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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33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33화

133 시작되는 전투(1)

 

 

 

 

 

“차원을 넘어간 자는 없었어요.”

 

아이네스가 조사단을 이끌고 망인곡을 빠져나간 이틀 후 무혼을 찾아온 엘라드는 조사 결과부터 알려주었다.

 

“엘라드, 아이네스 소저는 분명 넘어온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혼은 이야기를 하자 엘라드는 자신의 이야기에 내용을 덧붙였다.

 

“공식적으로는 넘어간 사람은 없어요.”

 

“공식적이라니 무슨 말이지요?”

 

엘라드는 차원의 통과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신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대로 해줄 수 없었기에 가이오스트의 고서에 실린 내용을 인용해 줄 수밖에 없었다.

 

차원의 영역은 천신과 마신들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관조자들도 차원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주신과 그를 보좌하는 신들만이 행할 수 있으며 주신의 허락이 없다면 주신을 보좌하는 신들도 차원을 통과시키진 않는다.

 

그렇기에 차원을 넘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지 무혼과 아이네스처럼 마법진으로 주신의 눈을 피해 순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가능했다. 아이네스와 무혼이 서로의 세계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의사가 전달이 가능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차원을 넘은 존재가 있다면 주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차원의 틈을 통해서 넘어간 경우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쪽에서는 ‘잃어버린’ 것이고 저쪽에서는 ‘주운’ 것이 된다.

 

“그렇다면 중원에 나타난 마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이네스의 말을 토대로 중원에 나타난 마인들을 설명하자 엘라드는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생각을 정리해 알려주었다.

 

차원을 넘는 문제의 제약은 마족과 신족도 똑같이 걸린다. 그러나 신족은 기본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소환을 당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마족은 흑마법사에 의해 소환이 될 때가 있다.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소환을 하더라도 소환 대상자가 된 마족과 마신은 강제적으로 차원을 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모습과 정신을 가진 채 중원에 소환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족들이 비틀린 모습으로 소환되어 오니 빙의된 인간들도 그 모양을 닮아간다. 마족들의 정신이 온건히 유지가 된다면 자신이 빙의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이미 정신이 무너진 마족은 그러한 능력을 잃게 된다. 무혼과 만났던 마인들도 마지막 순간에 폭주하며 모습이 바뀌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엘라드의 말을 들은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신이 무너진 마인들을 어떻게 통솔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을 다루고 있는 자들의 몸에는 마족들을 다루는 주문이 새겨져 있을 거예요. 물론 단순히 주문을 새긴다고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마신을 오랫동안 추종하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새기는 것이지요. 보통 수십 년이 걸려요. 그리고 그 주문을 몸에 새기고 있는 동안 그들의 정신도 흑마법의 영향을 받기에 포악해지고 살기가 짙어진다고 하고요. 또 아무나 주문을 새길 수가 없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모아 마신을 숭배시키며 진행시켜야 가능한 거예요. 단지…….”

 

엘라드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

 

“차원의 틈을 통해서 넘어간 자가 마족을 어찌 소환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엘라드는 머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차원의 틈을 통해 넘어갔기에 이곳 차원의 좌표를 알지 못할 거예요. 그건 인간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신을 통해야만 하죠.”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드의 말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지만 우선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도 지금 마족의 소환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차원의 열린 틈에 대한 좌표를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건 아무래도 제가 원인인 듯싶습니다.”

 

“예? 무혼 경이 왜요?”

 

“제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무혼 경과 아이네스 공주님이 이어져 있으니… 아!”

 

엘라드는 깨달았다는 듯 감탄성을 내질렀다.

 

“그렇다면 그 통로가 두 분의 교감과 게다가 저의 소환이 있었으니 그것에 반응을 하여…….”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며칠간 고심을 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에 있었다.

 

자신이 명계에 떨어졌을 때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명계에서 가이오스트로 소환이 되었을 때 그 통로가 열렸을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가장 문제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명계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자라면 명혼흡정술로 검은 안개를 소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명혼흡정술과 같은 명계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자가 악한 마음으로 검은 안개를 끌어들인다면 이미 중원에 퍼진 검은 안개만으로도 충분히 중원을 피 속에 잠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계의 기운과 가이오스트의 검은 안개와 또 다른 안개였기에 중원에 오래 방치한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걱정되시나요?”

 

엘라드의 물음에 무혼은 뒤를 돌아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위험한 안개가 펼쳐지고 있는 곳은 무혼의 소중한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떨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가이오스트의 흑백만 보아 오던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무혼이다. 도움이 되고 싶었던 엘라드는 마지막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가능할까?’

 

하지만 얼굴 하나가 떠오르자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허락해 주시지 않겠지?’

 

 

 

 

 

그로부터 한 달이 되어갈 무렵, 한 장교가 지휘소로 뛰어들었다. 경계의 보고를 맡고 있는 장교로 어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검은 안개를 감시하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성벽에서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반 병사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밀려드는 것이라면 이제 성을 공격하기를 결심했다는 것과 같다.

 

카세팜 후작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휘관들과 무혼이 성벽 위로 올라가니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안개가 보였다.

 

‘대단한 기세로군.’

 

안개 속에 있을 동맹군의 병사나 하급 마족을 상대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두 마인이 내뿜는 기세가 무혼의 감각에 잡혔던 것이다.

 

“어떤가?”

 

무혼이 고개를 돌려보니 카세팜 후작과 다른 지휘관들의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후작은 중급 마인들과 무혼이 겨루게 되는 날이 기나긴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고 다른 지휘관들도 그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중급 이상의 마인이 두 명 있습니다. 한 명은… 대단하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군요.”

 

흑명공과 흑성무를 얼마나 정확하고 시기적절하게 펼칠 수 있을 것인가에 결판이 날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기세였다.

 

후작은 굳은 얼굴로 무혼의 손을 잡았다. 어차피 무혼이 패배한다면 무혼도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자신도 최후까지 저항하다 삶을 마칠 생각이었기에 담담히 이야기했다.

 

“부탁하네.”

 

후작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한 후 무혼이 지휘소에서 내려왔을 때 외성과 내성의 넓은 터에 수많은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아이네스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은휘패를 모두 달고 있었다.

 

검은 안개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작은 패를 연합군은 빛의 세계의 운명을 걸고 온 힘을 다해 만들어냈고 미타모할 성이 결전장이 될 것이라 판단한 연합군의 사령부는 모든 기사와 병사들에게 은휘패를 지급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은휘패가 국경의 각 성으로 보급되고 있는 중이다.

 

무혼이 자신에게 배정된 자리에 서자 카세팜 후작은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오늘 연합국의 운명이 걸려 있음을 잊지 마라. 그리고 이 성에서 처참히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라. 이번 전투에서 패하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들이 그렇게 죽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 우리가 물러날 곳은 없다.”

 

그의 연설은 계속되었으나 그것을 따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는 이미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 병사들을 눈에 부시게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후작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도 전선의 모든 성에서 전투는 간간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가이오스트 대륙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미타모할 성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 성에서 지는 편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미타모할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그리고 긴장감이 아니라 병사들을 전의로 채워주기 위해서 후작의 연설에는 힘이 실렸고 그의 연설이 이 순간만큼은 싫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연설을 들으며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있는 전우들을 보며 모두의 감정은 고조되어 가기 시작했다.

 

“안개가 빠르게 밀려옵니다.”

 

후작의 연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무혼이 후작을 보니 후작은 쉬지 않고 연설을 계속하며 무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돌진할 때까지 끝없이 전의를 다지는 연설을 할 것이다. 병사들의 머릿속에서 대륙의 운명이 어깨에 걸려 있다는 중압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후작은 쉬지 않았다.

 

그러한 후작의 모습을 보며 무혼은 몸을 돌렸다. 후작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고 있다. 이제 무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네스 소저, 기대해주십시오.’

 

 

 

 

 

성벽 위에서 내려 보니 이제까지 보던 안개와 사뭇 다르다. 다른 때의 안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면 지금의 안개의 형태는 해일이 성벽을 삼키려는 듯 밀려오는 앞의 윗부분이 꽤나 치솟아 있다.

 

“무혼 경, 저도 곧 달려갈게요.”

 

성벽 위에서 엘라드가 하프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엘라드에게는 도움만 받게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그 말에 엘라드는 빙그레 웃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안개가 오늘은 몹시 빠르게 오는군요.”

 

엘라드를 따라 눈길을 돌린 무혼도 그의 말에 동감하였다. 평소의 두세 배가 넘는 속도로 밀려오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무혼은 아이네스의 마법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 속에 있는 백색 신검이 엘라드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낸 무혼이 검을 살짝 뽑아 보이자 엘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무혼 경에게 필요할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도 좋은 검이 있어요.”

 

엘라드는 그의 망토를 뒤적이더니 오래전 무혼이 사용했던 우산을 꺼내었다. 우산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백색의 신검과 비슷하게 생긴 검이 뽑혀 나왔다. 아마도 아이네스에게 백색의 신검을 준 후 새로이 구한 검이리라.

 

무혼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검은 안개를 보았다.

 

“이제 가야겠군요.”

 

그 말과 동시에 무혼의 신형이 성벽을 넘어 검은 안개를 향해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두근.

 

중급의 마인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느꼈지만 이번만큼 강렬한 심장 박동은 처음이었다.

 

두근.

 

지금 안개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마인의 강함을 몸이 먼저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근.

 

전의 싸움과는 다르다. 이번에는 성벽에서 가급적 떨어져야 했기에 무혼은 안개가 아직 성벽 밖에서 300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몸을 날려 돌진한 것이다.

 

두근두근.

 

온몸에 전해져오는 이 느낌.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존재감이 느껴진다. 300미터의 거리였으나 무혼의 경공술에는 머나먼 거리가 아니었다.

 

팡!

 

빠른 속도로 안개에 뛰어들자 어느 때보다도 진한 검은 안개와 무혼이 부딪치며 작은 파공성이 울렸다. 무혼이 통과한 곳은 잠시 진공의 상태인 듯했지만, 곧 검은 안개로 다시 채워졌다.

 

안개 속으로 돌입함과 동시에 무혼의 온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백색의 신검을 흑색의 기류가 감싸고 맹렬히 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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