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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24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2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24화

124 모여드는 사람들(3)

 

 

 

 

 

“어서들 오십시오.”

 

그들의 접근을 알아챈 신룡대의 한 무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급난개는 무림맹의 인장이 찍힌 봉투를 꺼내 보였다.

 

“무림맹에서 왔소이다. 신룡대장님께 안내를 해주시오.”

 

잠시 후 신룡대의 무사를 따라간 그들은 남궁장천을 볼 수 있었다.

 

“도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이게 얼마만의 일입니까?”

 

남궁장천과 팽조덕은 오랜만에 보는 도안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한동안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와 교해 그리고 눈앞의 도안과 팽조덕, 제갈두휘는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리며 수년간 같이 다니던 사이가 아닌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도안의 등장은 그들에게 크나큰 반가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먼저 무림맹의 서찰을 읽어야만 했기에 남궁장천은 급난개로부터 넘겨받은 서찰을 개봉했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가던 장천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던 팽조덕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읽어보니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제갈두휘의 죽음과 그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이 글에 쓰여 있었다.

 

“남궁 형님…….”

 

팽조덕은 장천을 나직이 불렀다. 남궁장천은 제갈두휘를 끝까지 믿었다. 그리고 진실이 어떠하던 서찰의 내용을 읽어보니 이미 집법부의 장로가 제갈두휘의 무죄를 선언했다.

 

“그렇게도 운명을 바꾸고자 노력을 하더니만, 이렇게 가다니 참 허무하군.”

 

비록 무혼을 잡고자 마지막에는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하나 그 길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장천은 하늘로 눈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자네는 끝까지 자네가 원하는 길을 걸었군.”

 

크게 숨길만 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급난개와 도안도 서찰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장천은 한쪽에서 다른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는 제갈운혜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 막막하기도 했다.

 

비록 장천을 사지로 몰아넣는데 함께 행동한 혐의를 받고 있었기에 쫓겼다고 하나, 그들은 한솥밥을 먹던 오누이였다. 그리고 장천에게도 두휘는 의동생과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도 들고 있다.

 

“휴우. 내가 직접 제갈 소저에게 이 내용을 알릴 자신이 없네. 자네가 가서 이야기해주지 않겠는가?”

 

급난개를 보며 장천이 이야기를 꺼내자 급난개도 난처한 기색을 띤다. 거지의 특성상 여자를 가까이에서 대한 경험이 적다 보니 그로서도 이런 소식을 전하기가 꺼려졌던 탓이다.

 

“그럼…….”

 

그들의 눈길이 도안을 향하자 제갈운혜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이 소식을 제갈 소저에게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겠네. 아무래도 불교에 귀의한 내가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게 편하겠지.”

 

그는 서찰을 들고 언제부터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운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말없이 서찰을 내밀었고 그녀가 서찰을 받자 합장을 하며 불호를 외웠다.

 

제갈운혜가 서찰을 보니 무림맹의 인장이 찍혀 있는 터라 이제는 꽤나 친해졌다고 하나 흑도의 일원인 예소소와 아이네스 앞에서 서찰을 내용을 바로 펼치기 곤란했다.

 

살짝 고개를 숙임으로써 양해를 구한 그녀는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서찰을 펼쳤다.

 

그리고 단숨에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제갈 소저!”

 

그녀의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부축하고자 뛰어왔으나 그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은 후 예소소에게 서찰을 내밀었다. 그녀가 보기에 예소소가 읽어도 조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흑도에 알려져서는 안 될 내용은 없었다.

 

“저 혼자 있고 싶어요.”

 

그 한마디를 남겨두고 그들이 머물고 있던 공터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찰의 내용을 다 읽은 예소소는 눈을 감으며 안타까워했다. 운혜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제갈 소저…….”

 

무림인들의 운명에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갈두휘의 마지막을 알게 된 그들로서는 보통의 죽음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제갈세가의 적손이자 그녀의 오빠인 제갈두휘의 죽음은 제갈운혜로 하여금 기어코 눈물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것을 보면서 함께 자라왔기에 제갈두휘를 잘 아는 그녀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무엇을 걱정했음을 알고 있던 운혜는 소리죽여 한동안 울었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의 눈은 의지로 빛났다.

 

이제 그녀가 조사하고 있던 사건은 그녀에게 단순히 조사할 사건이 아니다. 제갈두휘가 남긴 유지를 그녀가 이어받아 꼭 해결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었다.

 

“너희들이 누구든, 무엇을 꾸미고 있든,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거야.”

 

그녀는 망인곡이 있는 감숙의 남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두 손을 꽉 쥐었다.

 

 

 

 

 

큰 진척이 없던 조사가 제갈두휘에 대한 서찰 한 통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세 여인이 서찰에 담긴 내용으로 많은 것을 추론해 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미 검은 안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었기에 다른 무사들도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중원의 검은 안개가 사람의 감각을 둔화시키고 내공의 소모를 빠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지요?”

 

“예, 그리고 그것을 피할 방법은 이 패를 착용하는 것이고요.”

 

제갈운혜가 보여주는 검은색의 패는 그들의 감각에도 좋지 않은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네스 소저는 이 패에 사용된 술법을 알 수 있나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아이네스를 향했다. 그녀의 대답이 사건 해결을 위해 중요했다. 만일 그녀가 패에 담긴 술법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안개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다.

 

게다가 빠른 내공의 소모를 감안할 때 두 사람이 절정고수라 해도 안갯속에 들어가 괴물들과 라마승들을 상대한다면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아이네스는 패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삼 분의 일 가량은 중원의 술법인 듯했지만, 나머지는 분명 가이오스트 대륙의 마법을 토대로 된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 술법이 흑마법 계열이었기에 그녀로서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눈앞의 두 여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풀 수 있으리라.

 

“안개를 먼저 확인해봐야겠어요.”

 

“그렇다면 서둘러야 해요. 술법을 분석하고 최소한 조사단의 모든 무사들이 검은 안개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을 찾아낸 후 무림맹과 천마신교에도 방법을 알려야 해요.”

 

운혜의 말에 예소소와 아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밤하늘을 유심히 보고 있던 제갈운혜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림의 도안 스님이 합장을 하며 조용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갈 시주님, 빈승이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소저의 시간을 방해하였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주세요.”

 

제갈운혜가 편안한 웃음을 보여주었지만, 도안은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에 애써 외면한다.

 

“여 시주님도 추성자로 알고 있습니다. 천기를 흔들고 있던 혈랑성이 흰빛으로 바뀐 것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예.”

 

운혜는 자기가 깜빡 잊고 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것은 도안도 추성자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천기를 보는 자들이 혈랑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추성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다만 도안이 왜 혈랑성에 대해서 묻는지 이유를 알 수 없던 그녀였기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데 대사님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물어보시는지요?”

 

지금 흰빛 혈랑성의 주인인 아이네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만일 백도의 무림을 위해서 운운하면서 도안이 아이네스를 해하려 한다면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아이네스가 없다면 그녀가 두휘의 유지를 이어가는데 아주 힘들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고 오히려 전 무림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운혜가 도안의 대답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도안은 대답할 말을 찾느라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뒤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남궁장천과 팽조덕 그리고 급난개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지만 도안은 두 사람을 감지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을 했다.

 

행여 마교의 간세라 오해받지 않을까 해서 제갈운혜가 혼자 있을 때를 이용하여 물어볼까 한 것인데 오해받지 않을 적당한 말을 찾느라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그게…….”

 

하지만 이어지는 남궁장천의 말은 두 사람의 대화가 좀더 쉽게 풀리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도안의 생각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처음 무혼을 추격할 때 나타난 도안의 모습을 짐작하건대 무혼이나 아이네스에게 해를 가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안 형님은 공야 소협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것이지요? 아아, 제갈 소저.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알고 있기에 도안 형님은 혈랑성의 주인에게 해를 가할 의도는 없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제갈운혜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장천의 말이 맞는다면 그녀가 경계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도안의 질문에서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기만 하면 된다.

 

“흰빛 혈랑성의 주인은 아이네스 소저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시작으로 남궁장천과 예소소 그리고 아이네스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도안에게 알려주었다.

 

어차피 그동안 계속 같이 동행하던 조사단의 무사들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었고 알려준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도안과 급난개는 점점 놀라는 얼굴로 변해 갔고 운혜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교의 조사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안의 뒤에 있던 급난개의 작은 불평이 들렸다.

 

“그의 혈랑검을 서역의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하였더니 그렇게 된 것이었군. 그러니 이로대를 뒤지고 다녀도 혈랑환검을 못 찾을 수밖에.”

 

도안은 말없이 고민에 빠졌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기에 그가 앞으로 어찌할지 정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길게 고민하진 않았다.

 

‘붉은빛의 혈랑성이든 흰빛의 혈랑성이든 혈랑성이 앞으로의 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내가 할 일은 혈랑성의 주인을 보호하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된 도안은 자세한 설명을 해준 운혜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그의 잠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누워 혈랑성을 보던 그는 장천과 무혼이 겨루던 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쉽구나,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그때 전력으로 겨루어보는 것인데…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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