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62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62화
그런 힘이 몸 안에서 발현되면 당연히 열 살짜리 여자아이의 정신으로는 의식을 잃을 만도 하다.
평상시에는 그녀의 몸에 잠들어 있다가 대련만 하면 기운이 솟아난다는 것은 뭔가 기운이 발동되는 스위치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셀린의 능력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탁하마, 아넬. 나중에 셀린과 다시 한 번 대련을 해 주지 않겠느냐?”
“…….”
솔직히 거절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한 시간 이상 맹공을 펼치는 셀린의 공격을 받아 내야 한다는 귀찮은 점은 있었지만 오러를 이용하면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고, 내게
있어서도 셀린과의 대련은 경험이 된다.
거기에 나밖에는 느끼지 못한, 셀린의 숨겨진 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대신, 셀린과 길드마스터에게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 주셔야 합니다?”
“……고맙구나, 아넬! 마스터에겐 내가 가서 말하마. 셀린은 평소에도 대련에 굶주려 있으니 대련을 하자고 하면 두말없이 찬성할 거다. 너에게는
으음, 나중에 내가 맛있는 요리라도 사 주마.”
“아닙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아직 셀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대련
때도 함께해 주세요.”
“알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당분간 셀린의 대련 상대가 되기로 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길드마스터가 우리의 대련을 허락했음은 물론이고, 셀린 역시 좋아라 하며 대련을 받아들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다음 날 오전, 푹 자고 일어난 뒤 든든히 아침밥을 먹은 나와 셀린은 다시금 연무장 위에 마주 보고 섰다.
뭐, 어제는 내가 아니라 루시안이 이 자리에 있었고, 셀린은 나와 대련을 한 기억이 전혀 없는 모양이니 다시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이상한가?
어쨌든 상당히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셀린과 다르게 연무장 밖에 서 있는 루시안, 그리고 대련을 지켜보러 나온 펠튼 아저씨와 길드마스터,
칼린 씨는 각자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길드마스터의 경우엔 나와 셀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오전 업무 자체를 오후로 미뤄 놓고 이곳으로 찾아올 정도로 셀린의 상태 변화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번 대련에서 어제와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셀린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길드마스터의 얼굴은 영락없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는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내게 다가와 격려와 함께 셀린과의 대련을 받아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했다.
“셀린의 문제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었지. 지금도 사방으로 방법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셀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넬, 네가 보여 주었다. 셀린과의 대련을 무리하게 부탁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앞으로 신세 지게 되었는데, 도울 수 있다면 돕는 게 당연하겠죠. 그렇게 무리가 되는 대련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셀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설령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 말 그대로 우연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작은 가능성에도 희망을 걸어야 할 만큼 나름 사정이 급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셀린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몸이 병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현상을 숨기기는 어렵겠지. 잘못했다가 이 사실이 외부에 퍼지기라도 했다가는 셀린에게 불행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또한 부모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기에 나는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셀린을 잘 부탁하네, 아넬 군.”
“네, 알겠습니다.”
길드마스터가 연무장 아래로 내려간 이후, 목검을 마주 잡고 서서 셀린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넬! 잘 부탁해!”
“그래, 잘 부탁해.”
방글방글 웃는 셀린에게 마주 미소로 답해 주자 어쩐지 셀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응? 혹시라도 벌써 드레이크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하고 급하게 자세를 잡으려고 하니,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셀린은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만약에 대련을 하다 어제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또 지켜 줄래?”
“응? 어…… 알았어. 지켜 줄게.”
대련 도중에 지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는 사실 때문에 혹시라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검을 휘두를 때는 남자아이 그 이상으로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는 면모가 있었는데, 그것과는 달리 이런 부분에서는 영락없는 여자아이인걸.
셀린이 힘을 전부 소진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지더라도, 어제처럼 셀린이 쓰러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와는 달리 오늘은 셀린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어제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셀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셀린은 어쩐지 기뻐하는 듯한 얼굴로 천천히 목검을 굳게 쥐고 자세를 취한다.
그에 맞춰 나 역시 셀린을 향해 목검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자세를 취했다.
아직은 셀린에게서 그 기운이 나타나지 않은 만큼, 굳이 오러를 끌어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신체는 원래의 상태 그대로다.
속으로 하나, 둘, 셋 정도를 셀 타이밍에 ‘하앗!’하며 셀린이 발을 굴러 이쪽으로 재빠르게 다가왔다.
‘역시 평상시에도 나쁘지 않은 움직임이야.’
달리던 자세에서 멈추어 서고, 자세를 잡은 뒤에 검을 내지르는 동작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 모습을 보며 셀린의 기본기가 상당히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는 폭주한 셀린을 상대하느라 루시안과의 대결을 통해서 얼핏 본 것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직접 검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그 사실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폭주하지 않은 셀린의 검격은 내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루시안이 그러했듯, 오러를 끌어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정도였다.
‘과연 어떤 것이 셀린을 폭주하게 만드는 스위치일까?’
나는 셀린의 검격을 막으면서 셀린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체크하였다.
루시안과 10여 분간 대련을 할 동안 셀린은 분명 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폭주를 시작했었지.
펠튼 아저씨에게 물어본 바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련에서도 처음부터 폭주하는 경우는 없었고, 셀린은 항상 대련 도중에 폭주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셀린을 폭주하게 만드는, 즉 드레이크의 기운을 이끌어 내는 스위치 같은 것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 스위치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인 만큼 관찰에 힘을 기울였다.
스위치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앞으로 셀린을 상대할 때 폭주 상황에 대처하기가 상당히 편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셀린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이상, 그러한 점을 미리 생각해 두면 가능성은 조금 더 올라가겠지.
그렇게 어제의 대련과 마찬가지로 약 10여 분간 셀린과 공방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후우, 후! 아넬, 대단한걸? 정말로 강해!”
“칭찬 고마워. 셀린도 엄청 잘하고 있는걸.”
“정말로?”
“그럼, 아마 또래의 여자아이들 중에서는 셀린이 가장 강할지도 몰라.”
“후우……!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그래, 열심히……!”
셀린의 귀여운 태도에 작게 미소가 나오려고 하다 갑작스럽게 셀린으로부터 위화감을 느낀 나는 급하게 오러를 끌어 올렸다.
“윽?”
‘따악!’하는 울림 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내게 휘둘러진 셀린의 목검을 틀어막으며 나는 셀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작했나.’
셀린의 호박색 눈동자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한 눈의 초점이 흐릿한 게, 아무래도 의식 역시 잃은 모양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기쁨을 표현했었던 셀린인 만큼, 드레이크의 기운이 서서히 끌어 올려진 것은 아닌 것 같았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폭발하듯 솟구친 것 같았다.
‘그녀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였지?’
‘아자!’라고 소리친 시점에서 셀린의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셀린이 폭주하게 되는 스위치인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열심히 하겠다는 그 생각이 스위치는 아닐 것이다.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는 감정은 평상시에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 때문에 스위치가 발동된다면 셀린은 대련 이외의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폭주를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셀린은 대련 상황에서만 폭주를 한다.
그렇다는 것은, 대련이라고 하는 이 상황의 특수성이 포함된다는 의미겠지.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가?’
조금 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던 셀린의 표정은 한편으로는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 찬 그런 표정이었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는다면, 셀린의 폭주 스위치는 지고 싶지 않다는 그 호승심의 감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려졌을 때 발동되는 것
같았다.
“……시작되었군!”
연무장 밖에서 셀린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도 셀린의 변화를 감지한 것 같았다.
하기야 조금 전까지도 일반적인 검술로 나와 공방을 펼치고 있던 셀린이 느닷없이 저돌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하아아아앗!”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매섭게 검을 휘두르는 셀린의 공격을 적당히 피하거나 막으면서 밤새 고민한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로 셀린의 폭주 발동의 조건은 대강이나마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이어서 두 번째!’
셀린이 어제 나와의 대련에서 제정신을 차리게 된 이유에 대해 밤새 고민해 봤었다.
기존의 길드원들과의 대련과 내 대련에 차이점이 있다면 첫 번째로는 나와 셀린이 또래라는 점이 있고, 두 번째로는 셀린과의 신체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이유인 또래 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설마하니 같은 나이의 아이를 상대했다는 이유로 셀린이 드레이크의 기운을 누르고 제정신을 찾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남은 이유는 셀린과 내가 신체 접촉을 했기 때문으로 넘어갔다.
‘그때 나 역시 레드 드레이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불꽃처럼 일렁이던 그 사나운 기운은, 나와의 접촉을 통해 불꽃이 꺼지듯 사그라졌었다.
그 뒤에 셀린은 제정신을 차리고 나와 대화를 나누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