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9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9화
레아 누나는 나와 리나, 그리고 루시안이 도시 쪽으로 도망을 간 이후 자신을 상대하던 고블린 두 마리가 느닷없이 우리가 도망간 방향으로 뛰어가서
무척이나 걱정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까지 들고 있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들을 상대하는 것이 꽤나 까다로워 그들을 전부 처치하는 데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쪽으로 두 마리가 빠지는 바람에 일곱 마리였다면 꽤나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벗어나 크게 다친 곳 없이 다섯 마리를
모두 퇴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리안 씨와 조금씩 대련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라고, 레아 누나는 그날 무척 위험했었다고 말했다. 내게는 아직 알려 주지 않았지만, 레아 누나와 간간이 대련하면서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방법
같은 것을 지도했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로 레아 누나가 별다른 상처 없이 그들 모두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고도.
어쨌든 고블린을 전부 처리한 이후 우리를 급히 쫓은 레아 누나가 본 장면이 고블린에게 왼팔을 물어 뜯긴 채 기절하듯 잠든 내 모습과, 그 옆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리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루시안은 내가 쓰러진 이후 리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를 악물고 달려 도시에 상황을 전달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그 상황에 쓰러진 나와 리나를 버려 두고 혼자만 도망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루시안도 처음엔 리나를 데리고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리나가 끝까지 내 옆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루시안 혼자서 도시로 달려갔단다.
“아마도 루시안이 아넬의 곁에 머뭇거리면서 도시에 현재 상황을 전달하지 못했었다면, 그래서 병사들이 오는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아넬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루시안은 내가 쓰러진 이후 상당히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서,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일 분이라도 빨리 도시로 달려가 어른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와 리나, 레아 누나까지 전부를 살리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 판단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하니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해야겠다.
고블린에게 물어 뜯긴 왼팔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지만, 세룬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에레나 신전으로 찾아가 신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신관님에게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아 간신히 원래 형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 신관의 신성력으로는 신체의 회복력을 극대화시킬 수는 있어도 뼈가 으스러진 팔까지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들었지만
대신관님이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신성력을 통째로 들이부어 주신 덕분에 빠르게 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왼팔에 통증이 있는 이유는, 신성력이라고 하더라도 신체를 완벽하게 돌려놓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잘한 상처가 아직까지 회복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팔이 아작 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넬이 처음 병사들에게 안겨 이곳에 도착했을 때 리안 씨와 릴리아 씨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습니다. 특히 아넬의
왼팔을 보고 릴리아 씨는 그대로 쓰러질 뻔했어요. 어머니가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 충격을 견디고 여태껏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아넬의 옆에서 정성껏 간호했습니다. 그러니 릴리아 씨가 저렇게 쓰러진 것도 이해해 주세요.”
“아뇨……. 부모님에겐 제가 잘못했으니까요……. 제가 리나를 데리고 숲에 가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겠죠. 리나에게 너무
끔찍한 경험을 하게 했어요.”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그 자리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넷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무사한 겁니다.
특히 아넬이 고블린 두 마리를 모두 쓰러뜨리고 루시안과 리나를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결코 아닙니다. 아넬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그건 정말로 천운이 따랐을 뿐이에요. 저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리나와 루시안 두 명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줬습니다.
특히 리나에게요. 리나는 그때 새파랗게 질려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어요. 안쓰러울 정도로요. 그런데 저는 리나를 제대로 지켜 주기는커녕 쓰러져서
리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죠. 도시의 병사들이 오기 전까지 리나가 얼마나 무서웠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아넬.”
레아 누나는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살며시 끌어안아 주었다. 어머니에게도 끌어 안겼지만,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는 또 다른 따뜻한
품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살며시 들어 레아 누나와 시선을 마주하자, 레아 누나는 조금 슬픈 듯이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나도, 루시안도 물론 상처받았습니다만, 아넬이 상처받은 것이 가장 큽니다. 아넬은 두 사람을 지켜 주었지만, 가장 심한 부상을 당했고,
몬스터들을 상대했지요. 너무 자신을 탓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아넬의 잘못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넬이 리나와 함께 숲으로
놀러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은 우리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아넬은 다른 이들이 이루지 못한 엄청난 일을 해냈고, 그 증거로 고블린으로부터 자신의 친구와 동생을 안전하게 지켜
냈습니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아넬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냈어요.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넬.”
“……무서웠습니다.”
“……네, 저도 무서웠습니다. 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제가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해 아넬과 리나, 그리고 루시안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무서웠어요. 하지만 아넬은 그런 저보다도 훨씬 무서웠겠지요.”
다정한 레아 누나의 말을 들으며, 응석을 부리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품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몸이 떨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살아남아서 다행이지만 한 번이라도 직격당했다면 머리가 으깨졌을 수도 있고, 몸이 으스러질 수도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루시안과 리나가 그런 처참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블린들의 목과 가슴을 꿰뚫었을 때의 그 섬뜩한 감촉이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아 몸이 더욱 떨렸다.
“죄송해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도 될까요?”
그다지 춥지도 않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아 따뜻한 그녀의 품에 더욱 안겨들었다.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레아 누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아 주었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듣고 나서 꼴사납게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부끄럽다고 느낄 여유도 없었고, 그저 여덟 살의 어린아이가 되어
마음껏 응석을 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에 진정되고 나서 레아 누나에겐 제대로 감사를 표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것은 그로부터도 일주일의 시간이 더 흐른 뒤의 일이다.
***
몸이 거의 회복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그동안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굳어 버린 신체를 기본 체술을 통해 가볍게 풀어 보고자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모처럼 뒤뜰에 나왔다.
“아넬,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아직까지 전부 완치된 것은 아니니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무리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도 같이 수련을 보조하겠다고 따라 나온 레아 누나의 걱정 어린 충고에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체술의 자세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신체를 움직였다.
다쳤었던 왼팔도 꾸준히 신관님의 신성력을 주입받으며 영양가 높은 음식들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했더니 이제는 거의 나았다고 봐도 괜찮을 수준으로
상태가 좋아졌고,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한 것에 대한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되던 신체의 무력감도 휴식을 통해 완전히 회복되었다.
아니, 오히려 신체를 몇 번 가볍게 움직여 본 결과, 다치기 이전보다도 움직임이나 근력 면에서 몸이 훨씬 더 좋아지게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후우……!”
체술을 펼치는 동작 하나하나에 강한 힘이 들어간다.
물론 내 기준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이전의 동작들이 ‘샥’ 하는 소리로 펼쳐졌다면 지금은 ‘샤악!’하는 다소 강한 음이 들린다고 할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이었다.
여태껏 중에 가장 베스트 컨디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이러다가 막 장풍 같은 것도 쓸 수 있게 되는 거 아냐?’
가끔 무협지 같은 만화책을 보면 무림의 고수들은 손바닥을 내밀어 기를 내뿜는 것만으로도 멀리 있는 적들을 공격하기도 하던데, 나도 그런 것을
펼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피식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풍은 무슨…….’
무림의 고수는커녕, 장풍을 내뿜을 수 있는 무공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공에 해당되는 오러조차 아직 발현하지 못한 나다.
당장의 고블린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죽을 뻔했었던 녀석이 장풍을 내뿜어 적을 쓰러뜨릴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다.
‘그래도 어쩐지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장난스럽게 손을 파악! 하고 내뻗자, 갑자기 내 손바닥으로부터 ‘파앙!’하고 공기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뒤뜰에 울려 퍼졌다.
“……어?”
그것은 내 귀뿐만 아니라, 옆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레아 누나에게도 들릴 정도로 꽤나 선명한 소리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현상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나와 함께 레아 누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넬, 방금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었나요?”
“아, 그게…….”
내 손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라고 간단히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사람 손에서 ‘파앙!’하는 소리가 날 리가 없을뿐더러 정작 소리를 낸
당사자인 나조차도 뭐가 어찌 된 노릇인지 영문을 모르니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봤지만, 이번에 들리는 소리는 아까처럼 허공을 때리는 파공음이 아니라, 평소처럼 ‘샤악’ 하는, 손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뿐이었다.
착각인가?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이내 심장에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힘에 파동을 느낀 나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바닥을 향해 쭉 내뻗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손바닥으로부터 ‘파아앙!’하고 내뿜어지는 힘의 파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