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51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51화
순식간에 모든 계산을 끝내 버린 세라 누나에게 나는 식은땀을 살짝 흘리면서 대답했다.
“저기, 세라 누나.”
“응? 왜 그러니, 아넬?”
“침낭 말인데요. 고급품이라면 엘리시아나 세라 누나 것만 사셔도 충분해요. 저희는 다른 것으로 고르겠습니다.”
내 말에 세라 누나는 피식 웃더니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가격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고 있겠지만 내 돈이 아니라 왕궁 쪽에서 지원해 주는 돈으로 사는 거니까 말이야.”
“5금화면, 어지간한 B급 의뢰 완수 비용보다 큰 금액이에요. 그런 돈을 이렇게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어요.”
꺼리는 이유는 단순히 내 돈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굶주리거나 못사는 평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사치를 부리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야 엘리시아나 세라 누나는 어엿한 왕족에 귀족이니, 이 시대에서 그런 신분으로 타고난 것도 복이고 능력이니 말이다.
다만 두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리들까지 굳이 그런 최고급 침낭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바닥에 누워 알이 배기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품질의 침낭으로도 여태껏 잘만 노숙하며 지내 왔고, 오러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굳이 침낭의 품질에 신경 쓰는 일도 없었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다.
세라 누나는 나와 루시안, 그리고 셀린의 표정을 둘러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것 같긴 한데. 엘리시아를 위해서도 다른 침낭은 안 돼. 나는 폐하께 명령을 받았어. 가능한 최고
품질의 물품으로 엘리시아의 여행을 도우라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물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돼. 너희들은 적당한
품질의 침낭을 사용하는데, 엘리시아가 마음 편히 저 침낭을 사용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야.”
“저어, 언니. 솔직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과한 것 같은데요. 다 같이 조금 낮은 품질의 침낭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침낭의 가격이 부담되는 것은 엘리시아라고 해도 마찬가지인지,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공주님이라고는 해도 엘리시아 역시 세르피안 검술학교에 재학하면서 다른 학생들과 같은 생활을 했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재학 중에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구매 해야 한다. 또한 몬스터 퇴치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 학교에서 주는 여행 경비로 퇴치
여행을 완수해야 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엘리시아는 돈의 값어치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관해서 세라 누나는 단호했다.
“습기가 적은 편인 세르피안 왕국이라면 모르겠지만, 디아스 왕국은 강수량이 높고 그만큼 습한 지역이라고 들었어. 나도 디아스 왕국을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비슷한 기후를 가진 곳을 여행해 본 적은 있지. 이런 기후에서는 어지간한 침낭으로는 새벽이슬을 견디기 힘들어. 다 젖어
버리거든. 여행 간에 침낭을 제대로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차피 방수가 잘되는 침낭을 구매해야 하고, 비슷한 품질을 사용할 바엔 돈을 좀
더 쓰고 확실히 좋은 물품을 쓰는 게 여행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돼. 그러니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렴. 깨끗하게만 사용하면 나중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판매해도 어느 정도 값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세라 누나의 말에 그다지 틀린 점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강제로 250만 원짜리(!) 호화 침낭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좀 간사하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솔직히 이렇게 좋은 침낭을 써 볼 기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거절은 한 번 한 것으로 족했다.
포장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느껴지는 그 보드라움에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엘리시아랑 여행하려니 이런 침낭도 다 써 보게 되었네.”
“사실, 원하시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해 드릴 수 있는걸요.”
“응?”
순간 엘리시아에게 들려온 말이 무슨 뜻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려니 엘리시아는 ‘아차!’ 하고는 얼굴을 살짝 붉히곤 내 시선을 회피했다.
“아, 주인이 다시 왔네요. 물건 확인하러 가요.”
“어? 어…… 그래.”
잠깐 허둥지둥하던 엘리시아는 창고로 들어갔던 주인이 여행 관련 물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나는 엘리시아를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조금 전 엘리시아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일까 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 레아 누나가 셀린 말고도 엘리시아의 이야기를 꺼냈었지.’
섣부른 판단이고 오해면 좋겠는데, 뭔가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에이,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나는 여행 용품들의 품질을 보고 있는 일행들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래서 남자는 안 된다.
여성이 그냥 해 본 소리 하나에 ‘혹시?’ 하고 온갖 김칫국을 전부 들이마시니까 말이다.
애당초 엘리시아는 세르피안 왕국의 하나뿐인 공주님이지 않은가.
거기에 나는 결혼 약속까지 잡혀 있는 남성이고, 일반 평민에 불과할 따름이니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 ‘혹시’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괜히 혼자만 이상한 고민을 한 것 같은 창피함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행들에게 끼어들었다.
이후에 우리들은 배낭에 여행 물품과 취사도구들을 챙기고, 주인아저씨의 격렬한 배웅을 받으며 잡화점을 나섰다.
식료품점에서 영원의 숲 근방 도시까지 이동하며 먹을 식량도 챙긴 우리들은 마지막으로 마시장에서 튼튼하고 체력 좋아 보이는 말을 고른 뒤에 수도
다이론을 나섰다.
선전포고
여행길은 전체적으로 순조로웠다.
수도 다이론에서 출발하기 전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영원의 숲 근방에 있는 큰 도시인 ‘프라알’까지는 말을 타고 5일 정도가 걸리는 거리라고 들었다.
다이론을 출발하고 나서 말을 타고 달려온 지도 오늘로 4일째.
이동 속도는 평균으로 달려왔으니 들은 대로라면 앞으로 하루 정도 더 이동한다면 우리들은 프라알 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예정대로 영원의 숲을 안내해 줄 길잡이를 고용하고 다시금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보급한 뒤에 본격적으로 영원의 숲을 향하게 될 것이다.
수도 다이론에서 프라알 도시까지 이동하는 길목은 사실상 대륙과 영원의 숲을 연결하는 가장 큰 통로여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기 때문에 치안 유지도 확실하게 되어 있어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나 도적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조금 힘든 점이 하나 있다면 아무래도 기온이다.
대체적으로 선선한 날씨의 세르피안 왕국과 다르게 온난하고 다습한 디아스 왕국의 날씨는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을 좀 힘겹게 했다.
조금만 말을 타고 움직여도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났다.
못 버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땀이 나면 기분도 찝찝하고 냄새라든가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점이 많아진다. 또한 땀이 나는 만큼 수분 보충을 위해서 자주 물을 마셔 줘야 하니 물을 보충하는 점에도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그것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무난한 여행길이었다.
“오늘은 이 부근에서 쉬도록 할까.”
서서히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면서 나는 말을 모는 것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일행들에게 휴식 여부를 물었다.
근처에 적당한 들판이 있고 그곳에는 말들을 먹일 풀들도 넉넉했으며, 지형을 보아하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다.
일행들 역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곳이 야영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인 것을 확인하고는 각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오늘 하루 종일 이동했으니 말들도 제법 지친 것 같으니까 이제는 좀 쉬게 해 줘야 할 것 같아. 물도 좀 챙겨 줘야 할 것 같고.”
“하지만 수통에 물이 아까 전에 바닥났어. 말들까지 먹이려고 하면 두 사람이 물을 떠 와야 할 것 같아.”
“아, 그거라면 제가 같이 갈게요.”
“그럼 아넬은 오늘 식사 당번이니 내가 장작을 구해 와야겠네.”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 4일째가 되니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서로 간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
루시안은 하루 종일 이 더운 날씨에도 무거운 짐과 더불어 우리들을 태워 주느라 고생한 말들에게 건초를 나누어 주었고 그사이에 셀린과 엘리시아는 서로 물통을 가지고 인근에 물을 뜰 만한 장소가 있는지 찾아보러 이동하였다.
세라 누나는 도끼를 집어 들고 장작을 구하러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세라 누나의 말대로 오늘의 식사 당번인 나는 남아서 짐을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서두른다.
사실 어제부로 가지고 있던 채소류와 고기류는 신선도 여부로 전부 처분하였기 때문에 오늘 내가 준비할 식사는 여느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야외 요리의 단골 메뉴인 수프와 빵이었다.
내일 아침을 제외하면 점심때는 예정대로 프라알 도시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테니 5일의 여정 동안 식사 당번치고는 상당히 쉬운 편에 당첨된 것이다.
배낭 속에서 취사도구를 꺼내고 장작과 물이 도착하는 대로 요리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뒤에 남는 시간엔 천천히 짐을 정리정돈하면서 루시안을 도와 말들을 돌보았다.
수건으로 말들의 몸을 닦아 주고 빗으로 갈기를 빗겨 주고 있으려니 장작을 구하러 갔던 세라 누나가 돌아왔고, 이어서 엘리시아와 셀린도 물통 한가득 물을 떠 왔다.
냄비에 물을 넣고 수프 가루와 육포를 잘게 찢어서 넣은 뒤에 눌어붙지 않도록 휘휘 저으며 천천히 끓이자 곧 냄비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며 배고픈 일행들의 침샘을 자극했다.
수프가 맛있게 끓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루시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이젠 요리사를 해도 괜찮겠는걸. 나중에 모험자에서 은퇴하면 여관이나 음식점을 차려 보는 것은 어때, 아넬?”
“고작 수프로 요리를 잘한다고 할 수 있으려나.”
“고작 수프여도 맛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은데.”
“메뉴가 수프 하나뿐이면 가게를 차리자마자 망하기 딱 좋을걸? 여행 도중에 질리도록 먹는 게 수프인데, 도시까지 와서 수프를 찾는 여행자들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거기에는 루시안 역시 동의했는지 ‘그렇겠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는지 루시안은 다시금 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넬은 수프 말고도 고기를 굽는다거나, 삶는다거나 적은 양념들로도 나물을 잘 무치는 등의 요리들도 곧잘 하잖아? 그걸로 밀고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젠가 몇 번 정도 전생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떠올라, 고기를 나뭇가지에 꽂아 불에 직접 굽기보단 잘라서 냄비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처럼 굽는다든가, 돼지고기를 물에 삶아 수육을 만들어 먹었던 것을 떠올리며 루시안은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