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64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64화
“……그, 나 또 기절했었어?”
“어…… 응, 잠깐. 약속대로 지켜 줬어.”
“……고마워.”
셀린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지켜 달라고는 말했지만, 막상 남자아이의 품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겠지.
마음 같아서는 얼른 비켜 주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안한데, 자세가 좀 그래서…… 이쪽에서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런데 먼저 일어나 줄래?’
“어, 응, 알았어. 잠깐만.”
몸을 일으키기 위해 셀린이 몸을 바동거렸다. 덕분에 온몸 전체로 셀린의 몸이 비비적거리는 감촉이 느껴졌지만, 두 눈을 꼬옥 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참았다.
신체 감각이 무뎌져 있으니 다행이지, 그대로였다면 조금 곤혹을 치를 뻔했다.
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 나는 루시안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오, 셀린, 몸은 좀 괜찮으냐?”
“네, 아넬 덕분에 다친 곳은 없어요.”
“또다시 이런 일이……. 정말 다행이구나. 어디 보자, 정말로 멀쩡한 것 맞지?”
두 번 연속으로 셀린이 제정신을 차리게 된 것에 감격한 것인지, 펠튼 아저씨가 조금 과하게 셀린의 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태적인 손놀림이라기보단, 아이의 몸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부모와도 같은 손길이다.
펠튼 아저씨가 그런 목적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셀린이었지만, 아무래도 다들 있는 장소에서 그렇게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펠튼 아저씨의 손을 밀어내며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아이참, 펠튼 아저씨, 저 괜찮으니까 그만하세요.”
“허허, 그 꼬맹이가 이제는 자신도 여자아이가 되었다고 부끄러워하는구나. 하긴,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지.”
“아저씨도 참.”
짓궂은 펠튼 아저씨의 말에, 셀린이 펠튼 아저씨의 가슴을 툭 하고 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랜 기간 검술을 단련해 온 펠튼 아저씨의 근육은 고작 열 살짜리 꼬마 아이가 때린다고 해서 아픔을 느낄 만큼 연약한 근육이
아니었다.
“컥!”
“……어?”
“……어?”
순간, 툭 소리가 아니라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펠튼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자, 그곳엔 펠튼 아저씨의 가슴팍을 톡 하고 때린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고 있는 셀린과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퍽 하고 셀린에게 가슴을 가격당한 펠튼 아저씨의 모습이 있었다.
분명 셀린은 톡 하고 펠튼 아저씨의 가슴을 쳤다.
그런데 들려온 소리는 분명 톡 하는 소리가 아니라 퍽 하는 소리와 억 하는 소리였다.
우리는 침묵했고, 펠튼 아저씨의 가슴에는 이내 시퍼렇게 멍 자국이 생겨났다.
“이게 대체……?”
대련, 그 이후
소모된 오러를 보충하고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는 데까지 나는 하루라는 시간을 꼬박 침대 위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동안 오러를 단련하면서 전체적인 양이 늘어난 만큼 이번에 불꽃의 기운을 상대하면서 소비된 오러의 양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사를 하고 싶어도 식당까지 걸어갈 힘이 없어서 루시안이 식당에서 식사를 챙겨 와 줄 정도로 꽤나 고생했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이제 멀쩡하지만 말이다.
간단한 세안을 통해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는 길드 본부 3층에 있는 마스터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작정 방문한 것은 아니고, 사전에 방문하라는 마스터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드 업무가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찾아왔기 때문에 마스터가 처리하고 있는 서류의 양은 평소보다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마스터는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몸은 좀 괜찮나, 아넬?”
“네, 푹 쉬었더니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다행이군. 우선 이쪽으로 와서 앉도록 하지. 서서 이야기하기엔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말이야.”
마스터가 권하는 대로 집무실에 마련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상당히 질 좋은 소재로 만들어져 있는 모양인지 몸이 푸욱 하고 살짝 묻힐 정도로 촉감이 좋았다.
맞은편에 앉은 마스터는 그대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를 표했다.
“셀린의 문제를 해결해 줘서 고맙구나. 그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한 길드마스터로서 네게 감사한다. 너와의 대련 이후로 셀린은 이전과 같이 폭주하는 일이 없어졌다.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완치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야.”
“하지만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어제 나와의 대련 이후로 셀린의 폭주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루 종일 쓰러져 있던 나와는 다르게 셀린은 금방 기운을 차렸고, 오후에는 펠튼 아저씨와 대련을 펼쳤다고 한다.
놀랍게도 대련 내내 셀린은 이전과 같이 광전사가 되어 폭주하는 일이 없었고, 이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아직 다시 폭주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만큼, 엄밀히 말해서 완치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것인지 길드마스터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있다는 내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셀린은 의식을 잃고 폭주하는 일이 없어졌을 뿐이지 아직 그녀의 몸에 이상을 일으켰던 그 불꽃과도 같은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폭주 상태가 그대로 몸에 고정되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인가요?”
“그래, 지금은 펠튼에게 힘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있단다. 하지만 제어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겠지.”
“목검을 두 동강 낸 힘이니까요……. 제어하지 못하면 큰일이 나겠죠.”
내가 오러를 매직 애로우의 형태로 바꾸어 불꽃의 기운을 꿰뚫고 난 뒤로, 셀린은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다.
폭주 상태의 신체 능력을 그대로 원래의 신체에 가지게 된 것이었다.
오러를 끌어 올린 것도 아니고, 마나를 발현시킨 것도 아닌데 셀린은 성인과 힘 싸움을 해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RPG게임이라면 ‘광전사화’라는 액티브 스킬이 사라지고 ‘근력 강화’라는 패시브 스킬이 셀린에게 생긴 셈이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평상시의 모드에서도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셀린이 마음먹고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두 눈이 다시 붉게 변하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 폭주 모드의 셀린이 보여 주었던 힘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폭주 모드보다 이게 더 무서울지도.’
지금의 셀린은 붉은 눈이 되더라도 이성을 잃고 광전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광전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붉은 눈을 하게 된 셀린이 자신이 가지게 된 힘의 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어제 펠튼 아저씨가 셀린에게 목검을 한 자루 주었다고 한다.
자신과의 대련을 통해서 셀린이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펠튼 아저씨로부터 목검을 넘겨받은 셀린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목검을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고 한다.
그것도 양손도 아니고 단 한 손의 악력만으로 손잡이째 우그러뜨렸다는 모양이다.
열 살의 여자아이가 조금의 움직임 없이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단단한 목검을 단 한 손으로 분쇄해 버리고 ‘에헷.’하고 웃는 그 모습에 펠튼 아저씨는 공포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 루시안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디 개그 만화에 나오는 한 장면인가, 하고 웃었지만 막상 처참하게 부서진 목검을 루시안이 들고 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그런 웃음도 입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뼛조각처럼 부서져 있었지, 아마.’
이쯤 되면 원래 셀린의 광전사화는, 그녀의 제어 없이 마구잡이로 그 엄청난 힘들이 휘둘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프로텍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셀린이 광전사화가 되었을 땐, 지치지 않고 목검을 매섭게 휘두르긴 했지만 표출되는 힘이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 프로텍터를 날려 버린 걸까?’
문제 하나를 해결했더니, 다른 문제가 찾아온 격이라 뒷맛이 좀 씁쓸했다.
길드마스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셀린에게는 더 이상 사실을 숨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그동안 우리가 숨겼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레드 드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부터, 셀린이 대련을 할 때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넬 네가 셀린을 구해 주었다는 것도 말해 주었지.”
“……셀린은, 괜찮았나요?”
“처음엔 그다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아빠, 농담도 참.’이라고 말하면서 테이블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다 테이블의 일부분을 손으로 박살 내더니 믿더구나.”
“네?”
마스터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집무실 구석에 모서리 부분이 손가락 모양으로 뜯겨져 있는 흉측한 몰골의 테이블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것도 셀린이 저지른 일이라는 말인가?
확실히 저 정도쯤 일을 저질렀으면 아무리 믿기 어렵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의 한숨이 조금 더 깊어졌다.
“솔직히 지금 셀린이 가지고 있는 힘은 단순 계산만 하자면 오러 유저 상급, 혹은 익스퍼드의 유저가 오러를 이끌어서 내는 힘과 동일할 거다. 물론 진짜 오러 유저와는 차이가 있지. 오러와 관련된 기술도 사용하지 못하고, 기존의 폭주 상태와는 다르게 체력도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다만 그래도 제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거다. 셀린 본인도 제어 못 하는 힘으로 문제가 생기겠지만, 이대로 가면 주변에도 계속 피해를 줄 테니 말이다.”
“네……, 확실히.”
가는 곳마다 손잡이를 우그러뜨리고, 쥐는 목검마다 박살 내며 악수하는 상대의 팔을 분쇄시켜 버리는 셀린이라?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그야말로 공포물이다.
이세계 이야기가 공포 이야기로 뒤바뀌어 버린다.
그것도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그것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셀린의 능력에 대해서는 변명할 만한 내용을 찾으셨나요?”
기존에는 특정 조건 하에서만 폭주가 발동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시 발동 상태에 셀린이 힘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적당한 변명이 없다면 셀린에게 뭔가 문제가 있음을 다들 눈치챌 것이고, 그러다 이상 현상 몬스터와 셀린의 힘이 관계가 있음이 밝혀진다면 이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행히 변명거리가 있는 듯 길드마스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