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71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71화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자의 껍질을 깐 뒤 달콤한 꿀에 찍어 먹었다.
목이 막히면 산나물을 끓인 국을 마셔 목을 축였다. 별다른 건더기도 없이 나물만 넣고 끓인 국이라 밍밍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하고 시원한 국이었다.
매일같이 수프와 육포로 느글느글한 식사를 했던 우리에게 있어서는 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다.
식사는 순식간이었고, 맛있게 배를 채운 우리는 발딘 아저씨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부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점심에 이어 발딘 아저씨가 특별히 준비한 건강차까지 대접받았다.
약초를 말려서 끓인 차라고 하는데 약초 특유의 떨떠름한 맛보다는 녹차 같은 쌉쌀한 맛에 향긋한 냄새가 나는 차였다.
‘이런 삶도 나름 괜찮을지도 모르겠는걸.’
도시에서만큼 풍족하고 많은 먹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박한 삶도 나름의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발딘 아저씨와 벨리타 아주머니는 나이가 있음에도 금슬이 좋은 듯, 서로를 배려하며 보기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아저씨, 아주머니와 간단한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문이 덜컹하고 열리면서 누군가가 다다닥 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 배고파…… 응?”
“이 녀석, 손님들이 있는데 소란스럽구나.”
부엌으로 곧장 뛰어 들어온 것은 약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아, 그래도 나보다 연상인데 어린 소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런가?
어쨌든, 저 소년이 발딘 아저씨가 말한 문제의 아들인 모양이다.
척 보기에도 혈기 왕성해 보이는, 기운 넘치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한동안 우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알렉스 형이 차고 있는 검에 시선이 고정되더니 ‘우와!’하며 다가왔다.
“저기, 형은 모험자인가요?”
“응? 어…… 그래.”
“우와, 정말로 모험자였군요! 그 검은 진짜 검인가요? 아니지, 모험자가 가짜 검을 들고 다닐 일은 없겠죠.”
뭐랄까, 상당히 활기차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는 묘하게 흥분한 것 같다.
계속해서 알렉스 형에게 들러붙어 이리저리 질문 공세를 퍼붓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발딘 아저씨는 크게 호통을 쳤다.
“폴! 손님에게 무슨 무례냐! 가만히 있지 못하겠느냐!”
“……쳇,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아저씨의 호통에 폴이라고 불린 소년의 어깨가 크게 흠칫하며 추욱 늘어졌다.
뭐라 반응하기 껄끄러운 상황에 폴은 벨리타 아주머니가 챙겨 준 감자를 들고 자신의 방 쪽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발딘 아저씨는 ‘후우.’하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이었다.
“소리를 질러 미안하게 되었네. 아들놈이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실례를 저질렀구먼.”
“아닙니다.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모험자와 검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 마련이죠. 다른 마을의 아이들도 흔히 그런 질문들을 하곤 합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네. 저 녀석이 내 아들인 폴이라네. 한창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놈이지.”
하긴,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강한 인상(?)을 준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발딘 아저씨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괜찮다고는 하더라도 질문 공세에 시달렸던 것은 알렉스 형뿐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이전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차를 마시고 난 뒤,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알렉스 형은 발딘 아저씨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고 하고, 셀린은 벨리타 아주머니와 어디론가 걸어갔다.
방에서 뒹굴뒹굴하기에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마을을 혼자서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좀 그랬기 때문에, 나는 말들이나 돌볼까 하는 생각에
뒤뜰로 향했다.
짐 주머니에서 말들의 털을 빗기는 빗을 꺼내 말들의 갈기를 정리해 주고 있을 때였다.
“이름이 뭐야?”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에, 등을 돌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발딘 아저씨의 아들인 폴이 서 있었다.
“엄마에게 들었어, 너랑 같이 있던 여자아이 모두 알렉스 형과 같은 모험자라며?”
“…….”
뭐랄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나…….
본능적으로 ‘그래.’라든가, ‘네.’같이, 내가 모험자인 것을 수긍하는 말을 꺼내면 이거, 상당히 귀찮은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알렉스 형에게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나 내가 별다른 대답 없이 본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물론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수긍이라고 생각했는지
폴은 조금씩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저기, 나와 같이 마을에 놀러 가지 않을래?”
그 모습이 ‘사탕 줄 테니까 나와 같이 가자.’라고 아이를 꼬시는 듯한 아저씨 같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즉답으로 폴의 제안을 거절했다.
“싫어요.”
“에, 그, 그래?”
아, 풀 죽었다.
내가 즉답으로 거절한 것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인지 폴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화난 표정이라기보단 즉답에 당황 반, 거절당한 것에 부끄러움 반이라는 표정이다.
이런,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나. 나는 이쪽을 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폴을 다시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마을에 놀러 가자고 한 건가요?”
“그, 그래. 너, 이 마을 처음이지? 별로 볼 건 없지만 내가 마을을 안내해 줄게.”
“……딱히, 관심은 없는데요.”
라기보단 귀찮았다.
역시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다면 단순한 또래의 호의로 받아들이고 마을 안내를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알렉스 형에게
달라붙어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까불대는 모습을 보고 나니 폴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져 있었다.
붙임성이 좋은 루시안이나 셀린이었다면 바로 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마을을 돌아봤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두 사람과 같은 붙임성이 부족하다.
2차로 거절당한 것에 또다시 작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폴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 그, 그래?”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차갑게 대응해서인지 기가 팍 죽은 것 같다.
그 얼굴 표정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넬이라고 해요.”
“응? 아…… 내 이름은 폴이야. 올해 열네 살이지.”
“네.”
“저기…… 너는 몇 살이야?”
“올해 열한 살입니다.”
“그래? 그럼 내가 형이네…….”
별다른 반응 없이 내가 계속 단답형으로 대답하자, 다가오기가 쉽지 않았는지 폴이 우물쭈물한다.
에고야…….
루시안과 셀린이 몇 번이나 좀 고치라고 했던 부분인데 아직까지도 이런다.
참고로 말하는 것이지만 폴에게는 호감이 없다 뿐이지 딱히 폴이 싫거나 해서 이렇게 딱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직도 붙임성이 부족할 뿐이다.
물론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이라면 이미 이 정도의 태도에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뚝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폴은 연신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다가온 것이라면 이미 내 태도에서 그런 호기심은 사라졌을 텐데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모험자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작게 한숨을 내쉬고 폴을 돌아보았다.
‘흐음…….’
어차피 이곳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어 봤자 노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마을을 둘러보고 주변을 탐색해야 하니 이참에
폴에게 안내를 받아 미리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폴 형, 마을을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어? 응, 그래. 별로 볼 것 없는 마을이긴 하지만 원하면 안내해 줄게. 그것 말고도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을 알고 있어.”
“그런가요? 아, 대답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딱히 폴 형이 싫은 건 아니니까요. 원래 말투가 좀 이래요.”
“그, 그래? 그렇구나.”
내게서 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무리 서로 잘 모르는 관계라고는 해도 상대방이 먼저 형이라고 불러 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특히 이 나이 때의 남자아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욱 커진다.
어차피 나보다 연상이기도 하고 기분도 풀어 줄 겸 말해 본 것이었는데 효과가 괜찮은 모양이다. 나는 푸르륵, 투레질을 하는 말들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빗을 정리한 뒤 폴에게 다가갔다.
“그럼 마을 안내를 부탁할게요.”
“알았어, 나만 따라와!”
기분이 좋아진 폴은 밝은 미소와 함께 나를 마을로 안내해 주었다.
음……, 발딘 아저씨의 말과 알렉스 형에게 했던 행동을 보고 철부지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근본이 나쁜 아이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활기를 되찾은 폴의 뒤를 따라다니며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며 대충 훑어봤던 것처럼 이곳 오르덴 마을은 그다지 규모가 큰 마을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중소 규모에 속하는
정도의 도시다. 아슬아슬하게 주민들끼리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다.
“별것 없는 마을이지?”
“……그러네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 수도 그렇게 많지 않고, 여행자가 들르는 마을도 아니다 보니 변변찮은 상점조차 없었다.
상점이라고는 마을의 사냥꾼이 운영한다고 하는 푸줏간이랑 장작을 살 수 있는 나무꾼의 집이 전부다.
그 외에 필요한 물건이나 식량이 있으면 주민들끼리 서로 물물교환을 통해 보충하는 것 같고, 생필품 같은 물건들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도시에서
생필품을 가지고 오는 행상인에게서 산다는 모양이다.
그 외에는 전부 주민이 사는 집이다.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데 20여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새 우리가 들어왔던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폴은 뒤돌아 마을의 모습을 쓱 훑어보더니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을의 안내는 이것으로 끝이야. 이곳을 둘러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산에 가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거야.”
“…….”
나는 폴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의 뒤를 따라갔다.
폴은 마을 입구로부터 이어진,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니었다.
바로 오른쪽을 보면 마을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수준의 산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