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12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12화
“아무래도 그게 좋겠군요. 학생들을 쉬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겠습니까?”
맥스 교관님의 질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측에서 사전에 미리 예약해 둔 여관이 있소. 이곳에서 가까우니 우선은 그곳에 짐을 풀고 학생들을 쉬게 하면 될 것이오. 그사이에 나는
토벌 계획과 관련된 자료들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겠소. 이후에 다시 방문하면 그때 다시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맥스 교관님은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토벌에 관련된 계획을 먼저 확인하는 것보다는 피로가 쌓여 있을 학생들을 먼저 쉬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다.
학생들 역시 맥스 교관님의 의견에 두말없이 찬성하였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실제로 다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검술을 단련해 온 몸인 만큼, 고작 일주일 정도의 여행에 쓰러질 만한 체력들은 아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야외 취침과 여행에 다들 심리적으로는 꽤나 지쳐 있었던 탓이었다.
최근 3일간은 건량과 수프로만 식사를 때웠으니, 여관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겠지.
‘자, 그럼.’
아버지로부터 학생들의 방이 마련되어 있는 여관의 이름을 전해 들은 나는 그곳으로 교관님과 학생들을 안내하기 위해 길드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이어 내 어깨를 잡는 누군가의 손에 움직임을 제지당하였다.
누가 나를 붙잡은 건지 뒤돌아 확인해 보니, 루시안이 어째서인지 내 어깨를 잡고 있었다.
“잠깐만, 아넬, 어디 가려고?”
“응? 당연히 여관으로 이동해야지.”
“네 집은 여기잖아? 그런데 여관은 왜 찾아가?”
루시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여기가 집이긴 하지만 나는 사적으로 이곳에 찾아온 것이 아니잖아. 당연히 같이 움직여야지.”
이곳이 집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6년 만에 아버지와 재회한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반가운 마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적으로 시간을 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몬스터 토벌에 동행해서 따라온 것인 만큼, 공과 사 정도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다시 토벌 계획과 관련되어 길드를 방문한다면 모를까 그 외엔 학생들과 동행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루시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몬스터 토벌은 오늘내일 안에 실행되는 것이 아니잖아. 쉬면서 컨디션도 조절하고 토벌에 대한 정보도 모아서 현장에서 따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으니까 적어도 이틀 이상의 여유는 있어. 여관으로 안내하는 것은 내가 할 테니까, 아넬은 여기 있어. 어차피 학생들을 쉬게 한 뒤에는
교관님도 우리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니까 말이야.”
루시안의 말에 맥스 교관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일주일간의 여행 동안 맥스 교관님은 나와 루시안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곳 세룬 도시가 내 고향이고, 모험자 길드가 내 집이라는 사실을
들었었다.
그 때문인지 루시안이 하는 말에 맥스 교관님은 말을 덧붙이며 그의 의견에 찬성해 주었다.
“아넬 군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게. 루시안 군의 말처럼 어차피 학생들을 여관에서 쉬게 한 뒤에는 자료를 검토하러 이곳으로 다시 와야 하니까
말이야. 모처럼 고향에 들렀는데, 적어도 가족들에겐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지. 고작 그런 이유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매정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맥스 교관님…….”
“교관님이 허락하셨으면, 우리는 불만 없어.”
“맞아요. 그러니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아넬.”
뒤를 돌아보자 릭과 엘리시아가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을 필두로 다른 학생들도 내게 이곳에 남아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라며 한마디씩을 이었다.
그 모습에 루시안은 피식 웃으면서 내 어깨를 잡아당기며 나를 길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들었지? 일행의 책임자이신 교관님과 학생들도 전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굳이 여관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어.”
“하지만 루시안 너는 어쩌려고?”
이곳은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루시안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은 솔직하게 기쁘지만, 루시안만 내버려 둔 채 혼자 가족 간의 재회를 즐기기엔 마음에 걸린다.
그러자 맥스 교관님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시면서 말을 이었다.
“여관에 짐을 풀고 와서 토벌 자료를 확인하고 난 뒤 오늘 하루 동안 루시안 군에게도 개인 자유 시간을 허용할 생각이네. 어차피 오늘과 내일
이틀간은 루시안 군의 말처럼 토벌 계획을 재확인하고 학생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드는 데에 주력할 생각인 만큼 일정에 다소 여유는 있지. 거기에
학생들도 우리도 자유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으니까 거기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네.”
“그렇다고 하시니까 네가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얌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해.”
이렇게까지 배려받으면 고맙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맥스 교관님께 짧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가볍게 저었다.
루시안, 셀린, 그리고 학생들은 저마다 길드를 나서기 위해 입구로 몰려갔다.
바로 그때, 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길드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누군가가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엇?!”
“어……어?”
“우와……?!”
갑자기 무엇을 본 것인지 학생들로부터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저마다 눈을 부릅뜨고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언가 그들을 놀라게 할 만한 누군가가 길드에 방문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는 길드의 입구가 잘 보이지 않았다.
루시안에게 이끌려 어느새 처음 있었던 카운터 앞까지 다시 끌려온 참이라 이 위치에서는 학생들의 몸에 가려 그곳이 잘 안 보였던 탓이다.
“죄송합니다. 잠깐 지나가도 될까요?”
그때 맑고 고운 목소리가 길드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엘리시아만큼이나 고운 목소리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우르르하고,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학생들이 저마다 길을 터 주었다. 흡사 엘리시아가 ‘비켜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동작이었다.
무엇이 저들을 동요하게 만든 것일까?
학생들이 비켜 준 길을 걷는 사람은 한 명의 여자아이였다.
아름다운 백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며, 소녀는 이곳을 의아한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웬일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지?’ 하고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소녀의 미모는 빛났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길드에 빛이 반짝이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이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는 그 나이 또래 중에 엘리시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촌구석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세룬
도시에서 엘리시아와 맞먹을 수준의 미모를 가진 여자아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아마 학생들 역시 이곳에서 자신들의 여신님과 비견될 정도의 여자아이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다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여자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한 명의 여성이 또 있었다.
그 여성의 얼굴을 본 나는 ‘아!’ 하며 짧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여성이 이 세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우리 가족과 더불어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레아 누나.”
“아넬?”
내 모습을 본 레아 누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내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이쪽을 향해 걸어오던 백금발의 소녀가 나에게 달려와 나를 꼬옥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포옹에 잠깐 당황했지만, 의외의 감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낯설어야 할 소녀와의 포옹이 이상하게도 친숙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끌어안은 소녀는, 천천히 얼굴을 올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서 나는 어렸을 적에 유난히도 나를 잘 따랐던 어린 동생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작은 꼬마아이에서 이제는 어엿한 소녀로 자라난 리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서 와, 오빠.”
“리나?”
“오, 오빠……?”
“설마, 아넬의 동생?”
그녀의 말에 학생들을 비롯해서 루시안과 셀린, 마지막으로 엘리시아까지 저마다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루시안의 안내를 받아 검술학교의 학생들과 셀린,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맥스 교관님은 길드를 빠져나가 미리 예약되어 있다던 여관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의 배려로 여관에 함께 따라가지 않고 길드에서 기다리며 가족들과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
지금은 잠깐 길드를 비운 상태로 2층으로 다 같이 올라온 상태였다.
6년 만에 들어오는 우리 집이다.
조금씩 가구의 배치가 바뀌어 있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듣기로는 내가 이곳에 다시 찾아왔을 때 어색해하지 않도록 되도록 최대한 가구 배치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떠나고도, 부모님은 한시라도 나를 떠올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 점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부모님께는 솔직하게 그간 찾아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6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나를 끌어안으며 다독여 주셨다.
그 과정에서 찔끔 눈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것은 비밀이다.
그야 거의 다 커서 돌아왔는데 눈물을 보였다는 것을 들키면 창피하니까.
물론 말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부모님도 그렇고, 레아 누나도 그렇고, 리나 역시 얼핏 눈치는 챈 것 같았지만 그것을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이 컸구나, 아넬. 네가 수도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아래로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앉은 상태로도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지는 한층 깊어진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과거 열 살 때, 이 테이블에서 아버지에게 길드 마스터의 편지를 받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봐야
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성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키고, 한창 성장 중에 있었지만 어느새 앉은 상태로 아버지와 눈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매일같이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6년 만에 본 아들이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서 나타난 것이 신기한 듯 작게 미소를 지으신다.
“벌써 열여섯 살이니까요. 2년만 지나면 저도 성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