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메일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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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알파메일 162화
162화 대탐사의 비밀(2) & 헤븐즈 도어(1)
수호비무는 찬란하고 거대한 위업이었다.
아들을 마에 바치고 말았다는 결과는 철혈의 인간으로 유명한 이석훈에게조차 영혼을 조각내는 고통이었다.
이 두 가지가 그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수호비무가 담고 있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도출해내는 것이었다.
그 근본적인 도전이란 쉽고도 무참했다.
‘다른 세상의 존재는 확인됐다. 다른 세상의 힘 또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와는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힘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당연히 했어야 할 질문이었으나 상황의 위급함과 당장 눈앞의 이변 때문에 오래도록 묻혀 버린 질문이기도 했다.
다들 당장 눈앞의 현실에 대응하고 전력을 강화하는 데에 급급했으니까.
그러나 대종사는 대종사. 그는 달랐고, 그 의문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대종사 이건조차 확실히 얻을 수 없었다.
다만 그는 검의 오의를 궁구하며, 마나의 극치에 이르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며 그 실마리를 하나하나 발견해 나갔고, 그것을 수호비무에 기록해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건 이후 오래도록 묻혀 버리게 된다. 아무도 그 실마리를 해독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실마리 자체가 이건이 걸어갔던 무의 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이석훈은 그것을 오늘에 이르러 발굴해 낼 수 있었다.
오래도록 쌓인 수호비무에 대한 가문의 이해와 그 개인의 성취, 그리고 아들을 마에게 내주면서까지 탐구한 가능성이 일구어 낸 성취였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그 실마리는 다른 세계, 다른 힘의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그곳으로 연결하고 그 힘을 이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했으니까.
결국 이건이 제시한 물음은 최소한 이건만한 경지에 이른 자만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로 종결될 찰나, 이석훈은 다른 방식의 도전을 하기로 한다.
바로 미국의 협력을 얻는 것이다.
수호비무가 쓰인 지 이백 년이 지났다. 이석훈이 이건만한 자질을 갖지 못했으면서도 수호비무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만큼 그에 대한 이해가 높아 그것이 일종의 문화나 전통으로 전승이 가능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헌터라는 존재에 대한, 그들이 다루는 힘에 대한, 마나에 대한, 마법에 대한 이해 역시 세계적으로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것은 역시 미국이었다.
마법, 과학, 이능을 아우르는 전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그들에게 이석훈은 자신이 겨우 도달한 것을 아무 조건도 없이 내놓으면서 ‘다른 세계’의 탐구를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대탐사’의 시작이었고, 수년의 시간이 지나 그 성과가 마침내 이렇게 로마에서 꽃피었다.
이제 세계는 반드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전기를 만들어 낸 당사자가 저런 반응이라니.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문을 열기로 결정한 것은 다년간의 노력으로 연결된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그 세계가 설마 아군이 아닐 거라 걱정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 정도 확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였나? 심지어 거기에 자네 딸도 보낸 것으로 아는데?
“이 도박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네. 그런 면에서 딸이든 아들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이석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스터 로드의 저런 반응도 이해는 가지만…….
그러나 그 이세계의 정체라는 걸 다소 알아본 정도로 신뢰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흠, 이거 창피한 일이군. 나는 아군이라 믿었기에 보낸 건데.
“어느 쪽도 도박일 뿐이니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네. 그저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는 말이야.”
-후후, 그러나 대탐색을 통해 우리는 이미 거기 있는 것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았네. 그걸 알고서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이석훈과 달리 미스터 로드는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 세계와 연결하고 교신까지 한 판에 믿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 세계는 반드시 믿어야 할 아군이다.
“그건 인정하지. 그러나 그건 문화 차이일 뿐이야.”
-문화 차이라. 한국은 차라리 우리보다 더 흥성하지 않았나.
미스터 로드는 코웃음 쳤다.
문화적인 이유로 그 세계를 신뢰하니 마니를 따진다면 한국은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석훈은 고개를 저었다.
“돈벌이의 수단일 뿐 진정으로 문화의 토층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네. 실제로 지금은 겨우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형편이지.”
-그렇다면 이번 일로 다시금 붐이 일겠군.
미스터 로드가 즐거운 듯이 확언했다.
이석훈은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그러나 그건 우리가 축배를 들고 난 다음이 될 걸세.”
-후후, 그렇겠지. 그러나 나는 확실히 그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하네.
“신께서 자기 나라를 보호한다고 믿는 문화에서 자란 이의 말이니 굳이 토를 달지는 않겠네.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 의심스럽지만…….”
미스터 로드가 여전히 한 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는 태도로 하는 말에 이석훈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스터 로드는 전형적인 와스프다.
대탐색을 통해 발견한 이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존재들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뭐라 해도 신 안에서 자기들이 살아간다고 믿는 청교도의 나라가 미국 아니겠는가!
그것은 지금같이 신이 버린 듯한 상황에서도 전혀 바뀐 것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신의 세계와 연결되었다고 믿고 있다.
신의 세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대탐색을 통해 발견한 세계는 천사들이 성가를 부르며 성스러운 힘으로 신을 찬양하는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빛의 세계, 천국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의심이 깊군.
“자네 말이 맞다고 해서 그들의 힘이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 정도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지 않나?”
이석훈은 한숨을 쉬는 미스터 로드에게 차갑게 응대했다.
정말로 그곳이 천국이고, 신이 있다면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을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그 신이 있다 해도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이석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스터 로드의 생각은 달랐다.
-야훼를 따르는 천사의 군세 앞에 악마가 설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신이 정말 전능하다면 우리가 이런 꼴이 된 것부터 따져야 옳지 않겠나?”
-성령이 세상에 강림하시매, 이제 우리는 구원받았노라.
미스터 로드는 이석훈의 반론을 무시했다.
이석훈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자는 아니지만 일단은 나도 그렇게 되길 기대하지. 정말 그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기꺼이 신으로 인정하고 경외하고 모셔야 할 존재인 셈이니.”
이석훈은 야훼의 전지전능함을 믿지는 않는다.
아니, 그런 존재가 정말 있는지도 의심한다.
하지만 천국이 있고, 천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그들의 힘이 이용 가능하며 강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저 잘 이용해 먹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헤븐즈 도어
우우웅!
고귀한 성가 같은 성스러운 힘이 바티칸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이곳을 메우고 있던 마기가 순식간에 박살 나면서 구역 전체가 정화됐다. 마기의 덩어리들이 곳곳에서 쓸려 나가며 산산조각 나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매복해 있거나 소환되던 몬스터, 악마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태양에 떨어진 얼음처럼 그것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빛이 겨우 조금 약해지면서 주변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성태 일행은 힘이 폭발한 대광장의 중앙을 올려다보며 전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와, 믿어지지가 않는데-.”
오이겐이 마법을 시전한 장소에는 빛의 기둥이 솟아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넘쳐흐르는 듯한 성스러운 힘이 계속 번져 나왔다.
모두 빨려들듯이 그것을 쳐다봤다. 아직 저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최고의 아티팩트조차 비견할 수 없는 마법적 현상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으…….”
그런데 일행 가운데 하나, 박수천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 표정으로 그 빛의 기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무릎을 꿇었다.
다른 이들이 놀라 걱정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박수천, 왜 그래?”
“모, 모르겠어. 몸이…… 아파.”
다들 당황한 표정이 됐다.
“어째서? 나는 오히려 몸 상태가 엄청나게 좋아지고 있는데.”
“나도.”
“우리도 그러네.”
헌터들은 저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됐다.
이 성결한 기운이 주변을 뒤덮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상처가 순식간에 나았고, 마나 역시 금방 회복됐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나오는 강력한 버프 마법과 힐을 연이어서 시전 받은 것 같은 상태였다.
그런데 박수천만은 도리어 고통받는다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성태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박수천은 출신이 출신이니만큼…… 내가 나서야겠군.’
박수천의 조상 중에는 데몬 프린스급의 악마가 있다.
이 지상을 침공하기 위한 일종의 영적 전초 기지로서 박수천은 그 악마에 의해 뿌려진 씨앗이다.
그 악마는 성태가 갈가리 찢어 죽이다시피 했지만 그렇다 해서 박수천의 정체성이 깨끗해지진 않는다.
아마 이 성스러운 힘은 그에게 독처럼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어서 성태는 얼른 말을 지어냈다.
“아마 마법 때문일 거야.”
“마법? 마법이라 해도…….”
카에데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마법이라면 그녀도 쓴다.
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이라 해도 다 같은 마법은 아니지. 그 가운데 여러 상성이 갈리는 법이잖아. 그런데 박수천이 사용하는 마법서는 출처가 좋은 건 아니니까.”
성태의 말에 다들 납득한 표정이었다.
박수천이 사용하는 마법서는 강력하지만 악마적인 힘을 많이 품고 있었다. 그 주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럴 법하군.”
“마법서는 대체로 몬스터들이 쓰는 걸 빼앗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런 성결한 종류의 힘 앞에서는 사역자까지 고통받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건가.”
“그런 것 같군요.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죠.”
“그건 그렇지.”
혜선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박수천의 상세도 그가 정말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왜 고통받고 있는가 같은 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
물론 성태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박수천에게 다가가 슬쩍 그의 몸 안에 마나를 집어넣어 일종의 내부 결계를 형성했다. 외부 마나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반탄력을 만들어 주는 힘이었다.
“편해졌지?”
“고, 고마워.”
박수천은 한결 편해진 인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뭘, 그나저나 이거 정말 심상치 않은데…….”
“그러게…….”
성태와 박수천은 함께 빛의 기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에 빛의 기둥은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거기서 뿜어지는 성결한 힘은 도리어 더욱 강해졌다. 마침내 빛의 기둥이 사라졌고, 오이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것 같은 모습으로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 위였다.
-아아아아아!
빛의 기둥이 사라진 곳에서 성가 같은 찬란한 울림이 연달아 퍼져 나오면서 거대한 뭔가가 형상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특별한 상징은 없이 단출한 백색의, 그러나 정말 거대한 문. 족히 30m는 될 것 같은 높이의 크기였다.
알파메일 162화
* * *
전자책 출간일 | 2021.01.15
지은이 | 정희웅
펴낸이 | 박지현
펴낸곳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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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600-245-8
정가: 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