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4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44화
흑영(黑影)은 알을 깨고 부화한 새 생명처럼 굽은 몸을 풀고 있었다.
관절이 돌아갈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련의 동작들에 전혀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방패에 호신강기에 명의에 소림사의 무가장(武加障)까지 더해진 것 같았다.
무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3년 전, 윌레이커 카이스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그의 심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뭐 하는 놈일까.
이미 정해졌다.
저놈은 천마일 수밖에 없었다.
천마가 아니고서야 저런 힘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강호란 땅에서.
“…….”
그러니 잠자코 바라보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무신은 이미 뽑아둔 빙룡검을 저기 저 천마가 거의 분명한 흑영에게 날렸다.
정확히는 빙룡검의 기운을.
푸르른 그것이 마치 빙룡이 정말 살아 있었을 적처럼 허공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빨랐다.
광속이란 말로도 어쩌면 부족할지 몰랐다.
체감은 그랬다.
쿠웅!
그런데 그것은 열 장도 채 못 날아가서 꺼졌다.
말 그대로였다.
센 바람에 불꽃이 꺼지듯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저 속도만 빨랐기 때문에?
아니었다.
무신은 가능한 한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간 보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하며 힘을 빼는 것은 그의 성격에 안 맞았다.
“호오.”
물론 당황치는 않았다.
천마라면, 저 정도는 돼야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지난 3년.
천마만을 기다려 왔기에 무신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흥분이 될 지경이었다.
어서 저놈의 본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굵고 낮은, 그러나 가래가 잔뜩 낀 듯 몹시 텁텁한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만 들으면 노쇠한 노인 같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금세 제 모습을 드러냈다.
6척이 조금 넘은 신장.
우락부락하진 않으나 균형이 잘 잡힌 몸.
언뜻 보기에는 평범했다.
그런데 안광(眼光)이 달랐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마교교주 마운현도 흉내 못 낼 분위기였다.
그리고 마주하고 보니 노인이 아니었다.
목소리만 그랬을 뿐, 모습은 청년에 더 가까웠다. 마운현이 반로환동을 거쳐 젊게 보였던 것처럼.
무신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네가 천마인가?”
“…….”
청년은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바깥세상을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무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누구지?”
“최무신이다.”
무신은 순순히 답했다.
청년이 물었다.
“최무신?”
주위를 살피는 것만 봐도 그간의 소식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무신은 친히 설명해 주었다.
대신, 아주 짧게.
“마운현이란 네 부하놈을 처리하고 이곳의 새로운 교주가 되었지. 아, 마교가 아닌 전혀 새로운 세력으로 말이야.”
“허허. 그랬구나.”
제법 충격적일 텐데도 청년은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마치 마교나 마운현이 어찌 되든 간에 상관없단 모습이었다.
그러니 무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 천마가 아닌가?
무신은 다시 물었다.
“네가 천마냐고 물었다.”
“마교를 세운 장본인이자 마신을 숭배했던 천하제일인을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맞다.”
역시나.
천마가 아니고선 풍길 수 없는 분위기와 힘이었다.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여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지?”
“그 전에 벌써 나타나야 했다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어쨌든 네가 세운 세력이 없어지게 생겼는데, 그때는 나왔어야지 않나?”
“그깟 것이야 다시 세우면 그만이다.”
“뭐?”
“이전처럼 천하를 호령하면 마교가 아니라 그 이상을 세울 수도 있어.”
아까부터 천하제일인이니 천하를 호령하니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천마는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어쩌면 마계의 첫 번째 침략을 막은 것도 그의 공이 컸다 할 수 있었다.
잠깐.
그때도 천마가 있었나?
무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천마는 강하다.
앞서 말했듯 그것은 사실이 맞다.
“호오, 그러시구만.”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는 무신에게 천마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네가 장본인이구나.”
“장본인?”
“마교를 없앤 장본인 말이다.”
무인끼리는 풍기는 기압만 느껴도 상대의 수준을 알게 마련이었다.
빙룡검에 생사경을 뛰어넘는 내공.
천마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겠지.
무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가 계속 말했다.
“도원경(桃源境)에서 느끼기는 했지.”
응?
“도원경?”
“생사경에 오른 자만이 갈 수 있는 이상의 세계 말이다.”
도원경.
혹은, 무릉도원.
무신도 들어본 바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그러니까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무신이 알기로 그곳은 환상(幻想)이었다.
“꿈을 꾸다 오셨나?”
“이승에선 꿈이라 생각할 수밖에.”
천마의 얼굴은 매우 차분했다.
목소리에도 떨림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나도 다녀오기 전까진 그리 생각했으니 말이다.”
“…….”
“하나 정말 실존하더구나. 그래, 어쩌면 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에 그곳 같은 곳은 없어.”
입에서 침이 떨어질 듯 천마가 그곳의 회상에 젖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순 없으니 무신으로선 뭐 하나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은 바뀌었다.
도원경.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왜냐하면…….
저승.
염라.
망령의 숲.
회귀.
그리고 유림까지.
무신은 더 꿈같은 일을 경험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도원경은 어떤 의미에서 허접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다.
천마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곳의 공기도 물론 좋지만 역시 도원경에 비할 바는 못 되구나. 자연의 기운이 턱 없이 낮아.”
자연의 기운이라…….
무신의 눈이 빛났다.
“자연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것처럼 들리는 군.”
“그야 얼마든지.”
“그래?”
천마가 왼손 주먹을 쥐었다.
알록달록한 기체가 그의 주먹에 맺혔다.
내공이 아니었다.
정말 자연경의 그것이었다.
무신은 이번에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세계가 달라 경지의 높이가 달랐을 뿐, 카르베니아의 군주 윌레이커 카이스도 같은 경지였었으니까.
즉, 강호에 자연경을 쓰는 자는 천마 이외로도 있단 뜻이다.
무신도 당연히 포함하여.
천마가 주먹에 맺힌 것을 저 멀리 이름 없는 산을 향해 날렸다.
그래봤자 주먹을 편 것에 불과한데도 그것은 벼락처럼 날아가 벽력탄처럼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반향은 천마와 무신이 서 있는 곳까지 전해졌다.
대단한 파괴력이었다.
무신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과연 천마로군.”
“너도 이쯤은 쉬이 가능할 텐데?”
“오, 나를 알아주는 건가?”
“나는 마운현 그놈과 달라. 상대를 인정할 줄 알지.”
마운현 그놈과 달라.
상대를 인정할 줄 알지.
확실히 마교를 다스리긴 다스린 모양이었다.
뭐, 무너지든 어쩌든 관심이 없다고 하니 마교인들 입장에선 배신을 당한 격이지만.
아니.
배신당해도 좋지.
무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떠한 집단에 소속돼 있는 상태에서, 천마와 같은 거물을 상급자로 두는 것은 상당한 위안거리였다.
늘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배신이란 것도 사실 우습다.
신경을 안 쓴 것이지 뒤통수를 친 것은 아니잖은가.
천마기 아직도 몸이 뻐근하다는 듯 어깨를 빙빙 돌렸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좀 더 여유를 갖고 돌아왔어야 했나.”
“급하게 돌아올 이유가 있었나? 도원경에서?”
“급할 것은 없었다만, 이룰 것을 다 이뤘으니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지.”
“호오, 이룰 것을 다 이뤘다?”
“그럼, 다 이루었지.”
이뤘다는 것.
무인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다.
어떠한 경지에 도달했단 뜻이다.
그런데 도원경은 생사경만이 드나드는 곳.
그렇담 원래 생사경이었고, 거기서 그 위의 자연경에 도달했단 소리인가?
아닌 것 같았다.
천마는 방금 전에도 이미 자연경의 힘을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까짓 경지는 그냥 숨 쉬는 것과 같다는 듯.
그렇다는 것은…….
“마치 생사경을 뛰어넘고, 거기서 한 번 더 뛰어넘었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무신의 말에 천마가 껄껄 웃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네가 이룬 경지를 자연경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도 뛰어넘었단 것이다.”
“…….”
“벙 찐 얼굴을 보니 역시 몰랐던 모양이구나.”
“…….”
“자연경이란 석 자를 지금 많이 기억해 두거라. 내 손에 곧 죽게 되면 영영 떠올리지 못하게 될 테니.”
무신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천마가 이미 싸움에서 이긴 것처럼 말을 해서만은 아니었다.
자연경.
무신은 그것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연히 모를 거라는 듯 천마가 말하는 투가 너무 우스웠다. 천마 입장에선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들 테지만.
그나저나 거기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자연경을 뛰어넘었다?
무신은 탄성을 터뜨리며 물었다.
“신화경에 도달했다 이 말인가?”
“응? 뭐라고?”
“자연경을 뛰어넘었다 했으니 신화경에 올라간 게 아닌가?”
“…….”
“왜 그러지?”
“그게 아니라… 네가 어찌 신화경에 대해 알고 있느냐?”
알 수밖에.
“신화경에 도달해 봤기 때문이지.”
“뭣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무신을 바라보던 천마가 돌연 크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강호가 아무렴 천해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곳이라 해도 신화경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도원경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흐음.”
“애당초 네놈이 강호에서 자연경에 도달한 것만 해도 놀라울 지경인데, 뭐, 신화경?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를 하는구나.”
천마가 계속해서 박장대소했다.
무신은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네 말대로면 내가 신화경이 아닌데 어찌 신화경이란 말을 알고 있지?”
“…….”
“그리고 뭐, 이렇게 구구절절 떠들 것 없겠지.”
“…….”
“무인들 대화야 원래 이것으로 하는 게 아닌가?”
무신은 미리 뽑아두었던 빙룡검을 전면을 향해 들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
기괴한 바람이 무신과 천마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천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빨 터는 실력 하나는 일품이구나.”
“그 또한 붙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이빨인지 아닌지.”
“후후, 후회하게 될 게다.”
그런데 잠시였다. 천마는 다시 처음 나타날 때 그 순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의 손에도 이미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흑빛이 감도는 것.
마치 흑라신검 같았다.
하지만 흑라신검 따위는 저것에 명함도 내밀 수 없음이 대번에 느껴졌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빙룡검보다 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바람보단 폭풍이란 말에 더 잘 어울렸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무신 또한 계속 여유로웠다.
천마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마운현을 잡은 것에 아직도 기고만장해 있는 모양이구나. 하나 그것은 오산이다. 아주 큰 오산이야.”
“혓바닥이 너무 기시대도?”
“네깟 놈 상대하는 것에 내 검을 쓰는 것이 아까워 이러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천마가 먼저 뛰어 들어왔다.
무신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보인다.
다 보인다.
천마의 발 디딤부터 어떤 동작을 해올지, 그리고 어떤 공격을 펼칠지 그의 눈에는 다 보였다.
천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혹은, 잘못 알고 있었다.
천마는 신화경이 아니었다.
진짜 신화경이 보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