예민하다고 하는 이종족은 수정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렌 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지만, 루웬 씨와 케르츠 씨는 이 검은 수정이 불길한 물건이 맞는 것 같다고 동의하였다.
“과연, 저런 물건이 집 안에서 나왔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을 것 같다냥. 저주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냥. 집 안에 성수 뿌리고 신관을 잡아 모셔다가
집 전체에 정화 마법을 끼얹어야 한다냥.”
케르츠 씨의 말에 나는 엘리시아의 집인 왕궁 전체에 신관들이 정화 마법을 끼얹고 성수를 막 뿌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넓은 왕궁 전체를 전부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신관들로는 안 될 텐데…… 하는 덧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그렌 씨가 케르츠 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게 그 정도입니까, 누님?”
“넌 워낙 둔감한 놈이니 잘 모르겠지만 저거 가지고 다니면 모르긴 몰라도 한 달 내에 비명횡사해 버릴지도 모른다냥.”
“하지만 아넬 들은 멀쩡히 잘 돌아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듣자하니 이곳까지 오면서 별다른 몬스터와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냥? 신기하게 저 아이들이 수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다지 불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냥. 하지만 아까 전에 수정이 아이들에게서
떨어지자마자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냥.”
이 부분에 관해선 살짝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기에 나는 일단 침묵을 유지했다.
저 검은 수정은,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긴 하지만 원래는 B급에 해당되는 이상 현상 몬스터인 검은 고블린으로부터 나온 힘의 결정체 같은 것이다.
아마도 케르츠 씨와 루웬 씨가 느낀 것은 그 검은 고블린의 남아 있는 기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막연한 상상이긴 했지만 어쩐지 그럴싸했다.
우리들은 그들을 퇴치한 장본인이니 그 힘이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혹시, 이와 같은 물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거든요.”
“아니, 그런 것은 우리도 처음 보는 물건이다냥. 거기에 불길한 물건이라니. 확실히 프롤륀 신관님이 아니라면 모를 것 같긴 하다냥.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구냥.”
“아넬과 루시안 그리고 셀린은 이전에 세르피안 검술학교 토벌 임무에 함께했었던 적이 있었기에 고용하게 되었어요. 가문의 기사분들과 여행하는
것보단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었거든요.”
“아아……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군. 과연, 친구이자 귀족 아가씨의 호위 역인가. 이렇게 착한 귀족 아가씨를 만나는 것도 영 쉬운 게 아닌데
좋은 인연을 맺었구나.”
아무래도 우리들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대강 납득해 준 모양이었다.
엘리시아는 그제야 이쪽을 바라보더니 내게 ‘봤죠?’ 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녀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하고 조금 고개를 갸웃했으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엘리시아에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