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5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5화
“그런데 보통 그런 흔적들을 만들면 주변에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나요? 숲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면 사람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나무에 생긴 흔적 수만큼의 고블린들이 단체로 나무를 두드렸다면 소리가 꽤나 컸을
겁니다. 거기다 흔적을 봐선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라면 못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 주변을 담당하고 있는 순찰조 사람들이라면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한데 왜 도시에 보고하지 않은 것일까요?”
‘어쩌면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못 듣고 다른 곳으로 갔을까요?’ 그런 의미의 한숨과 함께, 레아 누나는 리나를 품에 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숲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레아 누나의 발걸음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뒤따르는 나와 루시안의 발걸음이 레아 누나의 발걸음을 따라잡지 못한다.
체력 문제도 문제이지만, 보폭 자체가 넓지 못하다 보니 레아 누나가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바로 뒤떨어진다.
그렇다고 레아 누나가 나와 루시안을 모두 업고 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급하게 걷긴 하더라도 숲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선 앞으로 20여 분
이상을 더 가야 했다.
“고블린들이 이 근처에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만약 호수 주변에 있었다면 벌써 사람 냄새를 맡았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고블린이 후각까지 좋은가요?”
“몬스터는 야생 동물보다 오히려 감각이 더 뛰어납니다. 시각은 개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후각과 청각은 예민하죠. 도구를 사용하기는 해도 인간처럼
덫을 만들거나 활과 화살로 사냥을 하는 것은 아니니 야생 동물을 사냥하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동물보다 감각이 더 뛰어나야 하니까요.”
“지금 우리에게 있어선 오히려 좋지 않은 소식이네요.”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RPG 게임 세계였다면 일정 범위 밖을 벗어나는 것으로, 고블린은 자신에게 해당된 필드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임도 아니고 엄연한 현실 속의 이야기다.
현실 속 고블린이 설마 이렇게 성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일 줄이야.
예전에 고블린이나 코볼트의 취급이 짜다 뭐다 하면서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머릿속으로 욕했다.
진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 이거. E급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이쪽은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리나가 침착하게 있어 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모처럼 다 같이 놀러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니 위험하다는 말에 리나는 불평불만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집에 가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나름 길드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그런지,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면서 들은 것들이 있는지라 리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몬스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리저리 소란스러우면 본인도 불안한 마음이 들기 마련일 텐데도, 리나는 가끔씩 나랑 눈이 마주치면 ‘히히.’하고 자기는 괜찮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 주고 있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거의 뛰듯이 숲을 벗어나기 시작한 지 약 10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들으셨나요?”
“네.”
레아 누나의 말에, 나와 루시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우리가 뛰는 소리와, ‘후우, 후우.’하는 숨소리 때문에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파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간이 ‘케륵케륵.’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좀 먼 곳에서 들리더니 3분쯤이 더 지난 지금에선 그다지 집중하지 않아도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연신 ‘케륵케륵.’하는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고 있었다.
“……혹시나 했었습니다만, 따라잡힌 모양입니다.”
“저게 고블린들이 내는 울음소리인가요?”
“맞습니다. 들리는 소리로 봐선 최소한 다섯 마리 이상의 규모를 가진 집단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숫자가 더 많네요.”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레아 누나는 오러 유저 하급에 달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모험자로 치자면 D급에 속하는 실력이다. 평균적으로 D급의 모험자가 고블린 집단을 무난하게 사냥할 수 있다곤 해도 기껏해야 다섯 마리 정도가
한계선이다.
특히나 혼자 싸워도 고블린들의 숫자가 많으면 상당히 버거운데, 동료도 아니고 지켜야 할 어린아이가 무려 세 명이다.
거기에 한 명은 아예 전력으로 포함시킬 수조차 없는 어린 여자아이.
다섯 마리 이상의 고블린이 나타나면 레아 누나도 상당히 위험해지는 것이다.
레아 누나는 뛰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리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대로 계속 뛰어 봤자 숲이 끝나기 전에 먼저 고블린들이 덤벼들 것이고, 그들에게 덮쳐지는 모양으로 공격받으면 되레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레아 누나는 이참에 고블린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반대로 그들을 퇴치할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아넬, 루시안…… 잘 들으세요.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의 숫자를 파악한 즉시 리나와 함께 마을을 향해 뛰어야 합니다. 그동안 최대한
저들을 퇴치하고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병사들에게 고블린의 출현 소식을 알리고, 지원군을 부탁드려요.”
“네?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레아 누나는 ‘쉿!’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블린 쪽의 전력이 훨씬 좋다는 것은 레아 누나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미끼가 되어 우리를 탈출시키겠다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레아 누나는 우리를 신경 쓰며 방어에 임해야 할 것이고, 고블린의 숫자가 예상보다 적으면 다행이겠지만 다섯 마리 이상이라면 오히려
레아 누나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레아 누나가 전투력을 상실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전멸이다. 그것을 레아 누나는 말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옵니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것과 거의 동시에 ‘푸스럭푸스럭’ 하는 소리를 내며 녹색의 피부를 가진 괴물이 풀숲에서 걸어 나왔다.
짜리몽땅한 체격에 짐승의 가죽으로 몸의 일부분만을 가린 야만적인 옷차림. ‘케륵케륵.’하는 듣기 거북한 특유의 울음소리까지.
째진 눈과 더불어 살짝 악마처럼 생긴 그 모습이 신기하게도 내가 게임 속에서 봤었던 고블린들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그런 고블린이 무려 일곱 마리였다.
원래 고블린이라는 몬스터는 풀숲에서 모험자를 덮치는 녀석들이라고 들었지만, 우리의 숫자보다 자신들의 숫자가 더 많음을 과시하려는 모양인지 그다지
숨지도 않고 ‘케륵케륵.’하는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시했다.
그 행동에 불쾌감이 생기려는 찰나, 나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레아 누나, 저 녀석들…….”
“……네, 아무래도 우리 이전에 먼저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네요.”
고블린들의 입가에는 살짝 말라붙은 피가 묻어 있었고, 몇몇 고블린들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그들이 들고 있는
것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총 일곱 마리의 고블린들 중, 세 마리는 두꺼운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지만, 나머지 네 마리는 어디서 구했는지 녹이 슬지 않은 멀쩡한 형태의
숏소드를 저마다 하나씩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숏소드 역시 그들의 입가에 말라붙은 것처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거기에 한 놈은 도시의 병사들이 쓰는 투구로 보이는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뿐이었다.
“순찰조가 왜 도시에 보고를 하러 가지 않았나 싶었는데, 먼저 고블린들에게 당한 것 같네요.”
“네.”
고블린들의 몸에 있는 자잘한 생채기들은 병사들과 싸우면서 생긴 것인가.
그렇다면 원래는 일곱 마리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고블린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레아 누나에게 듣기로, 순찰조는 병사 세 명에 십인장 한 명이 멤버로 구성된다고 들었다.
병사 한 명은 약 E급의 모험자 한 명분, 십인장 정도 되면 D급엔 못 미치더라도 병사들 중엔 경험이 꽤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고블린 일곱 마리에 전멸까지 당할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고블린들이 있었겠지만 전투 도중에 몇 마리는
죽었겠지.
그들이 전멸한 것을 슬퍼해야 할지, 그나마 몇 마리라도 줄여 주어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준 것을 감사해야 할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넬, 루시안. 총 일곱 마리입니다. 확인했지요? 거기에 병사들의 무기까지 빼앗은 놈들입니다. 이쪽 순찰조는 이미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성문의 병사들에게 꼭 전해 주세요.”
“……혼자서 괜찮겠어요, 레아 누나? 저 녀석들, 검까지 들고 있어요.”
“사실 몽둥이를 들고 있건, 검을 들고 있건 일격을 허용하는 순간 위험해지는 것은 똑같습니다. 오히려 맞으면 뼈가 으스러지는 몽둥이보단 살이
베이고 끝나는 검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서.’ 레아 누나는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며 무언으로 우리에게 외쳤다.
“……가자, 아넬!”
“……그래.”
“레아 언니는 혼자 남는 거야?”
“우리가 있으면 레아 누나가 고블린들과 싸우는 데 방해되니까 우리가 먼저 도망가는 거야. 레아 누나는 강하니까 괜찮아!”
“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세요, 리나.”
“응, 빨리 와야 해!”
고블린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에 레아 누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리나의 말에 대답을 대신했다.
이후, 나와 루시안은 리나와 함께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로, ‘케르르륵!’하는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숲 속 가득 울려 퍼졌지만 애써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뛰는 것에만 집중했다.
첫 실전(3)
“후, 후우, 후…… 헉, 헉…….”
“헉…… 허억, 헉…….”
“후우……후, 후우…… 후…….”
레아 누나와 고블린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떨어진 이후로, 우리 세 명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한 지금도 홀로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을 레아 누나를 구할 병사들을 부르기 위해서.
하지만 역시나 어린아이 발걸음으로 아무리 열심히 뛰어 봤자, 어른이 뛰는 것보다 이동 거리가 짧다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체력이 가장 큰 문제다.
그나마 여기 있는 인원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체력을 단련해 온 나는 그래도 숨이 차는 정도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루시안은 이미 호흡이 상당히 불안정하고, 무엇보다 리나가 너무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