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92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92화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저렇게 자고 있어서야 진짜 학교장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알 방법도 물어볼 방법도 없다.
뒤를 돌아보니 루시안과 셀린도 서로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깨워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음.’ 하면서 의자에 누워 있던 여성이 천천히 눈을 뜨고 우리들을 응시했다.
‘……!’
“읏?!”
순간, 등 뒤에 소름이 쫙 끼치며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가 눈앞의 여성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흡사 살기와도 비슷한 흉포한 기세였기 때문에
나와 루시안, 셀린까지도 전부 기세에 반응하여 화들짝 놀라,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검을 전부 뽑으려고 하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검을 중간까지만 뽑고, 더 이상 검을 뽑지 못한 채 동작을 강제로 멈춰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셀린과 루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내 목을 향해 한 자루의 검이 들이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나는, 내게 검을 겨눈 자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의자에 앉아 있던 여성은 아니다.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끝부분만 살짝 묶은 헤어스타일의 다른 여성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나이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과 얼추 비슷한 이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인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아니, 매서운 것은 눈빛만이 아닌가.
비록 의자에 앉은 여성이 내뿜은 기세에 깜짝 놀라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내 목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여성의 실력이 나보다도 훨씬 윗줄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방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을 제외하고는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여성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든 것도 잠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매서운 눈빛은 ‘검을 집어넣지 않으면 단칼에 베어 버리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하지만…….’
목에 직접적으로 검이 닿고 있는 만큼, 여성이 조금이라도 검 끝을 움직이면 그녀의 검은 내 목을 간단하게 파고들 것이다.
그리고 일정 깊이 이상으로 검이 목을 파고든다면 루시안이 힐링 마법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내 생존을 장담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지고 싶지 않다는 검사 특유의 오기 같은 것이 들끓었다.
단순한 치기 어린 행동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장소에서는 검을 집어넣는 행동보다는 한번 저항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생겼는지 모를, 의도를 알 수 없는 감 같은 것이었으나, 그동안의 여행에서 이 감각을 믿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을 면하거나
목숨을 건진 일이 꽤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 감각을 믿었다.
위기를 여러 번 넘긴 자는 본능적으로 위급한 순간에 생존에 가장 최적화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감각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미신 같은 것이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감각이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택지를 믿고, 나는 작게 심호흡하면서 오러를 단숨에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오러가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신체에 스며들면서 감각이 예민해지고, 심신 전체에 강한 활력이 솟구치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
내가 자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검을 집어넣기는커녕 도리어 오러를 끌어올리는 모습에 검을 겨누고 있던 여성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신도
마찬가지로 체내의 오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으윽…….’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이 여성, 최소 나와 같은 오러 익스퍼트 이상의 오러 양을 가지고 있는 검사였다.
한계치까지 오러를 끌어올린 나와 다르게,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러가 나를 점점 밀어내고 있다.
오러와 오러가 서로 강하게 맞부딪치면서 살벌한 기세가 학교장실을 휘감을 때,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와 여성의 사이로 나지막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만.”
단 한마디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나와 겨루고 있던 여성의 오러보다 강한 충격파가 나와 여성의 오러 사이를 날카롭게 가르고 지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스윽 하고, 내 목을 겨누고 있던 여성의 검이 거두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던 여성이 미묘하게 나를 비웃는 것 같은 표정과 함께 천천히 내게 말을 이었다.
“목이 언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판국에 도리어 오러를 끌어올려 적을 도발하다니.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한
바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미 목에 검이 겨누어진 순간에 한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왕 죽었다면 마지막엔 기세라도 보여 주고 죽는 것이 덜 억울하겠죠.”
“그 대가가 목숨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냐?”
“대가가 목숨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고 싶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거 배짱 한번 두둑한 놈이구나. 과연, 그가 키운 아이들이란 말인가.”
내 말을 들은 의자 위의 여성은 내가 한 대답이 썩 마음에 든 것인지 나이에 맞지 않는 호탕한 웃음으로 방 안을 울리면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세라, 검을 집어넣거라.”
“예, 스승님.”
‘……스승님?’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세라’라는 이름의 여성은 꺼내 든 자신의 검을 천천히 검집으로 수납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검을 잡고 있을 생각이냐? 이제 더 이상 장난치는 일은 없을 테니 이만 경계를 풀거라.”
“…….”
상대방이 검을 집어넣고 적의를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 검을 잡고 있기는 뭐했으므로 그녀의 말대로 우리들은 천천히 검을 수납하고 손잡이로부터 손을
뗐다.
내 옆에 있던 루시안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면서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 질문했다.
“세르피안 검술학교의 학교장님이십니까?”
“흐음, 어떻게 생각하느냐?”
루시안의 질문에 여성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질문으로 답변했다. 하지만 루시안은 여성의 질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학교장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모험자 길드 본부 소속의 C급 모험자, 루시안 지어스라고 합니다.”
“호오…… 이 외모를 보고도 학교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 국왕이신 베이트론 국왕 폐하에겐 여동생이 있고, 그 여동생은 현 왕국기사단장과 검을 나누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더군다나 신체의 노화가 더뎌지는 오러의 특성 탓에 나이에 맞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명패에
세르피안이라는 성을 쓰고 있다는 것은 곧 왕족이라는 뜻, 현 왕족 중에 학교장님 같은 기세를 내뿜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분은 없겠죠.”
루시안의 설명에, 나와 셀린은 두 눈을 끔뻑였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루시안이 하고 있는 설명을 우리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왕이 누구인지 이름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왕에게 가족이 몇 명이 있고, 슬하에 자식이 몇 명 있으며, 부인이 몇 명 있는지까지 내가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 나라에서 길드 마스터 다음으로 강하다는 왕국기사단장의 이름과 그 외에 몇 명의 기사들의 이름 정도는 나도 들어 본 적 있었지만,
왕국기사단장과 검을 겨누어도 손색이 없다고 하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놀란 것은 나와 셀린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을 학교장이라 지목당한 여성과 내 옆에 있는 세라라는 이름의 여성도 루시안의 설명에 제법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제법 잘 알고 있구나? 꽤나 오래전의 일들이라 요즘 아이들이라면 잘 모르고 있을 만한 것들인데 말이다.”
“모험자로 활동하면서 언젠가 왕족들과도 만나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 싶어, 상식으로 알아 두고 있던 것들입니다. 주변인들에게 물어서 들은
것들뿐이라 만약 알고 있는 내용이 틀리다고 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이,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 상식도 모르는 나와 셀린은 뭐가 되는 거야?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였기에 목구멍으로 꿀떡 삼켰다.
크리스틴 학교장은 루시안의 설명을 듣고는 전혀 의외라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후후, 눈앞에 있는 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배짱과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고, 그 옆에 있는 아이는 총명하다라……. 정말 그가 엄청난 아이들을
키워 냈구나. 과연 나라 전체에 ‘신성’이라는 명성을 떨칠 만한 인재들이로군.”
“학교장님께서 칭하는 ‘그’란, 아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셀린의 질문에 학교장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이내 ‘풋.’ 하고 웃더니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셀린에게 말했다.
“내가 네 아버지를 쉽게 부르니까 의아한 모양이구나?”
“네? 아……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빠를 아는 것같이 말하기에 친분이 있는지 싶어 물어보았습니다.”
“친분이라…… 그것에 대해서는 좀 애매하구나. 왕궁에 있을 때 몇 번인가 서로 검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을 과연 친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아무튼 정말 강한 사내였지. 네 아버지인 길드 마스터는 말이다.”
“참고로, 오러의 특성 탓에 젊게 보이긴 하지만 스승…… 아니, 학교장님은 오십대의 나이를 가지고 있으십니다.”
“……에?”
“……네?”
느닷없는 세라 씨의 말에, 나와 셀린의 시선이 동시에 학교장님에게 향했다. 우리들의 시선을 받은 학교장님은 가볍게 한숨을 한번 쉬고는, 조금
토라진 표정으로 자신의 제자인 세라 씨를 바라보았다.
“세라야, 스승이 나이에 비해 좀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스승을 질투하고 나이를 막 발설해도 되는 것이냐?”
“엑, 스, 스승님…… 아니, 학교장님, 그것이 아니라…….”
학교장님의 가벼운 타박에 세라 씨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에 학교장님은 피식 웃으시더니 손을 내저었다.
“됐다. 농담이다. 그리고 학교장님으로 부를지 스승님으로 부를지 한 가지만 하도록 하려무나. 아니, 지금은 공적인 자리니 학교장님으로
부르도록.”
“그…… 네, 학교장님.”
세라 씨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렇구나.’ 하고 그동안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