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106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106화
이 학교 학생들의 최고 우상이자 통칭 ‘여신님’, 엘리시아였다.
그녀의 등장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아무리 검술에 매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사람이고 또한 남자들이다.
같은 여자들마저도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미모를 지닌 여성이 등장했는데 본능적으로 시선이 이동되지 않으면 남성으로서의 기본적인 무언가를 의심해
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러나 남학생들에게 그런 말 하고 있는 나 역시 한 명의 남자인지라, 그 미모에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
엘리시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무 빤히 바라본 모양이다.
“아니, 여전히 예쁘구나 싶어서.”
“아…… 그, 그런가요?”
내 솔직한 칭찬에 엘리시아는 부끄러운 것인지 살짝 홍조를 띠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다지 칭찬이 싫다거나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작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하기야 자기 자신이 규격 외로 예쁘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솔직히 칭찬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에 오늘 좋은 것을 봤구나 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은 조금 늦었는걸?”
“네. 사실은 오는 도중에 세라 언니를 만났거든요.”
“세라 누나를?”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엘리시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학교장실에 찾아와 달라고 했어요. 몬스터 토벌에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요.”
“그래? 알았어, 전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세라 누나는 그 이야기를 왜 우리가 아니라 네게 말한 걸까?”
“고모님께서 제게도 따로 할 말이 있으니, 함께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엘리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일이 있고부터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슬슬 학교장님께서 몬스터 토벌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실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의뢰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몬스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무사히 몬스터 토벌 의뢰를 마치고 학교에 귀환할
때까지로 의뢰 기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학교장님은 우리에게 몬스터 토벌 일정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시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려 하시는 것이겠지.
엘리시아야 이번 몬스터 토벌 의뢰에 참가하는 학생일 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학교장님의 조카가 되는 만큼 따로 부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우리와 함께 찾아오라고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학교장님이라면 어차피 만날 것 한꺼번에 후딱 볼일을 마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침묵하고 있으려니, 내 옆으로 슬쩍 엘리시아가 앉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검 수련은 안 하려고?”
“조금만 쉬다가, 아넬에게 대련을 부탁드리려고요.”
“또 대련을?”
내가 살짝 놀라면서 말하자, 엘리시아는 조금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인상을 살짝 찡그리면서 말을 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거죠? 분명 저와 약속하셨었잖아요? 제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대련을 해 주기로요.”
“그…… 그렇긴 하지만, 벌써 한 달째인걸? 슬슬 대련보다는 개인 수련을 중점적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아뇨, 제 실력은 제가 알 수 있어요. 제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강자와의 대련을 통한 자기 자신의 단련이에요. 그런 만큼 개인 수련보다는 아넬과
대련을 하는 쪽이 훨씬 나아요. 혹시 저와의 대련이 귀찮으신 건가요?”
째릿, 하고 노려보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찔끔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혹시나 귀찮으시더라도, 참으세요. 이 정도의 귀찮은 것쯤은 제가 당했던 수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엘리시아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전 루시안이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시아와의 대련 사건이 있던 뒤로 나는 매일같이 엘리시아의 대련 상대가 되어 주고 있었다.
그날 내 과도한 연기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학생들이 보고 있는 연무장 위에서 울음을 터트려 버린 엘리시아를 필사적으로 어르고
달래면서 행한 노예계약(?)의 영향이다.
진짜로 노예가 되라는 등의 그런 계약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아무리 신분이 적용되지 않는 세르피안 검술학교라고는 하지만, 공주를 울리고 창피를 주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라고 엘리시아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이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사건의 발단 자체는 엘리시아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나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것을 핑계로 저질러진
일이었다. ―물론 애당초 그것을 노리고 내가 계획을 짜기는 했지만.
당시에 여성의 울음이라는 것을 처음 당해 본 나는 이리저리 정신이 없어서 엘리시아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에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엘리시아를
달래는 조건으로, 앞으로 몬스터 토벌 의뢰가 끝나기 전까지 그녀가 원하는 만큼 대련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히이이잉…….’ 하고 서럽게 우는 와중에도 그 대가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대련이라는 점이 참 엘리시아의 검술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 주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그 약속 이후에 엘리시아는 꼬박꼬박 내게 대련을 요구하였고 나는 약속을 한 만큼 그녀가 원하는 만큼 대련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만 특별 대우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대련을 했을 뿐이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을 해 주고, 그녀가 뭔가 발전의 계기를 발견하면 그것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샌드백 역할을 해 주었지.
그렇다고 해서 엘리시아가 말하는 것처럼 그녀와의 대련이 마냥 귀찮은 것만은 아니었다.
미녀와의 대련이고, 대련 동안 엘리시아의 아름다운 외모를 한껏 감상할 수 있으니 이쪽에서도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고,
엘리시아의 검술 실력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쪽도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고 검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단지 그 대련이라는 게 지속될수록 등 뒤가 놀랍도록 따끔거리는 것이, 내가 엘리시아와의 대련을 껄끄럽게 여기는 가장 큰 요인이다.
지금도 내 등 뒤는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서운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덤으로 생명의 위협도 느끼고 말이다.
“너어, 언제 또 아넬의 옆에 은근슬쩍 앉은 거야?”
특유의 고양이 같은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셀린이 엘리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엘리시아는 가볍게 미소 짓는다.
“어머, 이 자리가 누구에게 허락받고 앉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저 비어 있기에 잠깐 쉬려고 앉은 것뿐인걸요.”
“이 넓은 공터에 자리가 그곳 하나뿐이야? 다른 곳에 가서 앉으면 되잖아. 덕분에 이곳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고!”
“그건 죄송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일국의 공주라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저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한걸요? 그들이 저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곳에 시선을 두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거나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니까요.”
“네가 다른 곳으로 가면 되잖아?”
“저는 아넬에게 대련을 신청하러 왔답니다. 그러니 학생들의 시선이 부담되신다면 셀린 양이 자리를 옮겨 주시면 고맙겠네요.”
“뭐야?”
여자들끼리 눈을 맞부딪치면서 불똥이 튄다는 게 이런 것을 뜻하는가 보다.
서로를 지긋이 노려보는 셀린과 엘리시아의 기세에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온도가 낮아진 것도 아닌데 마치 루시안의 얼음계열 마법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작게 소름이 돋는다.
최근 엘리시아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늘 생기는 일과 중 하나다.
아무래도 셀린은 엘리시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외모는 둘째 치더라도 처음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다짜고짜 내게 다가와 대련 신청을 걸더니 대련 도중에는 나를 한껏 내리깔고, 내 진짜 실력을
보고는 꼴사납게 앙앙 운 주제에 이제 와서 눈물 싹 닦아 내고 내게 달라붙는다고 말이다.
솔직히 셀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엘리시아의 첫인상은 외모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엘리시아와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가 의외로 재미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대부분을 얻을 수 있는 이 나라의 공주님이 바로 엘리시아다.
거기에 저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를 향한 왕의 총애가 대단한 모양이라, 그야말로 그녀의 말 한마디면 왕이 끔뻑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기야 내게 저런 딸이 있었다면 나라도 끔뻑 죽겠지.
하여튼 그런 공주님이 애당초 보석이라든지 꽃이라든지, 아름답고 예쁜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날카롭고 서슬 퍼런 검에 흥미를 가졌다는 것부터가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그 배경에 크리스틴 폰 세르피안이라고 하는, 그녀의 고모이자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여성 검사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부족함 없이 왕궁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가질 것 다 가질 수 있는 공주님이 검술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듣자 하니 왕은 그녀가 검을 배운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반대를 했다는 것 같다.
금지옥엽에 혹여 넘어져서 상처가 나진 않을까, 나뭇가지나 꽃의 가시에 찔려 그 뽀얀 살에 행여 생채기가 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판국에 그녀가
다른 것도 아닌 검을 배우겠다고 했으니 그야 난리가 났겠지.
그런데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고집을 부려 검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곤 자신의 고모인 크리스틴 학교장님에게 부탁하여, 왕궁의 기사들이 자신에게 검을 가르쳐 줄 수 있도록 편지를 받아 직접 기사들에게 검을
배웠단다.
다른 귀족 영애들과 어울리며 사교생활을 하기보단 기사들과 함께 수련하기를 즐겨 했고, 또래의 귀족 영애들이 화장과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검을 수련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으며, 그들이 백마 탄 왕자님을 동경할 때 본인 스스로가 크리스틴 학교장님과 같은 멋진 기사가
되기를 원했으니 사고방식 자체가 꽉 막힌 다른 귀족가 자제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첫 만남 땐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던 상태에서 학교장님이 그녀와 학생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외부인을 끌어들여 자신들을 테스트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게 다소 딱딱한 태도를 취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들어 보니 그녀는 그다지 모난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