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96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96화
196화 브뜨아 요새 (3)
***
“으음…….”
에브욤 백작이 침음성을 흘렸다.
오래전부터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거의 평생을 브뜨아 요새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의 전쟁이 모두 엘튼 제국을 침략하는 것이었기에 에브욤 백작은 실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다.
위기 상황이 되면 그를 대신할 다른 사람이 사령관의 자리를 차지하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에브욤 백작,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이마에 주름이 심하게 많은 중년 사내가 인상을 잔뜩 쓰고 물었다.
덕분에 그의 이마엔 가뜩이나 많은 주름이 더욱 많아졌다. 바로 베링 요새에서 5,000의 병사를 이끌고 도주한 앙드로 백작이었다.
“그대의 얘기는 알겠으나, 브뜨아 요새를 지키는 것이 내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피해야 합니다. 몽뒤스 요새로 퇴각하여 로베르 백작과 병력을 규합해 대처해야 놈들을 말을 수 있을 겁니다.”
“브뜨아 요새를 내주면 놈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십니까?”
에브욤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고서 말했다.
브뜨아 요새는 단순히 ‘요새’라고 정의할 만한 곳이 아니다. 오랫동안 주둔해 온 까닭에 거의 어지간한 중급 영지와 같은 발전을 해 왔다.
전략상의 이유로 불을 지르고 떠나기는 아까웠다.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압니다. 그러나 앙드로 백작이 이끌고 온 병력을 합치면 브뜨아 요새의 병력이 무려 30,000에 이릅니다. 그런 대군을 거느라고 퇴각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질 않습니까. 차라리…….”
에브욤 백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될 말입니다. 듀카스 대공과 맞설 수 있습니까? 놈들이 공성 병기를 끌고 온다면 그때는 늦습니다.”
“나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에브욤 백작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브뜨아 요새에서 보유 중이던 공성 병기는 엘튼 제국의 공략을 위해서 모조리 끌고 간 탓이다.
쿵, 쿵, 쿵!
“들어오라!”
앙드로 백작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에브욤 백작과 의견이 엇갈려 머리가 복잡했다.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방해를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사령관 각하! 놈들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뭣이? 지원군? 숫자는! 숫자는 어느 정도나 되는가!”
에브욤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만 명에서 이만 명 사이입니다.”
“이럴 수가!”
“너는 당장 나가서 브뜨아 기사단에게 공격에 대비하라고 이르도록 하라!”
망연자실한 에브욤 백작 대신에 앙드로 백작이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충! 명령을 받듭니다!”
병사가 크게 대답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에브욤 백작,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더 늦었다간 요새에 갇혀 놈들의 공격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십만 대군이라…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앙드로 백작…….”
에브욤 백작이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엘튼 제국군이 거리가 떨어져 있어 당장 공격은 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10만 대군이 한꺼번에 몰아쳐 온다면 브뜨아 요새의 병력만으로는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몽뒤스 요새로 후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삼만 대군을 이끌고 퇴각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놈들이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에브욤 백작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몽뒤스 요새까지는 빠른 행군으로 반나절 거리에 있습니다. 어둠을 틈타 에뜨랑 산맥을 이용해 도주한다면 놈들도 말을 타고 추적하지는 못할 겁니다.”
“으음…….”
“최소한의 무장으로 몸만 빠져나가면 놈들이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놈들의 지원군이 도착했으니, 내일 아침이면 공격해 올 게 분명합니다. 서둘러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에브욤 백작!”
자꾸 결정을 미루는 에브욤 백작에게 앙드로 백작이 채근하듯 곧바로 다그쳤다.
‘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냐! 에브욤 백작!’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꽁지가 빠지라 도주하던 아군까지 버려두고서 퇴각한 그였다.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전장을 사양하고 싶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그였기에 에브욤 백작이 꾸물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 안 되면 우리만이라도 퇴각하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엘튼 제국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면, 브뜨아 요새를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군량은 놈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오물과 뒤섞어 버리면 놈들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에브욤 백작.”
앙드로 백작은 기다렸던 사람처럼 바로 해결책을 내놓았다.
혼자서라도 퇴각하겠다고 결심했으나, 에브욤 백작의 25,000 병력과 함께 이동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두에 자신의 병력을 세운다면 혹시나 있을 추격에서 전력을 보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새벽 두 시쯤 후퇴하는 것으로 하지요.”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에브욤 백작!”
앙드로 백작이 그저세야 편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오랜만에 브뜨아 요새의 모습을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비록 뭐 빠지게 이동해 왔다는 건 좀 피곤한 일이기는 했지만.
상당한 거리를 두고서 듀카스 대공이 진지를 구축해 두었다.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기 전에 병력을 충분히 쉬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공략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오! 어서 오게 아이언 백작!”
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듀카스 대공이 걸어나와 반긴다.
총사령관이 마중 나왔는데 말 위에서 인사를 받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칼립의 안장에서 훌쩍 뛰어내려 군례를 올렸다.
“충! 총사령관 각하를 뵙습니다.”
“하하하! 번거롭게 그런 예의 따윈 집어치우시게.”
듀카스 대공이 손을 내밀며 크게 웃었다.
그의 손을 마주 잡고서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엘란트 백작과 베르나 백작은 여전히 힘이 넘쳐 보인다. 나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그 두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었다.
하나같이 굉장한 기세가 전신에 흐르고 있다.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허연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 은은한 빛이 흐르는 듯한 기운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헬리온 교단에서 파견되었다는 다이안 대신관이 분명하다. 저렇게 늙은 몸으로 전투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이분들은 누구입니까, 총사령관 각하.”
“아! 반가워서 내가 귀빈들께 무례를 저질렀군. 여기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분은 메시틴 제국의 두 번째 검, ‘메카스 휴멜로트’ 공작일세.”
듀카스 대공이 바스타드 소드를 허리춤에 착용한 회색 머리의 사내를 가리켰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였으나, 함부로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면 노화가 더디게 되기 때문이다.
“만나뵈게 되어 영광입니다. 휴멜로트 공작 각하!”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주었다.
함께 싸울 사람이었기에 깍듯하게 ‘각하’의 칭호를 붙여 준 것이다. 이런 실력자가 도와준다면 마왕을 상대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듀카스 대공한테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대단하시오. 함께 싸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오.”
휴멜로트 공작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했다.
나의 기세를 약간은 읽은 듯하다. 지금 당장은 동료지만, 프레하 제국과 전쟁이 끝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
만만치 않다는 존재감을 심어 주어야 나중에라도 골치 아픈 일을 피할 수 있다. 평화라는 건 약자의 것이 아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함을 지닌 존재만이 자유라는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는 법.
그래서 약간의 힘을 개방해 휴멜로트 공작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워어! 대단한 친구군. 나는 더글라스라는 사람이지. 남들이 용병왕이라고 부르지만, 백수 녀석들 일자리 만들어 주는 게 내 일이야.”
왼쪽 뺨에 길게 흉터가 나 있는 사내가 너스레를 떨면서 악수를 청한다.
“반갑습니다. 더글라스… 님…… 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호칭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그냥 형이라고 불러. 우리 팍팍하게 굴지 말자고.”
장난처럼 윙크까지 하는 더글라스.
그의 기세는 다른 소드마스터와 달리 난폭하고 거친 느낌이었다. 순수하게 실전을 통해서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 틀림없다.
나처럼 바닥부터 올라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게 틀림없다. 동질감이 느껴져 더글라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묵직하군.”
“형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웃으면서 손에 힘을 풀었다.
“뭐? 형님?”
“형이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가 잘못 되었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맞아! 맞아! 그랬지! 반갑다, 동생! 크하하하하!”
더글라스가 나의 어깨를 팡팡 두들기면서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즉흥적이지만,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타입의 인간이라는 건가?
뭐… 손해는 아니다.
한 나라의 왕과 형 동생 하는 관계가 된다는 건 그만큼 나의 존재가치가 높아진다는 거니까.
“자, 오늘은 술이나 한잔 하면서 긴장을 푸는 것으로 합시다. 브뜨아 요새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잖소.”
듀카스 대공이 환하게 웃으면서 제안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간절했는데 고마운 얘기다. 뭐 빠지게 이동해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전투를 벌인다는 건 좀 우울하니까.
듀카스 대공의 전용으로 세워진 대형 천막으로 이동한 우리는, 병사들이 내오는 술과 안주를 바라보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장 내일부터 흉흉한 전투를 벌여야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술에 집중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 상태다.
오후 늦게 도착한 탓에 어느새 밖이 어둑어둑 해지가 지고 있다. 술 마시기 딱 좋은 시간이라는 얘기다.
“동생! 내 술 한잔 받게! 하하하!”
“역시 형님은 뭔가 아시는 분입니다?”
엄지를 척 내밀고 더글라스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여러 종류의 술이 있었지만, 콕 집어서 맥주통을 들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술이란 게 큰 잔에 마셔야 제맛이 아닌가! 실컷 마시고서 바지 까내리고 오줌을 싸 갈겨야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지! 받아!”
“네, 형님!”
동의하긴 좀 어려운 얘기였지만, 나름의 주도(酒道)가 그렇다는데야 반박할 이유는 없겠다.
“제 잔도 받으십시오. 형님!”
술이 가득 든 맥주잔을 내려놓고 그에게서 맥주통을 넘겨받았다.
“으하하하! 가득 부어 봐라, 동생!”
잇몸을 드러내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더글라스.
“자! 두 형제가 마음이 통하는 듯하니, 우리도 잔을 듭시다.”
듀카스 대공이 흐뭇한 얼굴로 와인이 담긴 잔을 들었다.
그러자 휴멜로트 공작과 다이안 대신관도 잔을 들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듀카스 대공의 선창을 따라 하면서 천막에 모인 지휘관들이 잔을 입에 가져갔다.
나 역시 커다란 맥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차갑게 식혀진 맥주였다면 좋았…
“세인트!”
“왜 또?”
“맥주통 좀 식혀 봐라. 시원하면 더 죽이거든.”
“내가 얼음통인 줄 알아?”
툴툴대면서도 세인트가 맥주통에 손을 대고서 마법을 발현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맥주통의 겉면에 서리가 끼면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온다.
순간,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다이안 대신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대, 세인트라고 했소?”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요?”
맥주통에서 손을 뗀 세인트가 눈살을 찌푸리고서 대답했다.
신을 섬기는 다이안 대신관이었기에 찜찜한 느낌을 받는 게 틀림없었다.
녀석이 그나마 막말하지 않은 게 다행인 상황.
처음 듀카스 대공과 만나던 자리에서도 서슴없이 반말을 찍찍해 대던 놈이었으니까.
“혹시 방금 사용한 것이 흑마법 아니시오?”
“그래서 어쩌라고 백수 새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