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2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2화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또 다른 느낌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그러면서도 루시안과 지내고 있다 보면 나름 즐겁다.
내가 하는 말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뜻을 섞어서 말하는 것인지 루시안은 때로 ‘아넬은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라고 하며 투덜거리긴 하지만, 나름 루시안과 검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나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귀찮다, 귀찮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와 계속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 이틀, 한두 마디 이야기하다 포기했던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괴팍하고, 루시안이 특별한 것이겠지만 말이야.’
지금도 때때로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루시안은 내가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대답을 여러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쾌해하지 않으며 늘 싱글싱글 웃으며 능글맞게 달라붙었다.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루시안과 계속 같이 있게 되는 것은 말이다.
‘아직은 무리더라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루시안은 내가 인정할 정도로 똑똑하고, 또한 성격까지 좋은 아이다. 분명 크면 뭐가 되더라도 될 아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나랑 어울리기 위해선 똑똑하고 능력 있는 녀석이어야 돼!’라고 뻗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훌륭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라는
것이다.
그런 아이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루시안을 진짜 친구로서 여길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내게 의미 있는 친구를 첫 친구로서 사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넬! 물 마시고 해!”
“응, 고마워.”
검을 휘두르던 자세를 멈추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컵에 시원한 지하수를 떠서 온 루시안에게 감사하며, 그에게서 컵을 받아 들고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청량감을 느끼며 루시안과 마주 보고 서로 웃었다.
뭐, 시간이 지나고 볼 일인 것이다.
오늘도 나름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첫 실전(1)
아무래도 밤이 되면 촛불이나 불빛을 내는 몇몇 마도구에 의지해 불을 밝히는 곳이다 보니 낮이건 밤이건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밤과는 다르게 이 세계의 밤은 은은한 불빛만이 거리를 밝히고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때문에 평소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가장 처음으로 일어난 내가 거실에서 책이라도 읽을까 하는 생각에 바스락거리자, 레아 누나가 거실로 걸어 나왔고, 나와 레아 누나의 대화 소리에 부모님과 리나도 거실로 걸어 나왔다.
오늘 무슨 날인가? 하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아침에 다들 한 번씩 웃으며, 우리 가족은 다른 날보다 다소 빠른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루시안과 검술 수련을 시작하는 9시 30분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나는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까 보려던 책을 펼쳤다.
딱히 주제를 잡고 책을 읽기보단,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아무거나 막 읽어 보는 중이다.
모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식도 있고, 또는 헛소리로 치부되는 전설 같은 것을 적어 놓은 책들까지 종류가 꽤나 다양했지만, 어느 쪽을 읽더라도 이 세계 언어를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 일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읽으니 그럭저럭 볼 만했다.
“오빠, 또 책 읽는 거야?”
와락, 하는 효과음이 들릴 것 같은 느낌으로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게 매달렸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레아 누나가 내게 매달릴 일은 없고, 또한 목소리까지 들린 마당에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가 내게 다가온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리나는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내가 보고 있는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를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책, 재미있어?”
“으음…… 그럭저럭? 그런데 좀 무거우니까 비켜 주지 않을래?”
“여자아이한테 무겁다니, 실례야, 오빠!”
“……그러니?”
내가 올해로 여덟 살이니, 리나도 이젠 다섯 살이다.
성장한 만큼,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감정 표현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거기에 덧붙여 어린아이 특유의 귀여움과 포동포동함(살쪘다는 의미가 아니다.)이 어우러지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여동생으로 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 리나가 예쁘고 귀엽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성장한 만큼 무거워졌지만 말이지.’
내가 아무리 여덟 살이 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이제 다섯 살이 된 리나의 몸무게를 온전히 견디는 것은 아무래도 좀 힘겹다.
들려고 하면 들 수야 있겠지만, 리나가 아기일 때처럼 번쩍 들어 품에 안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리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기회가 있다면 나에게 안기려고 든다. 이전처럼 안아서 들어 달라고까지 요구하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매달리거나 누워 있으면 등에 올라타는 형식이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오빠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에는 감사하지만, 슬슬 오빠의 사정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결국 등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리나를 달래, 오늘도 타협을 보기로 결심하고 나는 무릎을 탁탁 두드렸다.
“그럼 이쪽에 앉을래?”
“응!”
뭐가 그리도 좋은지 ‘헤헤.’하고 밝게 웃으며 냉큼 등에서 떨어진 뒤, 책상다리를 한 내 다리 위에 걸터앉은 리나가 생글생글 미소 짓는다.
등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진 것은 좋지만, 앞에 리나를 안고 있어서야 독서하긴 글러 먹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독서하는 것을 포기했다.
“리나는 이제 많이 자랐는데도 여전히 어리광쟁이구나.”
“그치만 요즘 오빠는 루시안 오빠랑 매일 검술만 하잖아. 검술이 다 끝나면 피곤하니 놀아 달라고 하지도 못하는걸…….”
“…….”
어라?
생각해 보니 루시안과 같이 검술을 단련하기 시작한 이후로, 리나가 여러모로 달라붙기는 해도, 정작 놀아 달라고 보채는 일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검술을 시작하는 3시 전까지는 잠깐 시간이 있으니, 내가 스스로 리나와 같이 놀아 주거나 낮잠을 자곤 하지만, 검술을 끝내고 난 뒤엔 저녁을 먹고 나면 평소 생활하는 것처럼 행동할 뿐, 리나가 내게 놀아 달라며 안기거나 붙잡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는 어머니나 레아 누나에게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는 단순히 ‘아, 남자인 오빠보다는 같은 여자인 어머니랑 레아 누나랑 노는 것이 더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리나는 본인 나름대로, 내가 검술을 수련한 이후엔 늘 피곤해하니까 배려해 준 모양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달라붙는다고 걱정만 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 오빠가 리나에게 너무 무신경했었네…….”
“그렇지는 않아. 오빠는 열심히 하고 있어.”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어 주는 동안 동생에게 위로를 받았다.
‘리나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응애응애 하고 울 때가 있었는데, 이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척척 해내고 어느새 오빠를 위로해 줄 만큼 성장했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성장해 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감개무량하다.
‘이게 딸을 키우는 마음 같은 건가.’
기준이 좀 잘못되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여동생이라기보단 딸내미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뭐, 오빠든 아빠든 여동생이든 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냥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래도 오빠를 생각해서 그동안 놀고 싶어도 꾹 참고 있던 리나에겐 보답을 해 줘야겠지. 뭐 하고 싶은 건 없어? 오빠가 오늘 하루 같이 놀아 줄게.”
“어……? 정말? 뭐든지 해 줄 거야?”
내게 머리를 맡기던 리나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뭐든지 해 줄게.’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나를 돌아보면서 말하는 리나의 기세가 사뭇 대단해서 나도 모르게 ‘어…… 어.’하고 대답해 버렸다.
리나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는 ‘으음…….’하면서 무엇을 부탁할까 엄청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서 알 수 없는 박력 같은 것을 느껴서 나는 저도 모르게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찔했다.
‘오후 단련 전까지만 놀아 줄까 했던 거였는데…….’
그러나 이미 잔뜩 기대에 부푼 리나의 모습을 보면서 ‘오후 단련 전까지만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리나가 내게 무엇을 부탁하려고 저렇게 깊게 고민하고 있는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두어 시간 노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10여 분 가까이 머리를 잡으며 고민하던 리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숲, 숲에 가고 싶어!”
“……숲에?”
예상치 못했던 리나의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지만, 내가 들은 것이 정확하다는 듯 리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숲에!”
“숲……이라.”
한마디로 같이 놀러 나가고 싶다는 의미다.
하지만 도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근처 공터에서 같이 노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이왕 하는 부탁인데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고민하고 말한 것 같다.
그래서 고른 곳이 숲이라는 것인가.
도시 밖으로 거의 나간 적이 없는 리나가 왜 숲에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나는 리나가 부탁한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확실히, 세룬 도시 근방에는 숲이 있는 산이 상당히 많다.
깊은 산도 있고, 언덕 수준에 속하는 작은 산들도 많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깊은 산은 출입 금지 구역이다.
어지간한 베테랑 약초꾼들도 들어가는 것을 피할 정도로 산세가 깊은 곳도 있고, 특히 요즘같이 몬스터 이상 증세가 있는 경우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숲은 몬스터의 출현 확률이 매우 높은 위험 지대다.
당연히 리나도 그런 숲에 가자고 나를 조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 근방에 있는 작은 숲 정도에 놀러 가자는 말이겠지.
깊은 산이라면 모를까, 도시 인근 작은 숲 정도라면 리나를 데리고 놀러 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도 있을 거고.’
성벽 안에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으니 성벽 밖에는 농부들이 가꾸는 밀밭이 있고, 여러 농작물들을 기르는 밭들도 있다. 당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다.
그 정도라면 놀러 나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