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0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0화
새로운 친구(2)
루시안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이후, 다시 우리 집으로 놀러 온 것은 나흘 뒤의 일이었다.
“세상에, 아넬이 친구를 데리고 왔어?”
뭐, 아넬과 놀려고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길드로 들어온 루시안의 모습에 아버지를 비롯한 레아 누나까지 깜짝 놀란 것은 덤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루시안은 더 일찍 놀러 오고 싶어 했지만, 새로 이사해서 정착한 집의 정리도 도와야 했고, 그동안 이사하느라 가족 전부가 꽤나 피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느라 나흘이 지난 오늘에서야 간신히 놀러 갈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모양이다.
‘그래도 좋은 가정인가 보네.’
루시안 아버지의 인상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루시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가정이 꽤나 가족애가 넘치는
가정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루시안은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아버지가 상당히 야속한 모양이지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루시안의 아버지는 루시안이 자신처럼 모험자가
되어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어 오는 것을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것 같다.
평균적으로는 10세쯤에 검술을 시작하는 것도 루시안에게 검술은 아직 이르다, 라고 말한 한 가지 이유이겠지만, 사실 검술을 배우면 나중에 가서
따로 일을 배우지 않는 한, 검으로 먹고살 일은 도시의 병사가 되거나 자경단, 모험자, 기사 정도밖에는 마땅히 없다.
용병이 되는 방법도 있고, 또는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쪽은 모험자 이상으로 생명을 거는 직업이기 때문에 아웃이다.
결국 자기 자식은 나와 같은 힘든 일보다는 좀 더 편한 일을 하게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법이지.’
루시안의 아버지는 루시안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검술을 배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겠지만, 도리어 그것이 루시안이 검술에 더
집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처음 만난 내게, 그것도 동갑내기의 아이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할 정도일까. 거절하니 심지어 ‘구경만 할게!’라고 말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
그 때문일까, 우리 집에 찾아온 루시안의 얼굴은 약간의 긴장과 엄청난 기대감으로 인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난 네게 검술에 대해서 알려 줄 실력이 안 돼. 나 혼자서 수련하는 것으로도 솔직히 시간이 많이 부족하거든.”
“응, 알겠어.”
“그러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만 알려 줄 테니까 그걸 연습해. 나도 처음 검술을 배우고 1년 동안 이 기본자세만 연습했어.”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안에게 목검을 하나 넘겨주었다.
내가 쓰는 것은 아니고, 아버지와 레아 누나가 대련 용도로 쓰는 목검 중에 가장 작은 것을 빌려 온 것이다.
아버지가 직접 다듬어 준 내 목검만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없어서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 휘두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아무래도 어른이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루시안이 사용하기엔 다소 큰 감이 있었지만, 복잡한 검술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찌르기, 베기의 기초 동작만
반복적으로 할 테니 몸에 크게 문제가 생기거나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다.
목검을 받아 든 루시안의 눈빛이 빛났다. 약간 장난스럽다고 해야 할까,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고 눈빛에서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검술을 배우고 싶다는 것은 진심이었나 보네.’
그냥 아버지가 반대했기 때문에 오기로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자, 그럼…… 내가 네게 알려 줄 자세는 찌르기와 베기 두 가지 자세야.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발을 움직이는 것부터 몸을 비틀고 팔을
내지르는 동작까지 전부 하나하나 신경 써서 움직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검에 힘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거든.”
‘아하.’라고 가볍게 감탄하는 루시안에게 찌르기의 기본자세를 보여 주었다.
두 다리는 어깨보다 좀 크게 벌리고, 오른손잡이인 만큼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목검을 잡은 두 손은, 오른손을 잡아당기듯 끌어오면서
왼손으로는 목검의 무게를 받쳐 주었다.
검 끝에 힘이 집중되게 하기 위해 몸을 뒤로 살짝 끌어당기고, 이내 쭈욱 늘린 고무줄이 탄성으로 인해 다시 원래 자리로 튕겨지듯, 몸을 앞으로
쭉 내뻗으며 목검을 힘차게 내뻗었다.
‘시익!’하고, 허공을 꿰뚫는 작은 소리가 들리며 나는 검을 내지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천천히 ‘후우우’ 숨을 내쉬며 검을 회수해 다시
원래의 찌르기 준비 자세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한껏 뒤로 잡아당기고, 또다시 검을 내지르기를 총 10회 반복했다.
2년 동안 수없이 반복해 온 터라, 자세 자체는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잘 잡혀 있다. 하지만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온몸에 힘을 꾹 하고 주며,
일부러 체력을 소모시켜 몸을 단련하는 방법을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고작 10번을 휘둘렀을 뿐이지만 이미 숨은 조금 가빠지고 몸에 뜨겁게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찌르기 동작 다음에는 베기 동작이다.
찌르기 동작과 준비 자세는 얼추 비슷하지만, 찌르기 자세가 원래의 동작 그대로에서 몸만 비틀어 검을 내지르는 동작이라면, 베기는 그 자세에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사선을 베는 동작이다.
검도의 내려치기 자세와 조금 비슷하지만,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검도와는 다르게 이 자세는 온몸의 힘을 정확하게 검에 전달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동작이 다소 큰 것이 좀 다르다.
이어지는 것은 10번 베기.
호흡을 가다듬는 것부터, 몸을 긴장시키고 검을 휘두르는 것까지의 모든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정확하게 펼쳤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펼치니 평소보다도 훨씬 기합이 들어간다.
‘내게 처음으로 체술과 검술을 보여 주었던 아버지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때의 나도 지금 내 옆에서 매우 진지하게 내 동작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루시안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후우우우…….”
긴 호흡을 내쉬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직까지 땀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에서 제법 열기가 느껴졌다.
“어때, 좀 알겠어?”
“……응.”
루시안은 내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처음 보기만 했을 뿐인데 알 리가 없지.’
내가 물어본 것이지만 아차 싶었다.
나도 처음 아버지에게 검술의 기본자세를 배웠을 때는 올바른 자세를 잡는 데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꼬박 걸렸다.
그것도 하루에 몇 시간씩 검술에 투자하고,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내가 올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랬던 것을 오늘 처음으로 기본 동작을 배우는 루시안에게 알겠냐고 물어본 것이니 당연히 루시안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괜한 질문으로 ‘이것도 모르는 거야?’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조금 미안해진 마음으로 루시안을 돌아보았다.
“자, 그럼 직접 한번 해 보자.”
“……알았어.”
루시안은 목검을 쥐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시선은 나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계속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방금 본 자세를 되새기고 있는 건가?’
간간이 몸이 조금씩 움찔거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루시안을 보고 있자니 대충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감이 왔다.
내가 예전에 했었던 것처럼 내가 취한 검술 자세를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저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냥 무작정 검술을 따라 배워도 좋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자세를 다듬는 것도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직접 그 효과를 본 것이 나 자신이니
루시안의 그런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잠깐, 그런데 여덟 살짜리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내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이미 성장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나야 나이에 상관없이 성인에 달하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 겨우 여덟 살에 불과한 루시안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머릿속으로 펼칠 정도로 뛰어난 집중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애들을 왜 괜히 애들이라고 할까?
나이도 나이이고, 몸도 몸이지만 주변에 늘 호기심이 많고, 또한 성인에 비해 인내심이 많이 부족하다.
한 가지 일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애들은 늘 사고를 친다거나, 눈을 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때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집중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지금 루시안이 보여
주는 것처럼 상상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발휘하는 이미지 트레이닝 같은 행동은 어지간해선 못 하는 것이다.
‘아니야, 이미지 트레이닝이 아닐 수도 있어.’
단순히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는 것을 내가 지레짐작해서 설치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차분히 루시안의 다음 행동을 기다려 보았다.
“후우.”
그렇게 3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루시안이 눈을 감은 그 상태 그대로 자신이 쥐고 있는 목검을 들어 올렸다.
양발을 어깨보다 조금 더 벌리고 몸을 비틀어 내가 취했던 것과 똑같은 찌르기의 기본자세를 준비했다.
나는 루시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보다는 다리를 좀 더 벌리고 힘을 주면서 하체에 중심을 고정시켜야 하는데.’
역시 한 번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무리인가 보다.
지금 루시안의 문제점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처음 지적받은 것과 똑같은 부분이었다.
단순히 다리를 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무게 중심이 단단히 고정되어야 제대로 된 찌르기의 위력이 나올 기반이 다져지는 것이라고 한 소리
들었었다.
“루시안, 거기서는…….”
“……이건 아니야…….”
“……뭐?”
순간, 루시안에게 찌르기 자세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교정해 주고자 말을 걸었지만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루시안은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로 찌르기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며 고개를 계속 가로저은 루시안은 조금씩 자신이 벌린 발을 넓혀 가며 계속해서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장 최적의 자세를 찾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컴퓨터 같아서 나는 루시안에게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고 옆에서 그를 지켜만 보았다.
“후우…….”
그렇게 무려 10분이 넘는 시간을 눈을 감았다 떼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움직이며 자세를 교정하던 루시안은 이윽고 자신이 원하던 자세를
찾았는지, 천천히 몸을 긴장시키면서 검과 함께 몸통을 뒤로 한껏 젖혔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식!’하는 짧고도 강한 파공음.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는 깔끔한 찌르기의 소리였다.
‘정말로 단 한 번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