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1권 - 1화
프롤로그
“여보오오오!”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나무 상자 안. 30대 후반은 됐을 법한 중년 남성이 눈을 감고 있다. 깨끗한 얼굴과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은 그가 왜 상자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지 의문스럽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그는 죽은 사람이다.
“국왕 폐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묵직한 음성이 장내 커다랗게 울렸다. 얼마 안 있어 40대 후반의 중후한 인상을 지닌 남성이 그의 뒤로 십여 명의 기사들을 거느리고 들어섰다.
어떠한 화려함도, 어떠한 거만함도 없었다. 검은색 수의를 차려입은 남성은 그저 슬프디 슬픈 얼굴로 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이 멈춘 곳은 나무 상자 앞.
남성, 페르만 왕국의 국왕 지브릴 잉스 페르만 폰 페얼은 자는 듯 누워 있는 중년 남성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한 마디를 내뱉고 국왕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국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야속한 사람이다. 짐을 이렇게 남겨두고 떠나는 그대는 정녕 야속한 사람이다. 경은…… 짐의 가장 훌륭한 방패였으며, 짐의 가장 훌륭한 검이었노라. 짐은 잊지 않겠노라, 경의 희생을. 짐은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경의 생명이 짐의 생명이었다는 것을!”
말을 마친 국왕은 한참 동안이나 슬픈 눈으로 중년 남성을 묵묵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터진 울음을 억지로 막으며 흐느끼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 어미가 어째서 우는지 알지도 못한 채, 두 눈만 말똥말똥 굴리고 있는 아이.
국왕은 여인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아이의 통통한 볼을 가만히 쓰다듬자 아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꺄르르르!”
아이의 웃음은 국왕의 슬픔을 잠시 밀쳐냈다.
“아이야, 너는 네 피를 귀하게 여기 거라. 네 아비의 피는 곧 나의 피이니라.”
“꺄르르르!”
아이는 다시 웃었고, 국왕도 웃었다.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
“끅…… 위, 위드라고 하옵니다.”
울음을 삼키며 대답하는 여인을 바라보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창!
“……!”
“……!”
갑작스럽게 검을 뽑아 든 국왕의 돌발적인 행동에 그의 앞에 있던 여인은 물론이고, 주변의 귀족들까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직, 아이만이 반짝이는 검 앞에서 연신 ‘꺄르르르’ 거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위드에게 남작의 작위와 카일러라는 성을 내리노라! 또한, 그에게 헤르센 지방을 영지로 내리노라!”
“……!”
“……!”
“폐, 폐하!”
국왕의 엄청난 발언에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넋을 잃고 털썩 주저앉은 배러 백작이었다.
“어, 어떻게 그런…….”
온갖 장신구로 온몸을 치렁치렁하게 감싼 배러 백작.
그가 페르만 왕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거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축복받은 땅이라 불리는 헤르센 지방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헤르센 지방을 이제 태어난 지 고작 한 해도 제대로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두 눈 뜨고 빼앗겨버리게 생긴 것이다.
“폐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에게 작위와 영지를 하사하신단 말씀입니까! 이는 대륙 그 어느 나라에서도 선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작위 세습의 조건은 선대의 죽음과 최소 연령 20세가 넘어야만 가능합니다! 또한, 작위 세습이 있다 하더라도 남작 이상의 작위를 받은 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폐하의 기분은 알겠습니다만 그는 평민 출신의 기사일…….”
니드먼 후작은 국왕의 눈초리에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헤르센 지방은 이미 배러 백작이 소유를 하고 있는 곳인데 어찌하여…….”
니드먼 후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국왕의 노한 음성이 주변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누군가? 자국의 백성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작위를 내릴 수 있는 이 나라의 왕이다! 어느 나라에도 선례가 없다 하였는가? 하면, 나는 다른 나라의 선례를 따라야만 하는 꼭두각시 왕인가! 대답해 보라!”
“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다만…….”
당황한 니드먼 후작의 모습을 바라보던 국왕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는 작위 세습이 아니라 작위 수여다! 헤르센 지방이 배러 백작의 땅이라고 했는가? 아니다! 헤르센 지방은 물론이고, 그 외의 지방 역시도 페르만 왕국 내에 있다면 그건 짐의 땅이다! 불만이 있는 자가 있다면 언제든 나를 대신해서 죽고, 그 자식을 데려오라! 하면, 누구든 남작의 작위와 헤르센 지방을 상으로 내리겠노라!”
제국력 1365년.
페르만 왕국에선 프라디아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 벌어졌다.
***
3년 후.
“폐하!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한 사내가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겠으나 이는 번복할 수 없는 일이오. 아바마마께서 내리신 작위와 영지를 어찌 내 손으로 거둬들일 수 있단 말이오? 더욱이, 그는 작위와 영지를 빼앗겨야 할 만큼 커다란 잘못도 하지 않았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폐하의 고충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헤르센 지방은 우리 페르만 왕국의 최대 철 생산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밀의 생산량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입니다. 그런 곳을 고작 3살 밖에 되지 않은 카일러 남작이 관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그가 헤르센 지방을 관리하면서부터 철뿐만 아니라, 밀 역시 배러 백작이 관리를 하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량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나라의 경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함을 아셔야 합니다.”
니드먼 후작의 말에 사내, 카엘 르만 페르만 폰 페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국왕은 여전히 힘들다는 듯 말했다.
“나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카일러 남작의 작위와 영지를 회수한단 말이오? 아무래도 이 일은 허락할 수 없겠소.”
니드먼 후작은 국왕의 말에 곁에 있는 가르샤 후작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가르샤 후작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폐하, 하면 남작의 작위를 준남작으로 바꾸시는 것과 영지만을 회수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작위와 헤르센 지방을?”
“예, 폐하. 어차피 남작으로써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하는 카일러 남작입니다. 더욱이 그에겐 남작이나 준남작이나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작위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선대 국왕 폐하께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또한, 헤르센 지방만큼은 반드시 회수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헤르센 지방은 우리 페르만 왕국의 국운과도 관계가 있을 만큼 중요한 지역입니다. 반드시 영지만큼은 회수를 해야 앞으로 우리 페르만 왕국이 보다 크게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분명 헤르센 지방이 페르만 왕국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임은 국왕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대의 목숨과 맞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위와 영지가 아니던가?
“저…… 제 영지와 바꾸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한 곳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보던 배러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러 백작은 국왕은 물론이고, 모든 귀족들이 자신을 주시하자 당황스런 얼굴로 급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배러 백작의 말에 니드먼 후작이 힘을 실어주었다.
“폐하, 배러 백작의 의견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배러 백작은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헤르센 지방을 훌륭하게 관리한 경험이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카일러 준남작에게도 다른 지역을 영지로 주면 폐하의 고민이 깨끗하게 해결된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왕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미 카일러를 준남작으로 칭해버리는 니드먼 후작. 그럼에도 국왕은 그런 것을 크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비록, 헤르센 지방은 아니더라도 다른 땅을 영지로 내리는 것이니 아바마마께서도 용서를 하시겠지. 그리고 작위 역시 준남작 정도가 알맞겠군.’
확실히 3살 밖에 되지 않은 카일러 남작이 페르만 왕국 최고의 영지라 할 수 있는 헤르센 지방을 관리한다는 것은 억지스런 일이었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선대 국왕의 체면과 자신의 체면도 한꺼번에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국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가, 감사합니다. 폐하!”
갑작스런 죽음.
지브릴 잉스 페르만 폰 페얼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동안 국왕의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위드 카일러 남작 건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브릴 국왕이 죽은 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일단락된 것이다.
“한데, 배러 백작의 영지가 어디였소?”
카엘 국왕의 물음에 배러 백작이 다소 불안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프…… 레타 지방입니다.”
“…….”
카엘 국왕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니드먼 후작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자 홀로 남은 카엘 국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
프레타 지방.
그곳은…….
Chapter 1 네드벨 아카데미
제국력 1,383년, 네드벨 아카데미 입학자 공고문
검술학부 합격자 명단(경쟁률-364:1)
… … … … … … … … … … … … …
… … … 에틴 카르디난 카논 … … …
… … … 미카 위드 파르텐 … …
… … … 테일러 라이너 제론 … …
… … … … … … … … … … … … …
***
“이거 어쩔 거야!”
검, 그리고 얼굴 가득한 흉터.
“죄, 죄송합니다.”
왜소한 몸집의 남자가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렇지만 그의 사과를 받는 거한의 사내는 오히려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고개만 까딱거리면 해결되는 거냐?”
고개를 숙였던 남자가 고개만 들어 사내를 바라봤다.
“그, 그럼?”
“뭔가 보상을 해야 할 것 아냐!”
사내의 말에 남자가 슬쩍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고작 바지에 흙탕물이 조금 튀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걸로 보상까지 하라니?
“또 억지로군.”
“그렇게 말이야.”
“잠잠 할 만하면 한 번씩 저러는군.”
코가 빨갛게 변할 정도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뱉어냈다. 그런 것을 못 들을 사내가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보상은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주변 사람들의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남자가 제법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반문했다.
“뭐?”
사내의 얼굴이 징그럽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한 남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흙탕물 조금 튀었다고 보상까지 바라는 건 너무하는…….”
“썅! 조금? 조금이라고 흙탕물 묻은 게 없어지냐? 조금이든 아니든! 바지가 더러워졌잖아! 네놈 눈에는 이 더러워진 바지가 안 보이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더욱더 인상을 험악하게 쓰는 사내로 인해서 남자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1실버!”
“예?”
“1실버면 조용히 넘어가주지!”
1실버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내의 모습에 남자는 물론이고,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1실버면 바지 한 벌을 새로 사겠군.”
“한 벌만 사겠어? 족히 서너 벌은 사겠네!”
주변의 목소리에 사내가 그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남자에게 했던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떤 놈이 자꾸만 남의 일에 나서서 지껄이는 거야? 그렇게 끼어들고 싶으면 앞으로 나와서 끼어들어!”
사내의 외침에 속닥거리던 이들은 누가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눈에 봐도 사내는 용병. 더욱이 며칠 전부터 시에 나타나 온갖 행패를 다 부려대는 성질 더럽기로 유명해진 카벨이라는 용병이었다.
한 번은 카벨의 행패를 보고 참지 못한 한 자유기사가 용기 있게 나섰지만 의외로 카벨의 실력은 뛰어나서 오히려 나섰던 자유기사는 오른팔이 잘리는 부상을 입고 도망을 가야만 했다. 그 이후로 카벨의 행동엔 누구도 섣부르게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 경비대를 부를 수도 없었다. 이미 카벨과 시 경비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불러봐야 고작 적당한 훈계만을 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 경비대를 부른 사람만이 후에 카벨에게 보복을 당했기에 카벨은 어느 순간부터 시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대상 일순위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