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3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30화
130 은휘패와 라마혈교의 문(2)
도안은 그들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의 감각을 잡는 것이 느껴져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이제 운기를 통해 소모된 내력을 채웠기에 확인을 해보고자 한 것이다.
천천히 다가갈수록 감각을 조여 오는 느낌은 확실해지고 있다.
‘이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의 앞을 막고 있는 수풀에 손을 대던 도안은 그 수풀이 인위적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수풀은 이런 모양이 아닐 것이다.
수풀에서 손을 거둔 도안은 잠시 눈을 감고 불호를 외우며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퍼져나가는 내력을 느끼며 다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것을 좀 보십시오.”
무엇인가 발견한 듯 신중하게 말하는 도안의 침중한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을 때 연신 불호를 외우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네스는 예소소, 제갈운혜와 함께 도안의 옆으로 걸어갔다.
“이, 이런!”
도안이 발견한 것을 본 남궁장천이 경악성을 내지르며 다가서자 아이네스는 팔을 내밀어 저지했다.
“하지만 소저, 저 모습을…….”
“함정이에요.”
딱 잘라 말한 아이네스는 도안이 발견한 소녀의 사체로 시선을 돌렸다.
물씬 풍기는 흑마나의 기운에 아이네스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이제 열다섯도 안 되어 보이는 중원의 소녀가 실오라기 한 가닥 없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온몸에 기이한 문자가 그려진 그녀의 눈동자에 찍힌 듯 선명하게 떠 있는 공포의 빛이 어떠한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아이네스는 그녀의 몸 전체에 걸쳐 그려진 주술과 마법 문자를 읽었지만, 몸의 부패를 막아주고 형태를 보존시켜주는 마법뿐이었다.
“언니, 저런 형태의 주술은 처음 봐요.”
옆에서 예소소가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그녀의 심정을 대신해 주고 있다.
“나도 처음이야.”
아이네스는 소녀가 누워 있는 땅을 훑어 내렸다. 이곳에 일부러 사체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기에 시체를 수습해 줄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소녀의 사체 주위에는 어떠한 마법진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여기에 두었는지 모르지만 아이네스의 머릿속에서는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속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힘이 심겨 있는 것 같군요. 아미타불.”
옆에서 천천히 입을 여는 도안이 그녀에게 단서를 주었다. 보통의 마법트랩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에 그 타성에 젖어 있던 아이네스는 도안의 말에 떠오르는 흑마법이 있었다.
“레, 레이디 오브 데쓰(Lady of Death). 세상에…….”
아이네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한걸음 물러나자 주위의 무사들이 궁금하다는 듯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이네스 소저, 그게 무엇입니까?”
잠시 가슴을 진정시킨 아이네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의 말로 바꾸면 ‘죽음의 숙녀’예요. 저 소녀를 돕기 위해 다가서는 모든 것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최악의 마법트랩이죠.”
아이네스는 미라크네 왕국의 고문서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레이디 오브 데쓰. 빛의 연합군 기사들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여인들을 존중한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흑마법이다.
소녀의 몸속에 데쓰 스펠(Death Spell : 마법이 구동되면 상대의 생명력을 강탈한다.), 피블마인드(Feeblemind : 대상의 지능을 저능아 수준으로 감퇴시킨다.), 쉐도우 몬스터(Shadow Monster : 몬스터의 환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의 세 가지 마법진을 넣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에게 강제로 구동이 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저주받은 흑마법의 악명이 널리 알려진 것은 트랩의 효능 때문이 아니다.
트랩이 되는 소녀의 사체를 만드는 방법이 알려지면서 금기시된 마법이다.
열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의 소녀 중에서 트랩으로 지목된 소녀에게 죽음의 공포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번갈아 부여한다.
그러는 동안 몸에 마법진을 넣고 봉한다. 물론 마법으로 봉했기에 당사자는 자신의 몸속에 마법진이 있는지도 모른다.
총 세 개의 마법진이 몸에 심어지는 동안 신경의 예민함은 최고조로 달한다.
평소였다면 이미 미쳐버리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그녀가 절대로 미치지 않도록 마법으로 봉쇄하며 그녀의 정신을 계속 깨우기에 미치지도, 혼절하지도 못하고 끔찍한 공포와 기나긴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삶의 희망이 부여되는 순간, 가장 기뻐하는 순간에 최악의 공포와 함께 목숨을 끊어버린다.
이 마법을 사용하는 나라는 연합국과 동맹국을 막론하고 비난을 면하지 못했기에 오래된 마법으로 고서에만 남았다.
아이네스에게 설명을 들은 중원의 무사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소녀의 사체를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밀려드는 것은 폭발적인 분노였다. 정심회의 원로 고수들도 조사단의 젊은 무사들도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노리는 것은 사체에 대해 직접 타격을 입는 것과 이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평상심을 잃게 만드는 것이에요.”
아이네스의 말대로라면 소녀의 사체를 가져다 놓은 자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무사들이 분노로 몸을 떨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분노가 담긴 검이 득이 될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판단하기에 일렀다. 가이오스트의 기사들과 달리 중원의 무사들은 기나긴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익숙해 있기에 적절한 분노가 더욱 강한 힘을 부여할 때가 자주 있다.
“생각지도 못한 짓을 골고루 다 하는군.”
옆에서 팽조덕의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자 다른 무사들도 모두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서 수많은 악행을 들어보긴 했지만 라마혈교의 악행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기에 그들의 충격은 꽤나 크다.
“언니, 저렇게 몸 위에 주술의 문자를 잔뜩 그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눈치채지 않나요?”
“그러게, 내가 알기로는 저 위에 다시 문자를 감추는 마법을 더 해야 하는데.”
예소소의 질문에 아이네스는 잠시 헷갈렸다. 그녀의 말대로 저렇게 마법에 걸린 표시를 내면 누가 접근을 하겠는가? 혹시 자신이 잘못 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감추지 못해서 저렇게 놔둘 수도 있죠. 그리고 아이네스 소저의 설명이 없었다면 나라도 모르고 저 소녀를 묻기 위해 손을 댔을 테니까요.”
급난개의 말에 아이네스는 그녀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중원에 온 후로도 마법적인 것을 계속 접해서 잊었는데 이곳은 마법이 번창한 가이오스트가 아니라 마법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는 중원이다.
중원에서는 익숙한 내공심법도 가이오스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술법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소녀의 사체는 어찌해야겠습니까?”
“3장(=9미터)의 거리에서 소녀의 사체를 유지하는 마법을 깨트릴 수 있는 강렬한 열기로 태우면 되긴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마법은 빙계의 마법이다. 불과 상극인 만큼 소녀의 시체를 태울만한 화계마법을 구사하지 못한다.
“헐헐 그렇다면 내가 태우면 되겠구먼.”
한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옆에 있던 다른 노인이 실눈을 떴다.
“자네가 양강무학의 대가이긴 하지만 폭발력이 강한 무공이 아닌가? 시체를 산산조각 내어 이 숲에 퍼뜨릴 생각인가?”
“그게 아니네. 잘 보기만 하게.”
뒤로 물러선 노인이 오른손에 내력을 집중하자 손 전체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본 다른 무사들도 소녀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곧 강렬한 열기가 주위를 감싸고 열기를 견디지 못한 겨울의 얼음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아이네스는 속으로 경악성을 내질렀다.
‘세상에! 5클래스급 화계마법은 되겠네.’
긴 주문을 필요로 하는 마법에 비해 노인의 손에 모인 열기가 훨씬 빠른 시간에 완성되었다.
“열화폭염멸세장(熱火暴炎滅世掌)!”
노인의 기합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열기를 간직한 장이 한껏 기세를 피워 올리며 날아올랐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중을 천천히 떠가는 열기를 보며 아이네스가 어이없어 노인을 보니 이제야 1장의 거리를 날아간 자신의 장을 보며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다시 떠가고 있는 열기를 보니 소녀에게 도착을 하자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모두가 숨죽여 보고 있는 열기의 장은 소녀의 사체에 닿자 환한 빛과 함께 타올랐다.
화르르르르.
짧은 순간 큰 불꽃을 보여주었으나 순식간에 사라진 열화폭염멸세장의 연기를 바람이 몰아내어 주었다. 이미 소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소녀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반장의 거리에 있는 땅이 검게 탄 자국을 보여준다.
그것을 본 노인의 친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물어보았다.
“대체 저건 뭔가? 그리고 왜 그리 장을 느리게 날린 겐가?”
질문을 들은 노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최고의 빠르기로 날아간 걸세. 내 조부 되시는 분이 창안하신 무공인데, 원래는 벽력탄 같은 무공을 만드시고자 했지만 결국 저렇게 되었다더군. 나도 익힌 후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일세.”
뻔뻔한 얼굴로 큰 힘을 썼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는 노인을 보며 아이네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무공도 별의별 무공이 다 있구나.’
깨끗이 사라진 소녀를 뒤로하고 망인곡의 중심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남궁장천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모습을 드러내라.”
갑작스러운 남궁장천의 목소리에 모두들 그가 눈길을 던지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형태의 옷을 입고 있는 서장의 승려들이 있었다.
휘익.
은신을 들킨 라마승들이 손에 든 항아리를 던지자, 순식간에 십여 개의 항아리가 조사단을 향해 날아왔다. 항아리 주위에 룬어가 새겨진 것을 본 아이네스는 그 항아리들이 봉인의 항아리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검은 안개 속에서 괴물들을 본 후다. 그렇다며 날아오고 있는 항아리들이 괴물로 만드는 것이 채워졌을 가능성이 컸다.
아이네스는 즉시 혈랑검을 들어 올리며 시동어를 외쳤다.
“아이스 윈드(Ice wind)!”
아이네스의 마나를 매개로 주위에서 마나를 끌어모은 혈랑검의 수정은 흰 줄기를 보이는 세찬 바람을 불어내기 시작했다.
자연의 바람으로 항아리들을 되돌리기는 힘들겠지만, 마나의 힘과 아이네스의 의지를 부여받은 바람은 차디찬 기세를 내뿜으려 항아리를 멀리 날렸다.
퍼퍼퍼퍼퍽!
50여 장(=150미터)은 족히 날아간 항아리들이 바닥과 나무에 부딪히며 검은 안개와 함께 괴성을 토해낸다. 그러나 검은 안개는 곧 흩어져버렸고 구슬프게 들리는 야수의 비명이 계곡을 메아리쳤다.
“항아리 속에 악귀가 담겨 있어요.”
그 말을 들은 급난개가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럼 저 항아리를 깨면 저도 마인이 됩니까?”
아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급난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만일 아이네스가 바람을 불러내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날아 차기로 항아리를 박살 내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남궁장천은 그자들을 쫓아 검을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그것을 본 두 명의 라마승은 양옆으로 갈라지며 남궁장천을 협공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