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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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87화
187화 손에 넣은 꽃(2)
뉴욕시 외곽.
본래 슬럼가였던 이곳은 이제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한 상태라 본래 슬럼가에 살던 주민들조차 접근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뉴욕이라는 행정 구역에 속해 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도 아직 다 무너지지 않은 채 낡아만 가는 건물들이 있었고, 그런 건물들 가운데 한 곳에는 꽤 널찍한 지하실까지 있었다.
바로 그 지하실.
-크으…….
거기서 신음을 흘리면서 한 강대한 마가 눈을 떴다.
데몬 프린스 영빈이었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서는 한 남자가 반기듯 빙긋 웃으며 손짓으로 알은체를 했다.
“여.”
성태였다.
데몬 프린스 영빈은 반사적으로 분노에 타오르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 전력을 끌어 올려 저 꼴 보기 싫은 적을 박살 내기 위해 돌진했다.
-네놈!
하지만 몸을 일으켰다 생각한 순간 그의 허리와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큭?!
영빈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전혀 되지 않았다.
마치 수도꼭지를 강하게 틀어막은 것처럼 그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히 마나만이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전신의 근력 역시 꽉 막힌 것 같았다. 마나를 쓰려고 하면 마나와 동시에 근육까지 굳어버리는 것 같다고 할까.
당황하는 영빈의 모습을 보면서 성태가 놀리듯이 말했다.
“아, 당연히 힘을 못 쓰게 한 상태지. 뭐 설쳐 봐야 내 상대가 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떠들썩하게 돼서 혹시 주목을 끌게 되면, 그건 굉장히 싫거든.”
-어쩔 생각이지?
영빈이 바닥에 겨우 몸을 기댄 상태로 성태를 노려보며 물었다. 성태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곱게 나올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이런 꼴에서도 저렇다니. 하긴 데몬 프린스였다.
천재라고 칭송받았고. 시정잡배라 해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하늘을 뚫는 게 남자라는 생물인데 능력도, 신분도 있던 놈이기에 뻣뻣하게 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태가 그걸 그냥 둔다는 건 아니다.
“뭘 그런 표정으로 묻는 거야? 네가 예쁜 아가씨라서 내가 가지고 놀 것도 아닌데.”
-이놈…….
성태가 낄낄대며 자신을 놀리자 영빈은 이를 갈았다.
성태는 그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농담. 나는 이래 봬도 신사라서 싫단 아가씨를 억지로 가지고 노는 건 싫어한단 말이야. 뭐, 남자 놈 두들겨 패는 건 좀 예외긴 하다만.”
그리고 영빈에게 다가갔고, 그의 척추를 한 손으로 쭉 매만졌다.
영빈은 그 손길에 공포를 느끼면서 발작적으로 외쳤다.
-뭘 노리는 거지!
“그냥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널 사람 좀 만들어 볼까 하고.”
답과 동시에 성태는 척추 하나를 꾹 눌렀다.
영빈의 입이 그 순간 딱 벌어졌다.
어마어마한 고통의 파도가 그를 덮쳐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격통에도 불구하고 영빈은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소 일부러 과하게 손을 썼던 성태도 그 근성에는 감탄하면서 척추를 통해 영빈의 전신으로 마나를 흘려 넣었다. 영빈의 몸 전체를 재파악하고 향후 할 작업을 위한 일종의 기초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태가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성태가 척수를 통해 흘려보낸 마나가 영빈의 전신을 완전히 장악한 순간이었다.
영빈을 지배하던 고통은 그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몸 전체가 이상한 청량감에 가득했고, 의식이 다소 모호해졌다. 그러나 영빈은 이를 악물어 의식을 유지하면서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한 모습으로 성태에게 외쳤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데몬 프린스다!
“데몬 프린스지. 그런데 너, 데몬 프린스란 게 뭔지는 아냐? 왜 데몬 프린스가 그토록 많은 종족이 있고, 또 다양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말이야.”
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한 말에 영빈이 당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데몬 프린스가 되고서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인간은 마치 데몬 프린스의 세계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듯이 말했다. 데몬 프린스인 영빈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특히, 인간이 데몬 프린스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은…….
성태의 말에 영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빈 그 자신이 데몬 프린스가 되었던 순간이, 그렇게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빈의 흔들림을 읽은 것 같았다.
못을 박듯 성태의 말이 이어졌다.
“유혹에 졌겠지.”
-윽……!
영빈은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이 맞았다.
유혹이 있었다.
유혹에 졌기에 데몬 프린스가 됐다.
그러나 그 유혹이 옳았기 때문에 넘어갔다. 정당했기 때문에 넘어갔다. 그러니까 창피한 일이, 잘못된 것이, 틀린 일이 아니었다.
영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성태가 이어 말했다.
“모든 악마에게 유혹당해 타락한 인간이 그러하듯, 너 역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 거야. 사실 너만이 아니지. 거기서 잘난 척하는 새끼들, 대부분이 의지박약이라서 그 꼴이 된, 본래는 ‘다른 종족’인 거다. 아크 데몬이 승진한 것들조차도!”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결단……!
영빈은 발작적으로 외쳤다.
치부를 들키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성태가 피식 웃었다. 너무도 차갑고 잔인한 웃음이라 영빈은 그 순간 얼어붙었고, 단순한 말에 불과함에도 그 끝을 맺을 수 없었다.
“미치광이가 스스로 미쳤다고 자백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웃기지 마라!
영빈은 반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성태의 말에서 어쩌면 자의라고 생각했던 그 결단이 실은 자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후, 모든 악마의 본령 중 하나가 유혹과 타락이지. 요즘은 꽤 교활해져서 안 들키게 잘해. 특히 마음에 든 대상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하거든. 왜냐하면 그래야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말해 봐. 너는 정말로 너희 가족과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빴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것은…….
영빈은 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미워하는 경우도 물론 많았다. 그러나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빨리 증오로 바뀌고 거기에 대해 한 번도 의혹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혜선에 대해서는 어떤가? 자신의 동생.
귀찮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미워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앞에 두었을 때 너무도 당연히 죽이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건 이상하지 않을까. 악마이기 때문에? 악마라도 자의에 의해 악마가 됐을 뿐이라면 그 때문에 미워하지 않던 친족을 죽이는 건 이상하지 않나? 명령받은 것도 아니잖은가.
영빈의 눈동자가 한층 흔들렸다.
성태가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따라서 영빈의 몸속에 침투한 그의 마나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영빈은 몸을 움찔거리며 떨었고 눈은 조금 몽롱해졌다. 최면을 걸 듯이 성태가 물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대체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악마가 조달되어 오는 거지? 악마의 사회 같은 게 있었나?”
-으…….
영빈은 답하지 못했다.
데몬 프린스를 구성하는 종족은 다양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힘 역시 다양했다.
악마나 몬스터라고 하나로 정리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영지를 가진 데몬 프린스조차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배하는 노예들은 모두 어디선가 잡아 온 다른 세계의 다른 주민이거나 몬스터였다. 원래부터 데몬 프린스의 종족이라 할 만한 뭔가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그 강력한 힘과 그 힘의 근원이 되는 마기뿐.
“말해 봐. 너를 유혹한 것은 무엇이지?”
성태가 유혹하듯 물었다.
혼곤해진 영빈의 정신은 성태의 그런 공격에 버틸 수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기억해 보는 거야.”
-으, 으으…….
영빈이 성태의 유혹에 진 듯이 땀을 흘리며 당시를 회상했다.
혼란스러운 기억을 헤치고, 헝클어진 감정을 피해 가면서 과거를 거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영빈은 부들부들 떨면서 당시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렸고 겨우 하나의 그림으로 짜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떠올린 것은 환하게 웃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아니 인류의 영웅이던 남자!
영빈의 입이 열렸다.
-……선조였다.
“선조?”
-그렇다. 대종사 이건! 그 천재 중의 천재! 그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나처럼 강해지고 싶지 않느냐고!
우는 것처럼 영빈이 외쳤다.
성태는 그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거기 넘어가고 말았군.”
-그래!
영빈은 울부짖듯이 긍정했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데 재물이나 여자를 사용하는 건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간절한 욕망인 경우가 흔해서였다. 그러면 양쪽 모두 충족된 인간은? 이런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욕망이 없는 인간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풍족한 자는 풍족한 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욕망이 있다.
식물화된 인간이나 성자만이 욕망에서 해방된다.
적어도 성실하게 전진하고 노력하면서 고민하는 인간에게 욕망이 결여될 리는 없다. 그리고 영빈과 같은 경우라면…… 대종사 이건이 그의 욕망이 될 법하다.
영빈을 무엇보다 괴롭히는 것이 바로 그 거인의 그림자였을 테니까.
-멍청하고 어리석었지! 그러나 자유로웠다! 진정한 힘 앞에서는 노력이나 천재성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지.”
-윽…….
영빈은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했다.
그렇다기보다 정말 얻어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에 못지않다. 게다가 성태도 영빈도 정말로 뜻만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있는 자들이다.
‘이 녀석, 심마가 깊군. 하긴 어디 출신인데 쉽사리 심마에 들까.’
성태는 영빈의 반응과 그의 내부에서 흔들리는 마나의 흔들림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가 이제까지 이런 심문을 하고 내부 마나를 조사한 것은 모두 심마를 조사해 그 정체를 까발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야기를 하고 보니, 몸속에 스며든 마의 힘을 씻어내는 건 한다 해도 마음에 스며든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잘 교육받고 단단한 정신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타락에 의해 스며든 어둠 역시 뿌리 깊고 강건했다.
그래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성태는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본래라면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이런 걸 하진 않는데…….”
성태는 양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강력한 마나가 몰려들며 빛을 환하게 뿜었다. 사악하지도, 성결하지도 않은 힘이었다. 굳이 표현하지만 매우 거칠고, 또한 깨끗한 힘이었다. 태초의 태양이 내뿜는 에너지처럼.
“뭐 네가 예뻐서 하는 건 아니고.”
-뭘 하려는 거지!
영빈은 성태의 양손에서 느껴지는 힘에 저도 모르게 공포를 느끼면서 물었다. 성태는 영빈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공포에 낄낄 웃었다.
“짜식, 사내자식이 앙탈은.”
그리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양손으로 영빈의 등을 후려쳤다.
텅!
-컥!
성태가 영빈의 등을 후려치는 순간 영빈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중단되었던 그 끔찍한 고통이 다시금 그를 엄습했다. 아니다. 중단되었던 고통이 아니라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고통이었다.
성태는 가학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아, 시작해 볼까.”
-네놈…… 무슨 짓을-.
영빈은 꺽꺽거리면서 겨우 말을 짜냈다.
“별거 아니야. 골수에 사무친 사기를 좀 씻어내려는 거지.”
-뭣?
영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됐다.
성태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리어 잘 알기 때문이다.
마기를 씻어낸다니.
그건 영빈의 마나 자체를 전부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세포로 치면 아예 DNA 자체를 바꾼다는 건데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거 원래 돈 받고 해야 하는 거다. 탈태환골의 일종이니까 말이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좀 억울하군. 탈태환골의 수법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고 강력한 거지! 탈태환골 중의 탈태환골이라고 할까!”
성태가 하는 말에 영빈은 그가 하려는 일을 이해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인간이 있다는 것은 역시 믿을 수 없었다. 성태는 아예 영빈을 근원에서부터 재조립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나에 대해 정통한 인간이 있다 해도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만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자는…….
신이라 불리어 마땅하리라!
-너는 대체……!
경외심과 의혹에 가득한 어조로 영빈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성태는 그의 질문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작업은 성태에게조차 쉬운 게 아니다. 시시한 질문에 일일이 답해 줄 여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좀 아프겠지만 닥치고 견뎌라!”
성태의 양손이 영빈의 등을 후려쳤다.
터덩!
쾅!
영빈은 성태가 자신의 등을 후려갈기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을 들었다. 굉음만이 아니다. 몸속에서 마치 우주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세포 하나하나가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그것은 신경세포를 통해 고통을 전달받는다기보다 뇌에다 고통이라는 정보를 극대화해 쑤셔 넣는 듯한 느낌일 정도였다.
-크아아악!
영빈은 저도 모르게 비명 질렀다.
비명만이 아니었다. 그는 신생아처럼 울었다.
울고 울고 울다가 결국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알파메일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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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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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