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35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35화
“아마도 다녀오는 데만 10개월 이상 걸릴 것 같네요.”
레아 누나도 고향에 다녀오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내가 계산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을 말했다.
“다녀오는 것만 해도 꽤나 큰일이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장기간 여행이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레아 누나는 왜 라그나 왕국이 아니라, 세르피안 왕국에서 일하게 된 건가요?”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자, 레아 누나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인지 조금 그리운 듯한 표정으로 내 질문에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제가 태어난 마을은 세룬 도시 근방의 작은 마을들과 같은 수준의 시골 마을입니다. 그다지 부유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는
지낼 수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가정 환경에 만족하며 생활했지만, 부모님은 저를 일반적인 농부의 딸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가 태어난 이후 꾸준히 모아 둔 돈으로 열두 살이 된 저를 인근 도시의 교육 시설로 보내 주셨어요. 그곳에서 글자를 배우고, 산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초 학문들을 배웠습니다. 총 3년간의 교육을 받고 난 뒤, 그곳에 계신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세르피안 왕국의 수도인 라티움에 오게
되었고 이후에 모험자 길드 본부 면접시험에 합격해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죠.”
‘벌써 12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라고 말하며, 레아 누나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카르네 영지 부근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말로는 직접 표현하고 있지는 않아도, 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아 나와 루시안은 서로를 바라보고 레아 누나에게
작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녀는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하루 동안 수도 라티움에 가는 여행 계획을 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우리를 라티움까지 데려다줄 마부를 고용하고, 또한 수도에 도착해서 사용할 간단한 옷가지 등을 챙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빼놓은 물건들이 없는지, 한 번 더 꼼꼼히 여행 가방을 확인하는 것으로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내 방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곳과도 당분간 안녕이네.’
부모님과 떨어져서 자기 시작한 것이 세 살이 되기 바로 전의 일이었으니 7년 동안 사용한 정겨운 방이다.
하지만 이제 수도로 향하게 되면, 아마 꽤 오랜 시간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직접 가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1, 2년 내로는 돌아오지 못하겠지.
조금 쓸쓸해지는 감정을 느끼며, 여행 가방을 챙겨 들고 내 방을 빠져나왔다.
나와 레아 누나가 루시안과 함께 수도로 출발하는 날인 만큼, 아침 식사는 호화로웠다.
평소의 아침 식사는 간단한 수프와 빵, 그리고 베이컨과 소시지 정도의 것들이 준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만큼은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구운 고기
요리 등,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한 요리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당분간 엄마의 요리는 먹지 못할 테니까. 이참에 잔뜩 준비해 봤어.”
어머니는 방긋 웃으시며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음식을 먹는 내 얼굴을 그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면서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인 만큼, 어머니는 내가 수도로 가는 것에 반대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내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는 점에서는 내가 수도로 가는 것을 적극 권장하셨다.
하지만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듯,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아들의 모습을 눈에 새겨 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식사를 전부 마치고 난 뒤, 잠깐의 티타임까지 즐기고 레아 누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
“아넬, 준비는 전부 되었나요?”
“네, 빠진 것이 없나 확인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도록 할까요?”
각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서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리나도 길드 정문까지 걸어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모험을 떠날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아버지는 내게 한 자루의 검을 건네주었다.
“첫 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선물이다. 받아라, 아넬.”
“……이거, 진검인가요?”
척 보기에도 목검은 아니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와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아버지를 올려다보자, 아버지는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너는 검사란다. 검사에게 검이 없어서야 말이 안 되겠지. 라티움에 가서도 늘 건강하고,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란다, 아넬.”
“감사합니다. 소중히 사용할게요.”
“아넬과 루시안을 잘 부탁해, 레아. 그리고 고향에 잘 다녀와.”
“네, 감사합니다, 릴리아 씨. 아넬은 책임지고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서 편지 꼭 하겠습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몸조심하렴, 아들.”
어머니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길을 떠나는 내게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는지 애써 웃는 표정으로 나를 다정히 안아
주셨다.
당분간은 느끼지 못할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느끼며, 아버지와도 가볍게 포옹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상당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빠 없어도 잘 지내야 해, 리나?”
“응, 다음에 오빠를 만날 땐, 내가 오빠를 지켜 줄 테니까 ……잘 다녀와, 오빠.”
뭔가, ‘반드시 강해질 테니까.’라고 리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내 품에 와락! 하고 안겨 든 리나를
토닥여 주고, 그녀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 주는 것으로 소중한 동생과의 인사를 끝마쳤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렴.”
이후 부모님과 리나는 나와 레아 누나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대로 길드 정문에 서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시야에서 집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기분이 좀 미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쓸쓸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쉬움이라고 해야 할까.
내 표정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인지, 레아 누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조금 쓸쓸하지요, 아넬?”
“……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룬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는데 당분간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묘하네요.”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익숙하고 정겨운 마을을 떠나 미지의 장소로 간다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한동안 기분이 뒤숭숭했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랬나요?”
“네, 그랬습니다.”
그녀의 밝은 미소에 울적했던 기분이 다소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나도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레아 누나.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후후, 고맙기는요. 루시안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서 가도록 해요.”
이후 루시안과는 사전에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서 만난 뒤, 나와 루시안, 그리고 레아 누나는 수도 라티움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까지는 약 20일 정도 걸린다고 했었나.
꽤 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수도를 향하여(2)
우리를 수도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마부는 슐츠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에 상당한 근육을 가진, 다부진 인상의 사람인데, 이 업에 10년 이상 종사했다는 자칭 베테랑 마부였다.
원래는 아버지가 하던 마부 일을 자신이 2대째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곧잘 아버지와 함께 마차를 몰며 수도와 세룬 도시 근방을 오가며 손님들을 태우고 다녔기 때문에 경험도 많고 10년 이상 무사고 운전(?) 기록도 세우고 있는 등, 주변의 평판도 상당히 좋은 인물이라 수도 라티움까지의 운행을 요청했다.
가격은 1인당 20은화였다.
나와 루시안은 어린이 할인 혜택을 받아 각자 17은화씩 지불했다.
참고로 은화는 은화 1개당 한화로 약 5만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세계의 화폐이다.
수도를 향하는 데 레아 누나가 100만 원, 나와 루시안이 각각 85만 원씩 해서 총합 270만 원의 금액이 든 것이다.
뭐, 고작 마차로 이동하는데 뭐가 이렇게 비싸?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15일 이상을 해가 떠 있는 동안엔 꾸준히 이동해야 하는 데다, 말에게 먹일 여물 값, 여행하는 도중에 드는 식비, 그리고 마을에 들렀을 때에 일행이 여관에 묵는 숙박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라고 한다.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면 마부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엔 나도 레아 누나에게 그 가격에 대해서 들었을 때 엄청나게 놀랐었지만, 레아 누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럴듯하다고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도 15일 동안 자신의 집이 아니라 밖을 싸돌아다니려면 찜질방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거나, PC방에서 라면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면 꽤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은 길가에 다소 싼값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사실 있으면 그게 더 웃긴 노릇이겠지만.), 여행 도중엔 기본적으로 마을에 머무는 것이 아닌 한 밖에서 야영을 해야 하니 밤에 덮고 잘 침낭이나, 장작을 구할 도구, 불을 피울 도구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야영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수도에 도착하면 쓸데도 없는 그런 야영 도구들을 우리가 구입해서 가지고 다니기엔 여러모로 귀찮고, 막상 구입해도 가지고 다니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마부라는 직업은 마차에 그런 야영에 관련된 물품을 미리 챙겨서 손님에게 대여까지 해 주는 나름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270만 원이라는 돈이 사실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지간한 평민들은 마차를 쉽게 이용하기 어렵겠는걸.’
이전에 지도를 살펴보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 세룬 도시와 라티움 도시 사이의 거리를 왜 ‘걸어서 며칠’ 단위로 계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반 평민이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할 일도 애당초 없긴 하겠지만, 1인당 100만 원이라는 돈을 내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처럼 국민 평균 삶의 질 자체가 높은 곳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차에 짐을 전부 다 싣고 난 뒤, 슬슬 마차에 타 볼까 하는데 마부인 슐츠 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린 손님들을 태우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인걸? 수도엔 무슨 일로 가는 거지, 손님?”
“방문 목적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응? 아니, 아니, 전혀 없지.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니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