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8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8화
글공부 용도로 사용하는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 그것을 읽고 있으려니 그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길드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가 길드 내부로
들어왔다.
이어서 들리는 소리는 ‘뚜벅뚜벅’하는 부츠 소리.
부츠라고는 해도 현대처럼 굽이 높은 부츠가 아니라, 여행자들이 주로 신는 낮은 굽의 부츠다.
‘누가 온 거지?’
문득 앞을 바라보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질끈 묶은 포니테일의 아가씨였다.
나이는 얼추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쯤일까? 10대인지, 20대인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이미지가 약간은 여리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길드 내부를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는 짐 가방으로 추정되는 큰 가방을 이끌고 오면서 내가 앉아 있는 카운터로 다가왔다.
“저…… 어라……?”
그러고는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살짝 당황한다.
험상궂은 인상의 아저씨가 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귀여운 아이가 앉아 있기 때문일까.
‘반응이 귀엽네.’
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눈앞의 아가씨에게 나름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했다.
“세룬 도시 모험자 길드 지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길드의 지부장인 리안 프로스트입니다.”
“……네? 어, 그, 그렇지만 나이가……?”
“어렸을 때 원인 불명의 병에 걸리는 바람에 성장이 멈췄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서른다섯 살입니다.”
“아…… 그, 시, 실례했습니다.”
어라, 잠깐 장난쳐 본 건데 설마 진짜로 믿는 건가?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자, 검은 머리의 아가씨는 내가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보통 길드의 지부장이면 나이 있는 남성분들이 주로 맡고 있어서…… 생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이 아가씨는 정말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진 서른다섯 살 아저씨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당황스럽네.
아니, 눈을 보면 안다.
사실은 속은 척하면서, 어린아이의 장난에 심심풀이로 맞춰 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은 머리 아가씨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많이…… 실례가 되었나요?”
이거……, 진짜로 믿는 눈이다.
만화 속의 한 장면도 아니고, 어린아이가 가볍게 장난친 것을 설마 진짜로 믿어 버리는 어른이 있을 줄이야.
장난기가 심한 사람이라면 아가씨를 상대로 짓궂은 장난을 칠 수 있는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이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남을 골려 먹는 취미 같은 것은
없는 편이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농담이에요. 저는 길드의 지부장인 리안 프로스트가 아니라, 그의 아들인 아넬 프로스트입니다.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대신 카운터를 맡고
있습니다.”
“네…… 네? 그, 아들……인가요? 하지만 방금은 본인이 지부장이라고…….”
“설마 진짜로 믿은 것은 아니죠? 이런 귀여운 얼굴을 가진 서른다섯 살 아저씨가 있을 리 없잖아요?”
“그, 그러네요. 그럴 리가 없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진짜로 믿었던 모양인지, 아가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 부끄러워!’라고 머릿속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 들려오는 것 같아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웃어
봤자 그녀에게 더 창피함을 줄 뿐이었기에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음, 남자가 되어 여자에게 창피를 주는 것도 실례다. 나는 몸은 어려도 마음만큼은 어엿한 남성이니까 말이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최대한 담담하게 눈앞의 아가씨를 바라본다.
내 전생에서는 흔한 색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다지 흔치않은 색상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가씨다. 얼굴을 붉히며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꽤나 귀엽다.
이런 아가씨가 왜 우리 길드에 찾아온 것일까?
“아빠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아, 네. 그러고 보니 리안 프로스트 지부장님의 아드님이라고 하셨죠?”
“아넬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넬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제 이름은 레아 리트나라고 합니다. 리안 프로스트 지부장님의 요청으로, 길드 본부에서 이곳으로 파견 명령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파견 명령을…… 네?”
그러니까, 길드 본부에서 보내 준다는 사람이…… 여자였어?
그것도 설마 이제 겨우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20~30대의 남자가 올 줄 알았는데.
“그,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표정이 굳었습니다.”
“아뇨……, 사실은 20~30대쯤의 남자가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예쁜 누나가 찾아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쁘다니……,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레아 리트나라는 이름의 아가씨는 손을 좌우로 저으며 부정했지만, 그 모습도 귀엽다.
뭐랄까, 눈에 확 띄는 엄청난 미모의 아가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귀엽다’는 인상을 주는 아가씨다.
깡마르거나 살집이 없는 편도 아니건만, 알게 모르게 가녀린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 보호 본능 같은 것을 자극한다고 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만큼 주변이 화사해질 정도의 미인은 아니지만 충분히 미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만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예쁜 누나가 찾아오니 당황스럽네…….’
나탈리 씨나 그 외의 다른 여성 모험자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성의 비율보단 남성의 비율이 훨씬 높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곳에 찾아오는 것도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설마 이런 예쁜 아가씨를 보내 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혹시 임산부가 있는 집안 형편상,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절할 것 같다는 판단에 여성을 파견 인원으로 보내 준 것일까?
‘부모님이 신뢰하는 이유를 알겠는걸?’
갑자기 없던 길드 본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쑥쑥 자라난다. 감사합니다! 본부!
아,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녀에게 흑심을 품거나, 머릿속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락부락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같은 여성이라면, 엄마도 편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모로 남성보다는 대하기가 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내 태도 역시 부드러워진다.
“자, 그럼 잠깐 2층에 다녀오겠습니다. 손님이 찾아왔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아, 네. 2층이 집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차, 굳이 여기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네요. 같이 올라가도록 해요.”
“그런데 마음대로 올라가도 되는 건가요?”
“앞으로는 같이 살게 될 테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요.”
나는 귀여운 얼굴을 최대한 활용하여 방긋 미소 지었다.
사람의 성격이란 말투와 행동에서 대부분 드러나는 법이다. 어린아이인 나에게도 존댓말을 계속하고, 또한 얼굴에 은은하게 미소를 띠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부드러운 미소를 잘 띠면서도 말투가 나긋나긋한,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의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레아 씨는 내 얼굴을 보며 싱긋 미소 짓는다.
“그럼, 아넬 군에게 안내를 받겠습니다.”
“아넬이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레아 리트나 씨.”
“그렇다면 저도 레아로 충분합니다.”
“네, 레아 누나.”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레아 누나를 2층의 우리 집으로 안내했다.
레아 누나를 데리고 올라가자, 역시나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설마 파견 인원으로 여성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인 듯 상당히
놀란 표정을 하셨다.
하지만 이내, 레아 누나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나,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가 올 줄은 몰랐는걸.”
특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마가 레아 누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무래도 임신한 몸이다 보니, 괜찮다고는 말해도 가족이 아닌 다른 남성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점이 꽤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남성이 아니라, 자신과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시 말하지만, 엄마는 이제 스물여덟 살이다!) 여자아이가 찾아오게 된 것이
몹시 반가운 듯했다.
엄마는 어느새인가 레아 누나와 함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머리카락 색이 예쁘네. 어느 왕국에서 왔니?”
“수도 라티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출신지는 라그나 왕국입니다. 왕국의 동서쪽에 위치한 카르네 지방에서 태어났어요.”
“카르네 지방이라면, 특산품으로 밀이 유명한 곳이네. 나도 아버지가 상인이셨기 때문에 왕국의 각 지방에 대해 공부를 꽤 했었거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지부장님…… 모험자 남편과 결혼하시게 된 것인가요?”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길지만 말이야, 원래 아버지의 상점이 있는 곳은…….”
하지만 레아 누나 역시 엄마의 환대와 수다가 싫지만은 않은 듯, 서로 웃으며 엄마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과연, 여성의 수다는 대단하구나……. 방금 만났는데도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남자인 나와 아빠에게는 다른 세계의 일이다.
“그럼, 나는 길드로 내려가 볼게. 레아 양, 천천히 짐을 풀고,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하세요. 그동안 여독이 꽤 쌓였을 테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신세 지겠습니다.”
“신세는요, 그럼 나중에 길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아! 아빠, 저도 갈게요.”
여자들끼리의 대화에 남자가 끼어들기도 뭣했기 때문에 나와 아빠는 레아 누나와 가볍게 인사 정도만 나누고 1층 카운터로 내려왔다.
비록 예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인상의 사람이 오긴 했지만, 엄마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아빠도 마음이 놓이는 듯, 카운터에 앉으신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자, 아빠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셨다.
“……어떤 사람이 올까 솔직히 걱정했었다만, 길드에서 아빠의 사정을 알고 상당히 좋은 사람을 보내 준 모양이다.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릴리아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좋은 아가씨인 것 같아.”
“엄마가 좋아하니 저도 좋지만, 이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빠죠. 20대 아가씨와 같이 살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행동에 주의하셔야 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